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화
우우우우우우우웅!
제니가 마력을 끌어올리자 그녀의 특성인 [거대]와 [강철]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체구의 그녀가 마력이 휘몰아치며 점차 거대해지기 시작하며 입고 있던 옷이 금세 찢겨나갔다.
다행히 겉옷 안에 입고 있던 전투복은 그 크기에 맞게 늘어나며 계속 크기를 키워나갔다.
[거대] 특성으로 순식간에 10m가 넘는 크기로 변했다.
암흑거인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거인으로 변한 그녀의 몸에서 [강철] 특성에 그녀 특유의 황금빛 마력까지 더해져 번쩍번쩍 빛이 났다.
“와아! 이거 깜빡이도 없이 들어오는 완전 무식한 놈이잖아!”
키아아아아악!
암흑거인이 뒤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곳엔 황금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여성, 황금거신 제니가 피식 웃으며 서 있었다.
“죽었어! 너어!”
10m가 넘는 황금빛 거인으로 변한 제니가 그대로 괴물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쿵! 쾅! 쿵! 쾅!
제니가 거대한 암흑거인을 향해 커다란 황금빛 주먹을 그대로 휘둘렀다.
‘강해! 맛있겠다!’
두려움과 식욕이 동시에 암흑거인의 정신을 지배했다.
암흑거인도 날아오는 황금빛 주먹을 보며 마주 주먹을 날렸다.
제니의 황금 주먹과 암흑거인의 새까만 주먹이 부딪혔다.
콰아아아앙!
암흑거인이 제니의 공격에 한걸음 물러났다.
“크윽! 이거 완전 돌덩이잖아!”
제니 역시 암흑거인의 공격에 한걸음 물러났다.
대충 보기에도 심상치 않음을 느끼긴 했지만 직접 상대해보니 그 이상이었다.
손이 울릴 정도의 묵직함이 실려있는 것을 느낀 제니가 긴장하며 소리쳤다.
“언니! 도와줘!”
콰아앙!
새빨간 불꽃이 암흑거인의 얼굴에 작렬했다.
키아아아아아악!
암흑거인이 괴성을 지르며 다현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다현 역시 반격을 예상하였기에 즉시 몸을 날려 암흑거인의 공격을 피했다.
“이게 어딜!”
제니가 마력을 실어 암흑거인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키아아악!
뒤늦게 제니의 공격을 느끼고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용호가 어느새 악어로 변해 암흑거인의 발목을 물고 늘어졌다.
콰아아앙!
제니의 주먹이 암흑거인의 머리에 제대로 꽂혔다.
휘청!
“좋아! 통한다! 통해!”
휘청이는 암흑거인을 보며 제니의 주먹이 쉬지 않고 날아갔다.
쾅! 콰앙! 콰앙! 쾅!
제니의 주먹질에 터지고 찢어지며 점점 밀려가던 암흑거인이 결국 쓰러졌다.
용호의 공격에 이미 한쪽 발목이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언니가 나설 것도 없…. 어? 어어?”
퍼어억!
발목을 물고 있던 용호가 하늘로 튕겨 나갔다.
“크억.”
녹색 빛이 번쩍이며 떨어져 내리던 용호가 독수리로 변해 서둘러 날아올랐다.
암흑거인의 발목은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변해있었다.
“재생력이 무슨….”
제니가 공격했던 얼굴은 진작에 깨끗해진 상태였다.
“하아. 그래도 타격은 입었겠지.”
거의 동시에 회복되는 수준이었기에 제니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암흑거인의 엄청난 재생력을 확인한 다현이 크게 소리쳤다.
“제니야! 큰 거 한방 준비할 테니까! 시간 좀 끌어줘!”
“알았어! 우선 비스트 아저씨랑 최대한 시간 끌어볼게!”
암흑거인의 무식하리만큼 강력한 힘은 꽤 무시무시했지만, 상대할만하다고 생각했던 제니였다.
쿵! 쾅! 쿵! 쾅!
암흑거인이 어느새 일어나 달려오기 시작했다.
‘뭐야? 타격은커녕 더 쌩쌩하잖아!’
하지만 지금 달려오는 모습에 제니는 긴장하며 마력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암흑거인은 다현이 공격에서 빠지자 바로 상황을 눈치챘다.
이성은 없지만, 본능적인 감각이 무서우리만큼 예리했다.
‘우선 저 불꽃을 쏟아내는 것을 먹어야 해! 가장 아프고 강하다!’
암흑마기에 가장 상극인 힘도 바로 ‘파마(破魔)’의 능력이 있는 불이었다.
암흑거인의 양손에서 손가락이 다시 엿가락처럼 늘어나며 채찍처럼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제니! 조심해!”
제니가 날아오는 손가락을 보며 방어하려는 찰나.
“어엇! 어딜!”
갑자기 방향을 틀어 뒤로 날아가는 손가락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이잇!”
그리고는 엿가락처럼 쭉쭉 늘어나며 뒤쪽의 다현을 노리는 손가락을 제니가 손을 뻗어 잡아챘다.
단단한 황금빛 육체로 유명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엄청난 괴력으로도 유명했다.
“이 까짓거 모조리 끊어주마!”
양손으로 늘어난 암흑거인의 손가락을 잡아 쭈욱 힘을 줘서 끊어냈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암흑거인이 즉각 괴성을 지르며 반응을 보였다.
그때였다.
암흑거인이 반대편 손을 빠르게 뻗었다.
촤아아아아아!
제니가 끊어낸 손가락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마법에 집중하고 있는 다현을 향해 날아갔다.
이번 공격은 제니가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언니! 위험해!”
퍼억!
“크윽.”
거대한 독수리의 날개가 날카로운 손가락에 관통당했다.
다행이라면 뒤쪽에 있던 다현은 무사하다는 점이었다.
“비스트 아저씨!”
한쪽 날개가 관통당한 채 꺾인 독수리의 몸에 녹색 빛이 번쩍였다.
거대한 곰으로 변한 용호가 여전히 팔을 관통하고 있는 암흑거인의 손가락을 입으로 물어 뜯어냈다.
“크윽!”
양손이 모두 뜯긴 암흑거인이 주춤하며 비틀거렸다.
물론 그러는 사이에도 뜯겨진 손은 빠르게 재생되고 있었다.
“아저씨. 괜찮아요?”
“그냥 조금 다친 거야. 팔에 조그만 구멍 하나 났다고 안 죽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조심해요!”
목숨을 건 전투에서 더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 그뿐이었다.
그때였다.
“제니! 비스트! 비켜!”
양손을 번쩍 들고 있는 다현의 머리 위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거대한 불꽃이 점점 몸집을 불려가고 있었다.
새파란 불꽃은 가까이 있는 용호는 물론, 제법 떨어져 있는 제니도 뜨거움을 느낄 정도로 강렬한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제니와 용호가 서둘러 몸을 옆으로 피하자 다현이 거대한 청염을 암흑거인에게 던졌다.
후우우우우우우웅!
푸른 유성처럼 거대한 불꽃이 암흑거인에게 날아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폭발과 함께 강렬한 파동이 주변을 휩쓸었다.
암흑거인이 폭발하며 시커먼 연기가 주변을 쏟아져 나와 주변을 어둡게 만들었다.
“잡았다!”
다현이 1분 넘게 마력을 끌어모아 만든 청염이었다.
제아무리 재난종 수준의 마력을 풍기는 괴물이라고 할지라도 잿더미로 변했으리라.
그때 곰의 모습을 한 용호가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제길. 안 죽었어.”
서서히 연기가 걷히고 꿈틀거리는 암흑거인의 모습을 드러났다.
“이, 이런!”
다현이 그런 암흑거인의 모습을 보며 입을 쩌억 벌렸다.
“이건 안 죽은 정도가 아니잖아.”
여기저기 터져나가고 뭉개지긴 했지만, 원래의 모습으로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다.
“하아. 이거 어쩌지?”
반대편 건물 옥상에서 길게 한숨을 쉬는 다현을 지켜보던 경호도 고개를 저었다.
“저 괴물. 회복력이 너무 좋은데? 이거 쉽지 않겠는데 어떻게 도와주지? 흰둥… 어?!”
-어?! 경호 님!
말을 하던 경호와 흰둥이가 서로 마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흰둥아. 이게 메인 이벤트 아니었어?”
-경호 님. 우리 모르게 지하에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나 봅니다.
경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 이곳에 있는 저 암흑거인보다 몇 배는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제길. 이쪽은 시간 끌기용 뻥카였잖아!”
***
마튼이 올라가고 발로이가 커다란 짐을 내려놓으며 40명의 인원을 돌아봤다.
자신들을 이끌었던 대전사 레이나도 죽었고 인공 던전의 핵심인물인 파루스도 사라졌다.
흑천도 자신들을 버렸고 이젠 완전 끝이었다.
하지만 복수는 이제 시작이었다.
“우리는 오늘 세상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발로이는 사랑하던 레이나의 복수를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시작하자!”
그들은 준비해온 게이트 부품을 꺼내 빠르게 조립하기 시작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고 했다.
먼저 올라간 이들이 던전을 설치해 마력 감지 장치가 그것에 집중할 동안 지하에서 멸망종 마수 소환을 마쳐야 했다.
결국, 지상에 있는 던전의 마력 파동을 능가하는 기운이 뻗어 나오며 알아차리게 되겠지만, 그때는 이미 그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을 터였다.
“서두르자!”
곧 선로 위에 거대한 던전 게이트가 설치됐다.
종각역에 설치한 게이트보다 족히 배는 커 보이는 크기였다.
그리고 철제 상자에서 3개의 게이트볼을 꺼내 들었다.
치지지지직.
귀에 거슬리는 작은 소리가 게이트볼에서 났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제대로 듣지도 신경 쓰지도 않았다.
“서울의 한 가운데서 멸망종 마수의 등장이라…. 하아. 상상만 해도 짜릿하군. 큭큭큭.”
발로이가 키득거리며 완성된 게이트를 향해 걸어갔다.
게이트볼을 넣을 수 있는 구멍이 1개였던 보통의 인공 던전과 다르게 이것엔 구멍이 3개나 뚫려있었다.
딸깍.
우우우우우웅!
“좋아.”
딸깍.
우우우우우웅!
하나씩 게이트볼을 구멍에 끼울수록 진동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제 마지막이다.”
딸깍.
우우우우우웅!
“됐다!”
발로이는 마지막 게이트볼을 구멍에 끼우고 조심스럽게 돌리며 조작하기 시작했다.
진동이 줄어들며 던전의 차원막이 펼쳐졌다.
진한 마력 파동을 느끼며 발로이가 진한 미소를 지었다.
“자아. 이제 10분. 10분이면 던전 파열이 일어나며 서울은 끝장이 날 것…. 어엇!”
촤르르르르륵!
그때 검게 출렁이던 차원막이 반으로 찢어지며 사라졌다.
그리고.
키이에에에에에에엥!
지옥굴에서나 들릴법한 섬뜩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진한 미소를 짓던 발로이의 표정이 구겨졌다.
“뭐, 뭐야! 이거 왜 이래!”
발로이는 당황한 얼굴로 이것저것 조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틀어진 마기의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으윽! 마기의 흐름이 역류하고 있어!”
드드드드드드드드드.
던전 게이트에서 뿜어져 나오던 마력 파동이 불안정해지며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덜덜 떨리는 던전을 안정시키기 위해 발로이는 필사적으로 게이트볼을 조작하며 제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발로이는 곧 고개를 저었다.
“늦었어. 이미 돌이키기엔 늦었어!”
폭주로 결국 던전이 터져나가면 레이나 대전사님을 집어삼켰던 그 괴물, 아니 그때보다 더 끔찍한 괴물이 튀어나올 것이었다.
“결국, 이렇게 끝나는 건가?”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린 발로이가 크게 소리치듯 말했다.
“마지막 명령이다! 모두 지상으로 올라가라! 그리고 그곳에 있는 마튼과 함께 도망쳐라! 모두 살아라! 죽지 말고!”
마기의 공급이 끊어진 상태였기에 어차피 모두 죽은 목숨이었다.
‘그렇다고 암흑마기의 먹이로 던져 줄 수는 없다!’
발로이는 동료들이 암흑마기에 처참히 먹히지 않도록 외쳤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콰아아앙! 콰앙! 콰아아아앙!
끝까지 게이트볼을 놓지 않고 있던 발로이는 폭발에 휘말리며 그대로 찢겨 죽었다.
박혀 있던 3개의 게이트볼이 연쇄적으로 터져나가며 그곳에서 진득한 암흑마기가 튀어나와 폭발의 여파에 휘말린 다른 다크엘프들을 덮쳤다.
“크악! 크아…. 크르륵.”
이미 암흑마기에 레이나를 잃은 경험이 있는 이들이기에 그것을 보자마자 몸이 굳어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다 위쪽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 도망가!”
“뛰어!”
하지만 암흑마기의 증식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그들이 도망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증식하며 도망치려는 다크엘프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콰드득. 콰득.
끄아아아아아아아아!
3개의 게이트볼에서 나온 암흑마기가 40명의 다크엘프를 흡수하고 다시 합쳐지는 데 걸린 시간은 결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꿈틀거리며 몸집을 불려간 암흑마기는 금세 승강장을 가득 채울 만큼 커졌다.
끼에엑! 께에에에에!
암흑마기는 괴성을 지르며 선로를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그곳에 서식하는 최하급 마수들을 잡아먹으며 더욱더 빠르게 커지기 시작했다.
***
“진짜는 따로 있었어. 저건 그냥 시선을 돌리기 위한 미끼였던 거야!”
물론 너무나 먹음직해서 바늘을 물지 않을 수가 없는 그런 미끼였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게 바로 여기 밑인지는 몰랐네요.
저 밑에서 점점 커지는 암흑마기의 기운은 지상의 저 괴물을 아득히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이 이상 두기에는 위험하다.’
멸망종에 가까운 수준이었던 악마덩굴보다 더 강한 기운이 느껴졌기에 자신과 흰둥이가 나선다고 해도 조용히 해결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까지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의 대상을 흡수하며 성장하는 암흑마기였기에 서둘러야 했다.
하지만 그냥 지하로 내려가기엔 지상의 상황도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나서서 저 암흑거인을 죽일 수도 없고…. 아! 그게 있었지!’
경호가 흰둥이를 옆구리에 끼며 말했다.
“흰둥아. 니가 연기 좀 해야겠다!”
-네엣!? 연기요? 그게 무슨…. 흐에엑!
경호가 급하게 땅을 박차며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