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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14화 (14/335)

#014화

두릅.

두릅나무에서 자라는 새순을 꺾어서 살짝 데쳐 초장에 찍어 먹으면 그 맛이 정말 일품이다.

정령계에는 두릅나무도, 초장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 저, 저건?”

그때는 몰랐지만 세계수 묘목이었다.

허리춤에 오는 작은 묘목의 가지 끝에 엄지만 한 새순이 돋아있었다.

그러면 안 되지만 정말 의식하지 않은 사이에 손은 벌써 새순을 꺾어내고 있었다.

“이런 세계수의 새순을 꺾었잖아.”

이미 꺾어진 것.

향을 맡아보니 내가 알고 있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쌉쌀하면서도 달큰하고 상큼한, 그야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런 복잡미묘한 향기가 풍겨 나왔다.

“그럼, 먹어볼까?”

그날 이후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미르 몰래 세계수 묘목을 찾아 헤매고 다녔다.

***

경호는 눈을 떴다.

이렇게 편하게 잠을 잔다는 것이 지구로 귀환한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은 낯설었다.

‘10년간 항상 긴장하고 있었으니까.’

특히나 이제는 잠은 자지 않아도 특별히 문제가 없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잠을 자고 꿈을 꾸는 행위 자체가 정신적인 피로감을 풀어주기 때문에 이제는 조금씩 이 낯설음을 즐겨보려고 하는 중이었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직 밖은 꽤 어두컴컴했다.

경호는 잠이 든 지숙과 그녀의 배 위에서 새근거리고 있는 흰둥이를 힐끗 보고는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뒷문을 통해 가게 건물 밖으로 나왔다.

“오, 이게 벌써 이렇게 자랐어?”

흰둥이가 이곳에 오고 나서 그날 나는 가게 뒤편에 있는 공터에 세계수의 씨앗을 비롯한 정령계에서 가져온 여러 식물의 씨앗들을 골고루 뿌리고는 마력을 뿜어내서 그것들이 모두 싹이 틀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5일 정도 지난 지금 공터 여기저기서 이름 모를 풀들이 제법 자라있었다.

“확실히 많이 자라진 않았네.”

경호는 공터 가운데에 자신의 허리춤 정도로 자라난 사과나무 묘목처럼 생긴 나무를 바라봤다.

수없이 많은 세계수 새순을 뜯어먹은 경호이기에 그 누구보다 세계수 묘목을 보는 안목이 높았다.

“역시 최하급이네. 그래도 흰둥이의 말처럼 안 자라진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확실히 나무의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았다.

씨앗을 받은 정령계 최초의 세계수는 그 높이가 1000m가 넘어가는 거대한 나무였으니 더욱 비교됐다.

“그래도 새순이 돋았으니 좀 뜯어가야겠네.”

경호가 미르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세계수의 생명력이 담긴 새순을 많이 먹은 덕분이었다.

경호가 세계수의 새순을 따기 위해 손을 뻗었다.

쉬잇!

그때 작은 돌멩이 하나가 경호의 손을 향해 제법 매섭게 날아들었다.

파앗.

물론 그 돌멩이는 경호의 손에 닿기도 전에 가볍게 부스러져 흩어졌다.

“오, 뭐야? 이런 게 생겼네.”

경호가 쳐다보는 곳의 바닥이 꼬물거리고 있었다.

그곳을 향해 손을 뻗어 마력을 끌어올리자 꼬물거리던 땅이 멈추더니 녹색의 작은 빛 덩어리가 쑥하고 올라와 경호의 손바닥 위에 올라왔다.

“역시 흙정령이군.”

빛 덩이가 벗어나려 경호의 손에서 마구 꿈틀거렸다.

물론 최하급 흙정령의 힘으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야, 넌 어떻게 생긴 놈이냐?”

가볍게 내뱉은 말이었지만 격이 다른 경호이기에 그의 말에는 그에 걸맞은 힘이 실려있었다.

그 힘에 최하급 정령인 녹색 빛 덩이는 점차 흐려지더니 제법 커다란 땅강아지의 모습으로 변해서는 경호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제, 제발. 저 나무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경호는 그런 흙정령을 보며 피식 웃었다.

세계수가 싹을 틔우며 그 힘으로 세상에 태어난 녀석이 분명했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저 세계수의 힘에 이끌려 그것을 막연하게 지키려고 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다.

“흐음. 이걸 어쩐다.”

하지만 저대로 놔두기는 곤란했다.

자신은 상관없지만 혹시라도 엄마가 이곳을 다니다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래. 그러면 되겠네. 근데 그게….”

머리를 긁적거린 경호가 마력을 끌어올려 검지로 작은 마법진을 그렸다.

하얀빛이 허공에 흔적을 남기며 새겨졌다가 금세 흐려지며 사라졌다.

“아, 이게 아닌데.”

빛이 사라지고 다시 새겨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오! 된다! 그래. 이렇게 하는 거였어.”

경호는 정령 계약 마법진을 완성하고는 흐뭇하게 웃었다.

우우우웅!

새하얀 마법진이 더욱 밝게 빛나더니 땅강아지 모습의 흙정령에게 빨려 들어갔다.

-어? 어어?

흙정령이 흠칫 놀라며 움찔거렸다.

마법진의 효과는 단순하게 계약을 맺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계약을 맺을 수준의 기본적인 정보도 정령에게 심어주는 기능을 했다.

-저, 저는 최하급 흙정령입니다. 높은 격을 가진 존재에게 인사드립니다.

정령은 순수하고 맑은 존재이기에 경호의 영혼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더욱 잘 느꼈다.

1경이 넘는 카르마를 지닌 경호의 기운은 숨이 막힐 정도로 강력했다.

흙정령은 두려운 듯 경호의 손바닥 위에서 몸을 움츠리며 떨고 있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경호가 목소리를 낮게 깔며 진지한 톤으로 말했다.

“나와 계약하겠느냐?”

-계, 계약이요?

흙정령이 되묻자 경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다시 묻지 않겠다. 나와 계약하겠느냐?”

경호라도 최상급 정령쯤 되면 계약 절차가 좀 까다롭지만, 최하급 정령 정도는 그냥 밀어붙여도 충분히 계약이 가능했다.

-그, 그리하겠습니다.

“그럼, 앞으로 나의 의지에 순종하겠느냐?”

경호는 어쩌다 보니 사극에 나오는 왕처럼 무게를 잡으며 말했는데, 이게 은근히 재미가 있었다.

또한 최하급 흙정령에게 경호의 말은 정말로 왕의 명령과도 같은 절대적인 것이기도 했다.

-네,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정령 계약 마법진이 발동한 가운데 주고받는 말에는 우주를 관통하는 절대적인 힘이 작용한다.

그렇기에 장난 같은 말임에도 불가역적인 계약이 이루어진다.

경호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흙정령에게는 녹색 빛이 터져 나와 공중에서 한데 섞였다.

환한 빛이 어른거리는 그때 경호가 땅강아지 모습의 흙정령에게 손을 뻗었다.

“그래, 그럼. 너에게 이름을 내리겠다. 앞으로 너의 이름은 ‘땅개’다. 알겠느냐!”

그냥 땅강아지 모습의 정령이기에 별생각 없이 지은 정말 고민이라고는 담기지 않은 이름이었지만 흙정령은 고개를 조아리며 어깨까지 들썩거리는 것이 꽤나 감동한 모습이었다.

-흙정령인 저에게는 정말 최고의 이름입니다. 땅개! 땅개! 정말 감사합니다. 내게도 이름이 생기다니! 땅개! 그것도 이렇게 아름다운 이름이!

정말 대충 지은 이름 하나에 저리 감동을 하니 오히려 경호가 머쓱해질 정도였다.

“좋다니 다행이구나. 그럼, 앞으로 이곳을 관리하며 더욱 발전시키도록 하여라. 알겠느냐?”

계약 관계가 되었기에 경호의 말에 담긴 의미를 바로 이해한 땅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땅개! 세계수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불철주야 노력하겠습니다. 땅개!

이름이 그렇게 좋은지 말끝마다 땅개를 붙이는 땅개였다.

“그래. 그럼, 다음에 또 오도록 하지.”

당연하지만 최하급 흙정령의 능력은 그 힘이나 범위가 작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구상의 그 어떤 비료보다 더 땅을 윤택하게 만들고 마수들에게서 어린 세계수의 기운을 숨길 정도의 능력은 가지고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이런 소중한 일꾼이 괜히 다른 곳으로 떠나면 안 되니 보이는 족족 계약해놔야지.”

경호는 손에 쥔 세계수의 새순을 보며 입맛을 다지며 가게로 들어갔다.

시계를 보니 6시 55분이었다.

7시가 되면 엄마가 일어난다는 것을 경호는 알기에 아침 준비를 하기로 했다.

손에 쥔 세계수의 새순을 보다 피식 웃었다.

“정령계에서는 이걸 그냥 생으로 먹었는데.”

사실 참두릅과 다르게 생으로 먹어도 세계수의 새순은 맛이 좋았다.

쌉쌀하기도 했지만 상큼하면서도 아삭거리는 식감 때문에 생으로 먹어도 맛이 괜찮았다.

하지만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튀김.

튀기면 신발도 맛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기름이 귀한 정령계라서 자주 해 먹지는 못했지만, 기회만 되면 해서 먹었던 요리였다.

경호는 제법 큼직한 새순을 4등분으로 쪼갰다.

아삭한 식감이 워낙 좋기에 이렇게 쪼개서 튀겨도 맛이 좋았다.

밀가루와 바삭함을 올려주는 옥수수 전분을 섞어서 물에 갰다.

그리고 팬에 가득 식용유를 부어서 팬을 달궜다.

아직 아무것도 튀기지 않았지만 기름에 열이 오르며 풍기는 냄새만 맡아도 침이 고였다.

“좋아, 그럼 튀겨 볼까?”

그때 드르륵 쪽방 문이 열리며 지숙이 피곤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밖으로 나왔다.

“아들, 이렇게 일찍 뭐해?”

“효자 아들이 서지숙 여사님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지요.”

“어제 남은 누룽지. 그냥 끓여서 아침 먹자니까. 뭘 그렇게 하…. 튀김?”

아침부터 튀김은 대략 모닝 삼겹살 같은 느낌이기에 지숙은 놀란 얼굴로 경호를 쳐다봤다.

“튀김은 튀김인데. 느끼하지 않은 튀김이라서 아침에 먹어도 괜찮아.”

“아들, 그거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거랑 비슷하게 들리는데.”

지숙의 말에 경호가 웃으며 손질한 세계수의 새순을 들어 보였다.

“어? 두릅? 그거 구하기 힘들건 데. 가격도 꽤 비싸고.”

“엄마가 좋아하는 거잖아. 내가 오늘 아침에 특별히 지리산 올라가서 따 온 거야.”

“아들. 그새 지리산까지 다녀왔어?”

“그럼, 산에서 반달곰이랑 한바탕하고 오느라고 지금 엄청 피곤한데 이렇게 요리까지 하는 거라고.”

“아이고. 우리 아들 고생했네. 그럼, 오늘 아침은 지리산까지 가서 힘들게 구해온 두릅 튀겨 먹는 거로 하자.”

지숙은 그런 아들의 말장난을 들으며 두릅을 어떻게 구했는지 더 캐묻지 않았다.

장난기 많은 아들이지만 나쁜 짓 하지 않을 아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호는 세계수 새순을 밀가루에 살살 묻혀서는 물에 갠 튀김반죽에 담가서는 기름 속에 넣었다.

짜르르르르르.

기름에 튀겨지는 소리와 함께 향긋한 향이 풍겨 주방을 채웠다.

앙앙!

냄새를 맡았는지 흰둥이가 열린 쪽방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하게 빼내서는 작게 짖었다.

당연하게도 경호에게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서, 설마 그거 세계수?

동공지진을 일으키는 흰둥이를 보며 경호가 피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호 님! 힘겹게 자란 세계수의 새순을 그렇게 꺾어오시면 어떡합니까!

-이거 엄청 맛있어.

-맛을 물어보는 게 아니잖아요.

-걱정하지 마. 세계수가 괜히 세계수가 아니라고. 이런 거 몇 개 꺾었다고 절대 안 죽어. 그리고 내가 더 잘 자랄 수 있게 손도 써놨고.

안절부절못하는 흰둥이를 무시하고 경호는 계속해서 세계수 새순을 튀겼다.

찍어 먹을 소스로는 간장에 식초를 조금 넣은 초간장을 준비했다.

경호가 먼저 세계수 새순 튀김을 들어 초간장을 살짝 찍어서 맛을 보았다.

바삭! 와삭!

입안에서 터져 나오는 튀김옷의 바삭함과 그 안에 세계수 새순이 가진 아삭함이 시너지 효과를 내며 최고의 식감을 선사했다.

느끼함?

쌉쌀하면서도 상큼한 새순의 맛은 튀김의 느끼함은 정말 하나도 느껴지지 않게 잡아주었다.

초간장의 은은한 짠맛과 새콤함이 더해져 끝까지 튀김 맛을 살려주었다.

완벽한 튀김.

탕수육, 새우튀김, 치킨, 오징어튀김 등등 세상에 맛있는 튀김은 수도 없이 많지만 경호는 자신이 만든 세계수 새순 튀김이야말로 완벽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들, 맛이 어때? 그러고 보니 엄마도 두릅 튀김은 안 먹어봤는데.”

경호도 두릅 튀김은 안 먹어봤다.

“정말 완벽한 맛이야. 10점 만점에 5700점 정도?”

“얘가 갈수록 뻔뻔해지네.”

“엄마, 나 다른 건 다 잘해도 거짓말은 잘못하는 거 알면서.”

경호는 쟁반에 튀김과 초간장을 담아서 식탁으로 옮겼다.

“빨리 앉아서 먹어봐. 엄마.”

“그래, 5700점짜리 튀김. 엄마도 먹어보자.”

식탁에 앉은 지숙이 웃으며 튀김을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고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한동안 말이 없이 튀김을 끝까지 씹다가 삼켰다.

“아, 아들?”

묘한 표정의 지숙이 놀란 목소리로 경호를 불렀다.

경호는 그런 엄마의 모습에 옛날 생각을 떠올렸다.

자신이 처음 세계수의 새순을 따 먹었던 그 날. 정신없이 새순을 따먹고 나서는 며칠간은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 수련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였다.

지숙은 그렇게 연달아 5개의 튀김을 더 먹은 후에 젓가락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들, 5700점. 인정. 두릅 튀김이 이렇게 맛있는 거였다니.”

사실 두릅 튀김은 10점 만점에 5700점이나 될 만큼 맛있지 않았지만, 경호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튀김 한 개를 손에 집어서는.

“흰둥아. 이리와. 너도 이거 먹어봐. 형이 맛있게 튀겼다.”

“강아지한테 튀김을 먹여도 되나?”

“두릅 튀김은 몸에 좋은 거라 괜찮아.”

수호신인 흰둥이에게 세계수 새순 튀김보다 몸에 좋은 음식을 찾기란 어려웠다.

앙앙!

-저, 저는 괜찮습니다.

“어허, 흰둥아. 먹어보라니까. 형이 만든 거 안 먹을 거야?”

-괜찮은데….

경호의 눈빛에서 강력한 압박을 느낀 흰둥이는 주춤하며 살짝 입을 벌렸다.

“그래, 먹어봐. 이거 맛있다니까.”

억지로 밀어 넣어진 세계수 새순 튀김.

바삭! 와삭!

-어! 어어!

아앙! 우물!

“이게 한 번도 안 먹으면 모를까. 한 번만 먹기는 힘든 맛이거든.”

경호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 흰둥이였다.

어느새 꼬리까지 흔들며 순식간에 하나를 다 먹고는 더 달라는 눈빛으로 헥헥 거리는 흰둥이를 보며 경호는 피식 웃었다.

방금까지 세계수 걱정하던 녀석이 이제는 더 따러 가자고 할 눈빛이었다.

“더 줄게. 잠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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