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2화 (2/335)

#002화

어릴 적부터 나는 쌈을 싸 먹는 것을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깻잎에 제육볶음을 듬뿍 넣어 싸 먹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하지만 이곳에는 깻잎도 없었고 제육볶음을 만들 고추장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게 정령계 생활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 중 하나였다.

***

“아이고, 어머님. 이제 정말 더는 안 됩니다. 몇 달 뒤면 철거해야 한다니까요. 어서 자리 알아보시고 이사 준비하셔야죠.”

각성자관리원 민생지원 3팀의 김지훈 대리는 오늘도 속이 탔다.

“이사는 무슨 이사!”

벌써 몇 번이나 이런 실랑이를 벌였는지 세는 것도 지칠 정도였다.

서울의 섹터 B-4 구역.

3년 전 발생한 대격변 당시 거대 균열이 가장 많이 발생한 구역 중 하나로, 종묘에서 탑골공원까지 일대가 모두 파괴된 상태였다.

현재도 균열과 던전의 발생이 잦은 위험지대였다.

파괴된 수준이 복구하기 힘든 상태였기에 계속 방치되고 있었지만, 최근 정부에서는 이곳 지역 일대를 모두 사들여서 균열출몰구역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에 그나마 남아있던 상인들도 모두 충분한 보상금을 받고 다른 곳으로 떠난 상태였다.

‘행운식당!’

이 낡은 식당, 단 한 곳만 빼고는.

‘하아, 정말 지친다.’

퇴근길에 식당을 찾은 지훈은 행운식당 주인아줌마와 별로 행복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어머님. 이렇게 버티셔도 얼마 못 받아요.”

“아니. 번듯하게 장사를 하는 집인데 버티기라니! 내가 그깟 돈 때문에 이러는 줄 알아!”

“어머님, 이게 고집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요. 저희가 무슨 용역 깡패도 아니고. 하아.”

“이렇게 사람을 협박하면 너희도 깡패지!”

철거까지는 몇 달 안 남은 상황이었다.

오늘도 그냥 돌아가면 내일 정말 깨질 것이 뻔히 보였기에 지훈은 최대한 구슬리려 노력했다.

“제가 보상금은 조금 더 올려 드리도록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어머님.”

“정말 돈 때문이 아니야. 돈은 없어도 되니 제발 나 여기서 장사하게 해줘.”

주인아줌마의 표정에서 간절함을 느낀 지훈은 다시 물었다.

“어머님. 그런데 도대체 왜 이곳에 남으려고 하시는 거예요? 여기 대격변 이후 거의 폐허가 된 지역이라 장사도 안 되잖아요. 보상금이면 훨씬 좋은 곳으로 가셔도 될 텐데.”

벌써 몇 번에 걸친 설득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주인아줌마의 고집에 지훈도 궁금했던 참이었다.

“내 아들이 실종됐어. 그래서 내가 여기서 기다려야 해. 여기가 집이고 가게야. 내가 떠나면 아들이 날 어떻게 찾으라고.”

“….”

몰랐던 사실에 지훈도 말문이 막혔다.

아들이 실종되어 이사하면 못 찾을까 기다린다니.

분명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정도 나이대 아줌마라면 아들이 어리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아마도 죽거나 떠난 거겠지.’

안 그래도 험한 세상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지훈이 그런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할 정도로 매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딱한 사정에 한숨을 깊게 쉰 지훈이 주인아줌마를 달래듯 말했다.

“어머님. 아드님은 경찰이 찾아줄 겁니다.”

물론 지훈은 자신의 말이 얼마나 허망한 이야기인지 잘 알고 있었다.

대격변 이후 치안은 엉망이 됐고 경찰이 실종자를 찾을 확률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어머님. 이제 그만 하시…. 어, 어머님!”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휘청거리는 주인아줌마의 모습에 놀란 지훈이 말을 하다말고 그녀를 부축했다.

“저, 저기….”

부축을 받은 주인아줌마가 손가락을 뻗어 지훈의 뒤편을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지훈이 놀라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헝클어진 머리에 짙은 눈썹이 인상적인 청년이 식당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주인아줌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들, 경호 맞지?”

경호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

‘행운식당’에 ‘closed’라고 적힌 팻말이 걸렸다.

10년간 아들을 그리워한 엄마, 서지숙.

10년간 정령계를 구하고 돌아온 아들, 최경호.

서로 다른 세상에서 같은 마음으로 살아온 모자가 10년 만에 다시 마주 앉았다.

10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었기에 그간 쌓은 것들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

하지만 지숙은 말이 없었다.

벌써 가게에 들어온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지숙은 경호를 보며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울다가 경호의 손을 잡아보고 울다가 경호의 뺨을 만져봤다.

마치 꿈이 아닌 것을 확인하는 사람처럼….

“우리 경호. 정말 돌아왔네. 고맙다. 정말 고마워.”

10년 만에 처음 건넨 말이었다.

고맙다.

10년간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이 지숙은 그저 고마웠다.

“그래. 아픈 데는 없고?”

경호는 그런 지숙의 말에 가슴이 먹먹함을 느꼈다.

‘엄마도 분명 지난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기다리면서 많이 힘들었을 텐데.’

하지만 지숙에게서 원망이나 서운함의 감정은 정말이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경호의 건강을 물었을 뿐이었다.

“어. 괜찮아. 정말.”

“그,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니?”

10년간의 실종.

그리고 갑작스러운 만남.

어렵게 지숙이 경호를 보며 이유를 물었다.

“엄마, 사실 지금도 정확히 모르겠어. 아마도 지금 ‘균열’이라고 부르는 현상에 휘말렸던 거 같아.”

정령계 수호신에게 소환되어 10년 동안 마계의 침략과 싸워 결국 그곳을 구하고 돌아왔다는 사실은 이해하기도 이해시키기도 어려운 이야기였다.

“균열? 그건 대격변 이후 생긴 거 아니니?”

“모르겠어. 10년 전에도 있었을지도 모르지. 정신을 차려보니 종각역 주변이었어. 세상 역시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고.”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진실을 가려낼 증거나 증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쇠로 일관하며 우기면 그만.

“그래서. 그래서 그대로야. 10년 전 그때 그대로.”

사실 엄청난 마력 덕분에 노화가 일어나지 않은 거지만 그런 걸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미안해. 엄마. 정말 미안해.”

“아니다. 아니야. 살아 돌아왔으면 그걸로 돼…. 끄윽! 끄윽!”

지숙은 말을 하다 결국 오열하며 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표현은 안 했지만 이십 대 중반이었던 아들이 갑자기 사라졌기에 지숙은 착한 아들이 자신을 두고 가출할 리 없다고 믿고 싶었지만, 가끔 고개를 드는 의심은 여태껏 그녀를 괴롭게 만들었다.

“경호야, 미안하다. 엄마는 네가 그런 일을 겪은 줄도 모르고. 엄마가 널 의심했다. 미안하다. 경호야.”

경호는 오열하는 지숙에게 다가가 어깨를 감싸 안았다.

“미안하기는 이렇게 이곳에서 날 기다려줬잖아. 고마워. 엄마.”

그냥 볼 때는 잘 몰랐는데 가까이에서 본 지숙은 몰라보게 해쓱해진 모습이었다.

경호는 마력을 일으켜 지숙의 몸 상태를 찬찬히 훑어봤다.

‘뭐, 뭐야?!’

지숙을 살펴본 경호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엄마가 아프다. 그것도 굉장히 많이.’

경호는 그런 지숙의 병세를 느끼고 울컥했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단 하루도 잊은 적 없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엄마였다.

사실 10년이라는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엄마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서 엄마를 살려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경호의 능력은 철저하게 전투에 특화되어 있었다.

힘으로는 악마군단과 맞설 수 있었지만, 지숙의 병을 치료할 능력을 갖추고 있진 않았다.

‘이렇게 지구가 변했다면 혹시 정령이나 신수 같은 존재가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지구에도 정령이나 신수 같은 존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능력이 없어서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하지만 이제 경호는 그런 존재를 파악하고 찾을 능력을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로 가지고 있었다.

‘우선 엄마의 체력 회복이 우선이다.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방법을 찾는다.’

경호가 앞으로 계획을 떠올릴 때 지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경호, 배고프지? 엄마가 밥 차려줄게.”

그런 지숙을 경호가 손을 당겨 다시 자리에 앉히며 말했다.

“엄마, 우선 병원부터 가자. 안색이 너무 안 좋아.”

“아니, 무슨 소리니. 병원이라니. 엄마 몸은 엄마가 더 잘 알아.”

지숙은 자신이 폐암 말기의 길어봐야 반년도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아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병마와 싸우며 지금껏 아들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힘겹게 버틴 지숙이었다.

‘죽었던 아들이 살아 돌아온 이 소중한 시간을 병원 같은 곳에서 날려 보낼 순 없지.’

지숙이 속으로 다짐하며 경호를 보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엄마는 이렇게 죽었던 아들이 살아 돌아오니 기뻐서 날아갈 거 같은데.”

이러한 엄마의 속마음까진 몰랐지만, 경호는 지숙의 고집이 얼마나 센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 내가 엄마에게 해주고 싶은 것을 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지금까지 날 기다려준 엄마를 위하는 거지. 하아.’

경호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했다.

하지만 엄마의 미소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 저녁 먹자.”

“그럼, 엄마가 저녁 차려줄게. 기다리고 있어.”

“알았어. 그럼, 10년 만에 우리 서지숙 여사님이 해주는 맛있는 음식 좀 먹어볼까?”

“아들, 조금만 기다려.”

방을 나가는 지숙을 보며 경호는 지금 이 순간이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10년.

강산도 변한다는 긴 세월이었다.

정령계를 침략한 마계를 물리치고 끝은 훈훈했지만 사실 10년의 세월은 경호에게 꽤 가혹했다.

수호신 미르와 수많은 신수와 정령의 도움이 있었다고 하지만 대한민국 25살 청년이 무작정 정령계에 넘어가 용사로 성장하기는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악마에게 죽을 뻔한 거보다 훈련하다 죽을 뻔한 적이 훨씬 많았지.’

또한 정령계를 통틀어 음식을 먹어야 살 수 있는 존재도 경호가 유일했으니 먹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그 10년의 세월을 떠올려보던 경호의 귀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들, 밥 먹자!”

“어! 나갈게.”

경호는 방을 나와 지숙이 차려놓은 식탁을 향했다.

‘이곳도 많이 낡았구나.’

원래부터 크고 번듯한 식당은 아니었지만 10년이라는 세월은 제법 그 흔적을 남겼다.

허름한 쪽방에서 생활하며 아픈 몸으로 자신이 돌아오길 간절히 염원하며 버텼을 것을 생각하니 괜히 더 가슴이 아팠다.

‘이제부터 조금씩 바꿔가자. 어제보다 오늘이 더 행복할 수 있도록.’

그렇게 앞으로의 다짐을 하며 방을 나선 경호가 지숙이 차려놓은 음식을 보고 감탄했다.

“우와, 엄마. 이걸 언제 다 했데. 하여간 손도 빨라.”

뚝배기에는 보글거리며 끓고 있는 된장찌개가 담겨있었고 접시에는 맛있어 보이는 제육볶음이 수북하게 담겨있었다.

입맛 돋우는 무생채와 파절임도 각각 접시에 담겨있었다.

상추와 깻잎도 씻어져 있었고 작은 종지에는 쌈장과 고추, 마늘이 편으로 썰어져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제육쌈밥 한 상이었다.

“네가 고기쌈 좋아해서 엄마가 쌈은 준비해 놓고 있었지.”

밝게 웃는 지숙의 모습에 경호는 괜히 더 미안해서 툴툴거리듯 말했다.

“아니,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하여간 엄마, 거짓말도 잘해.”

“그래서 매일 준비해 놓고 있었지. 우리 아들 기다리면서.”

“….”

지숙의 말에 괜히 울컥해서 경호는 그저 말없이 상추와 깻잎을 들어 그 위에 제육 한점을 얹었다.

그리고 나머지 것들도 다 넣고 크게 쌈을 싼 경호는 그것을 입에 욱여넣었다.

우적우적우적. 꿀꺽.

지난 10년, 가끔 꿈속에서나 먹었던 바로 그 맛이었다.

“아들, 맛있어?”

“어, 맛있어. 너무 맛있어.”

울렁거리는 감정을 억지로 참고 있던 경호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아들, 밥 먹다 말고 괜히. 에이, 엄마까지 눈물 나게.”

“하하. 눈물 나게 맛있다는 게 진짠 줄 몰랐는데. 엄마, 이거 너무 맛있다.”

경호는 다시 상추와 깻잎을 얹어 크게 쌈을 싸서 먹었다.

우적우적우적. 꿀꺽.

제육 한 쌈.

단연코 10년간 가장 먹고 싶었던 엄마의 음식이었다.

“많이 먹어.”

“엄마도 어서 먹어.”

“엄마는 요리하면서 대충 주워 먹어서 배불러.”

경호는 지숙의 말에 서둘러 쌈을 하나 싸서 그녀의 입 앞에 들이밀며 말했다.

“자아. 10년 만에 싼 거니까 어서 먹어.”

“엄마는 배부르다니까.”

“나 팔 아파! 빨리.”

지숙은 환하게 웃으며 쌈을 받아먹었다.

그렇게 경호는 지숙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10년 만에 즐거운 저녁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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