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8화 (8/335)

#008화.

“서지숙 여사님. 아드님이 도와주려고 주방에 납셨습니다.”

지숙은 냄비에 김치와 돼지고기를 넣어 볶고 있었다.

예상대로 김치찌개를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잘됐네. 안 그래도 손님이 소주를 한 병 시키셔서 안줏거리가 될만한 거 만들려고 했거든. 내가 추가로 달걀말이 하나 하면 되겠다.”

“에이, 아들은 쉬고 있지. 엄마 혼자 해도 되는데.”

“나랑 같이하면 되지. 달걀말이가 뭐 어렵다고. 그리고 지금 밖에 손님들 좀 심각해 보여서 밖에 있는 게 더 눈치 보이거든.”

경호에 말에 지숙도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래 보여서 땡초 썰어서 얼큰하게 김치찌개 만들어서 속이나 풀어주려고 했지. 그런데 이른 시간에 술도 시키네. 양복을 걸친 거 보면 회사원 같은데.”

“뭐, 답답한 일이라도 있는 갑지.”

메뉴가 정해지지 않은 백반집이다 보니 지숙은 그때그때 손님이 원하는 메뉴를 해주는 편이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손님의 분위기까지 파악해서 메뉴를 고르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역시 센스쟁이라니까.”

경호가 지숙에게 엄지를 척 올리고는 냉장고를 열었다.

달걀말이를 할 재료는 충분했다.

달걀말이는 사실 별거 아닌 요리지만 김치찌개와 정말 단짝처럼 잘 어울리기도 하고 그 자체로도 안줏거리가 될 수 있는 꽤 괜찮은 요리였다.

“10년 만이네.”

엄마가 돼지고기를 넣고 김치를 볶는 그 향기는 방금 밥을 먹었음에도 정말 마법처럼 군침을 돌게 했다.

어느 정도 김치와 고기가 익자 지숙은 냄비에 육수를 자박하게 붓고는 파와 두부를 썰어 넣고 냄비 뚜껑을 닫아 약불로 끓이기 시작했다.

“엄마, 나머지는 내가 할게. 들어가서 쉬어.”

“어디 서빙이 사장이자 주방장에게 명령이야.”

“10년 만에 해보니까 재미있어서 그래. 어머니, 부탁드립니다.”

사실 흰둥이에게 치료를 받아 혈색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10년 전 모습을 기억하는 경호에게 지숙은 너무나도 힘겨워 보였다.

지숙의 핼쑥한 얼굴과 불안정한 기운이 느껴질 때마다 가슴이 아팠기에 경호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지숙을 쪽방으로 밀어냈다.

“아들, 그러면 실수하지 말고.”

“실수하고 말고 할 것도 없지. 뭐. 그럼, 들어가서 쉬고 있어요.”

지숙이 쪽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경호는 도마를 꺼내 대파와 양파, 당근을 다듬어 잘게 썰었다.

달걀 몇 개를 꺼내 깨서 그릇에 담고 고소함과 부드러움을 올려줄 우유도 조금 넣었다.

그러고는 달걀말이용 사각 프라이팬을 꺼내 들었다.

'새삼 이런 사각 프라이팬 하나가 반갑다니. 참.'

경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사각 프라이팬을 보며 괜한 감성에 빠져들었다.

정령계에서는 식사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기에 당연히 모든 것을 새롭게 창조해서 써야 했다.

마수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마기와 독기를 제거해야 했고 그것을 조리할 도구와 레시피까지도 모두 경호가 겪으며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

요리도 처음에는 석기시대의 원시인처럼 그냥 널따란 돌판에 고기를 과일즙에 재워 구워 먹는 것부터 시작했었다.

냄비, 프라이팬 같은 것들을 만들어 사용하기까지는 그 후로도 훨씬 많은 시간이 흘러야 했다.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대장기술까지 익혔지.'

경호는 사각 프라이팬 위로 손을 올려 열기가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식용유를 넉넉히 둘렀다.

달걀물을 달궈진 사각 프라이팬에 부었다.

치이이이이익!

식욕을 돋우는 소리가 들리며 달궈진 팬 위로 기포가 바글바글 올라오며 달걀물이 익기 시작했다.

고소한 향이 주방 전체로 퍼져나갔다.

경호는 조심스럽게 뒤집개를 가지고 익은 바깥 부분부터 조금씩 말아나가기 시작했다.

절반쯤 말아 다시 달걀물을 부어 이어 붙여가며 더욱 두껍게 말았다.

“됐다.”

노르스름하게 잘 구워진 도톰한 달걀말이를 도마 위에 얹어 먹기 좋게 썰어 타원형 접시에 올리고는 보글보글 끓고 있는 김치찌개의 냄비 뚜껑을 열었다.

새콤하면서 얼큰한 향이 진하게 풍겼다.

살짝 맛을 본 경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냉장고에서 케찹과 마요네즈를 꺼내 서로 교차하듯 격자 모양으로 달걀말이 위에 뿌렸다.

"자아, 그럼. 엄마표 밑반찬 좀 꺼내볼까?“

냉장고를 열어보니 깔끔하게 정리된 반찬통이 경호의 눈에 들어왔다.

‘콩자반, 콩나물무침, 감자조림, 오이지무침, 총각김치. 엄마표 반찬들….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

경호가 기억하는 시절에는 진미채볶음과 멸치볶음도 있었지만 멸치나 오징어는 대격변 이후 조업이 어려워지면서 구하기 어려운 고급 식재료로 변해있었다.

반찬을 담고 밥솥에 담겨있던 밥도 그릇에 수북하게 담았다.

예전부터 지숙은 경호에게 한국인은 밥심으로 사니까 밥은 언제나 정이 넘치게 담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주방과 다르게 홀은 성원과 정수가 만들어내는 고요한 침묵이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지, 뭐. 성원이 성원했다고 하면 되는 상황이네.”

허탈하게 웃음을 흘리는 성원의 자조적인 말투와 흐린 눈빛을 보며 정수는 가슴이 아팠다.

“아닙니다. 잘 풀어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잘 풀어보면? 5천억이야. 아버지에게 떼쓰듯 해서 빌린 돈이 5천억이라고. 적자를 겨우 면하고 있는 길드 형편에서 리스폰 던전 없이 그 돈은 죽을 때까지 갚을 수 없어. 알지?”

성원의 말에 정수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화길드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A급 헌터가 없다는 것이었다.

B급 헌터도 정수를 제외하고는 공격대 대장인 최태수가 유일했다.

100명이 넘는 대형 길드에서 최상위 헌터가 B급 2명이라는 것은 문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길드의 규모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던전만 공략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수익률은 떨어지는데 인건비는 많이 나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래도 저희 쪽에서 문제가 없었다면 5천억을 돌려줘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던전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야 하지. 그런데 무슨 수로? 갑자기 사라져버린 던전을 무슨 수로 증명하냐고. 그리고 증명한다고 해서 그것을 정부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야.”

미간을 찌푸리며 이마를 긁는 성원의 코에 맛있는 냄새가 훅하고 들어왔다.

“으음, 음식이 다 됐나 보네.”

“네?”

그때 주방에서 경호가 커다란 쟁반에 음식을 담아 들고 나왔다.

“안줏거리 하시라고 김치찌개와 달걀말이를 했습니다.”

김치찌개 옆으로 잘게 썰어놓은 고추를 내려놓으며.

“매운 걸 좋아하시면 여기 썰어놓은 청양고추를 추가하시면 됩니다.”

또 구석에 놓인 밥통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밥은 추가 요금이 없으니 혹시 모자라시면 저곳에 있는 밥통에서 밥을 더 담아서 드시면 됩니다.”

경호는 쟁반을 식탁에 걸치고 이것저것 설명을 하며 음식을 옮겼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마지막으로 경호는 밝은 표정으로 소주 한 병과 소주잔 하나를 식탁 위에 올려놓은 후 주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생각 이상으로 잘 차려진 식탁 위에 음식을 보며 성원과 정수는 자신도 모르게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내 들었다.

“길드장님, 드셔보시죠. 2만 원짜리 백반이라 크게 기대 안 했는데 맛있어 보이네요.”

정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성원이 잔을 내밀며 말했다.

“소주 한잔 따라줘. 박 실장. 하아, 내일 정부와 이야기 잘 안 풀리면 나 아버지에게 엄청 깨지겠지?”

“….”

꼴꼴꼴.

정수는 대답 없이 병을 들어 성원의 잔을 가득 채웠다.

손에 든 잔을 보던 성원이 입에 소주를 털어 넣었다.

“크윽.”

성원은 소주가 오늘따라 유독 씁쓸하다고 느꼈다.

입안의 쓴맛을 지우기 위해 성원은 숟가락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김치찌개를 푹 떠서는 후후 불어 입에 넣었다.

후룩.

“아.”

예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손맛이 떠오르는 그런 김치찌개였다.

칼칼함에 내내 무겁게 짓누르던 압박감과 짜증도 조금은 풀어진 느낌도 들었다.

“맛있네. 안줏거리로도 좋고. 박 실장도 먹어봐. 그래, 우리 내일 잘 부딪혀 보자고.”

성원의 얼굴에서 주름진 미간이 드디어 펴졌다.

정수도 고개를 끄덕이며 김치찌개를 푹푹 퍼서 밥에 비벼 한입 크게 넣었다.

“맛있네요.”

꼴꼴꼴.

정수가 다시 병을 들어 성원의 비어있는 잔을 채웠다.

“정말 잘 될 수 있을까?”

“그럴 겁니다. 주말에 회의 한번 열심히 해보죠. 뭐.”

무거운 표정의 성원을 보며 정수가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말이라도 고마워.”

다시 술잔을 털어 넣은 성원이 이번에는 달걀말이로 손을 뻗었다.

우유가 들어가 한층 더 부드러운 달걀말이는 젓가락으로 살짝 집었음에도 잘려나갈 듯 부들거렸다.

조심스럽게 달걀말이를 입에 넣은 성원이 몇 번 씹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별거 아닌 달걀말이가 희한하게 맛있네.”

“달걀말이는 언제나 맛있는 거 아닙니까?”

“먹어봐.”

정수가 젓가락을 들어 달걀말이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아.”

우물거리던 정수가 나지막하게 탄성을 뱉었다.

언제나 맛있는 달걀말이지만 이 집의 달걀말이는 조금 더 특별한 맛을 내고 있었다.

“뭐지? 이 미묘한 맛은? 길드장님, 정말 확실히 평소 먹던 것보다 더 맛있는데요.”

정수가 궁금해한 경호의 달걀말이 비법은 사실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달걀도 평범했고 기름이나 프라이팬도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요리를 한 경호가 아주 특별했을 뿐이었다.

“거봐. 이거 맛있다니까.”

좋은 사람과 좋은 안주에 성원은 연거푸 음식을 먹고 술을 들이켰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음식과 함께 소주 한 병이 말끔히 비워졌다.

“길드장님, 더 드시겠습니까?”

“아니, 지금 딱 기분 좋게 먹었어.”

“알겠습니다. 사장님, 여기 계산 해주세요.”

정수의 말에 경호가 빌지를 들고나와 건넸다.

-50000원.

백반 2인분에 소주 1병 값이었다.

“오만 원 나왔습니다. 음식은 입에 맞으셨습니까?”

경호의 말에 성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엄지를 치켜세웠다.

“김치찌개도, 달걀말이도 정말 굉장히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아, 죄송합니다. 그게 아니라.”

“아니요. 이곳이 위험한 곳인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구역에 영업 중인 곳은 현재 여기가 유일하기도 하고요.”

경호는 엄마가 실종된 자신을 위해 이사도 가지 않고 아픈 몸도 제대로 보살피지 않은 채 힘겹게 버틴 것을 알고 있기에 마음이 쓰였다.

“아, 그러시군요. 찌개는 깊고 진하고 달걀말이는 부드럽고 고소한 게 너무 좋았습니다.”

성원의 칭찬에 경호가 밝게 웃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저희에게는 손님께서 맛있게 먹어주시는 게 최고의 칭찬입니다. 감사합니다.”

정수가 식탁에서 일어나며 지갑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무려 50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였다.

경호는 수표를 받아들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 죄송합니다. 저희 가게에 500만 원짜리를 바꿔드릴 정도의 잔돈이 없습니다. 혹시….”

“아닙니다. 저희 대표님이 너무 맛있게 잘 드셔서 드리는 돈입니다. 당연히 잔돈은 필요 없습니다.”

“네엣?”

자리에 앉아 있던 성원이 일어나며 환하게 웃었다.

“제가 여기 오기 전에 좀 기분이 좀 많이 상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꽤 짜증이 난 상태였는데 이곳에서 음식을 먹고 훨씬 기분이 가벼워졌습니다. 제 웃음을 찾아 주신 것이 너무 감사해서 드리는 돈이니 받아 주세요. 대신 다음에 오면 또 맛있는 음식 부탁드립니다.”

경호는 그 둘에게서 느껴지는 진심과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오백만 원은 너무나 큰 금액이었다.

“그래도 이건 너무 커서 받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가치는 다른 법이지요. 저에게는 이 금액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환하게 웃는 성원의 표정을 보며 경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표를 받아들었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럼, 꼭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눈 후 성원과 정수가 식당을 나갔다.

경호는 손에 쥔 수표를 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아!”

경호는 쪽방으로 달려가며 소리를 질렀다.

“엄마! 소, 손님이 잘 먹었다고 500만 원 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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