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화
-경호 님. 우욱. 저번에 솔딘에게 가방을 받아오지 않았나요?
“미안. 깜빡했다. 흰둥아.”
-…. 욱. 우욱.
가방형 시트를 솔딘이 만들어 줬는데 경호가 깜빡하고 그냥 옆구리에 끼고 날아온 탓에 역시나 흰둥이는 비틀거리며 헛구역질을 하는 중이었다.
구름 아래로 머리를 처박고 구역질을 하던 흰둥이의 눈에 묘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어? 저건?
구름이 떠 있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이다 보니 흰둥이도 정확히 확인이 어려웠다.
하지만 분명 느껴지는 기운은.
-붕조(鵬鳥)? 경호 님!
경호도 그제야 마력을 끌어올려 아래를 살폈다.
‘어! 정말 붕조의 기운인데.’
삼족우 무리 사이로 붕조의 기운이 느껴졌다.
미르의 사도 중에도 ‘로크’라는 푸른색 붕조가 있었기에 붕조의 기운에 대해 잘 아는 경호였다.
경호가 엄청난 속도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경호…. 으아아아아아아!
쿠웅.
경호는 헛구역질하는 흰둥이를 내버려 둔 채 삼족우 무리에 둘러싸여 허둥대고 있는 존재를 살폈다.
‘붕조다! 그것도 금빛 붕조!’
금빛이 도는 비둘기 크기 정도 되는 붕조였다.
‘이제 막 태어난 새끼군. 아직 신수로 성장도 하지 못한 영물이야.’
영물과 신수는 엄연히 다른 존재였다.
영물인 이무기가 수백 년을 수련해야 신수인 신룡으로 변하는 것과 같았다.
다만 붕조에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정령의 봉인석처럼 붕조는 죽기 전 알을 낳는데. 그러면서 낳은 알 속에 자신의 기운을 모두 담은 후 소멸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붕조는 그 기운을 모두 흡수하고 알에서 깨어나기 때문에 보통 영물이 아닌 바로 신수인 상태로 태어난다.
“그런데 저 녀석은 그게 아닌 모양인데? 신수가 아니라 확실하게 영물인데.”
-경호 님. 아마도 마수들의 영향으로 신력을 제대로 흡수 못 하고 깨어난 듯싶습니다.
흰둥이의 말에 경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호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았다.
“우선 마수들부터 좀 치워야겠네.”
비둘기 크기의 붕조가 괜히 밟히거나 해서 위험할 수 있으므로 삼족우부터 치워야 할 거 같았다.
5급 주의종.
군인들의 개인화기로도 잡을 수 있는 마수였다.
굳이 귀찮게 용아검을 꺼낼 필요도 없었다.
우우우우웅.
손날에 마력을 끌어올려 경호는 그대로 휘둘렀다.
스가악.
손날을 덮고 있던 새하얀 탄검기가 붕조 주변에서 날뛰던 삼족우의 목을 쳤다.
손날을 몇 번 휘두르니 십여 마리가 넘는 삼족우의 대가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경호의 살기 어린 공격에 삼족우 무리가 삽시간에 흩어졌다.
삐약! 삐약!
붕조는 무서웠는지 고개를 땅에 박고는 병아리처럼 삐약! 삐약! 울었다.
“이걸 어쩐다.”
경호가 그런 붕조를 지켜보다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많지는 않지만, 신력이 존재하는 경호에게서 친근함을 느꼈는지 붕조는 얌전하게 손 위에 앉아서 그의 눈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삐! 삐약?
한참을 쳐다보던 붕조가 푸드덕거리며 홰를 치더니 경호의 어깨 위에 올라갔다.
“깜짝이야.”
그러고는 경호가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의 몸을 얼굴에 비볐다.
-붕조가 경호 님이 마음에 드나 봅니다.
아마도 각인(imprinting) 효과 때문인 듯싶었다.
알에서 나온 조류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것으로 신력을 풍기는 경호를 보고 어미로 여긴 듯싶었다.
마치 알을 깨고 나온 오리가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황금 붕조는 귀한데.”
드래곤도 골드, 레드, 블루, 그린 같은 종류가 있듯 붕조 역시 그랬다.
정령계에서 함께 마계와 싸우던 로크는 청붕(靑鵬)으로 뇌전을 뿜어내는 신수였다.
흔히 적붕(赤鵬)이 불사조라 불리며 붕조 중에 가장 유명했지만 사실 금붕(金鵬)이 월등하게 강했다.
특히 물리적인 전투력은 비교 불가였다.
그런 금붕이 경호를 어미로 여기며 볼을 비비며 삐약거리고 있었다.
-경호 님. 아마도 조선의 수호 신수였던 금봉황의 후손 같은데요? 갑자기 금봉황이 사라져 그 연유가 궁금했었는데 그때 여기에 알을 남긴 모양입니다.
그것이 200여 년 전 일이었다.
모든 게 그것 때문은 아니었지만 금봉황이 사라진 그때부터 조선의 국운이 급격히 기울었고 결국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구나. 하긴 그 정도 기간은 신수들에게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니까.”
수호신이 아닌 보통의 신수들도 몇 천 년을 살아가는 존재들이었다.
경호가 어깨에 올라타서 애교를 한껏 부리고 있는 붕조를 보며 피식 웃었다.
-왜 그러십니까? 경호 님.
“아. 이름을 뭐로 할까 하다가 괜찮은 게 떠올라서.”
-설마 삐약이 같은 건 아니겠지요? 그래도 금봉황이 이 나라의 수호 신수였는데. 그의 후예인 만큼 그에 어울리는 멋진 이름으로 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흰둥이의 말에 내심 ‘삐약이’도 괜찮은데? 하고 생각하던 경호가 움찔거렸다.
하하하.
멋쩍게 웃은 경호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요즘 퓨전 시대잖아. 그래서 ‘골병이’라고 지을까 했는데….”
흰둥이가 경호의 중얼거림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골병이요? 설마 경호 님. 골든 병아리를 줄여서 골병이라고 한 겁니까?
정답이었다.
지구의 수호신이자 주신의 반려견인 카니스를 보고 ‘흰둥이’라 이름 짓고, 땅강아지 형상의 정령에게 ‘땅개’라는 이름을 지어준 경호의 네이밍 센스로 지을 수 있는 이름의 한계였다.
“그래도 황병이나 노병이보다 괜찮은 거 같은데.”
‘황금붕조’에게 ‘황병이’, ‘노병이’라니!
-꼭 ‘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경호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어깨에 올라타고 있는 새끼 붕조를 보며 물었다.
“골병아. 어때 이름이 마음에 들어?”
삐야! 삐약!
고개를 끄덕이며 삐약거리는 게 진짜 마음에 들어하는 모습이었다.
“잘 봐. 골병이도 이름이 마음에 든다고 하잖아.”
저렇게까지 나오는데 흰둥이도 더는 말리고 싶지 않았다.
-뭐. 황병이나 노병이보다 확실히 나아 보이기는 하네요.
“그렇지? 골병아! 그럼. 이 형아가 신수가 될 때까지 잘 키워줄게.”
사실 경호는 병아리를 엄청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교문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엄마 허락도 없이 사 와서는 방에서 몰래 키우려다 걸려서 혼나기 일쑤였다.
지숙은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병아리가 불쌍해서 그런 거였지만 경호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몇 번이나 더 병아리를 샀었다.
‘5학년 때쯤 포기했지. 며칠도 못가서 항상 죽었으니까.’
어린 마음에 병아리가 죽으면 며칠을 울고 불며 속상해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럼. 삼족우 고기 좀 발라서 가져갈까?”
***
“엄마! 저 왔어요!”
경호가 식당 문을 열며 들어갔다.
“아들. 그래도 저녁 먹기 전에 왔네.”
“아. 당연하지. 이거 봐. 완전 대박 아이템 가지고 왔다니까.”
경호의 손에는 제법 두툼한 대리석처럼 보이는 돌판이 들려있었다.
“대리석?”
“아니 암염이라고 알지? 그거를 두툼하게 제단해서 만든 불판이야. 이거로 구우면 원적외선도 나오고 육즙에 소금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간도 적당해지고 하여간 엄청 맛있거든.”
물론 암염을 제단해서 만든 불판은 아니었다.
예전처럼 국가 간 무역이 활발한 상황이 아니기에 암염은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하지만 소금은 바닷물을 끌어올려 기계로 증발시키는 방법으로 생산하기에 지금도 흔했다.
그리고 그것을 염력으로 강하게 눌러주면서 적염을 일으켜 열을 가하면 이렇게 대리석처럼 단단한 소금 불판을 만들 수 있었다.
“아니. 아들 이런 걸 어디서 구했대?”
지숙뿐 아니라 미호까지 불판을 두드려보며 신기해했다.
“아. 이거 최용사공방의 솔딘이 소금광맥을 어쩌다가 찾으셨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사 왔어. 일주일 뒤에는 20개쯤 더 만들어 주실 거야. 그리고 이거.”
경호가 지숙에게 묵직해 보이는 검은색 비닐봉지를 건넸다.
“아니? 이게 다 고기야?”
비닐봉투 가득 삼족우의 갈빗살이 담겨 있었다.
“오늘 배 터지게 먹자 했잖아.”
그때였다.
삐. 삐약.
크지 않은 소리였지만 분명 병아리 울음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삐약?”
지숙이 골병이의 울음소리에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경호가 머리를 긁적이며 주머니에서 작은 병아리 하나를 꺼냈다.
원래는 비둘기만 했던 녀석이었지만 다행히 영물은 영물인지라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해서 크기는 작게 조절한 상태였다.
“여기 골목길에서 혼자 삐약거리고 있어서….”
경호가 최대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지숙을 쳐다봤다.
하지만.
“병아리는 혼자 놔두면 외로워서 금방 죽어. 그냥 시장에 닭 파는 곳에 가져다주고 와.”
경호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금봉황의 후예를 시장 닭 장수에게 맡기라니!
“여기 흰둥이랑 같이 있으면 되잖아.”
지숙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흰둥이랑 있으면 더 위험하지. 강아지가 병아리를 잡아먹는다니까.”
삐약! 삐! 삐약!
경호가 골병이를 흰둥이 옆에 내려놨다.
“얘가 큰일 난다니까! 아들. 그러다 정말 잡아…. 어?”
골병이는 흰둥이의 몸통 위를 방방 뛰어다니며 여기저기를 쪼아댔다.
흰둥이의 표정에서 귀찮음이 묻어나오기는 했지만 별 반응 없이 그냥 엎드려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래?”
“밖에서부터 흰둥이가 좋아하더라고 그래서 괜찮을 듯싶어서. 물론 식당 안에서 키운다는 건 아니고 뒷문 쪽에 작은 닭장 하나 만들어서 키우려고.”
경호의 말을 모두 들은 지숙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초등학교 다니던 어릴 적 그때의 아들이 아니었다.
스스로 한다고 했으니까 그것까지 말릴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래. 알았어. 그래라. 그럼.”
다 큰 아들이 병아리를 키운다는 게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지숙은 반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땡큐. 엄마. 그럼. 지금부터 소고기 파티를 해볼까?”
경호가 가스렌지 위에 불판을 올렸다.
미호가 쌈 채소부터 여러 가지 밑반찬까지 꺼내 서둘러 테이블에 차려냈다.
서서히 불판이 달아오르자 경호가 삼족우의 갈빗살을 꺼내 얹었다.
치이이이이이. 치이이이이익.
맛있는 소리를 내며 갈빗살에서 고소한 육향이 터져 나왔다.
투뿔 한우 갈빗살에서도 느낄 수 없는 그런 진하고 고소한 육향에 모두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이런 좋은 고기는 오래 익히면 안 된다.
표면만 살짝 익은 녀석으로 경호가 골라 후후 불어서는 지숙에게 내밀었다.
“이거 암염 불판이라 자동으로 간이 돼 있는 거라 그냥 먹어도 간이 맞아.”
지숙의 경호가 준 고기를 입에 넣고는 몇 번 씹었다.
“어? 어어!”
그리고 끝이었다.
“아, 아들!”
씹자마자 터지듯 육즙이 흘러나오고 입안 가득 육향이 퍼지더니 순간 녹아내리듯 고기가 사라지고 은은한 여운만 남겼다.
마치 마법 같은 그런 환상적인 맛이었다.
미호도 한 점씩 먹고는 모두 말을 잃었다.
“사장 오빠! 이거 대박인 데요! 회장님이 드시면 완전….”
미호의 눈에서 욕망의 빛이 번쩍번쩍 쏟아져 나왔다.
돈가스 때만 해도 승부욕이 발동했건만 이제는 그런 거 상관없이 젓가락이 먼저 반응했다.
지숙과 미호의 젓가락질에 불판 위 노릇하게 구워지고 있는 삼족우 갈빗살을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