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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46화 (46/335)

#046화

끼엥! 끼엥!

“우와! 귀엽다!”

불을 다스리는 푸른 사자, 리온과 바람을 다스리는 하얀 호랑이, 타혼 사이에서 귀여운 아기가 태어났다.

“리온! 타혼! 축하해! 여기 삼족우 스테이크! 고생했으니 이거 먹고 힘내!”

-경호, 고맙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아빠를 닮아 풍성한 갈기에 엄마를 닮아 얼룩 줄무늬도 있었다.

“라이거 같은 건가. 아빠, 엄마. 둘 다 조금씩 쏙 빼닮았네. 아이고. 귀엽네.”

거대한 신수의 자식이라 갓 태어났음에도 경호만큼이나 컸다.

나는 고개를 돌려 미르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미르, 넌 누굴 닮은 거야? 너무 오래돼서 기억 안 나려나?”

-용은 자웅동체의 몸이라 누굴 닮았다고 말하기 힘들다.

아! 자웅동체! 플라나리아!?

나는 중학교 생물 시간에 배웠던 ‘자웅동체’에 대한 기억이 살짝 떠올랐다.

미르가 꿈틀거리는 플라나리아를 떠올리고 있던 나를 보며 물었다.

-그럼, 경호는 엄마와 아빠 중 누굴 닮았나?

어? 어어?

“엄마를 크게 닮은 거 같진 않은데.”

-그럼. 경호는 아빠를 닮은 건가?

“….”

그러고 보니 아빠가 어릴 때 돌아가셨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다른 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만났는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하다못해 사진 한 장 본 적이 없었다.

“그러게. 나도 모르겠다. 뭐. 엄마, 안 닮았으니 아빠 닮았겠지. 원래 ‘씨도둑은 못한다.’고 하거든.”

-씨도둑은 못한다고?

“그냥 그런 게 있어.”

오늘따라 유난히 엄마가 그리웠다.

***

흰둥이를 옆에 낀 경호가 검은색 비닐봉지를 하나 들고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어, 다녀왔습니다.”

지숙이 홀에 앉아서 TV를 보다 인사를 하는 경호를 노려봤다.

“아이고. 우리 아드님. 흰둥이랑 산책을 또 어디까지 다녀오신 건가요? 아주 국토대장정이라도 하고 오셨나 봐요?”

경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괜히 말을 돌렸다.

“아니 왜 혼자 있어? 미호는?”

“점심 장사 끝나서 호돈이랑 데이트하라고 보내고 쓸쓸하게 혼자 흰둥이랑 산책간 아들 기다리며 앉아 있었지. 밥도 안 먹고 기다렸더니 아주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었네.”

지숙이 배를 부여잡으며 도끼눈을 뜨며 경호를 쳐다봤다.

-흰둥아. 애교 좀 부려라.

-네엣? 아. 네.

경호가 흰둥이를 내려놓자 꼬리를 열심히 흔들며 지숙에게 달려들었다.

“아이고. 우리 흰둥이. 형아랑 도대체 어디를 그렇게 다녀온 거니? 응?”

경호는 애써 눈길을 피하며 말을 돌렸다.

“에이. 엄마. 나도 그냥 산책하면서 놀다 온 거 아니라고. 무려 가게에 신메뉴를 고민하면서 시장도 돌아보고 그래서 늦은 거라고.”

경호의 말에 흰둥이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봤다.

-경호 님. 붉은빛을 띠는 완전 거짓인데도 아주 평온하시네요. 거기다 준비까지 철저하시고요.

흰둥이의 말처럼 철저하게 준비한 경호였다.

“그래. 신메뉴를 고민하면서 뭘 사 왔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엄마가 해준 음식보다 맛있는 신메뉴를 만들긴 어려울 거 같아서 내가 다른 걸 사왔지.”

“갑자기 웬 아부? 아들, 혹시 무슨 사고라도 친 거니?”

‘칭찬’이 ‘아부’로 변하고 즉각적으로 ‘사고’로 이어지는 지숙의 말에 경호가 이마를 짚었다.

“아이고. 서지숙 여사님. 진짜 엄마가 해준 음식이 제일 맛있어서 그런 건데. 어쨌든 그래서 신메뉴는 포기하고 엄마한테 해주고 싶은 요리가 있어서 이거 사 왔지.”

경호의 말에 지숙이 호기심을 보였다.

“오. 우리 아들이 엄마 요리해주게? 그게 뭔데?”

“비밀! 전부터 해주고 싶었는데 그땐 솜씨가 없어서. 오늘은 기대하세요.”

-경호 님. 이건 진짜네요.

신메뉴를 고민하면서 시장을 둘러본 것은 당연히 거짓이었지만 엄마가 해준 음식이 제일 맛있다는 말과 엄마한테 이 요리를 해주고 싶다고 한 것은 사실이었다.

“엄마. 그럼, 조금만 기다려요.”

주방으로 들어간 경호는 손에 든 봉지를 열었다.

대한민국 대표 길거리 음식 ‘순대’였다.

경호는 냉장고를 열어 양배추, 양파, 대파, 깻잎, 당근을 꺼냈다.

“아들, 뭐 하려고? 엄마가 할게.”

“에이. 앉아 계셔! 오지 마! 나 진짜 삐진다!”

경호는 지숙이 다시 의자에 앉은 것을 보고는 프라이팬을 꺼내 불 위에 올리고는 꺼낸 채소를 적당히 어슷 썰었다.

식용유를 적당히 두르고 깻잎을 제외한 채소를 가볍게 볶았다.

소금과 후추를 살짝 쳐서 간을 맞추고는 아직 따뜻한 순대를 털어 넣고는 들깻가루를 듬뿍 뿌렸다.

촤아아아아아!

깨 볶는 고소한 향기가 주방을 넘어 홀까지 가득 채웠다.

“아들. 뭐하는데 이리 고소한 냄새가 나는 거니?”

“서지숙 여사님. 1분만 기다리면 알게 되니까 궁금하셔도 참으세요.”

경호는 마지막으로 깻잎을 넣고 가볍게 뒤적거린 후 불을 껐다.

그리고 초장에 들깻가루를 넣고 양념장까지 만들었다.

바로 ‘백순대볶음’ 완성이었다.

“후우. 엄마가 좋아해야 할 텐데.”

경호가 접시에 담아 홀로 나가며 중얼거렸다.

***

“아니. 도대체 뭘 하길래?”

지숙은 경호가 제법 요리를 잘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주방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뜬금없이 고소한 냄새가 확 풍기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궁금해했다.

지숙의 궁금증이 점점 커질 즈음, 경호가 쟁반에 음식을 담아 주방을 나왔다.

“손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경호가 활짝 웃으며 백순대볶음과 양념장을 지숙 앞에 내려놨다.

“어멋!”

그것을 본 지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경호를 쳐다봤다.

“이걸. 이걸 니가 한 거니?”

“엄마가 종종 이야기했잖아요. 아마 맛은 천지 차이겠지만 정성은 더 많이 들어갔으니까 한번 드셔보세요.”

어릴 적 경호는 지숙이 습관처럼 ‘아, 오늘 같은 날에 ‘백순대볶음’에 맥주 한잔이 딱인데….’라고 말하는 걸 자주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커서 그것을 물어봤지만, 지숙은 그저 웃으며 ‘둘이 궁합이 잘 맞거든.’이라는 알쏭달쏭한 대답만 했었다.

“잠깐만!”

경호가 서둘러 술장고에서 시원한 맥주 한 병을 꺼내 지숙에게 다가가 술잔을 건넸다.

“손님. 백순대볶음엔 시원한 맥주 한잔이 딱이죠. 자아. 한잔 받으…. 어? 엄마?”

맥주를 따려고 한 경호는 지숙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것을 보고 멈칫하며 놀랐다.

“엄마? 울어? 왜 그래?”

경호가 놀라 의자에 앉으며 휴지를 뽑아 지숙에게 건넸다.

눈물을 훔친 지숙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아니야. 그냥 늙어서 그래. 요즘 갱년기라….”

-경호 님. 아주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지숙이 흘리는 눈물이 갱년기 따위가 아닌 속에서 터져 나온 눈물이라 것은 눈치 없는 경호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경호는 맥주잔을 하나 더 가져와서 지숙과 자신의 잔에 맥주를 따르고는 입을 열었다.

“엄마는 내가 아직도 어린애 같지? 나 이래 봬도 30대 중반이라고. 말해봐요. 왜? 도대체 이 요리에 무슨 사연이 있는 건데.”

“그러고 보면 우리 경호가 참 그이를 많이 닮았어.”

“그이? 아빠 말 하는 거야?”

지숙이 고개를 끄덕이자 경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태까지 아빠에 관한 이야기는 지숙이 유난히 감추며 일절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이가 백순대볶음에 맥주 한잔하는 걸 참 좋아했었는데….”

지숙이 눈물을 닦아내며 한숨을 깊이 내셨다.

***

최지훈.

지숙의 남편이자 경호의 아빠였던 그는 가진 것은 없었지만 아내에게 최선을 다했고 자식을 위해 열심히 사는 청년이었다.

어릴 적 부모를 여윈 그는 아내는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자식은 훌륭히 키우겠다는 그런 일념으로 건축업 일용직, 여러 작업의 데모도를 하며 틈틈이 미장일을 배우고 있었다.

“나 이제 끝났어요. 금방 갈게요.”

-여보. 오늘도 너무 고생했어요.

“고생은 무슨 내가 박봉이라 항상 미안해요. 그래도 이제 곧 미장 쪽으로 완전히 넘어가면 조금 나아질 테니까. 조금만 참아줘요.”

-저는 지금도 충분해요. 그러니 무리하지 말고 첫째도 조심, 둘째도 조심하세요. 알았죠?

하루 일이 끝나면 지훈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허름한 포장마차에 가끔 들려 ‘백순대볶음’을 사서 갔다.

시원한 맥주에 먹는 백순대볶음이면 하루의 피로가 싹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백순대볶음’을 한 봉지 사서 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봉지가 하나 더 들려있었다.

“지숙이 좋아하던 체리도 샀으니 좋아하겠지?”

지훈은 평소보다 기분이 더 좋았다.

미장을 가르쳐 주는 선배가 이제는 한사람 몫은 충분히 하겠다고 칭찬도 해줬고 웬일인지 소장도 일당에서 3만 원이나 더 챙겨줬다.

백순대볶음과 체리를 든 지훈의 발걸음은 그래서 평소보다 가벼웠다.

지훈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지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이제 들어가는 길이에요. 집에 맥주 있어요?”

-냉동실로 옮겨 놓을게요. 오면 시원하게 한잔하세요.

“고마워요.”

-아바. 아바.

“엇! 어엇!”

-여보, 들었어요? 경호가 드디어 아빠를 찾네요. 오늘 온종일 ‘아빠, 아빠’ 했어요!

이제 막 2살이 된 경호의 ‘아빠’ 소리에 지훈의 다리가 더 가벼워졌다.

“알았어요. 금방 갈….”

부아아아아아아앙.

커다란 소리에 놀라 지훈이 고개를 돌렸다.

승용차 한 대가 빨간불임에도 불구하고 지훈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어어! 어!”

끼이이이이익. 쿠웅!

뒤늦게 승용차가 멈추려 제동을 걸었지만 이미 지훈은 차에 치여 뒤로 튕겨 나간 후였다.

퍼억.

한참을 날아간 지훈이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커억. 컥. 여보. 경호야. 경….”

그렇게 쓰러진 지훈은 결국 감은 눈을 뜨지 못했다.

“음주운전이었어.”

지숙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건널목에서 보행자 신호에 건너던 아빠를 음주운전 하던 차가 친 거지. 현장 사진을 나중에 경찰이 보여줘서 봤는데. 내가 평소에 먹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체리와 백순대볶음이 있더구나. 다 엄마 탓이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엄마 탓이라니?”

“내가 철없이 체리가 먹고 싶다고 말만 안 했어도. 내가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 경호에게 아빠가 있었을 텐데. 다 엄마 탓이다.”

“엄마. 그만 우세요. 그리고 그게 무슨 엄마 탓이에요. 음주 운전한 그 빌어먹을 놈 때문이지! 엄마가 왜 죄인처럼 그러고 자책하고 있어!”

지숙의 모습에 울컥한 경호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체리 이야기만 안 했어도. 그걸 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만 않았어도 그 시간에 길을 건너진 않았을 텐데. 그러니 나 때문이다. 경호야. 엄마가, 엄마 때문에.”

“엄마가 이러고 있으면 하늘에서 지켜보는 아빠는 속이 좋을 거 같아? 그래서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이렇게 30년 동안 탓하며 살았던 거야? 어? 다 엄마 탓이라고 생각해서?”

30년도 넘는 긴 세월 동안 지숙은 남편의 죽음을 자책하며 살아왔었다.

미안하고 죄스러워 아들인 경호에게도 일절 이야기하지 않았던 지숙이었다.

“어휴. 진짜. 엄마. 그동안 어떻게 이걸 담고 사셨어요. 진짜 바보같이.”

그렇게 한참 동안 눈물을 쏟아낸 지숙이 경호를 보며 조금은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아들 정말 많이 컸구나. 정말 많이 컸어. 이제 엄마가 없어도 되겠다.”

“아! 진짜! 아까부터 자꾸 이상한 말만 하고 있어! 아들 화병으로 쓰러지는 꼴 보려고 그러는 거야? 어! 나 엄마 없으면 하루도 못 사니까 앞으로 그런 소리 하지 마! 알았어?”

지숙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경호가 그런 지숙을 보다 흰둥이에게 전음을 날렸다.

-흰둥아. 우리 엄마 꼭 고쳐줘. 아들 10년 기다린 것도 불쌍한데. 30여 년을 죄인처럼 사신 분이셔. 알았지?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쳐내겠습니다. 경호 님. 크으. 크흠.

흰둥이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고맙다. 고마워.

경호가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지숙에게 다가가 그녀를 꼭 껴안았다.

“다 큰 놈이 징그럽게…”

“엄마. 앞으로 더 잘할게요. 사랑해요.”

“왜 자꾸 엄마를 울려. 이놈아. 흐흑.”

지숙이 경호의 품 안에서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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