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화
경호가 영문도 모른 채 정령계로 끌려온 지 5년째 되던 해.
경호가 미르의 사도이자 불을 다스리는 거대한 사자, 리온과 함께 신성의 숲 외곽을 순찰할 때였다.
사실 순찰이라곤 하지만 매일같이 하는 형식적인 것이었기에 경호는 리온의 등에서 달콤한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였다.
끼에에에! 끼에에에엑!
저 멀리서 날카로운 마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닭 모가지를 비틀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한 것을 보니 칼날타조가 분명했다.
잠에서 깬 경호가 손가락으로 3시 방향을 가리켰다.
“리온. 저쪽이야!”
크어헝! 크헝!
사자후(獅子吼)를 터뜨린 리온이 경호가 가리킨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곳엔.
“칼날타조랑 싸우고 있는 난쟁이들은 뭐야? 설마…. 드워프?”
경호의 예상대로 그곳엔 수십 마리의 칼날타조가 날카로운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드워프’라는 존재가 그곳에서 칼날타조와 맞서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드워프가 진짜로 있었어?”
경호에게 드워프란 판타지 소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그런 존재였다.
-손재주가 아주 뛰어나고 신뢰할 만한 녀석들이지. 유쾌하기도 하고 말이야.
“정말 그렇구나.”
사실 수호신인 미르, 수많은 신수와 정령. 그리고 정령계에 마계가 침공도 하는 마당에 드워프가 존재한다고 해서 크게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이들이 소환도 아니고 딱히 침공도 아닌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왜? 어떻게? 이곳에 있는지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물론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저들을 살려야 했다.
아공간에서 용아검을 꺼낸 경호가 언덕 아래를 보며 손잡이를 꽉 움켜잡았다.
“가자! 리온!”
드워프와 칼날타조가 뒤엉켜 있는 곳을 향해 리온이 뛰어내렸다.
그리고 경호는 그런 리온의 등을 박차고 용아검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소리쳤다.
“모두! 엎드려어어엇!”
경호가 빠르게 떨어져 내리며 새하얀 빛을 내뿜는 용아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탄검기.
새하얀 초승달 모양의 검기가 용아검에서 뿜어져 나와 칼날타조의 목을 모조리 베어넘겼다.
끼에에에에엑!
수십 개의 칼날타조의 머리가 튀어 올랐고 피가 낭자하게 터져 나왔다.
3m가 넘는 칼날타조와 1m 남짓의 드워프.
신장의 차이 때문에 따로 엎드리지 않아도 드워프는 검기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탓!
경호가 가볍게 바닥에 내려왔고.
쿠웅!
뒤이어 집채만 한 크기의 리온도 경호 옆에 내려섰다.
“불을 다스리는 신수(神獸)이시여!”
드워프들 모두가 새파란 불꽃을 갈기처럼 두르고 있는 리온을 보며 바닥에 엎드려 예를 표했다.
드워프.
땅의 종족이자 불과 쇠를 다루는 신비한 대장장이들이었다.
그때 고만고만하지만 그래도 희끗희끗한 머리와 수염을 가진 드워프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불의 신수님. 그리고 어….”
주저하는 드워프를 보고 경호가 자신을 소개했다.
“정령계를 구할 용사다. 이름은 최경호. 앞으로 기억해두도록!”
경호는 첫 대면에 신처럼 받드는 리온에게 꿀리지 않기 위해 애써 힘을 주어 자신을 설명했다.
“네. 최 용사님. 저희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뭘. 그런데 이곳 정령계는 어떻게 온 것이지?”
“저는 검은 망치 부족의 족장인 솔딘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는 자신이 차원의 문을 열어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를 경호와 리온에게 설명했다.
드워프의 특성인지 그의 특성인지 하여간 말의 맥락 없이 지루하고 쓸데없이 긴 설명이 이어졌다.
간단하게 ‘마계가 자신들의 세계로 쳐들어와 결국 멸망 직전까지 갔고 서둘러 차원의 문을 열어 도망치다 보니 우연히 이곳에 도착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거짓은 아니군. 경호. 어떻게 할까?
5년을 함께 지내다 보니 이제는 미르의 사도인 리온까지 경호에게 물어보고 행동할 정도로 그의 의견을 존중했다.
“뭘. 어째? 우선 미르에게 데리고 가야지.”
그렇게 검은 망치 부족은 정령계에 정착하게 되었다.
다행히 이들은 정령계에 생각보다 잘 적응하며 생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솔딘이 경호를, 정확히는 경호의 용아검을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최경호 용사님. 저 실례가 안 된다면 그 검을 한 번만 살펴볼 수 있겠습니까?”
경호는 평소 판타지 소설 같은 걸 크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드워프의 손재주가 좋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검이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사실 그 검이 너무 엉망입니다. 그냥 엉망이면 새로 만들어 드리겠지만 재료는 좋은데 완성도가 떨어져서 말입니다.”
미르의 이빨을 갈아서 만든 칼날에 세계수의 뿌리를 깎아 만든 손잡이.
경호가 느끼기에는 나무랄 곳이 없었다.
특히나 마계의 침공에 맞서 싸우며 한 몸같이 써 왔던 검이기에 더욱 그랬다.
“우선 용사님의 신체에 그 검은 길이가 조금 긴 편입니다. 무게야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길이는 다릅니다.”
무게중심이나 날의 상태를 이야기할 줄 알았던 경호는 생각하지 않던 부분을 지적하는 솔딘의 말에 놀랐다.
“그리고 용사님의 손에 지금 손잡이는 조금 두꺼운 편입니다. 검의 두께도 조금 얇은 것이 더 좋을 것 같고요. 그래도 강도에서 큰 차이는 없을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렇게 솔딘은 용아검을 가져가 보름이 지나서야 검을 가지고 왔다.
분명 검의 길이나 손잡이, 검의 두께만 이야기한 거 같았는데 솔딘은 멋들어지게 혈조까지 새겨놓았다.
“최 용사님. 부족한 실력이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경호는 솔직히 칼이 뭐 칼이지 하는 마음으로 용아검을 받아들었다. 하지만.
“어? 이거 뭐야?”
당황하는 경호를 보며 지켜보던 솔딘이 긴장했다.
“용사님.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 완벽해요. 너무 완벽해서 당황했습니다.”
검을 들자마자 경호는 느낄 수 있었다.
그전의 용아검이 분명 훌륭한 무기였지만 신외지물(身外之物)이라면.
지금 받아든 용아검은 가볍고 무겁고의 문제가 아닌 팔이 연장된 그런 느낌을 주었다.
“고맙습니다. 솔딘.”
“아닙니다. 최 용사님. 저희를 구해주시고 이곳에 정착하게 해주신 것을 어떻게 갚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만족하신다고 하니 정말 다행일 뿐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정착한 검은 망치 부족에게 점점 문제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단지 신수나 정령이 아닌 존재가 살아가기에 정령계는 적합한 곳이 아닌 게 문제였다.
처음부터 정령계는 그렇게 만들어진 곳이었기에 먹을 것도 부족했고 그들에게 필수적인 광물도 거의 없었다.
한 명의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이 가능했지만 드워프 부족이 정착해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척박한 곳이었다.
결국 다시 차원의 문을 여는 것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쉽게 말했지만 사실 ‘차원의 문’을 여는 방법은 쉽지 않았다.
그들이 이곳으로 올 때도 그쪽 세상에 성유물과 드래곤하트가 있었기에 차원의 문을 열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 파괴되고 지금은 어느 것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차원의 문을 여는 것을 연구한 것이.
12명의 드워프 주술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술식을 짰고 미르도 틈틈이 그들을 도왔다.
수많은 실패를 겪은 후 마침내 차원의 문을 여는 마법진을 완성했다.
마법진을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드래곤하트에 맞먹는 엄청난 양의 마력이 필요했지만 차고 넘치는 것이 마석이기에 그것은 쉽게 해결되었다.
“최 용사님. 정말 이것을 다 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솔딘이 받아든 주머니를 열어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커다란 가죽 주머니 안에는 재난종 마수의 마석 300개가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요하면 또 구하면 됩니다. 어차피 먹지도 못하는 건데요. 하여간 다음 목적지는 살만한 곳으로 꼭 가시길 바랍니다.”
마법진을 통해 차원의 문을 열어 다른 세상에 간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엄청나게 복잡한 마법술식을 정교하게 계산해낸다고 해도 아주 작은 변수에 의해서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최 용사님.”
솔딘이 바닥에 놓여있던 나무상자를 들어 경호에게 건넸다.
“받아 주십시오. 저희가 드리는 작은 선물입니다.”
이미 실력을 알고 있기에 기대를 품고 상자를 열었다.
“어? 활이네요.”
묵빛 강철로 만들어진 묵직한 단궁이 상자 안에 놓여있었다.
“네. ‘블랙호크’라고 부르는 활이지요. 이것은 저희 부족 역사상 최고의 장인이라 불리는 7대 족장, 몰던이 만든 활입니다. 마력을 불어넣으면 마력화살이 생기는 마법의 활이기도 하고요.”
“그런 걸 저에게 주신다고요?”
“저희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갈 힘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전에 저희를 살려주시고 이곳에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기도 하셨지요.”
“다 미르 덕분이죠. 제가 뭘 했나요.”
계속된 칭찬에 경호는 괜히 부끄러워 말을 돌렸다.
“꼭 받아 주세요. 저희 모두의 바람입니다.”
경호가 시선을 돌려 마법진 주변에 서 있는 검은 망치 부족원들을 쳐다봤다.
모두가 활짝 웃으며 경호에게 작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들의 눈빛에서 진심을 느낀 경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경호 님. 미르 님. 그리고 모든 신수님과 정령님들. 그럼.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솔딘의 말이 끝나자 그를 비롯한 부족원 모두가 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다.
몇몇은 엎드린 채 흐느끼기도 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인사를 하는 솔딘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경호가 그런 솔딘을 보며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었다.
잠시 후, 마법진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들을 집어삼켰다.
휘우우우우우우웅!
그렇게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났다.
그들이 떠나고 미르가 경호를 쳐다보며 물었다.
-정말 저렇게 보내는 거 후회하지 않는 거야? 저들의 도움을 받으면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더 빨리 찾을 수도 있을 건데.
미르의 말에 경호가 피식 웃었다.
“됐어. 어렵게 용사를 소환했는데 끝까지 싸워줘야지.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
-경호. 고맙다.
“고맙긴. 대신 끝나고 집에 갈 때 빈손으로 보내기 없기다.”
미르가 그런 경호를 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
“솔딘. 그때 그렇게 가셔서 지구에 오신 건가요?”
경호는 솔딘의 집에 초대되어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흰둥이는 퀘스트 관련되어 테일러와 할 말이 있다며 함께 어디론가 가버린 후였다.
“처음 간 곳은 정착하기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다시 차원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계산이 잘 못 되었는지 이동 중에 주술사들의 마나코어가 망가지며 끝까지 차원 이동을 조율하지 못해 예상치 못한 지구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랬군요. 망가진 마나코어는 제가 최대한 나을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용사님.”
“아닙니다. 아니에요. 정령계에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요.”
“저희야말로 용사님이 은인이시죠. 어떻게든 은혜를 갚겠습니다.”
“에이. 뭘요. 예전처럼 제 물건이나 가끔 손질해주시고 해주세요. 저는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경호의 말에 솔딘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용사님. 그것이 지구는 마나 농도가 너무 낮아 마력 화로도 작동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 힘도 많이 약해진 상태이고요. 그래서 용아검 같은 물건은 손질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경호는 그제야 공방에서 팔던 물건의 질이 낮은 이유와 워울프의 힘이 생각보다 너무 약했던 것이 이해됐다.
“지구의 마나가 적은 것은 시스템 때문이죠. 하지만 그걸 알아도 도와줄 방법이 없….”
경호가 아공간을 열어서 황금꿀이 가득 담겨있는 나무통을 꺼냈다.
“아니 있을 수도 있을 거 같네요.”
꺼내자마자 진한 향기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어? 용사님. 이건 황금꿀 아닙니까?”
정령계에서도 귀한 물건인 황금꿀이었기에 그것을 본 솔딘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번 먹어봐요.”
황금꿀은 단순하게 면역력을 길러주는 그런 식재료가 아니었다.
무협지에 나오는 영약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황금꿀은 마나를 품고 있기에 마나코어를 자극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솔딘이 찻숟갈로 황금꿀을 조금 찍어 입에 넣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황홀한 단맛에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그때였다.
경호가 손을 뻗어 솔딘의 배에 갖다 댔다.
“마나코어에 집중하세요.”
경호는 마력을 불어넣어 작게 쪼그라들어있는 솔딘의 마나코어를 자극했다.
휘우우우우웅!
경호의 자극에 마나코어가 움직이며 황금꿀의 마나를 흡수하여 아주 조금이지만 그 크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황금꿀의 마나가 바탕이 되어 느리긴 하지만 조금씩 회복하게 될 거에요.”
“감사합니다. 경호 님! 정말 감사합니다.”
솔딘은 마나코어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기운에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했다.
“지구에는 이런 말이 있지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러니 당연히 공짜가 아닙니다.”
경호의 말에 솔딘이 기분 좋게 웃었다.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용사님.”
경호가 품에서 둘둘 말린 종이를 꺼내 솔딘에게 내밀었다.
“이걸 만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
설계도를 살핀 솔딘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용사님. 이런 형태는 저도 만들어 본 적이 없어서. 특히나 지금 마나 화로가 없는 상태에서는 만들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경호가 아공간에서 강철뿔양의 뿔을 꺼냈다.
“작품 수준의 물건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이 뿔을 이용해서 적당히 쓸 만한 녀석을 만들어 주시면 되는데. 안 될까요?”
경호의 말에 뿔을 살핀 솔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뿔을 이용한다면 마나 화로의 강력한 화력 없이도 잘하면 쓸 만한 녀석을 만들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럼. 최선을 다해서 만들….”
“아니요. 그냥 아는 헌터에게 선물로 줄 거라서요. 최선을 다하지 마시고. 쓸만한 수준으로 만들어 주세요.”
“아…. 그러면 어느 정도로 만들면 되겠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경호가 예전에 헌터마켓에서 둘러봤던 아티팩트를 떠올리며 말했다.
“A급 아티팩트 수준이면 됩니다.”
“그 정도면 하루 정도면 만들 수 있습니다.”
헌터들이 들었다면 놀라서 기절할 수준의 대화였지만 사실 마나 화로만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그 이상도 해낼 수 있는 장인이 바로 솔딘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우웅!
그때 경호의 손목에서 진동이 울렸다.
-관우.
“하여간 이놈도 양반은 아니라니까. 솔딘, 잠시만요.”
경호가 전화를 받자 잔뜩 업 된 성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 3일 뒤에 던전 받아서 일주일 뒤에 공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크으으으으!
“그리 좋냐?”
-그럼요! 객원 헌터인 ‘레드 위치’님도 있겠다! 이제 우리 신화 길드가 날아오를 일만 남았습니다! 이제 저도 아버지께 인…. 하여튼 내일 점심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내일 보자.”
경호는 전화를 끊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왜?
역시나 다현은 아주 시원시원하게 전화를 받았다.
“아니 다른 게 아니라 성원이 일주일 뒤에 던전 공략한다기에. 내일 가게 와서 나랑 이야기 좀 하자고 하던데. 그때 너도 오라고.”
-내가 왜?
경호는 속으로 ‘이럴 줄 알았다. 이럴 줄 알았어.’를 외치며 한숨을 길게 뱉었다.
“너 기억 안 나? 막판에 술 취해서 성원이 도와준다고 했었잖아! 하여간 술 좀 작작 처먹으라니까!”
-뭐? 니가 불렀잖아! 그리고 나 단체로 안 움직이는 거 몰라?!
“인마! 내가 지구 온 지 며칠 됐다고 그걸 어떻게 알아!”
-아! 몰라! 몰라!
경호는 좋은 의도였다고는 하나 어쨌든 자신 때문에 5000억짜리 던전을 날려버리고 겨우 대안으로 찾은 A급 던전은 잘 공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내일 점심때 와라. 아니면 내가 너의 진실에 대해서 다 폭로할 거야!”
-누가 니 말 믿어나 줄 거 같아? 사람들이 레인보우 식스의 ‘레드 위치’랑 엄마 식당에서 일하는 잉여 노총각 중 누구 말을 믿겠냐? 어?
“요즘은 세상이 참 좋아. 내가 따로 조작도 안 했는데 통화 내용이 전부 녹음이 되더라고. 아마도 사람들은 이 통화 내용을 믿지 않을까?”
-야! 야! 인마!
“그럼, 내일 보자.”
-야! 당장 그거 지워! 당…. 뚝!
경호가 전화를 끊자 곁에서 귀를 쫑긋하고 있던 솔딘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정령계에서도 항상 밝은 모습이셨지만 이렇게 고향에 오시니 더욱 밝아지셨습니다. 보기 너무 좋습니다. 용사님.”
“고마워요. 솔딘. 그럼. 활이 다 만들어지면 여기로 연락 주세요. 제가 찾으러 올게요.”
경호가 솔딘에게 ‘행운식당’의 명함을 건넸다.
“행운식당?”
명함을 받아 앞뒤로 돌려보던 솔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음에 밥 한번 먹으러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