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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45화 (45/335)

#045화

화르르르르르륵!

“오, 솔딘. 이거 화력이 정령계에 있던 거보다 더 좋은 거 같은데. 맞나요?”

마력 화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열기에 경호가 혀를 내둘렀다.

“역시 용사님의 눈썰미는 대단하시네요. 사실 이곳에 와서 매일 같이 어떻게 하면 마력 화로의 효율을 높일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물론 질 좋은 여우구슬도 한몫했고요. 정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에이, 우리 사이에 감사는 뭘요. 그나저나 다 모인 거 맞죠?”

“용사님. 다 모였습니다.”

솔딘이 공방 앞 공터에 잡은 드워프를 돌아보며 말했다.

“용사님. 저희도 다 모였습니다. 크릉.”

테일러도 경호의 말에 대답했다.

‘이계인 보호구역’ 안의 드워프와 워울프가 모두 공방 앞 공터에 모인 상황이었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한껏 기대에 찬 표정으로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그럼. 조금씩만 도와주세요. 전 고기를 구울 테니까요.”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쌈채와 기름장, 쌈장을 솔딘과 테일러가 모여든 이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경호는 공방 구석에서 커다란 철판 하나를 챙겨 반질거리도록 잘 닦아냈다.

“좋아. 구워볼까?”

두툼하게 썰어놓은 뿔돼지 고기를 들어 척! 척! 철판 위에 얹고는 화로를 살폈다.

마력 화로.

대장간의 화로는 보통 크기가 작은 편이지만 드워프는 하나의 마력 화로로 모든 작업을 하기에 그 크기가 숯가마처럼 컸다.

물론 안에 숯을 만들기 위한 나무가 쌓여있진 않았고 그 공간에는 복잡한 마력 회로가 새겨진 석벽이 그 공간에 켜켜이 쌓여있는 구조였다.

“이제 고기 담을 접시 준비해주세요. 바로 갑니다!”

오오오오!

경호가 고기를 올리며 소리치자 정령계에서 3초 뿔돼지 삼겹살을 맛봤던 드워프들이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어느새 경호의 뒤로 접시를 든 이들이 길게 줄을 만들었다.

그런 모습에 경호가 서둘러 철판을 화로에 밀어 넣었다.

치이이이익!

침이 고이는 소리가 마력 화로 안에서 터져 나왔다.

‘빠르게 겉을 익혀 바삭하면서도 육즙을 그대로 가둬 속은 촉촉하게. 그것이 진짜 3초 삼겹살이지.’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굽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불이 세면 겉이 타버리고 약하면 속이 익질 않아 보통 3초 삼겹살은 살짝 초벌로 익혀 불판에 다시 구워 먹는 편이었다.

하지만 경호는 달랐다.

단순히 3초라는 시간이 아닌 눈과 귀, 그리고 간파 능력을 통해 고기의 익은 정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사실 마력 화로는 숯가마보다 온도가 훨씬 높지만 직접 무언가를 태워 불길이 나오는 구조가 아니라 마력으로 그것을 조절할 수 있기에 더 정교하게 구울 수 있었다.

‘정령계보다 열기가 강하니까 조금만 낮추고.’

경호가 마력을 철판 쪽으로 보내 화로 속 열기를 흩뜨려 온도를 낮췄다.

그리고 익어가는 고기를 보다 철판을 흔들어 열기를 골고루 받도록 각도를 조절했다.

이것까지가 2초.

이제 경호만 할 수 있는 3초 뿔돼지 삼겹살의 마무리 단계만 남았다.

“오랜만이네.”

철판의 손잡이를 쥔 경호의 손목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러자 마술처럼 철판에 깔려있던 고기가 펄떡이며 뒤집혔다.

“완성!”

그러곤 경호가 바로 철판을 화로에서 꺼냈다.

딱 3초.

꺼내자마자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뿔돼지 지방에서 풍겨 나오는 고소한 향이 공방 안을 가득 채웠다.

“우와! 무슨 냄새가 이렇게 고소하데.”

“삼겹살을 구웠는데 이런 냄새가 난다고?”

철판 위에 맛있게 익은 뿔돼지 뱃살을 경호가 집게로 집어 줄을 선 이들의 접시에 나눠줬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경호의 입가에서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

“자아! 여러분. 잔에 술들 채우셨습니까?”

솔딘이 술잔에 경호가 준비한 꿀막걸리를 가득 채우며 소리쳤다.

“네에!”

조금 소란스럽긴 했지만 모두 즐거운 표정으로 술잔을 채웠다.

오늘 이런 잔치는 사실 경호가 3초 뿔돼지 삼겹살을 먹고 싶어 만든 자리였지만 어쨌든 명목상 ‘마력 화로 완공 축하파티’였다.

“용사님. 한 말씀 하시죠. 덕분에 마력 화로가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무슨 소리세요. 한 말씀은 솔딘이 하셔야죠. 대충 봐도 개량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화로가 되었던데. 그러니 그런 말씀 하지 마시고 어서 건배사 하세요.”

경호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솔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지구에서 제대로 자리를 못 잡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마력 화로의 부재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솔딘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드워프라고 광석을 그냥 망치로 때린다고 전설의 검이나 영웅의 방패 같은 물건이 뚝딱! 뚝딱!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광석을 녹여 그 속에 들어있는 쓸 만한 것들을 뽑아내야 했다.

하지만 특수한 광물이나 마수의 부속물은 그냥 화석연료나 전기를 써서 만드는 화로를 써서는 녹여낼 수가 없었다.

“이제 정령계에서, 아니 저희가 있던 카이노스 행성에 있을 때보다 더 좋은 화로를 완성했습니다.”

울피의 여우구슬과 효율성이 향상된 화로 마법진이 조화를 이루어 솔딘도 예상치 못했던 고성능 마력 화로가 탄생했다.

“새로운 광맥도 찾았고 마력 화로도 완성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식칼이나 냄비가 아닌 마수를 죽이는 무기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솔딘의 말에 드워프를 중심으로 웅성거리며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냥 아티팩트를 척척 만들어낸다면…. 과연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셨습니까?”

경호는 솔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드워프는 결국 이계인이었다.

지금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이계인들을 가둬두고 통제를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식칼이나 냄비가 아닌 굉장한 물건을 만든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바로 노예처럼 부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인간의 본성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잔인하니까. 특히 ‘돈’이 걸린 문제는 더욱더.’

인간의 역사를 돌아볼 때 경호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지금 같은 감시 상황을 넘어 우리 모두 어디론가 끌려가 죽을 때까지 원치 않는 망치질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족장님! 그럼, 어떡합니까? 좋은 광맥과 화로를 얻고도 그저 주방도구나 만들며 살아야 한다는 겁니까?”

늙수그레한 드워프 하나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 소리치듯 물었다.

“어쩌면 그래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족장님! 그러면 뭐하러 광맥을 찾고 뭐하러 화로를 만들었습니까?”

솔딘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엘친 장로님. 진정하세요. 그렇게 말씀드리긴 했지만 그럴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요.”

엘친 장로라고 불린 늙수그레한 드워프가 솔딘의 대답에 그제야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우리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여기 용사님이 계약을 도와준 흙정령으로 광맥을 찾을 수 있었고 가져다주신 여우구슬로 화로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다 아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푸른 이빨 부족도 용사님이 달빛초를 주셔서 서서히 강해지고 있고요.”

잠자코 듣고 있던 엘친 장로가 다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참을성으로는 답답해 속이 터질 지경이라 더이상 기다리기가 불가능했다.

“아니, 족장님. 그래서 어떡하자는 겁니까?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푸른 이빨 부족에게 우리를 지켜달라고 계약이라도 맺겠다는 겁니까? 그것은 싫습니다!”

엘친 장로의 말에 테일러가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말씀입니다. 크릉. 진정한 전사라면 자신이 가진 힘에 긍지를 가지고 단련하여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당연합니다! 크릉!”

테일러의 말에 솔딘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처럼 전사의 피를 가진 이들이 아니지요. 또 힘을 숨기는 것은 우리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크릉.”

워울프의 경우도 함부로 힘을 내보일 수 있는 노릇은 아니었다.

지금은 그저 서커스단 정도로 취급받고 있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상급 헌터 이상의 힘이 있다고 알려지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거라는 것은 안 봐도 분명한 일이었다.

“그럼, 어떤 다른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어쨌든 지구는 결국 인간이 주인인 행성입니다. 우리가 어떤 방법을 써도 결국 우리는 이계인에 불과하지요.”

솔딘의 말에 엘친 장로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했다.

“그래서 용사님께서 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셨습니다.”

경호가 솔딘에게 한 제안은 그 누구도 손해 볼 일이 없는 윈윈전략이었다.

“족장님. 어떤 제안이었습니까?”

성격 급한 엘친 장로가 솔딘에게 물었다.

“용사님과 의형제를 맺은 인물이 대형 길드의 마스터라고 합니다. 혹시 ‘신화길드’라는 곳을 아십니까?”

여기저기서 탄성이 들려왔다.

신화길드.

대한민국에서 ‘신화’라는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것이 이계인이라 할지라도.

“그 신화길드의 마스터가 바로 용사님의 의동생이라 합니다.”

솔딘의 이야기를 듣던 경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화길드는 분명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가 될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검은 망치 부족은 그런 그들의 전용 무기를 담당하게 될 겁니다.”

테일러와 했던 대화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반성한 경호는 ‘헌터를 강하게 만들 방법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떠오른 답은 바로 ‘아티팩트’였다.

솔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힘을 기르고 세상에 맞설 수 있게 된다 해도 결국 인간과 부딪힐 뿐입니다.”

지구에서 이계인이 잘나면 잘날수록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았다.

인간은 그런 존재이니까.

“사실 저 역시 용사님의 제안을 듣고 속이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계인’입니다. 지구인에게는 사실 마수나 우리나 똑같이 지구를 쳐들어온 낯선 존재일 뿐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잘하는 것으로 우릴 지켜야 합니다. 어설프게 칼을 들어 피를 보기보다 망치를 들고 쇠를 때려야 합니다.”

이미 오랫동안 차원을 떠돌았기에 솔딘의 말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사실 용사님이 제안하신 내용이지만, 신화길드와 이야기한 내용도 아니고 그저 한가지 방안일….”

“찬성합니다!”

엘친 장로가 큰소리로 찬성을 외쳤다.

“찬성합니다!”

“좋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조용했던 장내가 시끌벅적해졌다.

솔딘은 부족원들의 반응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 솔딘을 본 경호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아 쌈을 싸기 시작했다.

잘 익은 큼지막한 뿔돼지 고기가 들어있는 쌈을 잘 오므려 한입에 넣었다.

우적. 우적. 우적.

육즙이 팡팡 터졌다.

상추와 깻잎. 고추와 마늘. 기름장과 쌈장. 그리고 잘 익은 뿔돼지 고기가 어우러지는 앙상블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자아! 우선 먹읍시다. 뿔돼지 고기가 식어도 맛있긴 하지만 이렇게 뜨거울 때 먹어야 제맛이거든요.”

경호의 말에 모두가 환하게 웃으며 쌈을 싸 먹기 시작했다.

고기쌈을 싸서 먹은 이들은 그 맛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지 그저 우적거리며 엄지만 치켜세우고 있었다.

뿔돼지 고기 자체가 맛있기도 했지만, 마력 화로의 불과 절묘한 경호의 요리 실력이 하나 되어 나온 맛이었다.

금세 잔치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용사님. 감사합니다.”

솔딘이 경호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뭐가요? 해준 것도 없는데. 제가 이야기한 제안도 아직 말도 꺼내기 힘들어요. 신화길드가 정말 솔딘의 부족의 방패막이 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면 그때 제안을 할 겁니다. 그때까지 솔딘은 물건들을 만들어 주세요.”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라도 거부하기 힘든 최고의 물건을 만들어 놓도록 하겠습니다.”

“솔딘이 대충 만들어도 그 정도 물건은 나올 겁니다. 그러니 너무 무리하진 마시고요.”

말을 마친 경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벌써 가시려고요?”

“원래 요리사는 요리가 끝나면 사라져야지요.”

자리에서 일어나는 경호를 본 테일러도 다가와 말을 건넸다.

“용사님. 좀 더 있다 가시죠. 저희 부족의 특제 과실주가 아주 맛있습니다.”

특제 과실주에 살짝 흔들렸지만 사실 흰둥이랑 산책만 하고 온다고 한 것치고는 지금도 많은 늦은 시간이었다.

거기다 술까지 먹고 들어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테일러. 그건 다음에 마시도록 하죠. 흰둥아!”

구석에서 3초 뿔돼지 삼겹살을 사발째 쌓아 놓고 흡입하던 흰둥이가 경호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네? 저 아직 다 못 먹….

“가자!”

기름이 잔뜩 묻은 입을 삐쭉 내민 흰둥이를 옆구리에 낀 경호가 곧장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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