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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1화 (1/335)

#001화

머리에 뿔이 삐죽 튀어나온 흉측한 얼굴의 악마가 창을 휘둘렀다.

새파랗게 빛나는 창날에서 검은 마기가 맹렬하게 뿜어져 나오며 주변을 날아다니던 정령을 쓸어버렸다.

“고작 중급 정령 따위가 악마 서열 628위의 나, 베키라….”

콰직!

흉측한 악마는 채 말을 끝내지 못했다.

이글거리는 불길을 두르고 있는 거대한 사자가 악마를 한입에 물어뜯었기 때문이었다.

악마의 몸집도 5m가 넘어가는 거구였지만 그런 악마가 귀여워 보일 정도로 커다란 사자였다.

사자가 악마를 물고 머리를 흔들자 썩은 나뭇가지처럼 허리가 끊어져 떨어져 나갔다.

크아아아아앙!

불을 다스리는 신수(神獸).

새파란 불꽃을 휘감고 있는 거대한 사자, 리온이 사자후를 내지르자 그를 향해 달려들던 마족들과 마수들이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 빈틈으로 거대한 새가 날아왔다.

푸른색의 붕조였다.

끼에에에에엑!

태양을 가리는 거대한 붕조, 로크가 입을 벌려 괴성을 지르자 그 주변에서 번개가 생겨 마족과 마수들을 향해 내리꽂혔다.

파도처럼 밀려오던 기세가 주춤거렸다.

하지만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거대한 평원을 가득 메운 마수들의 발걸음이 땅을 진동시켰고 듣기 거북한 울음소리가 하늘을 가득 메웠다.

그때 평원 끝에서부터 신수들과 그들을 따르는 정령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리온과 로크. 하여간 기다리라고 하니까 그걸 못 참고.”

-경호, 리온과 로크를 누가 말리겠나. 저런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하늘 높은 곳.

리온과 로크의 싸움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거대한 용, 미르와 용의 머리 위에 서 있는 사내, 최경호였다.

정리되지 않은 지저분한 검은 머리와 짙은 눈썹이 인상적인 그는 살벌한 풍경에도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있었다.

“미르, 그나저나 저게 마지막 ‘던전’이라고?”

-어, 그래서 더 필사적인 것 같기도 하고 별 볼 일 없는 녀석만 튀어나온 걸 보면 그냥 포기한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그렇다.

“이제 정말 내 역할도 끝이군.”

-고생했다. 그럼, 화려한 마무리를 하러 갈까?

경호가 아공간을 열어 미르의 송곳니로 만든 용아검을 꺼내 움켜쥐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미르.”

미르의 거대한 몸이 기이한 각도로 꺾이며 수직으로 내리꽂히듯 떨어져 내렸다.

리온과 로크가 활약하고 있는 바로 그곳이었다.

경호의 몸에서 강렬한 마력이 솟구치며 오른손에 들린 거대한 용아검에 새하얀 오러가 씌워졌다.

마력의 절삭력과 신력의 항마력, 정령력의 파사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오러였다.

“그럼, 썰어볼까?”

미르의 머리 위에서 경호는 대충 휘두르는 것 같은 모양새였지만 그의 일검에 마족과 마수들이 폭발하듯 갈려 나갔다.

그렇게 경호가 길을 내면 그곳으로 수많은 신수가 뒤를 따르며 자리를 채웠다.

늑대, 곰, 거북, 표범, 독수리, 코끼리 등 다양한 모습의 거대한 신수들이 평원을 달려오며 마족과 마수를 짓밟았다.

그렇게 정령계를 침입한 마계와의 마지막 전투는 생각보다 싱겁게 막을 내렸다.

***

경호가 거대한 정령석을 마법회로가 새겨진 바위 위에 꽂아 넣었다.

우우우우웅!

“이거 제대로 작동하는 건가?”

경호의 물음에 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계 전체에 결계가 쳐졌으니 이제는 마계와 연결된 던전이 생기지 않을 거다.

“아, 그냥 뒤탈 없게. 마계로 뛰어들어 모조리 죽이면 되는 거 아닌가?”

-안 되는 거 알면서 또 그 소리군.

인간과 다르게 신수와 정령들은 마기에 취약하기에 마계로 진입이 어려웠다.

물론 경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저 악마 새끼들이 마계에서 또 뭔가를 꾸밀 거 같아 짜증 나서 하는 말이지.”

사실 경호가 강해진 3년 전부터는 고위급 악마는 거의 넘어오지도 않는 추세였다.

-여하튼 고맙다. 경호. 너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마계를 이겨내지 못했을 거다.

“고맙다는 말, 백번도 더 들었으니 그만하고.”

경호가 주변에 날아다니는 작은 정령들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이런 것도 마지막이군.’

찌로롱. 키링. 코로롱.

정령들이 내는 아기새의 지저귐 같은 청량한 소리 어딘가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아마 경호와의 이별을 슬퍼하는 것이리라.

10년.

경호가 마계의 차원 침략으로 오염된 정령계로 소환되어 지낸 시간이었다.

엄마와 함께 식당일을 하던 25살 청년, 경호는 팔자에 없던 수호자가 되어야 했다.

원망과 분노도 10년이라는 긴 세월 속에 대부분 희석되었고 새로운 인연들로 그 빈자리를 채웠다.

-고마웠다. 경호.

미르가 감사의 인사와 함께 주먹만 한 무언가를 경호에게 내밀었다.

“세계수의 씨앗?”

-너의 고향에도 세계수 한 그루쯤 심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거 귀한 거잖아.”

-그러니까 선물이지.

씨앗을 건네는 미르의 얼굴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런 씨앗을 받아든 경호도 피식 웃었다.

“그래, 고향에 돌아가서 잘 키워보도록 하지.”

경호의 머릿속에서 지난 10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힘들고 외롭기도 했지만 즐거웠다.’

문득 떠오르는 모순된 감정에 피식 웃음을 터뜨린 경호는 아공간을 열어 세계수의 씨앗을 넣고는 미르와 다른 신수들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너희에게 많이 배우고 간다. 그동안 즐거웠다.”

크허허허헝!

신룡 못지않은 크기를 자랑하는 거대한 사자, 리온이 구슬픈 목소리로 포효했다.

경호를 바라보는 커다란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리온. 덩치는 산만 한 녀석이 이런 일로 울면 쓰나.”

크허허허헝!

경호는 리온의 앞발을 손으로 쓸어주며 말했다.

“에이, 울지 말고. 애들아, 리온 좀 말려봐.”

그러나 리온 주변의 다른 신수들도 모두 비슷한 표정으로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샤샤샤샤샤.

이무기라고 불릴 거대한 구렁이도.

끼이이이잉.

리온과 비슷한 덩치의 거대한 늑대도.

무으으우우.

거대한 뿔이 인상적인 커다란 들소도.

그밖에 수많은 신수(神獸)들이 하나같이 경호와의 작별을 슬퍼하고 있었다.

이 모두가 단순한 동물이 아닌 경호와 함께 악마와 사투를 벌인 동료이자 전우들이었다.

그들의 모습에 경호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괜히 정령들이 구슬프게 날아다니는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정령들아, 너희도 정말 고마웠다.”

미르가 그런 경호를 보며 말했다.

-아쉽지만 이별의 순간은 짧을수록 좋은 것이겠지. 준비됐나?

“그래, 이제 가야겠지.”

경호가 모두를 돌아보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고마웠다.”

악마와 마수들 틈에서 힘겹게 살아온 시간이 어느새 10년.

알게 모르게 이런 거친 생활에 적응된 자신이 지구의 평온한 일상에 새롭게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도 들었다.

그렇다고 유일한 가족인 엄마가 있는 지구를 포기하고 이곳에 남을 수는 없었다.

‘힘을 숨긴 채 평화에 적응하며 살 수 있을까?’

어릴 적 읽던 이고깽의 주인공처럼 살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긴 했다.

‘힘숨찐 귀환용사의 행운식당. 뭐, 이런 느낌으로 살아가면 되겠지.’

생각을 정리한 경호는 환하게 웃었다.

“나 진짜 간다.”

크릉! 키욱! 끼잉! 쿄우! 삐릭! 빼액!

신수들의 슬픔에 찬 다양한 울음소리가 대평원을 가득 채웠다.

“울지 말고.”

미르가 쥐고 있는 여의주에서 은빛 기운이 쏟아지며 경호의 몸을 감쌌다.

“다들 행복해라!”

경호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잠시 후 번쩍하는 빛과 함께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경호, 행복하게나.

미르가 다시 깊게 고개를 숙이며 경호의 앞날을 축복했다.

***

웨에에에에에엥!

요란한 소리가 도심 한복판에 울려 퍼졌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속보 뉴스가 뜨기 시작했다.

[균열경보! 균열경보!]

[긴급속보. 서울 섹터 B-4 구역 인근 균열 발생!]

[균열 파장 분석 결과, 2급 재난종 마수, 흑염마룡으로 예상됩니다.]

국가 단위의 피해를 입히는 멸망종 마수를 제외하고 가장 강한 등급인 재난종 그중에서도 상급인 2급 마수, 흑염마룡이 나타난다는 경보가 울렸다.

멸망종이 아니라고 하지만 던전 밖으로 나온 흑염마룡은 한 섹터를 지도에서 지워버릴 수도 있는 강력한 마수였다.

“으아아아아아아!”

길을 거닐던 많은 수의 시민들이 패닉에 빠진 표정으로 대피소라고 적인 팻말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부우우우웅! 끼이이익!

헌터본부 소속 균열 특수전담팀 차량이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뒤를 이어 대형 길드 소속의 헌터들도 점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친, 갑자기 2급 재난종 균열이라니! 군부대는 언제 도착하나?”

“10분 정도 걸립니다.”

“군부대가 올 때까지 최대한 버틴다.”

대한민국 요원 랭킹 7위, 김시원 특전팀 팀장은 엄청난 크기의 균열을 보며 긴장했다.

그때 30m가 넘는 거대한 균열이 어그러지며 엄청난 빛과 함께 마력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파열되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파열된다! 모두 준비해!”

긴박한 상황에 지상에 있던 이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균열은 하나가 아니었다.

30m가 넘는 거대한 균열 위로 작은 균열이 붙어있었다.

그 작은 균열이 파열되며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으. 차원이동은 ‘의식의 세계’보다 더 지독하다니까.”

정돈되지 않은 헤어스타일과 짙은 눈썹이 눈에 띄는 사내가 투덜거렸다.

바로 정령계에서 귀환한 최경호였다.

“어어. 이거 뭐야?”

보신각이 보이는 것을 보면 분명 자신이 10년 전에 사라졌던 종각역 부근이 분명 맞았다.

“완전 폐허잖아?”

하지만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10년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아직 남아있는 건물들이 있기는 했지만, 예전의 그 종로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

경호는 자신의 발아래에서 마력이 엉키고 있는 거대한 균열이 보였다.

“이건 또 뭐야? 균열?”

크아아아아아아!

어두운 균열 속에서 친숙하다 못해 지겨운 흑염마룡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나의 차원이동 때문에 마계의 마수가 딸려왔나?’

단순한 오해였지만 경호는 균열을 보며 주먹을 쥐었다.

그의 주먹으로 마력이 소용돌이치며 몰려들었다.

‘어? 이거 평소보다 좀 많이 약한데?’

정령계와 다른 환경이라 그런지 느껴지는 힘이 평소의 절반도 안 되는 느낌이었다.

특히나 신력이나 정령력은 거의 느껴지지도 않았다.

‘뭐, 그래도 흑염마룡의 균열 정도는 충분히 날릴 수 있으니까.’

경호가 주먹을 들어 눈부시게 빛나는 균열을 향해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아앙!

주먹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균열을 찢으며 나오는 흑염마룡을 균열과 함께 날려버렸다.

균열이 폭발하며 강렬한 빛과 함께 강력한 마력 파동이 사방으로 휩쓸고 지나갔다.

흑염마룡을 가볍게 처리한 경호가 사라지려 하는 순간.

[시스템 오류]

[수호신이 당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소환합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에 자리를 피하려던 경호가 멈칫했다.

우우우우우웅!

그런 경호의 눈앞에 마력이 모여들며 순백의 마법진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스템? 이거 뭐야?”

완성되어가는 마법진을 본 경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10년이나 정령계에서 구르다 지구로 귀환한 첫날 다시 소환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제법이긴 하다만. 이정도로 날 다시 끌고 가려고?”

예전 같으면 속수무책으로 소환당했겠지만, 이제는 그때의 경호가 아니었다.

경호가 손을 뻗자 마나로 이루어진 마법진이 놀랍게도 그의 손에 잡혔다.

마법계열 각성자가 봤다면 까무러칠 정도로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찌아아아아아악!

경호가 손에 힘을 주자 활성화되던 마법진이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서둘러야겠군.”

경호의 모습이 하늘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지상에 있던 이들은 균열이 부서지며 뿜어져 나온 강렬한 마력 파장에 경호를 보지 못한 채 몸을 숙이고 있었다.

“으윽! 이게 뭐야!”

마력 파동이 줄어들자 김시원은 고개를 들어 균열이 있던 자리를 쳐다봤다.

“규, 균열이 사라졌다고?”

갑자기 사라진 균열에 시원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분명 흑염마룡이 나오는 중이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팀원 중 하나가 황당한 표정으로 시원에게 말했다.

“팀장님. 이렇게 다 열린 균열이 갑자기 사라진 경우도 있습니까?”

“아니, 이런 경우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

시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균열이 사라진 하늘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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