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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47화 (47/335)

#047화

“히에에엑! 미르! 저, 저거 뭐야!”

미르를 타고 주변 정찰을 하다 놀라 소리를 질렀다.

우적우적!

저 아래.

마수를 씹어 삼키고 있는 거대한 식물이 보였다.

그 크기는 관광버스와 비교해도 될 정도로 엄청났다.

커다란 입처럼 생긴 나무 덩굴과 잎사귀가 꿈틀거리며 위험종 1급의 마수인 거대한 갈고리흑색곰을 휘감아 뜯어 삼키고 있었다.

-경호는 처음 보지? 악마덩굴이라고 부르는 녀석인데 그 힘은 멸망종에 가깝지만 작을 땐 뿌리를 땅에 박고 사는 식물이라 그 힘에 비해서 비교적 상대하기 쉬운 마수야.

멸망종 마수.

보통의 마수는 마족의 가축과 같은 개념이었다.

하지만 멸망종 마수는 마족의 가축이 아닌 마계의 야수 같은 개념으로 마족도 방심하면 위험할 정도의 힘을 가진 개체였다.

-그래서 저렇게 마수가 좋아할 만한 향기를 풍기는 열매로 유혹해서 잡아먹는 거야.

“저게 작은 거라고?”

내가 놀라서 묻자 미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악마덩굴이 있는 곳으로 조금 더 내려갔다.

그러자 고소하면서도 시큼한 특이한 향이 느껴졌다.

꿀꺽.

“이거 마치 진한 치즈 냄새 같은데? 그것도 굉장히 고급 치즈.”

-치즈? 뭐, 그게 뭔지 모르지만 어쨌든 저게 열매야.

미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니 덩굴이 겹겹이 싸인 안쪽에 커다란 항아리처럼 보이는 열매가 보였다.

그리고 진한 치즈 향기는 바로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갈고리흑색곰은 씹어 먹히는 와중에도 그 열매가 있는 방향으로 손을 뻗치는 중이었다.

“미르! 나 저거 먹어볼래.”

그날 저녁.

나는 악마덩굴 열매 안에 물컹거리는 노란빛 덩어리를 살짝 잘라냈다.

정말 치즈와 비슷한 질감이었다.

향을 맡아보니 꼬릿하면서도 고소하고 뒤에 시큼함이 살짝 올라오는 게 마치 유럽의 블루치즈 종류에서 나는 향과 비슷했다.

문득 고르곤졸라 피자가 떠오른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걸로 피자를 만들어 먹어야 하는데. 하아, 밀가루가 없잖아.”

***

사방이 단단한 석벽으로 만들어진 창문조차 없는 어두컴컴한 곳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크지 않은 그곳을 가득 채웠다.

“차라리 죽여라! 난 절대로 협조할 생각이 없으니까!”

기둥에 쇠사슬로 칭칭 감겨있는 산발 머리의 젊은 드워프, 파루스가 소리를 질렀다.

“그 고집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지켜보도록 하지.”

이제는 일인자가 된 발로이가 벌겋게 달아오른 쇠꼬챙이를 들어 보이며 살기 섞인 눈빛으로 노려봤다.

“게이트볼을 양산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면 풀어주마. 어때? 간단한 일이잖아.”

“레이나 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괜한 고집 부리지 말고. 서로 피곤하게 이럴 필요 없잖아.”

“꺼져! 아니면 레이나 님을 데려오던지.”

“이 더러운 난쟁이 새끼가! 레이나 님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마라!”

치이이이익!

달아오른 쇠꼬챙이가 파루스의 허벅지를 파고들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커억!

거칠게 피를 토해낸 파루스의 고개가 툭 하고 떨어졌다.

몇 시간이나 이어진 고문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기절한 모양이었다.

“빌어먹을. 이 난쟁이 새끼!”

발로이가 그 모습을 보다 쇠꼬챙이를 다시 화로에 집어넣자 옆에 있던 부조장 가일이 그를 말렸다.

“조장님. 그러다 정말로 죽습니다.”

으득.

이를 간 발로이가 가일을 노려봤다.

“그럼. 이대로 내버려 두란 말이냐! 게이트볼이 없으면 저 게이트도 그냥 고철일 뿐이라고! 그럼, 우리도 끝장이야!”

“그, 그것이 아니라. 제가 어떻게든 구슬려보겠습니다.”

후우우우.

미간을 찌푸리며 숨을 깊게 몰아쉰 발로이가 가일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럼. 치료해주고 이야기해보도록. 나는 내일 다시 올 테니.”

말을 마친 발로이가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가일이 기둥에 묶여 기절한 채 피거품을 게워내고 있는 파루스를 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난쟁이 새끼들 고집을 알아줘야 한다니까.”

가일이 파루스의 상처를 자세히 보기 위해 묶여있는 쇠사슬을 느슨하게 풀어서는 그를 향해 몸을 숙였다.

그때였다.

죽은 듯 기절해 있던 파루스의 눈이 번쩍 떠지며 머리로 가일의 턱을 들이박았다.

아아악!

파루스가 서둘러 온몸을 칭칭 감고 있던 쇠사슬을 풀어내며 쓰러진 가일을 덮쳤다.

“이, 이…. 커어억!”

턱을 제대로 맞은 가일은 힘을 쓰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쇠사슬에 몸이 감겨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상황이었다.

퉤엣!

핏물을 뱉어낸 파루스가 벌겋게 달궈진 쇠꼬챙이를 들고 쩔뚝대며 가일에게 다가갔다.

“하여간 엘프 새끼들은 조심성이 없다니깐.”

***

“그러니까 강화도에 악마덩굴이 있다는 거지?”

경호가 TV를 보다 흰둥이에게 물었다.

-네. 대격변 시기에 악마덩굴이 강화도에 생겼거든요.

TV에서는 악마덩굴의 열매가 열리는 봄철에 어김없이 강화도에 서식 중인 마수들이 악마덩굴이 있는 마니산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경호가 뉴스를 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왜 처리를 안 한데?”

정령계와 달리 이 세계에는 강력한 무기들이 여럿 존재했다.

악마덩굴이 아무리 멸망종에 가까운 힘을 가진 강력한 녀석이라지만 어릴 적엔 움직이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한계 때문에 전술 무기를 활용하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녀석이었다.

-어차피 움직이지 못하고 또 피아를 가리지 않고 마수도 잡아먹고 하니까. 그냥 놔두고 있는 형편입니다. 저렇게 알아서 마수를 줄여주니까요.

흰둥이의 설명에 경호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움직이지 못한다고? 누가 그래?”

경호의 물음에 흰둥이의 눈이 커졌다.

-아, 아니 식물이니 당연….

“마수한테 당연한 게 어디 있어!”

악마덩굴이 마기를 만들어내며 커지다 보면 결국 뿌리는 녹아 흡수되고 덩굴을 발처럼 이용해 이동할 수 있게 마수화가 진행된다.

그때가 되면 정말 위험할 수도 있었다.

“오랜만에 열매나 따러 가볼까?”

악마덩굴의 열매는 경호가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 중 하나였다.

-네? 경호 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오케이. 흰둥아. 테일러 불러. 저번에 훈련했으면 좋겠다고 했잖아.”

-네엣? 테일러요?

“어. 강화도로 전지훈련이다!”

-네엣?

사도인 테일러는 결국 흰둥이의 호출을 받고 식당 앞으로 달려왔다.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뜬금없이 ‘당장 행운식당으로 와.’라는 흰둥이의 메시지에 테일러는 보호구역을 몰래 빠져나와 행운식당을 찾아왔다.

“허억. 허억. 찾으셨습니까? 주군!”

흰둥이를 옆구리에 낀 경호가 그런 테일러를 보며 물었다.

“혹시 멀미해요?”

“네엣?”

“멀미하냐고요?”

“멀미는 없습니다.”

“그거 좋네.”

경호의 말에 흰둥이는 바로 눈을 감고 몸에 힘을 줬다.

“어엇!”

경호가 테일러의 허리를 손으로 감았다.

“그럼. 출발할게요!”

경호가 그대로 악마덩굴이 있는 강화도를 향해 날아올랐다.

“용사님! 지금 이게 무슨…. 으아아아악!”

***

“우욱! 욱!”

“멀미 없다면서요?”

경호가 옆구리에 낀 테일러를 보며 물었다.

“이렇게 날아본 적은 없어서 몰랐습니다. 우욱.”

“곧 익숙해질 겁니다. 테일러.”

-테일러. 절대 익숙해지지 않으니 그냥 버텨! 우욱!

“윽. 그렇군요. 주군! 그런데 용사님. 저기 보이는 섬이 강화돈가 하는 섬 맞나요? 군인이 엄청 많네요.”

경호의 옆구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테일러가 섬의 출입을 통제하는 많은 수의 군인과 단단해 보이는 철벽을 보며 의문을 품었다.

“지금 같은 시기에 특별 거주지역을 빼면 다 저렇죠. 뭐.”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러네요.”

경호도 세상 돌아가는 일을 잘 모르는 편이었지만 테일러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부서진 초지대교를 지나 섬의 중앙에 가까이 갈수록 기감이 뛰어난 테일러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용사님. 저쪽에 상당히 강한 기운이 느껴…. 으허헉!”

경호가 그대로 떨어져 악마덩굴의 서식지가 된 강화도에 발을 디뎠다.

타앗.

아직은 어두운 새벽 시간이라 우거진 수풀과 울창한 나무들이 더욱 섬뜩하게 보였다.

“이곳에서 어떤 훈련을 할 겁니까?”

날아오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기에 테일러도 기합이 단단히 들어간 상태였다.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 알고 있죠?”

“네엣?”

“그럼. 훈련장으로 가볼까? 우선 잡목은 좀 제거하고.”

경호가 아공간에서 용아검을 꺼내 가볍게 휘둘렀다.

후우우웅!

가볍게 휘두른 모습과 달리 묵직한 소리와 함께 초승달 모양의 새하얀 탄검기가 날아가 나무를 모조리 잘라버렸다.

그렇게 칼질 한 번에 제법 훌륭한 길이 만들어졌다.

입을 쩌억 벌리고 지켜보던 테일러는 새삼 경호의 엄청난 힘을 다시금 깨달았다.

“자아. 테일러. 준비하세요. 곧 나타날 거니까.”

테일러가 긴장하며 날카로운 손톱을 세웠다.

“혹시 ‘두더지게임’ 알아요?”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추억의 게임이었다.

“두더지게임이요?”

당연히 테일러는 두더지게임을 몰랐다.

“그냥 솟아 나오는 것은 다 때려버리면 됩니다.”

드드드드드득!

경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경호가 흰둥이와 뒤로 빠지며 테일러를 슬쩍 앞으로 밀었다.

바닥이 마구 흔들리더니 절구통보다 더 굵은 거대한 지렁이가 흙을 뿜어내며 튀어나왔다.

“데, 데쓰웜!”

4급 위험종 데쓰웜이었다.

캬아아아아아아!

중급 마수였지만 커다란 창자 같은 모습에 벌어진 주둥이에 달린 수백 개의 이빨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으허헉!”

테일러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데쓰웜을 보며 급하게 몸을 날려 가까스로 날카로운 이빨을 피해냈다.

“후우. 후우. 실전은 훈련처럼. 훈련은 실전처럼.”

조용히 중얼거린 테일러는 몸을 틀어 다시 자신을 노리려고 하는 데쓰웜을 보며 달려들어 강하게 손을 휘둘렀다.

휘이익! 퍼억!

키에에에엑!

테일러의 손에 걸린 데스웜이 검게 연기를 내뿜으며 그대로 찢어졌다.

테일러는 본인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놀라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파지지지직.

놀랍게도 테일러의 손에는 번쩍이는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바로 ‘흰둥이’가 전해준 전격의 힘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주군!”

수호신과 사도는 단순한 군신 관계가 아니었다.

사도는 수호신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수호신이 강해짐에 따라 사도 역시 그 힘이 강해진다.

거기다 수호신이 원하면 자신의 능력을 전해주거나 감각 공유나 생명력 전이 같은 특수한 능력도 쓸 수 있었다.

-테일러! 집중하세요! 땅에서 나오면서 공격하는 것이 매섭지만 그것만 피하면 굉장히 쉬운 마수입니다.

땅이 이번엔 하나가 아닌 세 군데가 동시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테일러는 기감을 키워 바닥 아래에서 다가오는 데쓰웜의 존재를 느끼기 위해 애를 썼다.

캬아아아아!

데쓰웜이 다시 땅에서 솟구쳤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테일러는 옆으로 피하며 바로 손을 휘둘렀다.

퍼어어억!

그때 발아래에서 또 다른 데쓰웜이 튀어나왔다.

테일러는 즉시 땅을 박차며 데쓰웜의 칼날 같은 이빨을 피했다.

“어딜!”

그대로 발을 날려 쫓던 데쓰웜을 때렸다.

퍼어억!

발길질에 잘 익은 수박처럼 데쓰웜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푸른색 체액이 쏟아졌다.

수월해 보였지만 기감을 예민하게 느끼며 긴장한 채 주먹질과 발길질 하나에도 온 힘을 실었기에 빠르게 지치기 시작했다.

“후우. 아직 하나 남았다.”

캬아아아아아!

영리한 녀석이었다.

두 마리가 죽자 기척을 숨기고 있다 갑자기 튀어나오며 테일러의 뒤쪽에서 날아오는 녀석이었다.

“알고 있었다고!”

휘이익! 퍼억!

이미 그 존재를 파악하고 있던 테일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뒤로 발을 날려 날아오는 데쓰웜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역시 워울프라 그런지 감이 좋아.”

-경호 님.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실전을 경험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돼서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이계인 보호구역에 있는 이들이 함부로 나와 마수를 사냥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경호도 그것을 알기에 일부러 테일러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사도인 테일러가 강해져야 너도 맨날 나한테 들러붙어 퀘스트 해달라고 하지 않을 거 아니야.”

-경호 님. 지금 거짓말하고 계신데요?

“야. 나는 그걸로 보지 말라니까!”

까칠하고 무심한 척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하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라는 걸 흰둥이도 잘 알고 있었다.

퍼억! 퍽! 퍼어억!

이제는 정말 두더지게임을 하듯 바닥이 흔들리는 곳을 발로 내리찍으면서 데쓰웜을 잡는 테일러를 보며 흰둥이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제법 적응한 모양입니다.

“에이. 대전사에 사도 타이틀까지 달고 있는데 저 정도는 당연히 해야지.”

경호가 테일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허억. 허억. 진짜 마지막이다!”

후우우웅!

테일러가 소리를 지르며 주먹으로 바닥에 찍었다.

퍼어억!

푸른 체액이 땅에서 솟아올랐다.

총 7마리의 데쓰웜을 해치운 테일러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새하얀 송곳니를 드러내며 거칠게 숨을 골랐다.

“하아! 하아! 정말 오랜만에 실전이라 그런지 힘드네요. 용사님. 이제 끝인가요?”

“끝? 아니 이제 시작인데요. 아니 시작도 안 했어요.”

“네엣? 끝난 거 아니에요? 사실 너무 긴장하고 싸웠더니 지금 다리가 살짝 떨리는 게 올라올 거 같은데요.”

경호가 손가락 앞으로 쭉 내밀며 말했다.

“여기서 마니산까지 거리가 직선거리로 8km. 그럼. 이제부터 달려볼까요?”

“8km? 용사님. 지금 그 거리를 돌파한다고요?”

그냥 맨땅을 달리는 것도 아니고 마수가 우글거리는 저 무시무시한 정글을 달려야 하는 것이었다.

경호가 용아검을 휘둘러 다시 탄검기를 뿜어냈다.

아까보다 더 강렬한 빛을 터뜨리며 날아간 탄검기에 수백 미터가 넘는 길이 뚫렸다.

“자아. 갑시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달려가는 경호의 뒷모습을 보며 테일러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용사님! 조금만 천천히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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