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소년 오수 (4)
“모두들 무사해?!”
문 너머는 작은 공터였다.
허공에 생성된 수십 개의 문으로 소집 때 본 아이들이 하나둘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한 곳의 청소부가 죽으면 다른 도시도 그 손아귀에서 해방되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암천도시의 오수와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저마다 손에 총이 들려 있었다.
“여, 여기가 도시 밖이야?”
“아무것도 안 보여.”
“무서워…….”
공터로 먼저 나온 아이들이 다소 두려운 듯한 눈으로 어둠을 살피고, 강우와 함께 나온 소년 오수도 감격 반, 혼란 반이 섞인 눈으로 연신 두리번거렸다.
이윽고 마흔 명의 아이가 전부 모였을 때, ‘두 번째 형제’인 안대 쓴 오수가 인원 점검을 마치고 강우에게 다가왔다.
“정말로 청소부를 쓰러뜨릴 줄이야……. 모두를 대표해서 감사를 표한다.”
소년은 낮과 달리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유령들이 보이지 않았으나, 그들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잠시 후, 강우가 온통 암흑뿐인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이제 어쩔 생각이지?”
“우리 형제 중에 ‘길잡이’ 능력을 가진 친구가 있어. 모르긴 해도 그라면 분명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다.”
안 그래도 소년이 가리킨 방향에선 밀짚모자를 쓴 다른 오수가 이미 바닥에 엎드린 채 코를 킁킁대는 중이었다.
아마도 냄새로 무언가를 찾는 능력인 듯했다.
“우리 형제는 각자 하나씩의 능력이 있어. 나는 ‘통솔’이지. 내 말은 우리 모두에게 힘을 줘.”
“…그런가.”
그래서 아이들이 이 안대 쓴 오수의 말을 그렇게 잘 들었던 모양이다.
강우는 문득 아이들의 능력이 궁금해졌으나, 그것까지 전부 알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그들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이 탑으로 국한되어 있을 테니까.
또한 이들에 대해 더 잘 알게 돼 봐야 이별만 힘들어질 뿐이므로 강우는 애써 관심을 거뒀다.
“아저씨들은 어쩔 거지? 괜찮으면 우리랑 같이 가도 좋아. 우리도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아저씨들한테 호감을 갖고 있거든.”
안대 쓴 오수가 동행을 제안하자, 강우의 결정이 궁금해진 아이들의 시선이 주목됐다.
그중에는 그림을 그리는 소년 오수도 있었다.
다들 목을 길게 빼고 대답을 기다리는 그 모양새가 퍽 따듯하고 우스웠으나, 이미 강우는 마음을 굳힌 뒤였다.
“아니. 우리는 따로 갈 곳이 있다. 아마도 너희와는 다른 길이 될 것 같군.”
“그래? 아쉽네. 그래도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아저씨들이라고 이곳의 길을 다 알 리는 없을 테니까.”
안대 쓴 오수는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더 붙잡지는 않았다.
“한 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야.”
그는 강우를 향해 손을 건넸고, 강우도 스스럼없이 소년의 손을 붙잡았다.
작별의 시간이었다.
“여기다!”
그런데 그때였다.
소년들이 강우와 작별 인사를 나누는 와중에도 홀로 스컹크처럼 엉덩이를 이리저리 씰룩이며 냄새를 맡던 밀짚모자 오수가 화들짝 놀라 일어서며 소리를 질렀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리는 사이, 후다닥 달려간 밀짚모자 소년이 어둠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그러자 그곳이 부드럽게 움푹 들어가는 게 보였다.
“뭐야?!”
“벽이 아니야!”
“천 같은데?”
“끝이 안 보여!”
그저 어둠으로만 보이던 그곳이 사실은 암막 커튼이었던 것이다.
놀란 아이들이 그곳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사이, 줄곧 조용하던 레비아탄이 입을 열었다.
“불길한 예감이 든다.”
“…….”
강우는 대답 대신 천천히 <진(眞)피바라기>를 들어 올렸다.
저 암막 커튼 너머로 희미하지만 분명한 인기척이 그의 기감에 감지되고 있었다.
스르륵.
“오, 올라간다!”
“물러서!”
아이들이 암막 커튼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애쓰던 그때, 돌연 커튼이 천장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놀란 아이들이 황급히 물러서는 도중에도 느릿느릿 올라가는 게 꼭 스크린을 보는 듯했다.
“아…….”
이윽고 커튼이 전부 올라갔을 때.
강우도, 레비아탄도, 마흔 명의 소년 오수도… 모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암막 커튼 뒤에 서 있던 건 또 다른 소년 무리였다.
하나같이 오수의 얼굴을 가진 아이들.
그들 역시도 이쪽과 똑같이 각자의 손에 무기를 들고 있었는데,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말똥말똥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잠시.
침묵이 고함으로 변하는 건 찰나였다.
“저, 적이다!”
“해치워!”
탕! 탕!
상대편에서 먼저 총을 쏘자, 주변은 단번에 총소리와 비명, 신음으로 가득 메워졌다.
“뭐, 뭐야, 저놈들?!”
“억!”
“열두 번째야!”
“아, 아파……!”
삽시간에 총을 맞은 아이들이 피를 흘리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중에는 두 번째 형제인 안대 쓴 오수도 있었다.
그는 부여잡은 무릎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가운데도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았다.
“적이다! 절대 물러서지 마! 간신히 여기까지 왔다! 이곳만 넘으면 우리는 자유야!”
“으아아아!”
“더는 도망치지 말자! 싸우자!”
“어차피 쟤들도 꼬맹이야!”
이쪽의 반격이 시작됐다.
머리 크기에 맞지 않는 방탄 헬멧을 쓴 아이들이 쪼그려 앉아 총을 쏘고, 형제의 죽음에 분노한 몇몇은 악을 쓰며 총을 이리저리 휘갈겼다.
“열두 번째 형제의 복수다!”
“다 죽여 버려!”
탕! 탕!
두두두두두!
쉴 새 없이 오가는 고성과 총알 속에서 싸움은 더 격해졌다.
덩치 좋은 몇몇 오수가 소총을 든 채 상대편을 향해 달렸고,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배경 삼아 백병전이 일어났다.
그들은 서로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마저 알지 못하는 듯했다.
“그만둬, 이것들아!”
당황한 레비아탄이 소년들을 말리기 위해 분주히 나섰으나, 흥분한 아이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내 레비아탄이 멍한 얼굴로 강우 쪽을 향해 중얼거렸다.
“아, 아이들이 죽고 있다.”
강우도 그 말을 들었지만, 어떠한 판단을 내리기에는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다.
싸움을 말려야 하는가.
아니면 이쪽을 도와 함께 싸워야 하는가.
하지만 이 오수들은…….
강우의 시선에 그들의 죽음은 닿을 수 없는 아케론의 강 너머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그 순간이었다.
강우는 누군가가 자신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는 것을 느꼈다.
그는 아까 제 몸만 한 책을 들고 있던 안경잡이 소년이었다.
강우와 레비아탄이 밖에서 왔다고 말한…….
깨진 안경 한쪽에 피가 묻은 소년이 손을 벌벌 떨며 물었다.
“아저씨… 밖에서 왔죠?”
“…….”
강우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소년의 손을 잡아 주는 것뿐.
그러자 아이는 반대 손을 주머니에 넣더니,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작은 쪽지였다.
“이, 이걸 그 사람에게 전해 주세요.”
강우가 그게 누구냐는 듯 쪽지와 소년을 번갈아 바라보자, 아이가 힘겹게 말했다.
“우릴… 이곳에 가둔 사람이요.”
소년이 말하는 건 본체 오수였다.
강우는 잠시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고맙습니다……!”
그러자 소년은 할 일을 다 마쳤다는 듯 다시 제 형제들에게로 달려갔다.
“모두 힘내!”
비록 체구는 왜소했지만, 아이는 목청을 다해 형제들을 다독였고, 쓰러진 형제의 몸에 올라탄 적군의 머리를 향해 힘껏 책을 내리찍었다.
아까보다 피 흘리는 소년들이 더 늘어나 있었다.
보다 못한 레비아탄이 물었다.
“…어쩔 셈이지?”
강우는 곧장 대답하지 않고 여전히 필사적으로 서로와 싸우는 여든 명의 오수를 지켜보았다.
암천도시에서 유령들의 몸을 그려 주던 소년 오수는 총을 맞았는지 두 손으로 목을 움켜쥔 채 피를 토하고 있었다.
쿨럭―
문득 소년의 시선이 강우에게 닿았다.
소년은 여전히 턱밑으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강우를 향해 무언가를 말하고자 입을 연신 뻐끔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이가 말하고 있는 건 ‘고마워요’였다.
강우는 소년의 눈빛에서 진한 피 냄새를 느꼈다.
사방이 온통 비명과 첨벙이는 피 웅덩이 소리뿐이었다.
그 아우성 속에서 강우는 들고 있던 쪽지를 열어 보았다.
그곳에 적힌 건 짤막한 두 문장이었다.
『살고 싶어. 우릴 버리지 마.』
“…….”
강우는 곧 몸을 돌렸다.
“나간다.”
그는 이제 탑을 더는 오르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 탑은 오수의 상처들로 가득해서, 더 남아 있어 봐야 정신만 피폐해질 뿐이니까.
고작 두 개의 층을 올랐을 뿐인데도 벌써부터 체하기라도 한 것처럼 온 가슴이 먹먹했다.
츠츠츠츳!
강우는 <진(眞)피바라기>를 서서히 허공에 그었다.
이미 ‘균열 찢기’는 수도 없이 한 터라 공간을 가르는 건 익숙했지만, 이렇게 쉽게 열릴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처음부터 이 공간엔 강제성이 없었나.
곧 검은 마력이 공간을 가르자, 그 안으로 거대한 오색 빛깔 우주가 보였다.
그곳으로 들어서기 직전, 레비아탄이 두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이, 이건 대체…….”
하지만 뒤에선 여전히 소년병들이 죽어 가는데 감상이나 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강우가 우주 안으로 발을 들이자, 뒤늦게 레비아탄도 그를 따랐다.
이어서 그들의 몸은 우주를 부유했다.
시간은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으면서도, 억겁의 세월처럼 느리게 흘러가는 것도 같았다.
우주를 감상할 새도 없었다.
어느새 강우의 시야와 모든 정신은 오수가 탑에 남긴 수많은 기억의 파편들로 범람했으니까.
그간 보지 못한 죽음들이 강우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중에는 전쟁 통에 산속에 숨어 나무껍질로 연명하는 아이들이 있었고, 이미 죽어 버린 부모를 기다리다 아사한 아이들이 있었으며, 내란 중에 가족들이 죽어 버린 소년과 제 눈앞에서 죽은 사람들의 환영에 시달리는 남자도 있었다.
또 제 부모에게 손수 나무에 묶여 매질당한 소년, 그리고 부인과 자식을 잃고 방황하는 사내도 있었다.
“…….”
그것들이 오수가 남긴 기억의 ‘전부’는 아닐 터였다.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겠지.
하지만 강우가 탑을 빠져나가는 동안, 그것들은 하나의 장편 영화처럼 머릿속에 계속해서 재생되었다.
이윽고 그 영화가 멈췄을 때.
강우는 탑의 입구에서 여전히 같은 자세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데스 나이트>를 만날 수 있었다.
이제는 그 속을 알고 있는 검은 투구 속에서 낮은 음성이 울려 퍼졌다.
[…왔군.]
검은 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