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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51화 (51/335)

#051화

“어. 어어어!”

안 그래도 경호가 움찔거릴 정도의 미모를 뽐내던 운디네였다.

반투명한 푸른빛의 형상일 때 그 정도였으니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그녀는 정말 여신, 그 자체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경호도 운디네급 정령이라면 폴리모프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정령계에서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많이 당황한 상태였다.

“그냥 될 것 같았어요. 마기에 오염되어 있으면서 엄청난 수의 마수를 죽이…. 어쨌든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가끔 그것들의 의식이 흘러들어 올 때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거 같아요.

아마 잡아먹은 마수 중에 변신할 수 있는 녀석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저어.”

운디네가 손가락으로 진한 치즈향을 솔솔 풍기고 있는 피자를 가리켰다.

“피자요.”

“아! 아아. 먹어보세요. 음식 처음 먹어보시죠?”

“마수를 잡아….”

악마덩굴에 기생하며 마수를 잡아먹긴 했지만 그것은 결코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끔찍했던 기억을 지우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운디네가 경호를 보며 웃었다.

“네. 처음 먹어봐요.”

“그럼. 뜨거울 수 있으니까. 잠시만요.”

경호가 선반에서 접시를 꺼내서는 잘라놓은 피자를 집어 얹었다.

그러고는 평소에 쓰지도 않던 허니디퍼를 꺼내서는 꿀을 찍어 발라주었다.

“자아. 입에 넣고 천천히 씹어서 삼키면 돼요.”

고개를 살짝 끄덕인 운디네가 조심스럽게 입을 벌려 피자의 앞부분을 살짝 깨물었다.

“음?”

안 그래도 커다란 운디네의 눈이 조금 더 커졌다.

아암.

피자를 당겨 입에 조금 더 넣고 씹었다.

으음!

입안 가득 달고 짜고 고소하고 느끼하다가 다시 달달해지는 정말 마법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제대로 된 음식을 처음 접해보는 운디네에게는 충격적이라고 할 정도의 엄청난 경험이었다.

맛있었는지 운디네는 피자를 조금 더 밀어 넣고 씹어 삼키고 조금 더 밀어 넣고를 반복하며 결국 피자 한 조각 입도 떼지 않고 한입 만에 모두 먹어치웠다.

“어때요?”

주르륵.

아무 말 없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운디네의 모습에 당황한 경호가 어버버 거리며 재빨리 티슈 한 장을 건넸다.

“왜요?”

운디네를 향해 경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속으로 ‘피자에 무슨 문제가 있나?’ 계속 고민했지만, 자신이 먹었을 때만 해도 충분히 맛있는 악마덩굴 열매 피자였다.

“그, 그게. 흑. 너무 맛있어서요.”

“네엣?!”

“너무 맛있어요. 너무 맛있는데. 저도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처음이지만 이렇게 눈물이 나는 것도 처음이거든요. 낯설고 이상해요.”

문제는 경호도 자신의 앞에서 자기가 만들어준 음식이 맛있다며 눈물을 흘리는 여성을 대하는 것이 처음이라는 점이었다.

속으로 ‘상대는 운디네다! 상대는 정령이다!’를 열 번쯤 외치고 나서야 어깨를 두드려주며 괜찮다고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고 이야기해줬다.

울음을 그친 운디네는 너무 맛있다며 혼자서 남아 있던 피자를 손가락까지 빨아가며 남김없이 모두 먹었다.

“아! 정말 감사합…. 어?”

운디네의 새하얀 피부가 살짝 흐릿해지며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어? 피부가?”

경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아. 저 이런 모습으로 있는 거에 제약이 있나 봐요. 아직 예전의 힘을 다 회복하지 못했거든요.”

폴리모프가 특성화되어있는 ‘신수’에게는 그렇지 않았지만 사실 몸을 변화시키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마력 소모가 큰 마법이었다.

우우우우웅.

운디네의 몸에서 작은 울림이 느껴지더니 다시 그녀의 주변에 물안개가 서렸다.

번쩍.

강렬한 푸른빛이 번쩍이고.

촤아아아아.

다시 반투명한 푸른빛의 운디네로 돌아갔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경호 님.

경호도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요리를 대접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다음에도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운디네가 폴짝거리며 환하게 웃었다.

-네. 기대할게요. 그럼. 또 연못에 놀러 오세요.

그녀가 손을 흔들며 뒷문 틈으로 쓰윽 하고 빠져나갔다.

경호는 한참을 멍하게 손을 흔들고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이 미친놈아! 정령이다. 정령이야!”

***

딸그락. 딸그락.

“엄마. 그릇에 빵꾸 나겠어. 그만 좀 닦아.”

아침부터 행운식당이 요란했다.

“아들. 귀한 분들 오시는데 어떻게 허투루 할 수가 있니.”

“아니 원래 우리 식당 허투루 한 적이 없는데 무슨 소리야. 그리고 그냥 다현이 친구라고 생각하면 된다니까.”

레인보우 식스.

경호에게는 아직 애들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낯선 이름이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인정하는 이 시대 최고의 유명인이자 영웅들이었다.

경호도 지숙이 저렇게 유난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괜히 더 고생하는 것 같아 그러는 모습이 보기 싫었다.

“어서 들어가. 이제부터 내가 할게. 어차피 다현이가 피자 만들어 달라고 해서 재료도 다 준비했으니까. 괜찮다니까 그러네.”

“아니. 바닥도 닦아야 하고. 창문도 좀 지저분한 거 같고.”

“바닥은 오늘 내가 닦았는데 엄마가 아까 한 번 더 닦았잖아. 유리도 조금 전에 내가 닦았고. 진짜 할 일 없으니까 서지숙 여사님. 제발 들어가서 쉬세요.”

“아니 그렇게 귀한 손님이 오는데 어떻게 그냥 있니.”

“점심 전에 회의 끝난다고 했으니까. 그냥 있어.”

“아니 그러면 그냥 흰둥이랑 산책이라도 다녀와요. 어제 보니까 흰둥이도 좋아하는 거 같은데.”

안 그래도 흰둥이는 밖으로 내보낼 생각이었던 경호는 지숙에게 산책을 권했다.

경호 자신이야 완벽하게 마력을 갈무리할 수 있지만, 흰둥이는 아직 신력을 완전히 숨길 수 없어 들킬 위험이 있었다.

다현은 흰둥이에게 별로 관심도 없고 기감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지금까지 별문제 없었지만 다른 이들은 다를 수 있었다.

“그럼. 그럴까?”

어제 지숙은 오랜만에 흰둥이와 산책하며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느껴보지 못했던 여유를 느끼며 좋은 시간을 보냈더랬다.

“오늘은 어차피 토요일이라서 함바집도 안 해도 되고 하니까. 그냥 늦게 들어와요. 알았지?”

“아니야. 점심에 힘들 텐데. 엄마가 그때쯤 올게.”

경호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 우리 식당이 유명한 맛집도 아니고. 그냥 충분히 놀다가 오세요. 흰둥아!”

경호가 부르자 흰둥이가 돌돌 말린 목줄을 입에 물고 달려왔다.

-흰둥아. 엄마랑 잘 놀아드리고. 고맙다. 정말.

-그럼. 경호 님. 다음에 퀘스트 제대로 도와주셔야 합니다.

경호가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자 부끄러운 듯 흰둥이가 말을 돌렸다.

경호가 그런 흰둥이를 안아 들며 말했다.

“알았다. 알았어. 자아. 엄마. 다녀오세요.”

목줄을 채운 경호가 지숙에게 흰둥이를 안겨주며 말했다.

그리고 다시 등을 떠밀었다.

“그럼. 저녁 먹고 늦게 오셔!”

다시 행운식당엔 경호 혼자 남았다.

“아. 요즘 자주 혼자네.”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커다란 상자를 어깨에 멘 솔딘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어? 솔딘. 웬일이세요?”

“용사님! 아. 그게…. 읏짜. 으아. 제법 무겁네. 이거.”

“뭔데요? 또 냄비랑 칼 들고 온 겁니까? 아직 멀쩡한데요?”

“아니요. 저번에 용사님이 부탁했던 거와 제가 만들어 드린다고 했던 겁니다.”

“그게 벌써 됐어요? 우와. 역시 솔딘. 명불허전이군요.”

역시 검은 망치 부족의 족장이자 최고의 대장장이다웠다.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되는 물건을 그것도 커다란 방패와 마법구를 일주일 사이에 만들어 보내다니.

경호는 솔딘에게 상자를 건네받아서는 열어보았다.

“오. 딱 봐도 좋아 보이네요.”

이것으로 감상평은 끝이었다.

흰둥이라도 있으면 정보창을 열어 스펙이라도 확인할 수 있겠지만 아티팩트에 대해서 문외한인 경호는 그저 외형만 보고 감탄할 뿐이었다.

“그럼. 뭐라도 드시고 가실래요? 제가 맛있는 거로 차려드릴게요.”

“아니요. 용사님. 오늘은 외출증을 쓰고 오지 않아 1시간 이내로 들어가 봐야 해서요. 시간이 초과되면 귀찮아지거든요. 작성해야 할 서류도 많고요.”

“아. 그래요? 그럼. 다음에는 외출증 쓰고 한번 오세요. 맛있는 거 해드릴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용사님.”

경호가 방패와 마법구를 아공간에 대충 던져 넣고는 솔딘에게 말했다.

“어쨌든 방패와 마법구는 감사해요. 제가 잘 전달할게요.”

“아닙니다. 용사님. 언제나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네. 그럼. 다음에 봬요.”

솔딘이 식당을 나가고 다시 정적이 흘렀다.

“이제 올 시간이 다 된 거 같은데.”

경호가 중얼거리기 무섭게 손목에 진동이 울렸다.

우우웅! 우우우웅!

뱅글폰의 액정을 확인하니.

-마녀.

역시나 다현이었다.

“어. 왜?”

-엄마는?

“왜?”

-계시면 뭐라도 사가려고 그러지. 이렇게 찾아가서 괜히 신경 쓰이실 거 같은데.

“그걸 알면 오질 말아야지.”

-뭐?

경호가 순간 속마음을 실수로 내뱉었다.

“하하. 아니야. 그리고 엄마는 나갔어.”

뚝.

“아주 이런 건 초심을 잃지 않고 잘 지킨다니까.”

다현의 한결같은 전화 매너에 경호가 감탄했다.

그때 식당 밖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벌써 다현이 왔을 리 없고. 음. 비스트군.’

치료해준 기억이 있어 경호는 다가오는 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경호의 예상대로 청록색의 짧은 머리를 한 중년남성, 비스트가 들어왔다.

“실례합니다. 혹시 여기가 레인보우 식스의 레드가 예약한 식당이 맞습니까?”

비스트의 질문에 경호가 주방에서 나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다른 손님은 안 받기로 했으니 편하신 곳에 앉으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어색한 표정으로 비스트가 의자를 꺼내 앉았다.

킁. 킁킁.

비스트는 경호에게서 묘한 냄새를 맡았다.

비스트의 대표 특성은 [야수화] 였지만 그도 모르고 있었지만 [야성]이라는 또 다른 특성이 존재했다.

평소 그냥 감이 좋다고만 생각하는 그였지만 사실 그것들은 야성의 힘이었다.

야성은 위기 상황이나 상대의 기운이나 약점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능력이었다.

바로 냄새를 맡는 형태로.

킁킁. 킁킁.

‘분명 어디서 맡아본 냄샌데.’

비스트가 상대에게 느낀 모든 냄새를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맡아본 것인지 아닌지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았다.

‘뭔가 뇌리에 걸리는 것을 보면 분명 최근에 맡은 냄새인 거 같은데.’

하지만 비스트는 최근에 흑천을 제외하고 특별히 모르는 누군가를 접촉한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저자가 흑천의 인물은 아닐 테고.’

비스트가 갑자기 킁킁거리며 골똘한 표정을 짓자 경호가 다가가서 물었다.

“혹시 불편하신 거라도 있으신가요? 환기라도 좀 시킬까요?”

비스트는 경호가 다가오자 더 확실하게 그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어어억!”

“왜 그러시죠?”

갑자기 놀란 얼굴로 괴성을 지르는 비스트를 보고 경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날 살린 인물한테 맡았던 냄새다! 아니 하지만 분명 목소리가 다른데. 그리고 이자는 마력조차 없는 일반인인데….’

비스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다른 인물이 같은 냄새를 풍기는 경우를 겪은 적이 없기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경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혼자만의 세상으로 빠져버린 비스트를 보며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그때 식당문이 열리며 다현이 들어왔다.

“어. 비스트가 먼저 와 있었네. 경호. 오랜만이야.”

“그래. 왔어. 그럼, 지금부터 피자 만들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음료수나 그런 거는 알아서 꺼내 먹고.”

“아니 사장님. 저도 오늘은 친구가 아니라 손님이거든요? 여기 콜라 시원한 거로 하나 주세요!”

“아. 진짜! 피자 만들어야 해서 바쁜데.”

“원래 바쁠 때 시켜먹는 게 꿀잼이거든.”

경호와 다현의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며 비스트는 피식 웃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야. 그럴 리가 없지. 정신이 없던 때라 내가 잘못 기억하는 거겠지.’

물론 비스트의 생각과 달리 그의 기억은 정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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