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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26화 (26/335)

#026화

술은 언제 마셔도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녀석이다.

거기다 좋은 사람과 함께 마시면 더욱 좋다.

거기에 낮 시간대라면 더할 나위 없이 더 좋다.

하지만 이곳에는 술도, 좋은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아, 언제 귀환할 수 있는 거야!’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오늘 같은 날에는 특히나 술이 땡겼다.

***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네. 정말.”

어색하게 웃는 지숙을 보고 성원이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어머님! 그냥 머리 좀 하고 옷 좀 사는 건데요. 뭘 그러세요.”

“아니, 그래도. 그게.”

“그동안 못 꾸미신 거 있으시면 오늘 다 해보세요. 아셨죠?”

“그래. 엄마, 다녀와요.”

경호와 성원이 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지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럼. 아들. 가게 잘 보고.”

“어, 잘 다녀와.”

“정수야! 운전 조심하고.”

“네! 그럼. 큰형님! 다녀오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지숙의 외출은 바로 성원의 부탁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다현이 던전 공략에 불참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성원이 경호에게 전화해 곧 죽을 목소리로 사정을 하며 매달렸다.

-혀, 형님!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무조건! 무조건 다현 누님이 필요합니다!

경호도 충분히 공감하는 내용이었지만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부탁이었다.

웬만한 것은 다 방법이 있겠는데 경호도 다현만큼은 정말 방법이 없었다.

“그나저나 언제부터 다현 누님이 된 거냐?”

-그때 2차에서 그러기로 했는데 전혀 기억을 못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때 계약서라도 써놨어야지! 아휴. 진짜!”

-이제 일주일 남았는데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형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다현 누님 좀 설득해 주십시오.

성원의 부탁에 한숨을 푹 쉬던 경호의 머릿속에 번쩍하고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낮술!

경호도 술을 좋아하지만, 다현은 술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는 수준이었다.

“낮술! 낮술로 가자.”

-네? 낮술이요?

“어, 낮술. 대신 네가 해줄 게 있는데.”

그렇게 해서 지숙은 미용실부터 백화점까지 정수와 함께 하루 종일 데이트를 하는 것으로 급하게 결정이 났다.

“형님! 다현 누님이 오시겠죠?”

“흐음. 어제 살짝 협박하기도 했으니 잘 꼬시면 올 거 같은데. 솔직히 반반이다.”

“그렇겠죠….”

경호는 구석에 있는 흰둥이도 여간 신경이 쓰였다.

-경호 님! 아직 레드위치와 던전 공략 계약 퀘스트 완료 안 된 거 아시죠? 무려 500만 카르마입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거 참, 알았다고.

성원과 흰둥이의 성화에 경호가 다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왜?

“어째 전화를 다 ‘어! 왜?’로 받는 거 같다.”

-아! 왜?

“아니 오늘 오라고 했잖아. 언제 오나 해서.”

-안 그래도 그 성원이라는 사람한테 안 한다고 이야기했어. 그러니 기다리지 마. 나 안 간다.

야식에 술 한잔하러는 자주 오면서….

10년간 제멋대로인 성격이 더욱 성장하여 화려하게 꽃을 피운 듯했다.

“에이. 걔가 얼마나 좋아했는데 그렇게 말을 했어. 한 번쯤 도와줄 수 있잖아. 내가 특별히 부탁한 거기도 하고 너도 술 먹고 한 이야기지만 한다고 했었는데.”

다현의 츤데레 성향을 잘 이용하면 먹힐 때가 더러 있었다.

그랬기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거 꼭 해야 해? 3대 길드라는 신화길드가 A급 던전도 자체적으로 공략 못 한다는 게 말이 돼?

제법 큰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로 들었는지 다현의 뼈 때리는 팩폭에 안 그래도 쭈글했던 성원이 더욱 쭈그러들었다.

“일 없으면 잠깐 와줘. 친구 좋다는 게 뭐냐.”

-….

“부탁 좀 들어주라. 능력 좋은 친구를 소개해준 건데. 니가 이렇게 나오면 내가 뭐가 되냐. 에이, 그럼. 와서 술이라도 한잔하고 가던가.”

-뭐? 술? 이 시간에?

“술 먹는데 뭐 시간이 중요한가? 안 그래?”

-엄마는? 안 계셔?

슬슬 미끼를 건드리며 입질을 하는 다현을 보며 경호가 마지막 떡밥을 시원하게 투척했다.

“엄마는 오랜만에 머리한다면서 나가셨지. 기가 막힌 꿀막걸리를 구했거든. 그래서 같이 한잔할까 했지.”

-….

잠시 대화가 끊어졌지만 경호는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갈게. 그렇다고 신화길드랑 같이 던전 돈다는 건 아니고. 알았지?

역시나 오케이였다.

경호는 전화를 끊고 한숨을 돌렸다.

“계약서를 쓰든 녹취를 하든 어떻게든 꼬셔 봐. 난 모르겠다.”

성원이 감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정말 뼈에 새기겠습니다. 절대,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하여간 오버는. 뭘 새기긴 새겨. 그럼, 잠깐 앉아있어. 안주 만들어서 나올 테니까.”

“뭐 도와드립니까?”

“어,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그냥 앉아있어.”

경호는 주방에 들어와 냉장고를 살폈다.

역시 생각했던 재료들이 다 있었다.

두부. 김치. 부추. 양파. 고추. 당근.

이것들만 있어도 두부김치, 부추전, 달걀말이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도면 꿀막걸리 안주로 충분했다.

아니 황금꿀이 들어간 막걸리에는 사실 안주도 필요 없었다.

술이 안주가 되고 안주가 술이 되는 매직이 펼쳐질 테니.

경호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궁중팬에 김치를 볶으면서 프라이팬에 달걀물을 풀고, 부침개 반죽을 저으며 두부를 뜨거운 물에 담그는 것까지 그 모든 것을 경호는 염력을 사용해서 동시에 할 수 있었다.

요리가 거의 완성되어갈 때쯤.

부르릉. 부르릉.

가게 밖에 다현의 스포츠카 특유의 요란한 배기음이 들려왔다.

“형님! 누님 오셨나 봅니다.”

“어, 안주 들고 갈게.”

경호가 쟁반에 두부김치, 달걀말이, 부추전을 담아 들고 나왔다.

“경호! 이 새ㄲ….”

다현이 성원의 모습을 보며 흠칫했다.

“어, 나 왔어. 안녕하세요. 저번에는 과음하는 바람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급히 다현이 말투를 바꾸며 수습했다.

그전에 술자리와 아까의 통화로 이미 다현의 성격을 충분히 파악한 성원이 그저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경호는 둘을 보다 자신의 내숭이 통했으리라 생각하는 다현의 모습에 속으로 큭큭 거렸다.

그러고 보면 눈치는 중학교 때나 지금이나 별반 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 아닙니다. 실례는요. 오히려 제가 무리한 부탁을 드려서 죄송했습니다.”

“그럼, 그때 그….”

경호가 둘 사이에 끼어들며 쟁반을 식탁 위에 올렸다.

“우선 앉아. 그럼, 술 가지고 나올 테니까 기다리고.”

경호는 성원이 사 온 막걸리를 주전자에 가득 담았다.

그리고 어제 솔딘을 만나고 오는 길에 곰탱이에게 들려 얻어온 황금꿀을 아공간에서 꺼냈다.

이번 황금꿀은 곰탱이가 손수 가장 맛있는 꿀을 따서 모아둔 것을 가져온 거라 색도 진하고 향도 더욱 풍부했다.

“벌써 맛있겠네.”

황금꿀 한 숟갈을 떠서 주전자에 넣고 저어주자 노란빛이 돌며 달콤하면서도 진한 꽃내음이 올라왔다.

“자아!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르는 꿀막 대령입니다!”

“아휴! 하는 말마다 저렇게 아재스럽다니까!”

경호는 다현답지 않은 그녀의 모습에 살짝 당황스러움을 느꼈지만, 딱히 티 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웃었다.

“우리 나이면 아저씨, 아줌마지. 안 그래?”

“뭐래! 이 새… 삼스럽게 나이를 굳이. 그래, 우리 나이도 꽤 많긴 하지.”

“형님! 주세요. 제가 따라드리겠습니다.”

성원이 눈치를 살피다 경호가 든 주전자를 받아 양은그릇에 따랐다.

황금꿀의 향이 살살 올라오자 다현의 얼굴이 밝아졌다.

“냄새 좋은데? 그냥 올리고당 넣은 거 아니었나 봐?”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자연산 벌꿀을 넣은 건데. 먹으면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거라고. 자아, 먹자.”

꿀꺽꿀꺽!

맛을 본 다현과 성원은 놀란 얼굴을 했다.

“우와. 이거 생각보다 훨씬 맛있잖아.”

놀라기는 경호도 마찬가지였다.

황금꿀을 맛보며 10년간 상상만 했던 꿀막걸리는 정말이지 놀랄 정도로 맛과 향이 좋았다.

“오! 이거 진짜 맛있네. 한잔 더 줄 수 있어요?”

“네! 여기 있습니다.”

성원은 재벌 2세라는 사회적 지위도 내려놓은 채 굽신거리며 다현의 잔을 채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따르고 마시고 따르고 마시고.

술이 좋으니 금세 술잔이 제법 돌았다.

강제로 마력을 억누르지 않으면 취하지 않는 경호는 상관없었지만 맛있어서 꿀떡꿀떡 마시기 시작한 낮술은 결국 다현과 성원을 취하게 했다.

경호는 평소보다 빠르게 눈이 풀린 다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또 성격 나오겠네.”

다현은 취하면 나오는 자신의 본래 성격 탓에 원래 사람들 앞에서 술을 잘 먹는 편이 아니었다.

“누님!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저번에 2차 가셔서 분명 함께 가자고 말씀하셨잖아요!”

취하긴 성원도 마찬가지.

아까까지만 해도 찍소리도 못했던 성원이 술기운을 빌려 제법 큰소리를 냈다.

알딸딸해진 다현도 반말로 받아쳤다.

“아, 글쎄. 기억이 안 난다니까? 진짜야! 진짜! 근데 왜 하지도 못할 던전을 받고 그런 거야! 안 받았음 이런 거로 스트레스 안 받아도 되잖아! 안 그래?”

“아, 네. 그렇죠. 사실 발단은 거기서부터였어요. 깜냥도 안 되는 제가 길드를 차린 거부터.”

갑자기 바닥을 치는 성원의 목소리에 미안했는지 다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하. 뭘 또 그렇게까지. 그래도 대한민국 3대 길드잖아. 그 정도면 성공한 거지. 안 그래?”

나름의 위로였지만 성원의 기분이 좋아지기는커녕 역효과만 불러왔다.

“그 정도 돈 써서 겨우 3대 길드가 된 거죠. 괜히 사람들이 힘의 피닉스, 의리의 강철, 돈의 신화라고 할까요. 아까 그러셨잖아요. 3대 길드라는 신화길드가 A급 던전도 공략 하나 못하냐고.”

거의 울먹거리는 성원의 말에 머쓱한 표정으로 다현이 비어있는 술잔을 채웠다.

“그거 들었어? 그냥 빈말이지. A급 던전이 쉬운 건 아니잖아. 자아, 한잔해. 너무 마음 쓰지 말고.”

“어떻게 마음을 안 써요. 후우, 사실 C급 헌터가 길드를 만든 것 자체가 문제의 시작이었어요.”

사실 성원은 자학할 정도로 그렇게 못난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신화가’라는 이름을 짊어지고 살아가기에 너무나 평범했을 뿐.

신화그룹을 일군 아버지와 그룹을 날로 발전시키고 있는 형과 비교했을 때 성원은 너무도 부족했다.

그랬기에 사람들은 단지 평범하다는 이유로 성원을 ‘신화가의 애물단지’라고 불렀다.

성원은 각성한 후 그 꼬리표를 떼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다.

얼마 전 5000억짜리 리스폰 던전 계약을 성사시켰을 때는 어느 정도 그것에 성공했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물론 착각이었죠. 5000억짜리 던전은 날아가 버리고. 겨우 따낸 A급 던전은 결국 공략 실패로 끝나게 되겠네요. 아버지에게 조금은 인정받고 싶었는데. 후우.”

5000억짜리 던전이 날아갔다는 대목에서 경호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한숨을 깊게 쉬는 성원을 보며 다현이 고개를 저었다.

“야! 솔직히 지금 말하는 거 나한테는 자랑하는 거로 들리거든!”

“네?”

“넌 인정받고 싶은 부모라도 있잖아!”

성원이 다현의 말에 눈을 크게 뜨며 경호를 쳐다봤다.

“그럴지도. 다현이는 부모님이 안 계시거든.”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였기에 경호의 말에 성원이 놀란 얼굴로 마른침만 삼켰다.

“부모님은 안 계시지만 가족은 있잖아.”

“뭔 소리야?”

“우리 엄마와 나. 그리고 너. 우리 가족이잖아. 안 그래?”

경호의 말에 성원이 눈치를 살피다 거들었다.

“형님! 저와 정수를 빼시면 어떡합니까!”

다현이 경호와 성원의 모습에 피식하고 웃었다.

그 덕에 분위기가 다시 풀어졌다.

“그래. 그럼, A급 던전 공략 성공하면 그 청승은 그만 떨 거야?”

다현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성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그게 무슨.”

“이번에 같이 가자고. 그러니까 청승 그만 떨라고. 알았냐? 그리고 어디 가서든 오늘 있던 일을 절대 말하지 말고.”

성원이 ‘잠시 멈춤’ 상태로 멍하게 다현을 쳐다보다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대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반드시 명심하겠습니다.”

놀란 성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까지 하며 감사를 표했다.

띠링!

퀘스트 메시지가 경호의 눈앞에 떠올랐다.

[소원성취 연계 퀘스트 (공유) : 무조건 잡아야 해! - 성공]

-다현이 던전 공략 계약을 맺었습니다.

[퀘스트 성공으로 카르마 500만이 지급됩니다.]

“웬일이야? 아까만 해도 절대 안 할 거처럼 굴었으면서.”

“그냥. 좀 취했나 보지.”

경호가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그때 갑자기 문이 열렸다.

“어!”

들어오는 이들을 본 경호가 놀라서 짧은 탄성을 질렀다.

식당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은 제법 커다란 나무상자를 멘 늙수그레한 드워프, 솔딘과 그의 두 배는 될 법한 거구의 검푸른 워울프, 테일러였다.

“역시 여기가 맞네요! 용사님!”

“역시 카니스님도 여기 계셨네요. 크릉.”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의 등장에 경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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