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71화 (71/335)

#071화

“어? 미르. 저기, 저건 무슨 마수야?”

미르를 타고 하늘을 날며 순찰하던 중 초원을 달리는 한 무리의 마수를 보고 물었다.

-저거 삼족우 같은데?

삼족우(三足牛).

발이 세 개 달린 5급 주의종으로 그냥 성난 들소 수준의 최하급 마수였다.

“삼족우? 맛있을까? 그래도 소니까 맛있겠지? 원래 소고기는 무조건 맛있잖아.”

-저것도 잡아서 먹게? 이제 삼족우도 씨가 마르려나.

3초 뿔돼지 삼겹살을 맛본 검은 망치 부족에서 뿔돼지 사냥에 나서면서 이제 거의 씨가 말라가고 있었다.

사육하자는 이야기도 나오는 상황이었다.

“우선 잡자!”

그렇게 잡은 삼족우를 가지고 검은 망치 부족을 찾아갔다.

워낙 덩치가 큰 삼족우였기에 갈비 부위만 잘라내도 부족원 전체가 먹고 남을 양이 나왔다.

“오우야. 마블링이 이 정도면 투뿔을 넘는 수준인데.”

“용사님! 이거 어쩌면 3초 뿔돼지 삼겹살을 뛰어넘는 대박 요리가 나올 거 같은데요?”

솔딘의 말처럼 기름기가 꽃처럼 하얗게 박혀있는 갈빗살만 봐도 맛있어 보였다.

불을 피우고 그 위에 핑크빛이 도는 두툼한 돌판을 올렸다.

흔히 구할 수 있는 평범한 돌판이 아니었다.

암염 불판.

검은 망치 부족이 얼마 전에 찾은 광산에서 캐낸 암염을 잘라 만든 불판이었다.

그냥 숯불에 구워도 고기 맛이 좋지만 암염 덩어리를 구하고 나서는 자주 이것을 애용하는 편이었다.

치이이이이이익.

달궈진 암염 덩어리에 선홍빛 갈빗살을 올리니 기름이 녹아 나오며 노릇하게 구워지기 시작했다.

육즙이 살짝 올라올 즈음 바로 갈빗살을 뒤집어 다시 노릇하게 구웠다.

고소하면서도 진한 육향이 코끝을 찔렀다.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나 백점 만점이었다.

나는 옆에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고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솔딘에게 고기 한 점을 건넸다.

“맛이 어때요?”

마수고기 중엔 보기에 맛있어 보이나 실제론 그렇지 않은 것들도 꽤 있었기에 경호는 솔딘에게 먼저 시식을 권했다.

쩝쩝쩝. 어?!

“용사님. 이거 입에서 아주 살살 녹는데요.”

“갈빗살이 입에서 녹는다고요?”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투뿔 한우 갈빗살도 그 정도까지 부드럽진 않았었다.

나는 잘 익은 갈빗살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몇 번 씹기도 전에 갈빗살이 육즙만 남기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거 뭐야!”

그날부로 ‘삼족우의 위기’라 불리는 경호와 검은 망치 부족이 하나 되어 삼족우의 씨를 말리는 사냥이 시작되었다.

***

“그러니까 일주일 뒤에 길드 하우스가 완공되니까 그날 기념 회식을 우리 식당에서 하겠다고?”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온 성원이 길드 하우스 완공 기념 회식에 대한 말을 꺼냈다.

물론 그 말을 들은 경호의 표정은 어둡게 변했다.

-형님. 부탁 좀 드릴게요.

“야. 그런 거는 그냥 큰 식당 잡아서 하라고! 좁아터진 우리 식당에서 무슨 회식이야. 회식은.”

-좁으면 완공 기념식 자리 앞에 식탁 깔고 하면 되죠. 뭐.

“지금 그게 포인트가 아닌 거 알면서.”

-에이. 그 핑계로 형님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그러는 거죠. 요즘 바빠서 통 보지도 못했잖아요.

“그냥 얼굴은 영상통화로 보면 안 될까? 난 괜찮은데.”

성원의 말처럼 요즘 너무 바쁘긴 했다.

각성자 교육기관 프로젝트.

성원이 꿈꾸는 ‘신화 학원’은 각성자관리원과 이해관계가 엮여 마찰이 심했다.

또한, 여러 가지 관련 법안도 시간만 끌며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신화길드가 성장하자 신화 그룹에서 힘을 실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방위로 로비를 하자 상황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로비에 가장 앞장서는 이가 바로 성원이었다.

“말이나 못 하면. 그래. 회식이라. 그럼. 저번처럼 뷔페식으로 차리면 될까?”

경호도 성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냥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좋지만 고기 구워 먹는 것도 좋을 거 같은데.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물어보니 자기들은 괜히 어색한 뷔페보다는 그렇게 먹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뭐. 준비야 어렵지 않지. 그럼. 정말 완공 기념식 하는 곳에 식탁 깔아야 하겠는데.”

-네. 형님. 그럼. 그날 저희 쪽에서 자리 깔게요.

성원의 말에 경호의 머릿속이 번뜩이며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삼족우!

경호가 생각하기에 최고의 고기 회식 재료였다.

“오케이. 그럼. 자리만 만들어. 내가 준비해볼 테니까.”

-오예! 그럼. 형님. 다시 연락드릴게요! 사랑합니다!

“징그러우니까. 사랑하지 마.”

경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전화를 끊었다.

“엄마! 들었지?”

경호가 주방에서 점심 준비를 하는 지숙을 보며 물었다.

“어! 그럼. 이제 함바집도 일주일 남은 거네. 그럼. 우리 미호는 가는 건가?”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기에 지숙이 아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물을 무치던 미호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요. 길드 하우스는 완공이지만 골목 정비랑 주변 개선 사업. 거기다 아직 비밀인데요. 헌터들을 위한 학교도 지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때가 되면 아마 여기 행운식당도 몇 배는 커져야 할거에요.”

미호의 말에 미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몇 배나? 인부가 늘더라도 어차피 한때니까 굳이 가게를 키울 필요는 없잖아. 안 그런가?”

지숙의 말에 경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굳이 가게를 키울 필요 있을까? 정 자리가 모자라면 임시로 밥 먹을 곳 만들어서 우리가 그곳에 출장뷔페처럼 배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아. 길드장님이 아직 말씀 안 하셨구나. 사실 확정된 건 아니에요.”

아니, 또 뭐가? 하는 눈빛으로 경호가 미호를 쳐다보자.

“사실 헌터 학교에 대한 허가가 나면 이곳 골목에 식당이나 카페 같은 가게를 열어 먹자골목으로 재정비하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이 골목을 상징할 수 있는 곳으로 여기 행운식당을 키우고 싶다고 하셨어요.”

“어? 뭐라고?”

아니 누구 맘대로! 여기 식당 회장도, 사장도 모르는 그런 사업을 누구 맘대로 진행하려는 거냐고!

“성원이가 그랬어? 하지만 사실 우리한테 그럴 돈도 없다고.”

경호의 말에 지숙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 말처럼 그럴 여력도 없고. 그냥 이렇게 장사하면서 조금씩 손님이 늘어나는 것만도 충분한데. 게다가 미호 같이 성실하고 이쁜 직원이 생긴 것만 해도 너무 좋고 말이지.”

지숙도 사실 처음에는 가게가 커지고 직원도 늘어나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다.

골목이 점점 쇠퇴해지면서 손님이 끊기고 생활이 어려워졌지만, 그것 나름대로 적응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손님도 늘고 바빠지며 하루하루 시끌벅적하고 힘들었지만, 그 이상으로 얻어지는 행복감과 즐거움이 크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언제까지 식당을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지숙은 자신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이런 상황에서 억지로 빚을 만들면서까지 식당을 키우고 싶진 않았다.

그러다 자신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 빚은 고스란히 경호에게 돌아갈 것이기에 그것이 걱정스러웠다.

‘지금 이 수준으로 유지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 함바집과 돈가스를 병행해서 파는 것만으로도 예전의 몇 배나 되는 수입을 올리는 중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지숙에겐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수준이었다.

“아니 회장님.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설마 돈 걱정하시는 건 아니죠? 당연히 골목 상권을 살리는 것에 대한 프로젝트니까 신화 그룹에서 지원이 나오죠. 아니어도 설마 길드장님 성격에 돈을 받지도 않겠지만요. 사실 이곳처럼 주목받는 핫플레이스면 오히려 골목에 남아달라고 돈을 안겨줄 판이라고요.”

“…?”

“…!”

미호의 말에 경호와 지숙 둘 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돈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준다고? 아니 왜?”

지숙이 미호의 말에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물었다.

“에휴. 사장님이나 회장님이나 너무 옛날 사람이라니까.”

“돈이 꽤 들어갈 텐데. 그걸 공짜로 해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돈을 준다고?”

미호의 말처럼 세상 물정엔 문외한인 경호 역시 미호의 말이 잘 이해 안 되긴 마찬가지였다.

“사장 오빠도 참. 지금이야 주거지역 등급별로 임대료 차이가 나지만 예전에 기억나요? 왜 있잖아요. 경리단길이니 망리단길이니 했던 곳들. 원래는 낡은 골목이었다가 갑자기 뜬 핫플레이스잖아요.”

10년 전 기억이긴 하지만 경호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지역들이었다.

경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미호가 말을 이었다.

“그런 곳들이 만들어지려면 이슈 되는 곳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냥 프랜차이즈나 깔아놓고 골목만 깨끗하게 정비한다고 사람들이 찾는 그런 핫플레이스가 되는 게 아니니까요.”

“너는 그런 이슈가 되는 곳이 우리 식당이라는 거야?”

“그렇죠. 저번에 사장 오빠가 돈가스를 누가 줄 서서 사 먹냐고 했지만, 그날 이후로 점점 늘어서 이제 문 열기 전부터 줄 서고 있잖아요.”

경호의 예상과는 다르게 점점 입소문이 나면서 대기 손님도 늘고 결국 못 먹고 발걸음을 돌리는 손님까지 생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 회식이 엄청 중요하다고요. 제가 듣기로는 회장님도 오신다고 했으니 이번에 힘 좀 빡 줘서 인상 깊은 요리를 선보이는 거죠. 아까 들어보니 고기 회식이라고 했는데. 흔한 고기 회식을 가지고 특별하게 차별화를 하면 더 기억에 남을 수 있잖아요.”

미호의 말에 경호가 혀를 내둘렀다.

“미호. 대단한데. 아니 내가 통화하는 내용을 듣고 그런 생각까지 한 거야? 몰랐는데 욕망이 넘치는 스타일이었네.”

“사장 오빠. 지금 같은 상황에선 칭찬해줘야죠. 어쨌거나 행운식당이 잘 돼야 저한테도 좋은 거니까요.”

‘고기 회식의 차별화’라는 미호의 말에 경호의 머릿속에서 암염 불판이 떠올랐다.

‘요즘 시대에 암염을 구하기 어렵지만…. 내가 만들면 되니까.’

옛말에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엄마. 내가 특별한 불판이랑 고기를 구할 수 있을 거 같거든. 그럼. 흰둥이랑 좀 다녀올게.”

경호의 말에 지숙이 의심의 눈초리로 아들을 쏘아봤다.

“흐음. 또 흰둥이랑 나가서 뭘 하고 오려고. 점심도 안 돼서 나가서 또 저녁 넘어서 오려고 그러니?”

“아, 아니야! 에이. 내가 또 언제 그랬다고.”

흰둥이랑 산책한다고 하고 워낙 사건에 휩쓸린 적이 많아서 사실 경호도 내심 찔리긴 했다.

-흰둥아. 컴 온!

대놓고 귀찮은 표정이 역력한 흰둥이가 느릿느릿 걸어와 경호의 바지 끄덩이를 물어 당겼다.

“어엇! 너도 산책가고 싶구나?”

경호가 목줄을 챙기며 환하게 웃었다.

“내가 대박 맛있는 고기랑 불판 챙겨올 테니까. 저녁은 행운식당 회식입니다!”

경호의 말에 지숙이 한숨을 푹 쉬었다.

“결국 저녁에 오겠다는 소리네.”

“서지숙 여사님. 저도 금방 오고 싶지만 행운식당을 알릴 좋은 물건을 구하려면 그만큼 시간이 걸리니 이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어이구. 이게 말이나 못 하면. 어쨌든 엄마가 쌈 채소랑 파절이 해놓을 테니까 늦지 말고 잘 다녀와.”

지숙의 말에 경호가 경례를 붙이며 밖으로 나갔다.

“흰둥아. 삼족우 알지?”

경호가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흰둥이에게 삼족우에 대해 물었다.

-그 덩치 커다란 들소 이야기하시는 거죠? 발 세 개 달린 그거요.

“어. 그놈. 그거 어디에 있냐?”

-김포 쪽에 많이 서식해요. 거기는 강한 포식자가 많이 없거든요. 그래서 하급 주의종의 천국 같은 곳이죠. 토벌도 특별히 하지 않는 곳이고요.

“김포라. 저쪽이었나?”

경호가 흰둥이를 옆구리에 끼고 그대로 날아올랐다.

***

김포 흑색지대.

예전엔 ‘한강신도시’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이었다.

수도권 주변 흑색지대 중 유일하게 하급 주의종의 생태계가 만들어진 특이한 곳이었다.

어떠한 이유에선지 희한하게도 상급 마수의 균열이 전혀 생기지 않아 자연스럽게 그런 생태계가 형성된 것이었다.

마수를 연구하는 이들도 김포 흑색지대의 이런 특이점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마수들이 뛰노는 땅이 흔들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무우우. 무우우우우.

삼족우 무리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는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흔들리던 땅에서 황금빛을 띠는 둥그런 물체가 솟아 나왔다.

솟아 나온 그 물체의 생김새는 ‘계란’처럼 보였다.

단지 황금빛을 띠고 그 크기가 주먹만 하다는 점이 특이했다.

빠직. 빠지직.

그 커다란 황금빛 계란이 흔들리더니 위에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분명 무언가 알을 깨고 나오는듯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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