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79화 (79/335)

#079화

캬아아아아아아아아!

마석.

마수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기와 마력이 담겨있는 연료탱크와 같은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그것이 부서지면 마수는 살 수 없었다.

파삭.

거대한 마수의 마석이 반으로 쪼개졌다.

하지만 그 순간 마수가 바로 절명하지는 않았다.

다만 제대로 흡수되지 못한 마력과 마기, 블루캔디의 기운이 한데 섞여 폭주하기 시작했다.

넘치는 강렬한 힘에 타오르던 백염도 그 힘을 잃고 꺼졌다.

캬아아아! 캬아아아아아아아!

마수는 머릿속에 울리던 이상한 목소리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마석이 쪼개지고 기운들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왜 마석이 쪼개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더 강한 힘을 집어삼켜 폭주하는 기운을 억누르고 그것들을 모조리 흡수해서 쪼개진 마석을 회복하면 살 수 있다.’

생각을 마친 마수는 눈앞에 있는 자그마한 인간을 노려봤다.

빨간 머리를 한 놀라우리만큼 강한 인간.

‘씹어 삼켜주마!’

***

“운애! 땅개!”

마수의 변화를 알아차린 경호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호. 왜 그래?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경호의 감각에 마석이 쪼개지며 그 속에서 뭔가 순수하면서도 강력한, 어떠한 힘의 원천 같은 것이 빠져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뭔가 문제가 생겼어. 곧 마수가 폭주할 거 같아.”

경호가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제법 몰려든 상황이었다.

“땅개! 운애! 도와줘야 할 일이 생겼어!”

-주인님! 말씀만 하십시오!

-경호. 뭔데? 말해봐.

-경호 님. 저는요?

경호가 자신을 빼고 이야기하자 흰둥이도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흰둥아, 너는 골병이랑 나랑 같이 있으면 될 거 같다.”

수호신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흰둥이는 다현이보다, 아니 경호에게 ‘아빵’이라고 부르는 골병이보다 약했다.

“그러니까 땅개는 저기로 가서….”

경호가 땅개와 운애에게 계획을 설명했다.

***

“후우! 이제 끝났네.”

다현은 지치긴 했지만,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기에 힘겹게 몸을 돌렸다.

“이게 다 뭐야!”

수많은 인파가 돌아선 다현의 눈에 들어왔다.

끼어들 수 없는 엄청난 싸움에 구경만 하던 성원과 정수.

그리고 뒤늦게 쫓아온 신화길드원들과 본부 요원들.

거기다 특종 냄새를 맡고 나타난 기자들과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기웃거리는 시민들까지.

엄청나게 많은 수의 인원들이 몰려있었다.

다현은 마수와 생사를 건 격돌을 치르고 있었기에 이렇게 모였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때였다.

“어엇!”

백염에 타들어 가며 죽어가던 마수에게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낀 다현은 즉시 몸을 돌렸다.

활활 타오르며 죽어가던 마수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백염도 이미 꺼진 상태.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기감이 뛰어나지 않은 다현도 이제 마수의 몸에서 폭주하고 있는 기운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폭주상태다! 이런! 뒤로도 피할 수 없다!’

마수가 폭주해 폭발한다 해도 다현, 스스로는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인원이 몰려있는 상황이라 폭발하면 엄청난 인명 피해가 갈 게 분명했다.

“다들 피해요! 폭발한다고요! 피해요!”

다현이 모여 있는 이들을 보며 대피하라며 소릴 질렀지만, 우왕좌왕하며 혼란만 더할 뿐이었다.

“제길.”

폭주로 인해 폭발하기 전까지 모두 대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길어야 3분. 어쩌면 더 짧을지도. 후우. 무조건 저 마수를 죽여야 해!”

그런 그녀의 앞에 마수는 지금 이 순간도 괴성과 함께 몸부림치며 점점 덩치를 불려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저걸 3분 안에 어떻게 죽이지?”

문제는 수십 미터 크기로 커져 버린 멸망종 마수를 3분 안에 죽일 방법이 다현에게는 없다는 점이었다.

서 있는 것도 힘에 부친 다현에게는 백염을 쓸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마구 흔들리며 땅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콰가가가가. 콰가가가가가.

다현과 마수가 있는 지역이 갑자기 붕괴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싱크홀 현상에 놀랐지만, 다행스럽게도 다른 피해는 없었다.

20m 정도 땅이 꺼지며 둘만의 전장(戰場)이 만들어졌다.

물론 이 거대한 싱크홀은 당연하게도 진은의 노움이 된 땅개의 힘이었다.

“이 정도면 폭발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네.”

마수의 폭주로 폭발이 일어나더라도 이 정도 깊이라면 바깥에 피해가 가지 않을 것 같았다.

3분 안에 죽여야 하는 싸움에서 3분만 버티면 되는 싸움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그럼. 폭발 부담은 털었고! 이 덩치만 큰 두더지야! 덤벼!”

캬아아아아아아.

마수는 갑작스러운 현상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다현만 잡아먹으면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었다.

푸른 안광을 빛내던 눈빛이 어느새 변해 피처럼 붉은색을 띠었다.

후우우우우웅.

조금 전보다 더 빨라진 것 같은 공격에 다현이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며 손을 뻗었다.

마수의 가슴에 박혀 있던 완드가 다시 다현의 손에 돌아왔다.

완드는 회수했지만, 마수의 앞발은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콰아아아아아앙.

“크어억.”

아까와 움직임의 수준이 달라졌다.

다현이 그대로 뒤로 쏘아지듯 날아가 흙벽에 처박혔다.

“쿨럭. 이거 어쩌면 3분 버티기 힘들지도 모르겠네.”

다현은 지금 한 번의 격돌로 힘의 우위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백염 없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그렇다고 도망갈 수도 없었다.

흙벽에 박혀 있는 몸을 힘겹게 빼내려는 순간.

해독될 때 느꼈던 시원한 느낌과 함께 몸이 회복되며 삐걱거리던 것들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운애의 정령력이 다현을 회복시켰다.

“뭐지? 이 힘은….”

다현으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다시 싸울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어쨌든 이제 2분 30초 남았다. 이 두더지 새끼야!”

하지만 버티는 것도 마냥 쉬울 거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마수의 힘은 한방이라도 허용하면 목숨이 위태위태할 정도였고 다현 자신도 버티는 재주는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쑤욱. 쑤우욱.

독가시가 달린 기다란 꼬리가 2개 더 튀어나왔다.

“뭐, 뭐야?”

꼬리 공격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다현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건 좀 너무 한 거 아니냐!”

사실 하나 상대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니었기에 자신을 노리며 흔들리는 세 개의 꼬리에 다현은 완드를 고쳐잡으며 인상을 썼다.

쉐에에에엑. 쉐에엑. 쉐에에에엑.

위, 아래, 옆.

각기 다른 곳을 노리고 날아오는 꼬리를 보며 다현은 이를 악물었다.

이제 완드에 마력 폭발을 일으키는 근접 기술을 어느 정도 익히기는 했지만 세 곳에서 날아오는 마수의 꼬리 공격은 정말이지 위력적이었다.

다현은 몸을 뒤로 빼며 꼬리가 노리는 부위에 청염을 일으켜 폭발시켰다.

쾅! 콰앙! 쾅!

강철 같은 가시가 빼곡하게 박힌 꼬리가 폭발로 방향이 틀어져 겨우 피해낼 수 있었다.

“허억. 헉. 이제 2분 남았어!”

다현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마수가 곧장 달려왔다.

어차피 시간 싸움이었다.

다현이 마수를 피해 몸을 날리려고 하던 그때.

갑자기 차가운 냉기가 돌며 손과 발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아악. 이건 또 뭐야!”

동춘을 잡아먹고 흡수한 ‘빙결’ 특성이었다.

구석에서 그런 다현을 지켜보던 경호가 놀라 은신이 풀릴 뻔했다.

‘위험하다!’

마수가 앞발과 꼬리로 공격을 하는 순간에 손과 발이 얼어붙어 막지도 피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운애. 다현의 마력회로를 보호해줘!

경호는 뭔가 모를 무언가가 마수의 몸 안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느끼고 힘을 아끼려고 했지만, 다현의 위험 앞에서 계속 그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힘을 쓰면 안 되는데 어쩔 수 없네. 제길.’

그와 동시에 경호가 서둘러 손을 뻗어 다현에게 자신의 기운을 흘려주며 동시에 [증폭]을 최대치로 걸었다.

‘이거 어질어질하네.’

당연하게도 수준이 높은 대상일수록 [증폭]을 거는 것은 더 많은 마력과 힘이 들었다.

경호는 강하게 느껴지는 탈력감에 비틀거렸다.

후우우우우웅!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꼬리를 보며 눈을 질끈 감았던 다현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어!”

마나코어에서 끓어오르는 엄청난 기운을 느낀 다현이 놀라 눈을 부릅떴다.

화르르르르륵.

새하얀 백염이 전신에 타오르며 손과 발에 얼어붙어 있던 얼음조각들이 즉시 녹아내렸다.

“어어!”

강력한 힘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쉐에에에에에.

가시가 새파랗게 빛나는 꼬리가 빠르게 다가왔다.

그것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미리 점하며 빠르게 찔러오고 있었다.

“너 내가 피할 거로 생각했구나?”

사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하는 수준의 공격이었다.

경호의 기운과 증폭 특성이 없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 다현은 자신이 있었다.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은 그런 자신감.

다현은 그 기운을 완드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백염을 피어 올렸다.

1초.

1초면 충분했다.

10개의 여우구슬 조각으로 흘러 들어간 힘은 더욱 증폭되어 엄청난 힘을 발현시켰다.

우우우우우우우웅!

엄청난 마력 파동과 함께 완드의 끝에서 새하얀 백염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화염방사기로 불꽃을 뿜어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바로 경호의 엄청난 기운과 [증폭], 거기다 다현의 [화염]과 [광분]까지 모든 것이 한데 섞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결과였다.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거대한 꼬리가 전혀 두렵지 않았다.

후우웅.

다현이 그 어느 때보다 가볍게 완드를 휘둘렀고.

화르르르륵.

거대한 꼬리는 마치 종잇조각처럼 재로 변해 사라졌다.

키에에에에에에에엑!

마수가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다현을 노려봤다.

하지만 나머지 두 개의 꼬리들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꼬리가 모조리 재로 변해 사라진 마수는 그제야 더는 자신이 저 빨간 머리 인간에게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알아챘다.

“자아. 이제 1분 남았다. 아니 폭주로 터지기 전에 끝내주마!”

다현이 가볍게 땅을 박찼다.

수십 미터 크기의 마수 대가리 위치까지 순식간에 뛰어오른 다현이 그대로 완드를 휘둘렀다.

꼬리를 잃고 당황한 마수가 다현의 공격에 급하게 앞발을 들어 막았다. 아니 막으려 했다.

화르르르르륵!

하지만 그대로 앞발과 함께 머리까지 백염에 휩싸였다.

캬아아아아아….

마수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마구 날뛰었지만, 불꽃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끄아아악.

머리가 모조리 타서 재가 되고 나서야 거대한 마수의 몸뚱이가 바닥에 쓰러졌다.

다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하니 서 있었다.

“크윽.”

뒤늦게 검푸른 마수의 피로 칠갑을 한 다현이 비틀거렸다.

경호의 마력이 빠져나가고 증폭의 힘이 사라지자 엄청난 피로감이 그녀를 엄습했다.

“어쨌든 이겼….”

비틀거리던 다현이 기절하자 경호가 다가가 쓰러지는 그녀를 붙잡았다.

그때 마수의 잘린 목에서 묘한 기운을 가진 푸른색의 무언가가 빠르게 튀어 나가는 것이 보였다.

-경호 님!

흰둥이도 그 기운을 느끼고 경호에게 소리쳤다.

경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현을 바닥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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