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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4화 (4/335)

#004화

[행성 717계 A1002-B ‘지구’의 수호신 계승 의식이 진행됩니다.]

바닥에 선명하게 새겨진 마법진에서 은빛 마력이 점점 강해지며 경호는 엄청난 압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 나한테 수호신 자격을 넘긴다는 건가?’

경호의 시야에 떠오른 메시지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싫거든!”

우우우우웅!

경호의 주먹에 불꽃처럼 타오르는 듯한 강렬한 마력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 개새끼가 누구 마음대로 계승이래!”

경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을 옥죄고 있는 마법진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마법진이 깨져나갔다.

으르르.

카니스가 경호의 말도 안 되는 신위에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런 미친! 대충 예상은 했지만, 인간 주제에 정말 이걸 부쉈다고?

카니스는 경호의 주먹질에 찢겨나간 마법진을 보며 몸을 낮췄다.

“아놔. 하마터면 팔자에도 없는 수호신 될 뻔했네.”

경호가 고개를 들어 카니스를 향해 소리쳤다.

“야! 너 지금 나한테 수호신 자리를 넘기려고 한 거냐? 아니, 뭐. 그건 그렇다고 치더라도 가타부타 말은 하고 수작을 부려야 할 거 아니야! 수호신이 그렇게 쉽게 거래할 만한 자리는 아니잖아. 안 그래?”

-그, 그게. 그럴 사정이 있었습니다.

어이없는 대답에 경호가 카니스를 노려봤다.

“뭐? 사정이 있었다고? 그건 니 사정이고.”

생명력이 꺼져가는 상태 안 좋은 수호신과 마계 침략을 당한 지구.

상황을 훑은 경호도 대충 짐작은 하고도 남았다.

“그래도 이건 경우가 아니지. 무슨 양아치 새끼도 아니고.”

-….

경호의 말에 카니스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양아치 같은 행동이었으니까.

“앞으로 우리 만나지 맙시다. 털 색이 안 좋은데 건강이나 잘 챙기쇼.”

-….

경호가 왜곡된 공간을 바로 돌려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리려고 한 그때, 경호의 머릿속에 카니스의 음성이 울렸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수호신을 당신에게 넘기는 것이 지구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어쩔 수가 없네요.

“그게 무슨 소…. 으윽!”

무언가 경호의 팔과 다리를 감아 당기더니 그의 몸이 공중에 고정되며 떠올랐다.

우우우우우웅!

그제야 경호의 눈에 자신의 팔과 다리를 묶은 두꺼운 밧줄이 눈에 들어왔다.

집중하지 않으면 경호도 알아보기 힘든 수준의 투명화 마법이 걸려 있는 밧줄이었다.

거기다 그 밧줄의 끝은 밝게 빛나는 커다란 마법진에 연결되어 있었다.

“제기랄, ‘구속의 밧줄’이군.”

-맞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밧줄은 연결된 마법진이 파괴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끊어지지 않습니다.

시스템을 통해 경호의 능력치를 본 카니스는 마법진의 힘만으로는 그를 제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마법진을 쉽게 부술 수 있게 만들어 경호를 방심하게 했다.

그 덕분에 그를 제압할 수 있었다.

“하아, 이거 제대로 준비했네. 하지만 말 그대로 마법진만 파괴하면 이따위 것은…. 어엇! 뭐야!”

마력을 끌어올려 마법진을 파괴하려고 했던 경호는 움찔하더니 한숨을 토해냈다.

“너 이곳에 마력 동결을 건 거야?”

-마력 동결의 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는 복합 연환 마법진입니다. 10분. 짧긴 하지만 그 시간 동안은 이곳에서 마력을 쓰지 못하지요.

“그러면 너도 계승인지 나발인지 그것도 못할 텐데?”

-신력은 마력과 그 궤를 달리하는 힘이라 사용이 가능합니다. 곧 경호 님도 사용하실 힘이지요.

“개소리하지 마!”

-개한테 개소리하지 말라 하시니 좀 우습군요.

“후우. 헛소리 그만하고 좋은 말로 할 때 이거 풀어라.”

-그걸 풀면 좋은 말로 끝날 것 같지 않아서요.

얼굴이 시뻘게진 경호를 무시한 카니스가 비틀거리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경호 님을 제압하기 위해 무리를 했더니 조금 힘들군요.

경호는 그런 카니스를 보며 따지듯 물었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딱 봐도 네가 죽어간다는 것은 알겠다만 그렇다고 나에게 이런 짓을 할 권리는 없을 텐데. 그게 지구를 지키고 인간을 보호하는 임무를 가진 수호신이라면 더더욱.”

경호의 말이 끝나자 카니스가 지금까지의 장난스러운 말투를 바꿔 정중하게 말을 이었다.

-경호 님의 말이 모두 맞습니다.

“맞으면 풀어! 나 집에 간다고!”

-하지만 제가 죽고 나면 정말 지구는 끝입니다. 새로운 수호신이 필요합니다. 지구를 위해서요. 그리고 그 역할은 오직 경호 님만 할 수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수호신이 되어 주십시오.

경호는 카니스의 말이 이해는 되면서도 한편으로 의문이 들었다.

분명 정령계의 수호신인 ‘미르’는 자신을 소환하고 나서 그 반작용으로 거의 초주검 상태였지만 반년도 되지 않아 완전히 회복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그 잘난 수호신이라는 지위를 넘기기보다 네가 스스로 생명력을 회복하면 되는 문제 아닌가? 수호신은 그 지위를 유지하는 이상 수명도 무한대라고 알고 있는데. 아닌가?”

생각보다 수호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경호의 말에 카니스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경호 님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무슨 소리지?”

-수호신은 분명 자신의 세계를 지키며 무한한 삶을 약속받은 존재가 맞습니다. 하지만 생명력은 고갈되면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금의 지구에서는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왜 그렇지?”

-자신의 행성과 수호신은 한 몸과 같습니다. 말 그대로 지구도 재생력을 잃은 상태입니다. 정령도 신수도 모두 사라졌죠. 인간에 의해서요. 뭐, 우습게도 저의 마지막 생명력을 인간에게, 그것도 인간을 위해 쓰고 있지만요. 그럼, 의문이 풀리셨습니까?

정령계처럼 행성 에너지가 풍부하지 않은 지구에서는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강력한 존재인 자신에게 그 지위를 넘기려고 한 것이었다.

이제 경호의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래, 대충 무슨 말이지 잘 알겠어. 참 딱하네.”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나 ‘수호신’이라는 거. 그거 하기 싫어.”

-네? 하지만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지구를 구하….

“싫다고.”

-뭐, 싫으셔도 계승 의식을 거쳐서 신력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수호신이 되실 겁니다. 그러면…. 어?

경호가 구속의 밧줄에 묶여있는 오른손을 펼치며 뻗자 그 앞 공간이 검게 변했다.

-아공간?

“그래. 맞아. 이건 마력이 없어도 내 의지로 열 수 있으니까.”

경호의 손에 미르의 이빨로 만든 용아검의 손잡이가 잡혀 뽑혀 나왔다.

“그리고 마력은 안 실려있어도 이 검은 꽤 재질이 좋은 녀석이라. 아마 저 마법진 정도는 박살 낼 수 있을 거야.”

경호는 카니스를 보며 씩 웃어 보이며 손목 스냅을 이용해서 용아검을 던졌다.

-안 돼!

웅크려 있던 카니스가 날아가는 용아검을 보고 움직이려 했지만 이미 용아검은 밧줄 끝에 달린 마법진에 박혀 들어가고 있었다.

콰지지직!

밧줄이 느슨해지는 느낌에 경호가 손발에 힘을 줬다.

콰아아앙!

폭발하듯 밧줄이 터져나갔고, 어느새 경호의 손에는 마법진에 꽂혀있던 용아검이 쥐어져 있었다.

“마력 동결도 풀렸고 무기도 손에 들려있고. 좋아. 이제 다시 이야기해볼까?”

경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반면 카니스는 얼굴을 처참하게 구겼다.

-경호 님. 부탁드립니다. 수호신의 지위를 계승해주십시오.

“미안한데 내가 수호신을 하기에는 좀 바빠서 말이야.”

경호는 개고생은 10년간 정령계에서 구른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저 이 세상이 안 망할 정도의 간섭만 하면서 엄마와 식당을 하며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을 뿐이었다.

그 어떤 선택지에도 ‘수호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엄마와 행복하게 식당일 하며 살기에는 지금 가진 힘도 차고 넘친다.’

-경호 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물론 카니스도 말은 했지만 이미 심적으로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사실상 강제 계승이 아니라면 상대에게 수호신의 의무와 책임에 대한 승낙을 얻고 계승을 해야 하는데 그 의무와 책임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거 아니라도 지금까지 나에게 한 짓은 까먹었나 봐? 이러고 나보고 계승하라고?”

-그것은 대의를 위해….

“대의고 나발이고 난 모르겠고. 난 그냥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이거든. 제발 건들지 말아 줄래?”

-하지만….

“하여간 말로 하면 들어먹지를 않아요.”

경호가 날 듯이 달려가 몸을 낮춘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카니스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퍼어억!

-크어억!

경호의 주먹이 카니스의 턱에 꽂혔다.

집채만 한 크기의 카니스가 몇 바퀴를 구르고 나서야 멈춰설 정도의 강한 위력을 담고 있었다.

-쿨럭, 잠, 잠시만. 제 말 좀 들어….

“그래. 원래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는 법이지.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

퍼어억!

-크어어억!

다시 몇 바퀴를 구르고 나서 바닥에 처박혔다.

-크헉, 수호신이 되면 좋은 점도 많습니다!

“그 많은 좋은 점을 가지고 넌 그렇게 죽어가고 있잖아.”

-경호 님, 제발 한 번만 들어봐 주십시오!

“그래? 말해봐.”

경호의 말에 카니스가 다시 그럴싸한 핑계를 대기 위해 생각에 빠져들었다.

경호는 그런 카니스를 보며 피식 웃었다.

정령계에서 미르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미르! 근데 수호신 하면 뭐가 좋아?’

‘안 좋은데. 좋은 거 하나도 없어.’

‘그런데 넌 왜 수호신을 했어.’

‘주신이 날 선택했으니까.’

‘강제로?’

‘어.’

‘별로 하기 싫은가 본데?’

‘다시 태어나면 절대로 안 할 거다. 절.대.로. 죽어도 안 해!’

그때 미르의 표정은 정말이지 진지했고 단호했다.

“아직도 생각 중이냐? 5초 준다. 없으면 좀만 더 때리고 난 갈게. 앞으로 절대 찾지 마라.”

-아, 우선 영원한 생명을 얻….

“됐고.”

-엄청난 힘을 가….

“내가 너보다 더 세거든.”

-생명을 다룰 수….

“난 어차피 무병장수라서. 어? 그럼, 혹시 위중한 병도 치료할 수 있나?”

-신력만 충분하다면 가능합니다.

경호는 병에 걸린 지숙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쓰러져 있는 카니스에게 다가갔다.

“어쨌든 가능하다는 말이군. 수호신이라면.”

-네. 가능합니다.

“그럼, 널 내, 아니 우리 엄마의 주치의로 쓰겠다.”

-네? 그게 무슨.

“크기 줄여봐.”

-크기요?

“크기 줄이라고. 작게.”

-작게요?

퍼어억!

다시 경호의 주먹이 날아갔다.

-크어어억! 왜, 왜 그러십니까.

“이게 정말. 왜 그러시냐고? 너 한 대 더 맞을래?”

경호가 주먹을 들어 보이자 집채만 한 카니스가 스르륵 크기를 줄이더니 귀여운 포메라니안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알아들었으면서. 이게 진짜.”

경호가 그런 카니스의 목덜미를 잡아 올리고는 말했다.

“그래, 그럼. 나가자.”

-네?

경호가 손에 쥔 용아검을 휘두르자 왜곡된 공간이었던 어두컴컴했던 동굴이 사라지고, 현실 공간인 행운식당으로 돌아왔다.

-그 칼이 도대체 뭐길래. 왜곡된 공간을 바로 잘라…. 아니 그런데 절 이런 곳에 끌고 오면 어떡합니까? 이곳에 있으면 제 생명력이 더 빨리 사라진단 말입니다. 레어로 돌아가겠습니다. 계승은 포기할테니 놔 주세요!

“야! 사람을 밧줄로 묶어서 아주 인생 망치려고 해놓고는 제대로 사과도 없이 그냥 없던 일로 하자고? 에이, 왜 이러셔. 우리 계산은 정확히 해야지. 안 그래?”

경호가 용아검을 들어 보이며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끼이잉.

포메라니안 크기의 카니스가 몸을 바르르 떨며 낑낑거렸다.

-네? 그게 무슨.

“덕분에 고생했으니 너도 깽값은 물어야지.”

-깽값이라뇨.

“이리 와봐.”

드르륵.

경호는 용아검을 아공간에 집어넣고는 쪽방의 문을 열었다.

쪽방 한편에 지숙이 새근거리며 자고 있었다.

그런 지숙을 보고는 카니스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폐암 말기네요. 길어야 6개월. 저와 비슷한 상황이군요.

“완치시킬 수 있나?”

-완치시키면 수호신 계승을 해주실 겁니까?

“아니.”

경호의 단호한 대답에 카니스는 순간 벙찐 표정을 지었다.

-제 남은 생명력을 모두 쏟아부어도 치료가 될지 안 될지 모를 병입니다. 대가 없이 치료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수호신의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되나?”

미르에 비해 확연하게 떨어지는 능력에 경호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생명을 다루는 것은 많은 신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저는 그 신력이 거의 없기에 대신하여 생명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고요.

“내가 그 생명력을 채워주지. 너는 그 생명력으로 엄마도 치료하고 회복해서 수호신도 계속하면 되겠네.”

-그게 가능하면 경호 님에게 강제로 계승 의식을 하려고 하지도 않았겠죠.

카니스는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떨궜다.

‘귀, 귀엽군.’

자그마한 강아지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떨구는 모습은 굉장히 치명적인 광경이었다.

“내가 너의 생명력을 회복시켜줄게. 어때? 그러면 되는 거 아니야?”

-그게 무슨.

“내가 그쪽으로 좀 빠삭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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