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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15화 (15/335)

#015화

중2.

세상에 반항하며 잘 알지도 못하는 술과 담배, 오토바이에 빠져 인생을 낭비하는 그런 질풍노도의 시기다.

그때의 나는 그런 것에 흠뻑 빠져있는 일진들의 빵셔틀 1호였다.

“야! 경호! 경호!”

“어? 왜, 왜 그래? 서, 석희야.”

“말 좀 그만 더듬고. 야! 내가 우유는 무지방이라고 했냐? 안 했냐?”

“그, 그게 편의점에 없어서. 미, 미안해.”

“씨발. 그럼, 점심에 나가서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사와. 알았지? 그럼. 내가 특별히 용서해줄 테니까. 알았냐?”

“으응. 고, 고마워.”

속으로 한숨이 나왔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부당함 속에서도 그저 고마워하는 게 최선이었다.

난 소심했고 둔했으며 아빠도 없는 그런 놈이었으니까.

“존나 짜증이 나는데 특별히 아비 없는 새끼라서 봐주는 거야. 이 병신새끼야!”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학교생활이었지만 그것도 어느새 익숙해졌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예쁘장한 여자아이 하나가 우리 반에 전학을 왔다.

“안녕, 난 다현이야. 김다현. 만나서 반가워. 우리 친하게 지내자!”

김다현.

키도 크고 늘씬하며 얼굴도 하얗고 아주 예쁘게 생긴 아이였다.

거기에 말투도, 행동도 여성스러운 게 금세 얼짱이니 뭐니 소문이 퍼지며 유명해졌다.

‘아, 이쁘다.’

나도 그런 다현을 남몰래 좋아했다.

그날도 나는 평소처럼 급식소 뒤편에서 우리 반 짱인 석희와 그의 단짝인 준형 사이에 끼여서 듣지 않아도 될 욕설과 함께 괜한 폭력을 당하고 있었다.

그때 다현이 그 옆을 지나가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한심스러워하는 감정이 그 눈빛에서 절절히 느껴졌다.

“야! 김다현! 이리 와봐!”

우리 반 짱인 최석희가 다현을 불러 세웠다.

“싫어. 나 집에 가야 해.”

하지만 다현은 고개를 홱 돌리고는 가던 길을 갔다.

그때 담배를 물고 있던 준형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집은 씨발. 보육원이겠지. 이 고아년아.”

그 말에 다현이 멈춰 섰다.

“야! 같이 술이나 한잔하자! 어차피 늦게 들어가도 지랄할 꼰대도 없잖아?”

다현이 몸을 돌려 걸어오기 시작했다.

“다, 다현아. 오, 오지 마.”

최대한의 용기를 내서 쥐어짜듯 뱉어낸 말이었다.

퍼억! 퍼억!

“이 병신새끼가! 씨발! 니가 뭔데 가라마라야!”

어렵게 뱉은 말이었지만 다현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곤 갑자기 석희를 향해 생뚱맞은 질문을 했다.

“여기서 이렇게 패고 그러면 문제 안 생기냐? 요즘엔 CCTV 다 깔려 있잖아.”

“오! 우리 걱정해주는 거야? 여기가 그래서 명당이지. 딱 사각지대거든.”

“그래?”

그 순간 다현이 움직였다

휙! 퍼억!

“끄아아아아!”

순식간에 내 옆에 있던 석희가 바닥에 처박혔다.

그리고 담배를 물고 있던 준형이 반응하기도 전에 다시 다현의 손이 움직였다.

휙! 퍼억!

마치 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휙 하고 넘어가 바닥에 처박혔다.

“아아아아악!”

빗당겨치기.

체육관 바닥에 내리꽂혀도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유도기술이었다.

“남자 새끼들이 하체가 그리 약해서 어따 써 먹냐. 어?”

다현의 목소리에는 평소 내가 알던 여리여리한 모습은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으아아아아아! 이 미친년아! 너 죽었어!”

“미.친.년.이라고? 분위기 파악 졸라 안 되나 보네!”

퍼억!

다현은 석희의 얼굴을 찰지게 후려 찼다.

“이 개새끼야! 미친년한테 죽어봐라!”

퍽! 퍽! 퍼억!

한 대로 끝나지 않았다.

석희의 얼굴이 엉망이 되고 나서야 다현의 싸커킥이 멈췄다.

“그, 그만해. 제발.”

“앞으로 내 귀에 보육원 이야기 들리면 니들 아주 뒤진다.”

준현이 그 와중에 눈치 없게 입을 열었다.

“이미 알만한 애들은 다 아는데. 우리가 어떻게 막….”

퍼억!

다현의 발이 이번에는 준현의 얼굴을 향했다.

“못 막아?”

퍼억!

“그럼, 뒤져!”

퍼억!

“막을래? 뒤질래?”

다현의 발길질이 끝나자 석희와 준현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막을게!”

다현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도 참 답답하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답답한 건 사실이었다.

“가자.”

“어? 어어!”

난 쓰러져 있는 석희와 준현을 힐끗 보고 가방을 챙겨 다현을 따라나섰다.

교문을 나서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다, 다현아. 너 어떻게 그렇게 한 거야.”

그녀의 화끈한 모습은 마치 마법을 부리는 마녀처럼 보였다.

“유도.”

“유, 유도? 아, 그래서….”

그때 무슨 용기가 생긴 건지 지금도 모르겠다.

다만 나와 정반대의 모습을 가진 다현과 친해지고 싶다는 감정이 강했다.

“다현아, 혹시 우리 집에서 떡볶이 먹고 갈래?”

“떡볶이?”

“응.”

“떡볶이는 무슨.”

사실 그녀는 떡볶이를 엄청나게 좋아했다.

“나 떡볶이 엄청 잘하거든.”

“정말?”

다현이 아무리 성질이 불같고 사나워도 결국 중학교 2학년에 불과한 어린 소녀였다.

“맛없으면 너도 후려 버린다.”

“맛있게 만들어 줄게. 그럼, 같이 갈래?”

그때부터 떡볶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고 다현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

“뭔데! 뭔데 갑자기 식당 닫고 흰둥이랑 놀러 가라고 그러는 거야?”

“그냥 그런 일이 있다니까. 좀 놀러 갔다 와. 엄마는 약속 있어서 점심때쯤 올 테니까.”

“뭔데. 뭔데. 뭔데. 응?”

오늘은 지숙이 두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암 검진을 받는 날이었다.

예약 시간은 오전 9시, 진료 첫 타임이었다.

이제 지숙은 나가야 하는데 경호가 눈치도 없이 계속 달라붙는 중이었다.

“사실은 오늘 다현이랑 데이트하는 날이야. 나가서 아침 먹고 놀다가 점심쯤 올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10년 전 경호가 실종되고 지숙은 다현이와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부모가 없는 다현에게 지숙은 엄마 같은 존재였고 경호를 잃은 지숙에게 다현은 딸 같은 존재가 되어 서로에게 의지하며 지금까지 지냈다.

그렇기에 지숙이 암에 걸리고 나서도 항상 함께 병원에 갔었다.

“다현? 김다현 이야기하는 거야? 엄마, 걔 아직도 만나?”

정령계에서 가끔 생각날 적도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그녀의 등장에 경호는 반가움과 놀라움이 뒤섞인 묘한 감정을 느꼈다.

“어, 오늘 엄마랑 데이트하기로 한 날이거든. 너 오기 전부터 잡은 약속이라.”

“뭐야. 나한테 미리 말도 안 하고. 그럼, 나도 같이 가면 되겠네? 원래 우리 친군데, 뭐.”

“아니! 안 돼! 우리 둘만 데이트하기로 했거든!”

지숙의 목소리가 떨리면서 조금 날카로워졌다.

주방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온 흰둥이가 그런 지숙을 쳐다보다 경호에게 말했다.

-감정의 색이 붉게 변한 게. 크게 당황했네요. 경호 님, 어머님이 거짓말하고 있습니다.

감정을 보는 능력이 없는 경호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다현을 만난다는 게 거짓은 아닐 것이다.

상황을 대충 짐작한 경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흰둥이랑 놀고 있을게. 뭘, 역정을 내고 그러세요. 우리 서지숙 여사님, 연세도 있으신데 그러다 쓰러지십니다. 고정하세요.”

“아니, 무슨 내가 역정을 냈다고 그러니. 그냥 네가 눈치 없이 다현이랑 데이트 방해하려고 하니깐 그랬지.”

“대신 점심때쯤 다현이도 데리고 와요. 내가 맛있는 거 만들어 줄게. 그건 괜찮지?”

어차피 지숙은 경호가 자신이 암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것만 모르면 상관이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현이 시간 괜찮으면 같이 올게.”

“알았어. 엄마. 다녀와요. 다음에는 그럼, 같이 가! 치사하게 둘만 데이트하지 말고.”

“알았다. 알았어.”

지숙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백을 챙겨서 가게를 나섰다.

앙앙!

-아무래도 그냥 데이트가 아닌 것 같습니다.

후우.

경호가 흰둥이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인간이 아닌 신수이자 수호신이라고 하지만 정말 눈치라고는 더럽게 없는 흰둥이였다.

“미르도 개그감이 좀 떨어지고 센스도 없긴 했지만, 눈치가 이렇게까지 바닥이진 않았는데. 넌 도대체 뭐냐.”

-왜요?

전혀 모르겠다는 순진무구한 표정의 흰둥이를 보며 경호는 그냥 피식 웃어넘겼다.

“당연히 그냥 데이트가 아니지. 아마도 오늘 병원에 정기 검사받으러 가나 봐.”

-아! 그렇군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흰둥이가 놀랍다는 눈빛으로 경호를 쳐다봤고 경호는 그런 흰둥이를 더 놀랍다는 눈빛으로 노려봤다.

“너 원래 그렇게 눈치가 없냐?”

-그게 원래 눈치라는 것을 보지 않는 위치에서 몇 만 년을 살다 보니.

“아아.”

레벨 2의 흰둥이는 고작 퀘스트나 들어주고 감정의 색이나 알아보는 수준이지만 사실 수호신은 뭐든 알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였다.

그러니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고 눈치가 빨라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 너 잘났다. 너 잘났어.”

-칭찬 감사합니다.

이럴 때 보면 그냥 모지리 같기도 했다.

“그만! 그럼, 떡볶이를 만들어줘야겠는데.”

-경호 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실하면 바늘. 설렁탕엔 깍두기. 김다현은 떡볶이였다.

“흰둥아. 어묵 재료 구하러 가자. 동해 갈래? 서해 갈래?”

-네? 재료를 구하러 바다로 가신다는 겁니까? 그냥 시장 가시죠?

“사실 어묵이 10년 사이에 많이 변했더라고. 하지만 지금 바닷가에 가면 아주 맛있는 녀석이 있거든.”

안 그래도 귀환하고 나서 경호는 자신의 최애 음식 중 하나인 떡볶이를 해 먹기 위해 재료를 사러 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경호는 엄청나게 놀랐다.

“이게 뭐야? 뭐, 이렇게 비싸?”

경호의 혼잣말을 들은 어묵 가게 주인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 품질에 이 가격은 오히려 싼 건데. 무슨 소립니까?”

주인의 말에 경호는 적혀 있는 가격을 다시 봤지만 역시나 놀랄 수밖에 없었다.

“1봉지에 5만 원? 이게 싸다고요? 뭐로 만드는데 이렇게 비싸요?”

계속된 경호의 질문에 가게 주인도 살짝 짜증스럽게 답변했다.

“뭐로 만들긴요. 양식 메기살로 만들죠.”

가게에서 파는 어묵은 모두 양식한 민물고기 살로 만든 것이었다.

대격변 이후로 바다는 마수가 넘치는 죽음의 바다가 된 지 오래였다.

-그렇다고 바다로 가시겠다고요?

흰둥이가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축 늘어졌다.

“붕어나 메기로 만든 것도 나쁘지 않지만 맛난 녀석들이 바다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굳이 돈 써 가면서 그런 걸 먹어. 안 그래?”

흰둥이가 속으로 ‘안 그렇다’를 외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경호 님, 지금 바다에는 시 서펜트나 크라켄 같은 마수들만 버글거린다고요.

“그래, 그게 맛있거든.”

-네?

“그럼, 가 볼까?”

-지, 지금 바로 가신다고요?

경호는 대꾸 없이 그대로 흰둥이의 목덜미를 잡아들었다.

-자, 잠깐만요!

“그럼, 가까운 을왕리해수욕장으로 가 볼까?”

경호가 중얼거리며 흰둥이를 들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그때, 경호의 감각에 묘한 기운이 걸려들었다.

“어? 이거 균열인 거 같은데?”

-균열이요?

경호가 흰둥이를 보다 손가락으로 하늘 한쪽을 가리켰다.

“음, 대충 저쪽으로 한 5킬로 정도 위에 있는 것 같은데.”

-아, 공중 균열 말씀하시는군요.

“공중 균열?”

나름 대격변 이후 일어난 일을 공부하긴 했지만, 아직도 경호에게 생소한 것들이 굉장히 많았다.

흰둥이가 말한 공중 균열도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그게 뭔데?”

-공중에 생긴 균열은 인공위성으로 찾아 전투기가 처리하거든요.

“꽤 좋은 방법인데.”

물론 악마군단이 나오는 던전이나 균열은 마력이 강해 폭격에 충분히 견디겠지만 마수가 튀어나오는 지금 수준에서는 꽤 좋은 방법이었다.

퍼버버버버버벙!

대기의 진동이 느껴지더니 멀리서 크진 않지만 분명하게 들리는 폭음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그리고 미세하게 느껴지던 균열의 기운이 사라졌다.

“오, 제법 빠르네.”

-3년 동안 꾸준히 해온 일이니까요. 물론 앞으로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니까 니가 빨리빨리 강해지라고. 레벨업도 팍팍팍 하고!”

-경호 님이 도와만 주신다면 금세 강해질 수 있을 겁니다.

“몰라, 귀찮아. 꽉 잡아!”

-네? 어떻게 가실…. 끄아아아아!

흰둥이를 손에 쥔 경호의 모습이 순간 흐릿하게 변하더니 빠르게 하늘로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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