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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73화 (73/335)

#073화

“사, 살려주십시오! 제, 제발 살려주세요. 더 완벽한 캔디를 만들 수 있습니다! 더 완벽하게. 시간도 3시간이 아닌 5시간. 아니 10시간까지도 늘릴 수 있습니다! 제발!”

블루캔디 프로젝트의 수석연구원이 김수종 박사가 기둥에 꽁꽁 묶인 채 벌벌 떨며 울부짖고 있었다.

“그러니까 너무 똑똑해도 제명에 못 산다니까. 옛말에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난 그 말이 진짜 맞는 말 같아. 우리 김 박사님만 봐도 그렇잖아.”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그런 그를 보고 있던 ‘백곰 백동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해줘도 이해 못 할 테지만 그냥 들어요. 왜 죽는지는 알고 죽어야 저승에 가서 이야기라도 할 거 아니에요.”

“살려주십시오. 제발. 조금만 더 연구하면 완벽한 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최하급 마수도 멸망종에 가깝게 진화시킬 수 있습니다. 제발! 집에 임신한 아내와 어린 딸이 있습니다. 제….”

“쉬잇!”

동춘이 손가락을 들어 입에 갖다 댔다.

“박사님. 우선 들어보라니까요. 저는 지금 박사님의 연구결과가 부족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니까요. 아까도 이야기했잖아요. 미인박명. 박사님은 너무 아름답게 일을 잘하셨어요. 생각보다 더 빨리 끝내서 아쉬울 정도로 말이죠.”

“그, 그런데 왜? 왜 절 죽이시려는 겁니까?”

“필요 없으면 죽여야죠.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비밀도 많이 알고 있고 그런데. 그래도 특별히 박사님은 이렇게 이유라도 말해주고 보내드리는 겁니다. 억울하지는 말라고 말이죠. 저, 백동춘이 그 정도 의리는 있는 놈입니다.”

다른 연구소 인원들은 벌써 모조리 처리한 후였다.

“아니. 왜.”

김박사는 자신이 왜 필요가 없어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블루캔디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다.

성능개선 속도도 예정보다 빨라서 조금만 더 연구하면 정말 엄청난 성과도 만들 수 있을 정도.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제가 악마와 거래를 한다는 소문을 들은 적 있나요?”

김박사는 그런 소문으로 듣기는 했었다.

뭐,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웃고 넘기긴 했지만.

“맞아요. 저는 악마계약자입니다. 진짜예요. 이건 그 계약의 징표고요.”

동춘이 손목을 들추자 검은 부엉이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여기 태수 씨도 계약자고요. 어쨌든 악마는 지구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저도 당연히 세계 정복 따위를 꿈꾸고 있지도 않고 말이죠.”

사실 마계의 마족들이 다른 차원계를 공격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종족 번식을 위해, 식량 생산을 위해, 지역 확보를 위해, 자원 획득을 위해.

정령계 같은 경우는 실패하긴 했지만, 풍부한 마나를 품고 있는 곳이라 종족 번식을 위해 침략을 한 경우였다.

그리고 지구는 식량 생산을 위한 농장 개념으로 침략을 한 것이었다.

인간의 영혼은 육체가 가진 힘에 비해서 엄청나게 강인하고 단단하기에 타락시켜 흡수하면 그 맛과 영양이 아주 훌륭했다.

그래서 인간의 영혼은 악마가 가장 군침을 흘리는 음식 중 하나였다.

그런 이유로 지구를 침략한 마족은 인간끼리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 봐야 괜히 아까운 식량만 소모될 것이니까.

마수를 풀어놓은 것도 인간을 더욱 강인하게 만들어 영혼을 단련시켜 맛과 영향을 끌어 올리기 위함이지 인류를 멸망시키겠다는 의도가 아니었다.

“지구는 악마들의 농장입니다. 인간들은 소 돼지 같은 거고 말이죠. 하지만 악마들은 직접 농장을 운영하지 않으니까 나 같은 대리인이 필요한 거예요. 이해됐죠?”

지금 악마와 계약을 맺은 이들의 가장 큰 임무는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마신의 계시에 나온 용사를 찾아 없애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박사님이 이제 필요 없는 거예요. 인간이 강인해질 정도의 시련만 안겨주면 되는데 그건 지금 블루캔디로도 충분하거든요. 아니 이미 넘치는 정도예요. 하여간 한국인은 너무 똑똑하다니까. 노벨상 못 받은 게 이상할 정도라니까.”

김박사는 멍청하지 않았기에 동춘의 말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100% 여기서 죽을 거라는 사실과 함께.

김박사는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가족만은 꼭 살려야 했다.

“회장님! 제발 가족은 살려주십시오.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차피 와이프나 아이는 제가 평범한 제약회사나 다니는 연구원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발! 이제 곧 출산하는 아내와 아직 3살 먹은 딸은 제발 살려주십시오!”

눈물을 줄줄 흘리며 소리치는 김박사를 보던 동춘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옆에 있던 태수가 그의 뒤로 가서는 우의를 입혀줬다.

“아까 이야기했을 텐데요. 나 백동춘이. 꽤 의리 있는 놈이라고요.”

동춘이 테이블 위에 있는 두툼한 크리스털 재떨이를 손에 쥐었다.

“감, 감사합니다. 회장님.”

김박사는 가족의 행복을 기도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 그에게 동춘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아무리 못된 놈이라도 가족을 생이별시킬 순 없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미 하늘나라로 보내 놨으니까, 그곳에서는 부디 행복하게 살아요.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동춘의 말에 김박사가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야이! 개새…. 끄악!”

하지만 그게 그의 인생 마지막 순간이었다.

퍼억! 퍽! 퍽! 퍼억!

피가 튀고 살이 터졌다.

그리고 잠시 후 김박사의 고개가 꺾였다.

***

-아…. 빠앙.

금봉황의 혈통답게 일주일쯤 지나자 더듬거리긴 했지만, 어느 정도 골병이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골병아. 아빠다. 아빠.”

경호는 아빠라는 단어가 엄청 낯설 거라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생각보다 그렇게 이상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주인님! 여기 튼실한 녀석들로 준비했습니다.

“그래. 땅개야. 고생했다.”

요즘 들어 자주 행운공원에서 골병이와 함께 시간이 보냈다.

신수와 정령은 원래 관계가 좋기에 운애나 땅개도 싫어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땅개가 땅을 파고 들어가서 지렁이를 한 무더기씩 퍼 올려줬다.

삐약. 삐. 삐약.

최근 일주일 동안 지렁이 맛에 눈을 뜬 골병이가 아주 신이 났다.

진은의 노움이 가꾸는 토양답게 그 속에 사는 지렁이도 거의 작은 뱀 수준으로 크고 굵었다.

그런 지렁이를 골병이는 눈 깜빡할 사이에 해치우고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경호를 쳐다봤다.

-아빵. 더 져. 더 져.

그 모습을 본 땅개가 다시 땅속을 파고들었다.

촤르르르르르르르르.

그때였다.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세계수의 가지가 부르르 떨리며 잎사귀가 흔들렸다.

“뭐지?”

파앗.

그때 땅개가 솟구치며 다시 지렁이를 한 움큼 퍼 올렸다.

“땅개야. 혹시 세계수가 왜 저렇게 떨리는지 알고 있느냐?”

땅개가 경호의 물음에 세계수를 이리저리 훑어보고는 대답했다.

-주인님.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가 정령력으로 비옥하게 만든 토양에서 힘을 끌어올려 그것으로 신력을 만들어 모으고 있습니다.

땅개에 말에 경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계수가 성장하려고 하는 건가?’

경호의 생각은 반만 맞았다.

세계수의 가지와 뿌리가 꿈틀거리더니 수십 가닥이 뻗쳐 나와 골병이를 감쌌다.

“어어!”

경호가 ‘뭐지?’ 하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대처를 하지 못했다.

보통 같았으면 마력을 끌어올려 가지와 뿌리를 박살 내겠지만, 세계수가 골병이에게 해를 끼칠 거 같지 않았기에 우선 지켜보기로 했다.

-주인님. 세계수가 아까 끌어모았던 신력을 골병이에게 불어넣고 있습니다.

굳이 땅개의 말이 아니라도 느껴졌다.

그리고 칭칭 감겨있는 덩굴 안에서 변화하고 있는 골병이의 모습도 경호는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지름이 1m도 되지 않았는데 점점 덩굴 더미의 크기가 커지기 시작했다.

‘마치 인큐베이터 같은 느낌이네.’

덩굴 안에서 신력을 먹으며 무럭무럭 골병이가 성장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알 속에서 금봉황이 남긴 신력을 모두 흡수하고 황금대붕이 되어 날아올랐어야 했다.

늦었지만 어쨌든 그 역할을 세계수가 해주고 있었다.

‘어?’

그런데 문제가 생긴 듯 보였다.

-주, 주인님. 곧 신력이 끊어질 듯합니다.

경호도 느꼈다.

터진 둑에서 나오는 물처럼 거세게 나오던 신력이 점점 메말라가는 것을.

“왜 갑자기 신력이 줄어드는 것이냐?”

-주인님. 모두 제 탓입니다. 노움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토양에 기운이 충만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땅개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골병이에게 주입하던 신력을 저렇게 허무하게 끝낼 수는 없었다.

“하아. 하여간 한번을 그냥 쉽게 넘어가는 경우가 없네.”

경호는 투덜거리면서도 서둘러 세계수에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들어 세계수에 갖다 댔다.

“너도 많이 컸구나.”

이제는 세계수도 제법 커져 둘레도 성인 두어 명이 있어야 감쌀 수 있을 정도로 굵어졌고 높이도 10m가 넘었다.

경호가 마력을 끌어올려 세계수에 주입하기 시작했다.

세계수는 신력이나 정령력, 마력 이 세 가지 다른 힘을 경호나 드래곤보다 더 잘 다루는 존재였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경호의 마력에 반응하며 다시 신력이 가지와 뿌리를 통해 골병이에게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크윽. 많이도 빨아가는구나.”

예전에 울피에게 쏟아붓던 것 이상으로 많은 양의 마력이 세계수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입술이 마르고 심장이 조여 왔지만 이제 와 멈출 수는 없었다.

아까였다면 모를까 골병이가 신력을 많이 흡수하면서 신수로 변화하고 있는 단계였기에 지금 멈추면 그 반발력으로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우리나라를 지켜주던 금봉황의 후예를 포기할 수는 없지. 크윽.’

마나코어를 억지로 쥐어짜던 경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부르지 그랬어.

상큼한 목소리에 찌푸렸던 경호의 미간이 살짝 펴졌다.

운디네. 운애였다.

그런 경호의 아랫배에 운애가 손을 가져갔다.

움찔.

마나코어가 있는 곳에 손을 가져간 것이지만 경호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조금 차가울 거야.

운애의 말처럼 차가운 기운이 그녀의 손을 따라 경호의 마나코어를 감쌌다.

시원한 느낌과 함께 마나코어에서 느껴지던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후우. 이제 좀 살 거 같네. 고마워.”

-떡볶이 얻어먹었으니까 이 정도는 해야지.

운애의 말에 피식 웃은 경호가 집중하며 마나코어를 더욱 쥐어짰다.

우우우우우우우우웅.

커다란 마력이 세계수로 넘어가 순수한 신력의 힘으로 전환됐다.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우웅!

그렇게 변환된 엄청난 양의 신력이 흘러 들어가며 골병이를 둘러싼 덩굴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감겨있던 덩굴들이 풀어지며 그 안에서 눈부신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

“골병아!”

쑤우우우우우우우웅.

엄청난 속도로 하늘로 날아오른 골병이가 날개를 활짝 펼쳤다.

“….”

분명 날아올랐다.

엄청난 신력이 느껴졌고 눈부신 황금빛과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는데.

삐. 삐약.

황금빛 기운을 뿌리며 날아다니는 것은 여전히 병아리 같은 골병이였다.

-그래도 신력은 많이 되찾은 모습이네. 아직 병아리의 모습은 하고 있지만.

운애는 조선의 수호 신수였던 금봉황을 아는 말투였다.

“그래?”

-천수를 다하지 않았으면 마계가 침략하기 어려웠을 정도로 강한 신수였거든. 전투력만 따지면 오히려 지구의 수호신보다 더 강했으니까.

운애의 말에 경호가 상서로운 황금빛을 뿌리고 있는 골병이를 쳐다봤다.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면 날아다니는 황금빛 병아리는 신비함을 넘어 기묘한 느낌까지 선사했다.

한참을 날아다니던 골병이가 빠르게 경호의 어깨로 날아왔다.

탁.

경호의 어깨에 내려앉은 골병이가 경호의 볼에 얼굴을 문지르며 말했다.

-아. 빠앙.

“그래. 천천히 크자. 고생했다. 고생했어.”

이대로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갓난아기를 둔 부모의 마음을 경호는 조금은 알 거 같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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