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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60화 (60/335)

#060화

“아. 아아!”

파루스는 죽기를 각오했지만 막상 살 기회가 오니 마음이 달라졌다.

“저, 저는 어쩌다 길을 잃어….”

파루스가 말을 하다 멈칫했다.

자신의 모습이 누가 봐도 어쩌다 길을 잃은 듯한 그런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고문당한 듯한 전신의 상처와 화상. 드워프. 거기다 흑색지대.

파루스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저는 빌런 조직에 납치된 노예였습니다. 그곳에서 장비 수리 같은 일을 하다가 겨우 탈출했습니다.”

“고문을 당한 거 같은데?”

“일이, 일이다 보니 화상도 입고 했습니다. 상처들은 이곳을 헤매다 얻은 것이고요.”

파루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를 살피던 경호가 흰둥이에게 전음을 보냈다.

-호오. 흰둥아. 손목에 있는 문양 좀 봐봐.

흰둥이가 파루스의 손목을 훑어보다 경호가 말한 문양을 봤다.

검은 부엉이 문양이었다.

크르릉!

그것을 본 흰둥이가 본능적으로 으르렁거렸다.

“아앗! 왜? 왜요?”

흰둥이의 위협에 파루스가 놀라 뒤로 넘어졌다.

-진정하고. 천천히 알아보면 되잖아.

-그냥 놔두고 가죠. 어차피 악마계약자잖아요.

-흥분하지 말고. 그나저나 쟤가 말하는 것들 사실이야?

-경호 님. 아직 제 레벨이 낮아서 악마계약자의 감정은 정확히 읽을 수가 없네요. 뭐, 굳이 읽지 않더라도 썩 신뢰가 가는 느낌은 아니지만요.

경호도 파루스의 말에서 진실성이 크게 느껴지진 않았다.

의심스러울 때 그것을 확인할 방법은 간단했다.

“그래. 그럼. 그곳으로 가자. 내가 그 빌런 조직을 없애주도록 하지. 부족원들도 있었을 텐데.”

드워프는 기본적으로 부족 생활을 하므로 혼자 노예로 끌려갔을 리 없었기에 직접 가서 확인해보면 정확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아. 그게….”

경호의 말에 파루스는 말문이 막혔다.

같이 생활하던 이들도 부족원이 아니었고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아니 이미 장소 자체를 옮겼을 것이 분명했다.

“왜? 내가 약해 보여?”

파루스가 고개를 저었다.

저런 거대한 늑대를 타고 다니는 인간이 약할 리가 없었다.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 자리를 옮겼을 겁니다. 그리고 저도 며칠을 헤맨 터라 길을 알지 못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럼. 이계인 보호구역에 데려다주도록 하지. 그럼. 타라.”

-정말 데리고 가시려고요?

흰둥이가 투덜거리자 경호가 이유를 설명했다.

-악마계약자. 분명 좋은 자는 아니지만, 내가 아는 악마계약자는 천사보다 악마를 더 싫어하는 족속이야. 거기다 흔하지 않은 드워프 악마계약자. 뭔가 사연이 있겠지. 안 그래?

단지 계약에 얽매여 있어 따를 뿐, 대부분의 악마계약자는 악마를 증오했다.

“어서 타라!”

경호가 파루스를 흰둥이의 등에 태웠다.

흰둥이의 표정이 사나워졌지만 이내 달려가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경호가 파루스와 만난 자리에 커다란 치타 한 마리 나타났다.

킁! 킁킁!

짙은 녹색빛의 치타.

바로 ‘비스트’ 용호였다.

“분명 여기까지 혼자였어! 그러다 뭔가를 만나서 같이 갔군. 킁킁!”

어젯밤부터 종각역 선로를 따라 ‘블랙바인’을 추적한 용호는 결국 그들이 버린 비밀 연구소까지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땅에 묻어 버린 드워프의 시체들도.

하지만 한 명의 드워프가 죽지 않고 도망간 것을 알아챈 용호는 그 냄새를 쫓아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유일한 생존자다. 꼭 찾아야 해!”

용호가 다시 바닥에 코를 킁킁거리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

“우와! 화염의 마녀다!”

“대박. 겁나 이쁘다.”

“실물이 더 예쁘잖아!”

다현이 이계인 보호구역에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이 몰리며 웅성거렸다.

다현은 그런 주변 반응에 짜증이 확! 치고 올라왔지만 겉으로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그러면서도 최대한 빠르게 걸어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입구에서 멀지 않은 ‘최용사공방’은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손님도 별로 없는 상태였다.

“어서 오세…. 아! 김다현이다!”

붉은 머리의 귀엽게 생긴 드워프 여성이 다현을 향해 인사를 했다.

다현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종업원의 명찰을 보며 인사를 했다.

“아. 네. 제니 씨? 아는 동생이랑 이름이 같네요. 반가워요.”

“아! 네, 네엣! 실물이 훨씬 이쁘시네요.”

“감사해요. 그런데 혹시 솔딘 족장님 계신가요?”

보통 이유를 묻고 경계부터 했을 제니였지만, 다름 아닌 상대가 ‘레인보우 식스’의 다현이었다.

“네. 잠시만요. 카린! 나 여기 손님 좀 안내해주고 올게! 잠시만 가게 맡아줘.”

제니가 손을 뻗어 다현의 손을 잡았다.

“어엇.”

반사적으로 손목을 뒤로 꺾어 엎어 치려는 본능을 겨우 억누른 다현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 죄송해요. 인간은 함부로 손을 잡으면 싫어한다고 하던데.”

“네. 조금 놀랐어요.”

“죄송합니다. 이젠 괜찮으시죠?”

제니가 환하게 웃으며 다시 다현의 손을 꼭 잡고 가게를 나섰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아. 솔딘 족장님은 지금 부족 공방에 계시거든요. 바로 저기요.”

제니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꽤 커다란 창고 같은 곳이었다.

골목을 따라 가까이 다가갈수록 땅땅거리는 망치질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입구가 보이고 공방 안에 거대한 화로와 십여 명의 드워프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솔딘 족장님! 솔딘 족장님!”

제니가 솔딘을 부르자 화로에 쇠를 달구던 그가 하던 것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어. 제니야. 무슨 일….”

솔딘이 제니 옆에 있는 다현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여기 다현 님이 족장님을 뵙고 싶다고 하셔서요. 그럼. 전 가볼게요.”

공방 안으로 들어서자 후끈한 열기가 확 느껴졌다.

물론 ‘화염의 마녀’인 다현에게 이 정도 열기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솔딘 족장님이시죠?”

“네. 반갑습니다. 검은 망치 부족을 책임지고 있는 솔딘 스미스라고 합니다.”

돌려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다현이 바로 마법구를 꺼내 들었다.

“혹시 이것을 이용해 좀 더 성능을 끌어올리거나 사용하기 좋은 형태로 리폼 가능한지 알아보려고요.”

다현이 왜 왔을까? 고민하던 솔딘은 자신이 다현에게 선물로 준 물건을 들어 보이자 묘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봐도 될까요?”

다현이 솔딘에게 마법구를 건넸다.

솔딘이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이 만든 마법구를 살펴봤다.

“호오. 이거 귀한 물건이네요.”

“그게 무언인지 아시나요?”

안 그래도 이것을 리폼하고 싶어 유명 마도공학 센터나 아티팩트 회사를 몇 군데 찾았던 다현이었다.

하지만 리폼은커녕 이것의 정체도 알아내지 못한 상태였다.

“아주 특별한 재료로 만든 물건이군요.”

“특별한 재료요?”

“혹시 신수를 아십니까?”

대격변 이후 신수에 대해 모르는 이는 없었다.

다만 대격변 초기 모두 사라져버려 이제는 환상 속 존재처럼 변해버린 존재였다.

“신수요?”

“불여우라는 신수가 있습니다. 구미호와 비슷하면서 불을 다루는 신수죠. 이것이 바로 그 불여우의 구슬로 만들어진 마법구입니다. 불 속성 마법엔 특히나 좋은 효율을 가지죠.”

“이게 그러니까 ‘불여우’라는 신수의 구슬이라고요?”

솔딘의 설명을 들은 다현도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어떤 형태든 리폼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재료가 워낙 좋아서요.”

“어떤 형태가 성능을 끌어내기 가장 좋아요? 다른 건 상관없고 들고 다니기 편하면 좋겠거든요. 마법구 형태는 쥐고 다니기도 불편하고 좀 그래서요.”

무기를 선호하지 않는 다현은 이런 쪽으로는 문외한에 가까웠기에 솔딘에게 의견을 구했다.

즉답을 주기엔 어려운 질문이었다.

“우선 불여우의 구슬을 어떤 형태일 때 가장 힘을 끌어낼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할 거 같습니다. 제가 이걸로 실험해보고 형태에 대해 상의해봐도 될까요?”

“으음….”

꽤 많이 발품을 팔았지만 솔딘처럼 이야기해준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다현이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족장님. 그럼. 전화 주세요.”

그렇게 다현이 가고 솔딘은 사무실에 홀로 앉아 마법구를 보며 이것저것 구상하며 그에 대한 스케치를 시작했다.

종이가 쌓여갔지만 딱 마음에 드는 모양이 나오지 않았다.

불여우의 구슬을 가지고 마법구를 만들 때와는 결이 다른 작업이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특히나 마법구의 능력향상을 위해 리폼하는 것은 마도공학 지식 쪽으로 부족함이 있는 솔딘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아. 이거 난감하네. 지팡이 형태로 만들어야 하나.”

그렇게 솔딘이 머리를 벅벅 긁어가며 한참을 끄적거리고 있을 때.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들어와.”

“솔딘, 접니다.”

경호였다.

옆구리에 흰둥이를. 뒤에는 거지꼴을 하고 있는 드워프를 사무실로 들어왔다.

“오셨습니…. 어? 뒤에는 누구?”

거지꼴을 하고 있는 파루스를 보면 솔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곤 경호에게 물었다.

“이름은 파루스. 흑색지대에서 우연히 만난 녀석입니다. 빌런 조직에 납치됐었다고 하네요.”

“저런…. 그곳에서 험한 일을 당한 모양이군요.”

솔딘이 고개를 끄덕이며 파루스를 훑어볼 때, 경호가 전음을 보냈다.

-솔딘, 이 드워프 악마계약자입니다.

“뭐라…. 크흠. 도 좀 먹을래요?”

솔딘이 놀라 소리치려던 순간, 가까스로 말을 겨우 돌렸다.

“괘, 괜찮습니다.”

경호가 다시 전음을 날렸다.

-우선 좀 더 지켜보죠. 제가 안전장치를 걸어놓을 테니까요. 분명 무슨 사연이 있을 겁니다.

드워프.

그들은 태생부터 장인 정신을 타고난 종족이었다.

고집스럽고 외곬이었으며 자존심이 세고 책임감이 강했다.

드워프는 그러한 성격 탓에 악마에게 속아 계약자가 되더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계약한 악마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경호 역시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지켜보자는 제안을 한 것이었다.

“잠시만요. 여기 족장님을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때 사무실 밖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경호가 작은 창을 통해 슬쩍 밖을 보니 ‘비스트’, 용호의 모습이 보였다.

“말씀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했으면 해서요.”

“아무리 레인보우 식스의 비스트 님이라도 이러시면 안 됩니다!”

“꼭 확인해야 할 게 있다니까요!”

드워프들이 용호에게 달라붙어 사무실 접근을 막고 있었다.

“비스트네.”

경호의 중얼거림을 들은 파루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뭔가 있군.’

경호가 파루스를 살피다 솔딘에게 전음을 날렸다.

-솔딘이 비스트를 만나봐요. 저는 여기서 은신하고 있을 테니.

“밖이 소란스럽네요.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그러세요.”

솔딘이 밖에 나가 용호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사무실 창으로 보였다.

“사무실엔 아무도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빌런을 쫓는 중이라 확인 좀 하겠습니다.”

“아니 그럼, 제가 빌런을 숨겨주기라도 하고 있다는 겁니까?”

“잠깐 확인만 하면 됩니다.”

솔딘의 만류에도 용호가 사무실 문을 열었다.

“안…. 읍읍.”

경호가 놀란 얼굴로 소리치려는 파루스의 입을 재빨리 손으로 막았다.

“잠시면 됩니다. 족장님.”

“보시다시피 새로운 아티팩트를 구상 중이었습니다. 아! 알고 계시겠군요. 다현 님의 마법구를 리폼하기 위해 작업 중이었습니다.”

용호가 사무실 안 테이블 위를 보니 과연 다현이 썼던 붉은 마법구가 놓여있었다.

“흐음. 그렇군요.”

사무실 안에는 그 외에 수상해 보이는 곳은 없었다.

“제가 날카롭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작업 중엔 좀 예민해지는 편이라서요.”

솔딘의 사과에 용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빌런 조직의 유일한 생존자를 쫓다 보니 저도 모르게 흥분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비스트의 추격 능력은 대단했다.

단지 경호의 은신 능력이 더 대단할 뿐이었다.

“빌런 조직이라면? 혹시 이번 종각역 사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솔딘의 물음에 용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 조직에서 드워프 하나가 생존한 듯합니다. 한편인지 인질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분명 뭔가를 알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동 방향을 보면 이쪽으로 향한 것이 분명합니다. 족장님. 혹여나 신변이 확실하지 않은 드워프가 주변에서 발견된다면 꼭 저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용호가 품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내 솔딘에게 건넸다.

“알겠습니다. 발견하면 즉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경호는 덕분에 재미있는 정보를 알게 됐다.

용호가 솔딘을 보며 꾸벅 인사를 했다.

“족장님. 조금 전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용호는 그렇게 인사를 하고는 돌아섰다.

‘어? 뭐지?’

킁킁.

그때 용호는 아주 묘하게 익숙한 냄새를 느꼈다.

하지만 딱히 뭔가 떠오르는 냄새는 아니었다.

‘이 냄새를 어디서 맡았더라?’

고개를 갸웃한 용호가 사무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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