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7화 (7/335)

#007화

김치찌개와 소주.

라면에 김치만큼이나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힘겹게 마수들과 사투를 벌이고 지쳐 쓰려지듯 누워있으면 얼큰한 김치찌개와 씁쓸한 소주 한잔이 그리워진다.

사실 김치찌개는 잘 익은 김치만 있어도 그럭저럭 맛을 낼 수 있는 요리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엔 김치도, 소주도 구할 수 없었다.

***

대격변 이전 ‘대학로’라고 불렸던 섹터 B-2구역의 리스폰 던전.

바로 경호가 박살을 낸 바로 그 리스폰 던전의 관리 사무실에서 신화길드의 길드장인 이성원과 박정수 비서실장이 어젯밤부터 밤을 새우며 던전 소멸에 대해서 보고 받고 있었다.

“이것들 정말 확실한 거 맞죠. 괜히 어설픈 자료를 들이밀면 수천억 그대로 날리는 거라 확실해야 합니다. 아니 확실한 정도로도 부족해요. 진짜로 특별히 찍힌 게 없어요? 측정되는 마력 파동도 직전까지 아무 문제 없던 게 확실하고?”

성원의 얼굴은 피로에 찌들어 한눈에 보기에도 기운이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밤새워 회의를 진행했지만, 건질만 한 쓸모있는 안건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길드장님. 그 무엇도 특별하게 잡힌 것이 없습니다. 열화상이나 마력파동도 모두 정상이었습니다. 데이터상으로는 리스폰 던전 자체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결함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책임자인 권영호 팀장이 모니터의 마력 수치를 확인하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지만, 성원은 한숨을 쉴 뿐이었다.

“하아, 그걸 입증해야 하는 게 문제라 이거지.”

성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실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봤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다들 힘들죠?”

“아닙니다!”

사무실에 있는 직원 모두가 크게 외쳤지만 사실 모두 피곤에 절어 있는 모습이었다.

던전이 소멸되고 바로 회의를 시작해서 어느새 10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더 들을 것도 말할 것도 없는 그런 상태였다.

“권팀장이 그럼, 오늘 저녁까지 자료 종합해 주세요. 주말 동안 그 자료를 가지고 회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실장은 다음 주 월요일 미팅 잡아주고요.”

모두가 하루를 꼬박 새우며 한숨도 자지 못했지만 지금 그런 불평 따위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책임지고 완벽하게 만들어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성원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던전 관리를 맡은 이들이 자료를 만들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원은 그런 그들을 보며 한숨을 푹 쉬며 사무실을 나왔다.

아침 햇살이 눈이 부시게 환했다.

“하아, 날씨 한번 더럽게 좋군.”

이를 악다문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는 성원의 눈엔 물기가 가득했다.

“괜찮으십니까? 길드장님.”

“솔직히 말해도 될까? 박 실장.”

“물론입니다. 길드장님.”

“솔직히 이런 개 같은 기분은 처음이야. 미안해. 나 같은 못난 놈 밑에서 고생하느라.”

“아닙니다. 길드장님.”

“그래서 더 고마워.”

“….”

정수는 성원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하기에 아무 말 없이 그런 그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제 겨우 아버지에게 인정받을 수 있나 싶었는데. 정말 우습게 됐어.”

큭큭 거리며 자조 섞인 웃음을 보이는 성원을 보며 정수가 입을 열었다.

“길드장님. 하지만 본부 측과 잘 이야기하면 분….”

“그래 봐야 결국 제자리야! 리스폰 던전 없이 우리 길드가 클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돈 5000억보다 리스폰 던전이 더 중요하단 말이지.”

정수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제기랄. 하필 각성을 해도 왜 C급인 건데. 차라리 F급이면 그냥 투명인간처럼 포기하고 살았을 텐데.”

성원은 자신이 E급이나 F급이었으면, 아니 D급만 됐어도 포기하고 그저 능력 없는 신화가의 애물단지 역할에 만족하며 살았을 거라 생각했다.

마법사 클래스. 마력 등급 C. 특성 [전격].

하나 같이 헌터를 하기에는 괜찮은 스펙이었다.

문제는 괜찮은 헌터, 딱 그 정도 수준에 그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원의 욕심은 그 이상을 바라보았다.

비록 헌터가 아닌 길드장을 하기에 부족한 수준이었지만 막대한 돈을 바탕으로 길드를 만들었다.

자신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결국 성장에는 한계가 있었고, 성원의 능력은 이미 그 한계에 도달한 상태였다.

“박실장한테도 미안해.”

“아닙니다. 길드장님. 신화길드는 충분히 훌륭한 길드입니다. 자부심을 가지셔도 됩니다.”

“자부심이라…. 나에게는 낯선 단어야. 그럼. 집으로 가지.”

성원의 눈치를 살피던 정수가 차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길드장님. 식사하시고 들어가시겠습니까?”

성원이 이마를 긁으며 쓰게 웃었다.

“아니, 괜찮아. 바로 집으로 가서 오늘은 종일 잠이나 자야겠어. 오늘 스케줄은 모두 취소해줘.”

“길드장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면 이마를 긁는 버릇이 있으시지요.”

정수의 말에 성원이 이마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내가 그랬나? 스트레스라….”

잠시 생각하던 성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다가 식당 있으면 들리지. 아침 먹고 들어가자고.”

“알겠습니다.”

노면이 고르지 않은 도로 위를 달리느라 차가 덜컹거렸다.

폐허로 변한 주변을 보던 정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길드장님, 저쪽에 식당이 있습니다.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고요.”

이곳은 마수의 출몰이 잦은 곳이라 위험지역으로 분류된 곳인데 장사를 하는 식당을 보고는 신기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뒷좌석에 기대있던 성원도 흥미가 동했는지 고개를 돌려 정수가 말한 식당을 쳐다봤다.

“행운식당? 가게 이름이 재미있군. 저기로 가면 지금 이 불행도 이겨낼 행운이 찾아오려나?”

“….”

성원의 냉소적인 물음에 정수는 눈치만 살폈다.

“그래, 저기로 가지.”

“알겠습니다.”

정수는 그제야 살짝 긴장을 풀며 차를 돌렸다.

***

엄마와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던 경호는 식당 앞에 차가 멈추는 것을 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지구 귀환 후 첫 손님이네.”

경호의 생각처럼 차량에서 두 명의 남성이 내려서는 슬쩍 식당 안을 훑어보더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행운식당입니다.”

경호는 환하게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을 맞이했다.

10년이나 지났지만, 자신도 모르게 습관처럼 인사가 나오는 것을 느끼고 경호는 피식 웃었다.

경호 때문에 쪽방에서 강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지숙도 인사 소리를 듣고는 주방으로 나왔다.

“어서 오세요. 아들, 가서 주문받아.”

“어, 엄마.”

경호는 양복을 멀끔하게 빼입은 두 남성이 풍기는 묵직한 우울함을 느끼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색다른 조합의 인물들이네. 특히 저쪽은 특성도 다양한 거 같은데.’

어느새 주방 입구 쪽에 쪼그려 앉은 흰둥이가 경호에게 말을 건넸다.

-각성자들이네요.

경호도 풍기는 마력의 기운을 느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상태창 보여 드릴까요?

-상태창?

강아지에게 말을 걸면 미친놈 소리를 들을 게 뻔했기에 경호는 흰둥이에게 전음을 날렸다.

-이게 뭡니까? 텔레파시 같은 건가요?

-뭐, 대충. 비슷한 거야. 하여튼 저들의 상태를 볼 수 있는 거야?

-네. 전 각성 시스템 관리를 하니까 당연히 볼 수 있죠. 이렇게 공유도 가능하고요.

<상태창>

이름:박정수

나이:30

클래스:검사[일반]

레벨:34

[근력-62][민첩-51][체력-69]

[마력-437]

특성:[검기LV4]

카르마:981(선)

정수의 상태창이 먼저 떴다.

-역시 평범하군?

-그래도 이 정도면 각성자 상위 10% 수준 정도는 됩니다. 헌터로 따지면 30% 정도고요.

-정말 최악이군. 저쪽도 보여줘.

그러자 성원의 상태창도 경호의 눈앞에 떠올랐다.

<상태창>

이름:이성원

나이:32

클래스:마법궁수[희귀]

레벨:25

[근력-52][민첩-43][체력-49]

[마력-324]

특성:[전격LV2][관통LV2][궁술LV1]

카르마:1781(선)

‘역시 마력은 좀 낮아도 특성이나 클래스가 훨씬 좋네.’

경호는 자신의 기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실망도 컸다.

대충 느끼기에도 중급 정령보다 약한 수준이었다.

‘마수와도 싸우기 힘든 수준인데. 이러다 악마라도 하나 튀어나오면 정말 몰살이겠네.’

그들의 상태창을 보며 어정쩡하게 서 있는 경호의 모습에 정수는 성원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너무 허름한 곳으로 왔나?’

정수가 주변을 훑어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작고 낡은 식당 상태에 실망한 정수가 성원의 귓가에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여기서 식사하시겠습니까?”

성원은 답답한 마음에 식당 상태 따위는 어떻든 크게 상관이 없었다.

“대충 먹고 가죠. 혼자 집에 가봐야 먹을 거도 없고요.”

둘은 가까운 식탁에 앉아서 메뉴를 훑어봤다.

메뉴판에는 ‘백반정식-2만 원’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백반이라는 게 밥에 국, 반찬 몇 개 주는 메뉴. 그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2만 원이라. 엄청 싸네요. 그럼, 백반 두 개 주세요.”

“백반 두 개요. 알겠습니다.”

성원은 2만 원이라는 가격에 놀랐다.

대격변 이후 안 그래도 비쌌던 물가가 그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짜장면 한 그릇이 3만 원이 넘는 요즘 시대에 2만 원이라는 가격은 단순히 싼 정도가 아닌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혹시 이렇게 싼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경호가 기억하는 10년 전에 가격은 만 원이었다.

그렇기에 10년이 지난 지금 2만 원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을 했기에 경호는 성원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당연하게도 특별한 이유 따위는 알지 못했다.

“잠시만요. 엄마!”

경호의 부름에 조금 낡아 보이는 앞치마를 걸친 지숙이 주방에서 나왔다.

“아들, 왜?”

“아니 여기 손님께서 특별하게 가격이 싼 이유가 있냐고 물어보는데 내가 아는 게 없어서.”

경호의 말에 지숙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이 가격은 식당 하면서 손해 보지 않는 최소한의 가격을 받자고 생각해서 정한 금액이에요. 가게가 제 건물이라 월세가 없어 그래도 손해는 안 본답니다.”

지숙에 답변에 성원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래도 결국 돈 벌려고 하는 장사인데. 좀 더 받으셔도 될 것 같은데요. 아, 제가 너무 오지랖을 떨었네요.”

“아니요. 하지만 어려운 시대에 좋은 일 한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정했습니다. 언젠가는 다 제 복이 되어 돌아오지 않겠어요?”

지숙의 말에 성원이 진심이 담긴 웃음을 보였다.

“정말 아름답고 따뜻한 이유네요. 귀찮은 질문에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엄마, 여기 백반 두 개.”

“어, 그래.”

지숙이 다시 요리하러 주방에 들어갔다.

잠시 후 주방에서 맛있는 냄새가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으음, 김치찌개인 모양이네요.”

“그런 거 같습니다. 냄새가 좋네요.”

성원은 칼칼한 김치찌개 냄새에 갑자기 술 한잔이 생각났다.

“박실장, 소주 한잔할까?”

“아닙니다. 어차피 자료 검토도 해야 하고. 그리고 이쪽은 대리기사가 오지 않는 곳이라서요.”

“그런가? 난 한잔하고 싶은데.”

“오늘은 한잔 드시고 들어가셔서 푹 주무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럴까? 안 그러면 도저히 잠이 안 올 것 같아서 말이야.”

성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정수가 경호를 보며 물었다.

“혹시 술도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럼, 소주 한 병 주십시오. 잔은 하나면 됩니다.”

“아, 그러면 안줏거리 하실만한 찬을 좀 같이 내오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경호는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미소를 느끼며 스스로 깜짝 놀랐다.

엄마와 행복한 추억이 있는 식당이지만 사실 먹고살기 위해 ‘행운식당’을 차려서 지금껏 일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 내가 이렇게나 즐거워하고 있다고?’

경호 본인도 모르고 있었지만 정령계에서 살아온 10년이라는 세월은 그런 그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수많은 전투를 함께한 미르를 비롯한 신수들과 경호는 단 한 번도 같이 밥을 먹은 적이 없었다.

‘10년 동안 혼자 만들어 혼자 먹었구나.’

이미 ‘혼밥’이 만연한 시대였지만 그래도 밥은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 어울려 먹는 것이 더 좋았다.

음식을 만드는 것 역시 그랬다.

10년간 수많은 음식을 만들었지만 정령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요리였지 누구를 대접하기 위한 요리가 아니었다.

그랬기에 10년간 만든 그 어떤 요리도 경호에게 만드는 기쁨을 가져다주진 못했었다.

“이런 게 이렇게 기분 좋을 줄이야. 그럼, 반찬도 되면서 안줏거리도 되는 요리를 한번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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