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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16화 (16/335)

#016화

을왕리해수욕장에 도착한 경호는 묘한 감성에 젖어 주변을 둘러봤다.

“이건 생각보다 더 심하네.”

경호는 예전에 자신이 놀러 왔던 을왕리해수욕장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북적이는 사람들과 새우과자를 쫓아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갈매기 떼, 파도가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와 금빛 백사장까지.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마기에 오염된 검푸른 바다는 악취가 흘러나왔고 갈매기 떼는 당연히 보이지 않았다.

해수욕장 주변 건물들도 하나같이 폐허로 변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거 묘하게 끓어오르게 만드네.”

경호는 가슴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분노를 느꼈다.

-우에에에엑!

경호의 발 옆에는 진짜로 울컥 올라온 존재도 있었다.

끼잉! 끼이잉!

경호에게 목덜미를 잡힌 채 음속에 가까운 엄청난 속도로 이곳에 끌려온 흰둥이는 한참을 꺽꺽거리다 글썽거리는 눈빛으로 원망하듯 쳐다봤다.

-흐극, 꼭 이렇게 왔어야 합니까?

경호는 그런 흰둥이의 원망 섞인 눈빛을 보며 피식 웃으며 위로했다.

“갈 땐 적응돼서 좀 나을 거야.”

-아아아아아아아악!

짧은 앞발로 머리를 쥐어뜯는 흰둥이의 절규를 뒤로하고 경호는 아공간을 열어 무언가를 꺼냈다.

-어? 경호 님. 그거 ‘구속의 밧줄’ 아닙니까?

경호가 아공간에서 꺼낸 건 예전에 흰둥이가 계승의식을 하기 위해 썼었던 자신에게 썼었던 ‘구속의 밧줄’이었다.

“낚시하려면 낚싯대가 있어야 하잖아.”

-그, 그렇죠.

흰둥이는 경호의 미소 섞인 얼굴에서 묘한 불안감을 느끼며 주춤거렸다.

눈치는 제로인 흰둥이었지만 동물적 생존 본능이 뭔가 위험하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었다.

경호는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꼬리를 말고 뒷걸음질 치고 있는 흰둥이를 향해 걸어갔다.

-저, 저어 하쉴 말쑴이 있….

“에이, 낚시할 때 낚싯대만 있으면 안 되잖아. 그럼, 잘 부탁할게.”

경호는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흰둥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뭘, 뭘 부탁 한….

LV10의 염력이 발휘되자 구속의 밧줄이 마치 살아있는 구렁이처럼 움직였다.

꿈틀거리며 순식간에 날아간 구속의 밧줄이 흰둥이를 꽁꽁 감아 단단하게 묶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호는 손으로 직접 두 번 더 묶었다.

“좋아, 완벽하군. 아! 걱정하지 마. 내가 결계 쳐줄 테니까.”

그리고 흰둥이 주변에 작은 결계를 쳤다.

“너도 알지? 마력만 공급하면 이거 끊어지지 않는 거. 결계 때문에 몇 번은 물려도 괜찮으니까 잘 버티고 있어.”

-그,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 으아아아아아아아!

경호가 흰둥이가 묶인 밧줄을 머리 위로 몇 바퀴 휘휘 돌리다가 바다를 향해 멀리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저 멀리 날아간 흰둥이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자아, 맛난 놈으로 하나만 걸려라!”

***

“엄마!”

서울 신화병원 로비에 앉아 있던 지숙은 뒤편에서 들리는 친근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

지숙이 돌아보니 검은 캡모자를 깊게 눌러쓴 다현이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작은 얼굴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매끈한 피부가 어우러진 누가 봐도 시선이 머무는 그런 미인이었다.

다시 마스크를 올려 쓴 다현이 지숙의 팔짱을 꼈다.

“엄마! 저번보다 훨씬 얼굴이 좋네요. 무슨 좋은 일 있나 봐요?”

사실 다현은 지숙이 폐암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부모가 없는 자신을 친자식처럼, 아니 친자식인 경호보다 자신을 더 아껴주는 그 마음에 언제나 감사하고 또 감사했었다.

그런데 시한부 삶이라니.

다현은 자신의 모든 힘을 총동원해 어떡해서든 지숙을 살리기 위해 애를 썼지만, 생로병사는 인간이 손댈 수 없는 영역의 문제였다.

그런데 폐암 진단을 받고 처음으로 전보다 좋아 보이는 얼굴을 한 지숙을 보니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아, 그게 말이지.”

경호가 돌아온 사실을 다현에게 말하려는 순간.

-띵동. 서지숙 님. 2번 진료실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스피커를 통해 지숙의 호출 방송이 나왔다.

“엄마, 들어가 봐요. 분명 좋아졌다고 하실 거예요.”

생글거리며 좋아하는 다현을 보며 애써 지숙도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들어가 보자.”

지숙은 다현이 보지 못하게 작게 한숨을 지었다.

언제나 긴장되고 숨 막히는 공간이었다.

문을 열자 3평은 될까 한 작은 진료실이 나타났다.

긴장한 지숙의 눈에 지금까지 본 적 없던 의사의 표정이 보였다.

눈이 커지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 분명 평소와 다른 표정이었다.

언제나 감정이 딱히 담기지 않은 무표정한 얼굴로 ‘안타깝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암이 전이되고 있습니다.’ 따위의 말을 하던 의사였다.

눈치 빠른 다현이 의사의 그런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고 읽어냈다.

“선생님. 우리 엄마, 많이 좋아지셨죠? 네?”

다현의 물음에도 모니터만 뚫어지게 보던 의사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경우는 처음 보네요. 오늘 오전에 찍은 PET CT 이미지를 보니 폐암의 크기가 줄어든 양상을 보입니다. 피검사 결과도 전보다 훨씬 좋아지셨고요.”

레벨 2로 올라간 흰둥이가 경호의 닦달에 잠도 줄여가며 애를 쓴 결과였다.

“그, 그럼. 선생님. 저 6개월보다 더 살 수 있나요?”

“병이라는 것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전이 된 부위도 확인이 필요하지만, 어쨌든 확실하게 좋아지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특별히 한 게 없는데요. 뭐. 서지숙 님이 열심히 생활하셔서 그런 겁니다.”

10년 만에 돌아온 아들을 보며 눈을 떠서 감는 그 순간까지, 하루에 천 번도 더 ‘괜찮다. 아들 보고 죽으니 나는 괜찮다.’를 속으로 외치는 지숙이었다.

그러나 그건 그저 이성이 억지로 쥐어짜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었다.

아빠 없이 불쌍하게 자란 아들을 두고 죽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긍정적인 말을 들었다.

지숙이 벌떡 일어나 떨리는 손으로 의사의 손을 잡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힘겹게 숨겨왔던 그녀의 진심을 조심스럽게 끄집어냈다.

“저 살고 싶어요. 살고 싶습니다. 선생님. 제발 살려 주세요.”

“엄마. 괜찮아. 왜 울어. 울지 마.”

그런 지숙을 빨개진 눈을 한 다현이 힘없이 말렸다.

잠시 후 진정한 지숙이 다시 의자에 앉았다.

의사는 그런 지숙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서지숙 님. 그래도 많이 좋아지셨으니 우리 기적을 바라봅시다.”

전보다 좋아진 검사결과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으며 긍정적인 말을 건네긴 했지만, 여전히 폐종양의 크기는 컸고 전이도 여러 곳에 진행된 상태라 수술을 할 수 없기는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리고 아까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럼, 두 달 뒤에 뵙겠습니다.”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간 의사를 향해 인사를 한 지숙과 그녀를 부축한 다현이 진료실을 나섰다.

***

경호는 쥐고 있는 구속의 밧줄로부터 묵직한 무게감을 느꼈다.

“오오오! 입질이다! 역시 먹이가 먹음직하니까 바로 입질이 오는구나!”

경호는 흰둥이가 들으면 눈을 뒤집으며 거품 물고 쓰러질 듯한 대사를 내뱉으며 팔에 힘을 줬다.

꽈아아악!

낚시의 기본은 챔질과 릴링이다.

“오, 힘 좀 쓰는데? 그럼, 나도 제대로 상대해 주지.”

경호의 이두근과 삼두근에 힘이 바짝 들어가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힘이 아무리 좋더라도 기반이 약하면 힘은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경호는 발을 굴러 해변에 양발을 깊숙하게 박아넣었다.

우우우우웅!

그리고 전신에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제 낚싯줄인 ‘구속의 밧줄’이 끊어질 일은 없었다.

고기가 제대로 물어버린 상태에서 낚싯줄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조심스럽게 릴링을 할 필요가 없었다.

경호가 허리를 틀더니 온몸을 비틀며 밧줄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팽팽하던 밧줄이 조금 버티는 듯하더니 확 당겨져 올라오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아!

커다란 물보라와 함께 밧줄이 올라오며 그 끝에 거대한 문어, 아니 거대하다고 단순하게 표현하기 힘든 건물처럼 커다란 해양 마수, 크라켄이 딸려 올라오고 있었다.

-살려줘요! 으아아아아아아아!

물론 자세히 보면 흰둥이가 크라켄의 입 앞에 위치하여 같이 매달린 상태였다.

“월척이구나!”

바다 위로 올라온 크라켄이 커다란 눈동자를 굴려 밧줄을 쥐고 당기는 경호를 보았다.

-뿌아아아아아아아!

자신을 바다에서 끌어올린 녀석을 보고 가만히 있을 크라켄이 아니었다.

커다란 포효와 함께 흰둥이를 풀어버린 크라켄이 커다란 해일과 함께 경호를 향해 꿀렁거리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세상 사는 게 재미없는 녀석인가 보구나.”

경호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크라켄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1급 경보를 울려야 하는 4급 재난종인 크라켄이지만 경호에게는 맛있어 보이는 해산물에 불과했다.

거대한 덩치를 가진 크라켄이지만 물에서의 움직임은 굉장히 빠르기에 벌써 경호의 앞까지 다가왔다.

“어차피 다리 빼곤 맛이 없으니까.”

문어와 다르게 크라켄 대가리는 독주머니와 단단한 뼈가 많아서 먹기에 좋지가 않았다.

새하얀 빛이 감도는 주먹을 다가오는 크라켄을 향해 뻗었다.

주먹에서 은빛 구슬 같은 마력 덩어리가 날아가 빠르게 다가오는 크라켄의 대가리를 꿰뚫었다.

콰아아아아아앙!

그리고 엄청난 소리와 함께 폭발하며 대가리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렸다.

후두두두둑.

크라켄 대가리에서 나온 핏덩이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물론 경호는 마력결계를 우산처럼 둘러 그런 것들로부터 더러워지지 않았다.

“힘을 기가 막히게 조절했네.”

크라켄의 머리는 사라졌지만, 다행히 다리는 멀쩡하게 남아 해변에 널려 있었다.

그때 홀딱 젖은 흰둥이가 크라켄이 일으킨 해일에 휘말려 해변으로 밀려왔다.

끼잉! 끼잉!

-쿨럭. 저 정말 죽을 뻔했습니다. 경! 호! 님!

“에이, 엄살은. 나름 스릴 있고 재미있지 않았어?”

경호는 강아지도 썩은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스릴요? 재미요? 혹시 크라켄 이빨이 몇 갠지 아십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경호가 ‘그게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대답하자 흰둥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경호가 처음 보는 흰둥이의 화난 표정이었다.

-그죠! 크라켄 이빨이 몇 갠지 몰라야 정상 아닙니까? 그런데 크라켄 이빨이 176개라는 사실을 이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세어봤거든요. 결계가 그 이빨에 씹혀서 금이 가는 와중에 말이죠! 아주 스릴 넘치는 경험이었습니다!

경호가 발악하듯 소리치는 흰둥이의 눈빛을 보니 약간 맛이 간 것 같기도 했다.

“크라켄 요리 먹으면 그것도 다 추억이 될 거야. 이거 진짜 맛있거든.”

-후우, 그럼. 이제 가게로 돌아갑시다. 여기 1초도 더 있기 싫습니다. 어서 이것도 풀어주십시오!

경호가 그런 흰둥이를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왜? 왜요. 왜 그, 그런 표정으로 보는 겁니까? 뭡니까!

눈치라고는 전혀 없는 흰둥이도 그런 경호의 표정을 보고 불길함에 사로잡혀 말을 더듬을 정도였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어묵을 만들려면 생선살이 필요하거든. 크라켄 다리살을 다져 넣으면 맛이 더 풍부해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저것만 넣으면 어묵이 덜 맛있거든.”

-그, 그게 무슨.

“그럼, 한 번 더 부탁할게.”

-안, 안 돼! 으아아아아아아아아!

경호가 구속의 밧줄을 잡고는 크게 돌려 처음보다 더 먼바다를 향해 던졌다.

역시나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흰둥이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검푸른 바닷속으로 삼켜졌다.

“아! 맞다.”

그리고 그제야 경호는 자신이 무언가를 까먹었다는 걸 떠올렸다.

“내 정신 좀 봐. 결계 친다는 걸 깜빡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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