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화
투우웅!
팽팽해진 활시위를 놓자 전격의 힘이 실린 화살이 푸른 유성처럼 빛무리를 뿌리며 날아갔다.
푸욱!
강력한 기운에 비해 아주 작은 소리만 남기고 마력의 화살이 칼날표범의 이마를 꿰뚫고 들어갔다.
콰르르르르르릉!
그때 천둥이라도 치는 것 같은 커다란 소리와 함께 칼날표범의 뒤통수가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머리가 터져나간 칼날표범이 거친 숨을 몰아쉬는 성원을 지나쳐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앙!
바닥을 박살 내며 한참을 굴러간 칼날표범이 흙먼지를 잔뜩 뿌리며 멈춰 섰다.
칼날표범의 목과 다리가 이리저리 꺾여있는 것이 성원의 눈에 들어왔다.
“어, 어어어!”
성원이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그러고는 갑자기 미친놈처럼 크게 웃다가 벌떡 일어났다.
“주, 죽였어! 내가 죽였다고! 으아아아아아아!”
한참을 그렇게 펄쩍거리며 소리치던 성원이 한쪽 벽에 처박힌 채 쓰러져 있는 정수를 향해 달려갔다.
“정수야! 박정수!”
정수가 반응이 없자 성원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야! 괜찮아!”
“끄윽. 혀, 형님. 그만 흔들어요. 저 진짜 죽어요.”
멀쩡해 보이진 않았지만 다행히 살아있었다.
“정수. 이 자식. 그러게 그렇게 무식하게 덤벼…. 으윽!”
성원이 비틀거리며 신음을 뱉었다.
마나코어에 담겨있던 증폭의 기운이 사라지자 엄청난 탈력감이 들었던 것이었다.
“혀, 형님! 괜찮으세요?”
“으으. 너보단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후우. 어쨌든 안 죽고 잡았으면 된 거지. 저기 던전 게이트도 열렸으니 어서 나가자. 너나 나나 우선 좀 어디에 누워야 할 거 같다.”
정신과 마력, 육체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갑자기 늘어난 마력을 육체가 감당하기에 부족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었다.
경호는 그런 성원을 보다 조심스럽게 밖으로 빠져나왔다.
***
던전 안에 기생균열이 생기고 게이트가 닫힌 상태에서 밖에서도 난리가 났다.
즐거운 마음으로 던전을 향했던 건용은 상황을 파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일이야! 관리팀! 당장 게이트 열어!”
그러나 닫힌 게이트를 강제로 여는 것은 경호라고 할지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신화길드의 최명호 관리팀장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이건용 회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모든 상황에 대비한다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더 빨리 알아채서 길드장님을 구했어야 했는데 정말,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관리팀이 있는 이유가 바로 그런 거 아닌가!”
건용은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고 있었지만,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찼고 몸도 부들거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내 아들이 살아나올 확률이 얼마나 되는가?”
건용이 명호를 향해 화를 참아내며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지금 방출되는 파장을 보면 기생균열에서 재난종 마수가 나올 확률이 78% 정도가 됩니다.”
명호가 즉답을 피하며 말을 돌렸다.
“그러니까 내 아들이 살아나올 확률이 얼마나 되느냐고! 재난종 마수가 나올 확률 말고! 내 아들이 살아나올 확률 말이야! 어!”
그런 명호의 멱살을 잡으며 건용이 화를 내며 물었다.
주변 사람들이 차마 말리지도 못하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게. 그것이. 길드장님이 살아나올 확률에 대해서 확답을 드리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죄송….”
퍼억!
건용이 명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뭐!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그런 거 파악하라고 월급 받는 거 아니야! 어!”
그제야 사람들이 달려들어 건용을 말리기 시작했다.
“회장님! 진정하십시오!”
“어서! 말려!”
“회장님! 회장님!”
경호팀이 달라붙어 건용을 말렸고 그 앞에 얼굴을 맞아 쓰러졌던 명호가 자세를 바로 하더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살려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내! 성원이 저 녀석! 엄마도 없이! 아비 사랑도 제대로 못 받아본 놈인데! 살려내라고!”
건용은 자신을 에워싼 경호팀을 향해 몸부림치다가 아이처럼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주변에 소탈하면서도 자식들에게 냉정하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건용에 대한 평가였다.
그런 그가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신화그룹 관계자들이 뿜어내는 무거운 기운에 기자들도 그런 건용의 모습을 보고도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밀지 못하고 있었다.
건용의 울부짖는 듯한 흐느낌을 제외하고는 숨 쉬는 것조차 눈치를 살펴야 할 정도로 적막감이 감돌았다.
그때 그 분위기를 깨는 요란한 소리가 던전 게이트에서 들렸다.
우우우우웅!
제법 소리와 함께 사라졌던 차원막이 게이트에 다시 생성되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건가! 경호팀장! 어서! 어서 들어가 보게! 어서!”
건용이 다시 생긴 차원막을 보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A급 각성자인 차원수 경호팀장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달려갔다.
망설임 없이 차원막을 향해 뛰어드는 그의 옆에 다현도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달려들고 있었다.
마침 정수의 부축을 받으며 차원막을 통과하려던 성원은 갑자기 튀어나오는 이들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부딪쳤다.
“뭐야! 아흐흑!”
안 그래도 몸이 엉망인 성원은 자신을 찍어 짓누르는 묵직함에 비명을 질렀다.
앞이 깜깜하고 숨이 막혀 밀어내려 뻗은 성원의 손에 무언가 뭉클한 것이 잡혔다.
“어! 어어!?”
깜깜했던 시야가 훤해지며 자신의 손을 확인한 성원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 누, 누님!”
놀란 성원이 잡혀있던 다현의 가슴에서 손을 치웠다.
“지금 어디를 만…. 어?”
다현이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성원을 보고 화를 내려다 뒤쪽에 쓰러져 있는 거대한 마수를 보았다.
“저거 ‘눈보라’ 맞아요?”
날카로운 칼날이 등줄기에 꼿꼿하게 돋아있는 거대한 눈표범.
5급 재난종 마수인 칼날표범이 분명해 보였다.
“뭐야? 저게 왜 여기 뻗어있는 거야?”
다현의 머릿속에 성원이 자신의 가슴을 잡았던 사실 따윈 이미 저 멀리 사라지고 없었다.
단지 저 괴물이 왜? 어떻게? 저기에 쓰러져 있는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었다.
정수와 엉켜있던 차원수 경호팀장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면밀하게 살폈지만 경호와 정수를 제외하고는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도련님과 정수 씨가 저 칼날표범을 잡으신 겁니까?”
정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역시 뭔가 다른 이유가 있….”
“형님 혼자서 잡은 겁니다. 저는 까불다가 기절한 상태였고요.”
원수는 ‘아니요’라고 할 때만 하더라도 역시 ‘그렇지’하는 표정을 짓다 성원 혼자서 칼날표범을 잡았다는 정수의 말에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놀라기는 원수보다 다현이 더 심했다.
“말도 안 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누님.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겼으니까요.”
“그러니까 혼자서 잡았다고요?”
“정확히 말하면 이 활로 화살을 쏴서 죽였습니다. 딱 한발로요.”
활?
성원의 손에 잡혀있는 황금사자를 본 다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전격 마법 계열 아니었나요? 그리고 활은 언제? 아니 그것보다 애초에 화살 한 발로 저걸 잡았다는 게 더 말이 안 되는데.”
칼날표범은 S급 헌터인 다현이라고 해도 한 방에 잡을 수 있는 마수가 아니었다.
성원도 다현의 말에 100% 공감했다.
스스로 질문을 던져도 답 모르는 상황을 겪었기에 달리 설명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누님. 우선 나가죠. 지금은 좀 눕고 싶거든요.”
***
차원막을 뚫고 다현과 원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혹시나 하며 차원막을 쳐다보던 이들의 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차팀장! 아, 아들은?”
건용이 원수에게 성원의 안부를 물어볼 때였다.
와아아아아아!
주변의 탄식 소리가 우렁찬 함성으로 바뀌었다.
“성원아!”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걸어 나오긴 했지만 환하게 웃고 있는 성원이 차원막을 뚫고 나오고 있었다.
건용이 단순에 달려가 성원의 앞에 섰다.
“아버…. 아니 회장님.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
“알긴 아는구나. 관리팀에서 미리 파악해서 대응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지만 그것도 결국 길드장인 너의 역량이고 너의 잘못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앞으…. 어.”
건용이 성원을 품에 안았다.
“아들아. 고맙다. 살아 돌아 와줘서 정말 고맙다. 정말 고마워.”
성원을 힘주어 안은 건용의 몸이 잘게 떨렸다.
“아버지. 왜 우세요.”
낯설었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시작한 사업을 대한민국 최고의 신화그룹까지 성장시킨 거인이 이건용,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다.
그런 태산 같은 거인이 자신을 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낯설고 어색했지만 너무나 행복했다.
“성원아. 잘했다.”
“아버지. 그런데 오늘은 정말 잘한 거 같아요.”
“그래, 살아와 준 것만 해도 너무 잘했다.”
“아니요. 그게 아니에요. 오늘 던전 공략으로 신화길드가 엄청나게 성장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새로운 사업을 할 수도 있고요.”
성원의 말에 건용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게 무슨 말이냐? 당연히 유명세를 치르겠지만 그것으로 사업을 확장하긴 어려울 텐데.”
엄청난 유명세를 치를 것은 자명했다.
하지만 유명세는 결국 한때뿐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사업을 할 수도 있다니.
그때 던전 게이트 주변이 웅성거리다 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더, 던전 안에 칼날표범의 시체가 있습니다!”
게이트가 열리고 관리팀과 처리팀이 들어갔다가 놀라 뛰쳐나오며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성원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사정이 있긴 하지만 저 칼날표범. 이걸로 제가 잡은 겁니다.”
성원의 손에 들린 한눈에 보기에도 굉장해 보이는 각궁이 안 그래도 궁금했던 참이었다.
“네가 그걸로 칼날표범을 잡았다고?”
건용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평소 담담한 성격으로 감정 표현이 많지 않은 그였지만 오늘은 울고 웃고 놀라기까지 다양한 감정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냐. 던전 안에 칼날표범이 나왔고. 그걸 네가 잡았단 말이냐?”
건용은 그저 기생균열이 생성되다가 스스로 소멸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건용뿐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칼날표범의 시체가 던전 안에 있다는 이야기에 주변이 성원이 살아 돌아왔을 때보다 더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버지. 우선 좀 쉬고 싶습니다.”
“그, 그래. 아들아.”
건용이 힘들어 보이는 성원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둘렀다.
그 모습에 수행비서들이 달려왔지만, 건용은 손을 저으며 성원을 부축해서 길드 사무실을 향해 묵묵히 걸어갔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멀리서 경호가 바라보고 있었다.
“이럴 때 보면 아버지란 존재가 참 부럽다니까.”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경호에게 흰둥이가 다가왔다.
앙앙!
-경호 님. 수호천사 역할 하시느라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살짝 고생하긴 했지. 그런데 웬일이냐? 먼저 나타나서 고생했다고 하고?”
-사실 저 레벨업 했습니다. 이제 레벨 3입니다.
“그래, 그런데 뭐.”
[소원성취 연계 퀘스트 : 던전을 부탁해! - 성공]
-바위전갈 던전 공략에 성공했습니다.
[퀘스트 성공으로 카르마 500만이 지급됩니다.]
[돌발 퀘스트 : 칼날표범이 나타났다! - 성공]
-칼날표범 균열 공략에 성공했습니다.
[퀘스트 성공으로 카르마 3000만이 지급됩니다.]
[원샷원킬! 카르마 3000만이 추가적으로 지급됩니다.]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고 경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한턱 크게 쏴야겠네. 그래. 이제 좀 수호신다워졌나?”
-드디어 사도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 잘됐네. 이제부터라도 쓸 만한 사도 구해서 퀘스트 같은 거도 좀 알아서 깨고 그래.”
-노력하도록 하겠습…. 어, 경호 님. 어머니 나오셨습니다.
차에서 낮잠을 잔 지숙이 경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엄마. 잘 잤어?”
지숙이 어수선한 주변을 보며 물었다.
“무슨 일 있었니?”
“내가 집에 가면서 이야기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