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헌터-150화 (151/186)

[150화] 소년 오수 (2)

우선 강우는 소년 오수에게 본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굳이 상황을 더 악화시킬 필요는 없으니까.

물론 입을 다무는 대가로 강우의 머릿속은 아까보다 조금 더 복잡해졌다.

‘그들이 스스로 소멸하게 만들 방법…….’

강우는 계속해서 고심했지만, 좋은 방법은 찾지 못했다.

“우리 도시는 매일이 밤이에요. 그래서 암천도시라고 불러요.”

소년 오수와 유령 친구들이 사는 이 도시의 이름은 암천도시(暗天都市)였다.

청소부가 사라진 암천도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로웠다.

몇몇 동료가 놈에게 먹혀 버린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소년 오수와 유령들에게 그런 식의 이별은 이제 익숙했다.

오수는 다시금 다친 유령들의 몸을 그려 주었고, 도시 온 천지에는 크고 작은 유령들이 낄낄거리며 풍선처럼 나부꼈다.

“참으로 아름답지 아니한가. 정말 기묘한 도시다.”

폐건물 잔해에 걸터앉은 레비아탄은 오수가 준 정체불명의 차를 홀짝이며 하늘을 구경했다.

그의 두 눈이 유령들이 흘리는 형형색색의 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흡사 폭죽놀이를 보는 듯했다.

“지옥이 이런 모습이었다면, 굳이 그렇게 필사적으로 탈출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그 말을 듣고 있자니, 강우는 문득 그가 말하는 ‘지옥’이 궁금해졌다.

레비아탄은 지옥을 다녀왔다고 했다.

지옥이란 게 정말 존재하는 건가?

“지옥에 대해 들려줄 수 있나?”

의외로 레비아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내 이야기를 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

괜한 소리를 꺼냈나.

강우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 예감을 느꼈지만, 어차피 지금은 할 것도 없었다.

강우가 옆에 앉자 잠시 고민하던 레비아탄이 이윽고 말을 꺼냈다.

“내가 경험한 지옥은 구정물이었다.”

“…구정물?”

그의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단어로 시작되었다.

“그래, 구정물. 처음 지옥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부터 말해야겠군. 나는 우리 부족에게 있어 이단아였다. 어릴 적부터 영혼을 볼 줄 알았거든.”

레비아탄의 다섯 번째 생일날.

그는 처음으로 ‘영혼’이란 존재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날은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어. 내가 처음 본 영혼들은 내 탄생일 기념으로 잡은 염소 위에서 떡을 치고 있었거든. 어찌나 자세가 기괴하던지… 마계 전체를 홀렸다는 무희도 그렇게까진 못할 거다. 아, 걔들은 사내 둘이었지.”

“…….”

“어쩌면 그래서 내가 남녀 구분 없이 사랑하는 평화와 화합의 전사가 됐는지도…….”

어쩐지 자신을 바라보는 레비아탄의 눈빛이 묘한 것 같아 강우는 시선을 돌렸다.

그 반응에 피식 웃은 그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날로 나는 매일 영혼들과 놀았다. 어떤 날은 산이며 들이며 밤새 뛰논 적도 있었어. 하지만 가족들은 내 말을 믿지 않았지. 그들은 내게 악령이 깃들었다며 대사제 앞으로 끌고 갔다.”

대사제가 레비아탄의 가족들에게 내놓은 해결법은 바로 ‘비명’이었다.

“우리 부족은 사람의 목소리엔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보통 악령이 깃들었다는 소문이 나면 그자를 붙잡아 나무에 매달고는 냅다 몽둥이로 후려갈기지.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할 때마다 악령이 그것을 못 견디고 달아난다는 거야.”

아말샨 족에게 대사제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레비아탄의 가족들은 그 즉시 다섯 살짜리 아이를 마을 어귀의 나무에 묶었고, 냅다 몽둥이질했다.

그들에겐 일말의 죄책감도, 죄의식도 없었다.

그건 제 아들을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므로.

“의식이 끝나면 열에 아홉은 죽는다. 그중 하나는 겨우겨우 살아남아도 열흘을 채 못 넘기고 죽고. 나도 꼼짝없이 죽을 운명이었지.”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여섯 번째 몽둥이질에 정신이 희미해지던 그때, 의식을 지켜보던 누군가가 나선 것이다.

“그자가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자가 나를 구했다는 거지. 그는 요술을 부려 순식간에 대사제와 가족들을 잠재우고 날 빼돌렸다.”

그자가 바로 개의 얼굴을 한 본체 오수였다.

돌연 레비아탄을 구한 그는 이상한 말을 했다.

“나에게 이곳에 남을지, 아니면 지옥으로 갈지 정해야 한다고 했지. 난 당연히 지옥으로 간다고 했다. 우라질, 이미 팔다리가 다 부러져서 정할 것도 없었어. 그가 날 버리고 가면 난 필시 죽을 테니까. 물론, 그 지옥이 진짜 지옥인지는 몰랐지만.”

그렇게 레비아탄은 지옥으로 떨어졌다.

삽시간에 어두워진 시야 속에서 레비아탄은 끊임없이 나타나는 구울과 썩은 내 나는 정체불명의 괴물들에게 쫓기고 또 쫓겼다.

그중에는 그가 ‘검은 먹보’라 부르는 괴물도 있었다.

주변은 온통 암흑이고, 바닥은 시궁창 냄새가 나는 구정물뿐이었다.

“먹을 거라곤 그 구정물과 썩은 시체뿐이었다. 처음에는 구역질도 나고, 복통에도 시달렸는데… 이상하게도 먹으면 먹을수록 견딜 만했다.”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는 레비아탄도 알지 못했다.

다만, 그 지옥을 벗어났을 때.

비로소 그는 자신을 구해 준 사내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분명 지옥에 갈 때는 소년의 몸이었는데…… 나와 보니 털이 다 자란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날부터 나는 그에게서 사령술을 배웠다. 언젠가 다 써먹을 곳이 있다고 했지. 그 뒤는 네가 아는 대로다. 나는 망자들을 다룰 수 있게 되었고, 다시 대지로 올라왔으며, 내 부족은 모두 죽었다. 그리고 그 정체불명의 섬에서 널 다시 만났지.”

긴 이야기를 마친 레비아탄의 눈빛이 착 가라앉아 있었다.

평소의 그와는 달리 침착한 분위기였다.

“나는 내 부족을 멸족시킨 놈들을 찾아낼 것이다.”

그것은 부족민을 대신한 복수가 아니었다.

“지옥에서 지내면서 나는 나무에 날 묶은 자들을 몇 번이고 곱씹으며 떠올렸다. 만약 되돌아가면 놈들을 죽이기 위해서. 그걸 가로챘으니, 대가를 치러야겠지.”

복수의 대상을 앗아 간 자에 대한 복수였다.

그리고 이제는 부족민을 해친 ‘호공’이 석탈해의 사도라는 것도 알았다.

그의 복수의 대상은 어느새 석탈해가 되어 있었다.

“나는 우리가 같은 적을 두었다는 게 좋다. 난 네가 마음에 들었거든. 대한족의 다른 전사들도 나쁘진 않았지만, 너 같은 위용을 보여 주진 못했다. 넌 죽음, 그 자체다.”

레비아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분명 우린 좋은 콤비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본체 오수라는 자가 내게 사령술을 가르쳐 준 건, 이런 상황을 예견한 건지도. 인정하긴 싫지만, 그는 우리와는 다르다. 이 괴상한 탑을 세운 것만 봐도. 그는 신이야.”

“…….”

강우는 어느새 레비아탄이 내민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하나 그를 너무 믿지는 말아라. 그의 호의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니까. 나를 봐라. 난 그에게 목숨을 빚진 대가로 사후를 바쳤다. 나는 죽게 되면 그 지옥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지옥으로?

무슨 소리냐는 듯 바라보자, 레비아탄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곳에 있던, 썩은 내 나는 괴물도 한때는 인간이었던 거지. 나는 복수할 기회를 얻은 대가로 죽음 이후를 그곳에서 보내기로 했다. 너는 그러지 마라. 달아나라. 그가 그 어떤 달콤한 제안을 하더라도 단물만 빼먹고 달아나라.”

* * *

다음 날.

소년 오수의 말대로 보름달이 떴다.

기이한 일이었다.

보름달이 비치기 무섭게 온 도시가 뒤틀렸다.

회색 건물이, 콘크리트가, 시멘트가 믹서기에 넣어진 과일처럼 뭉개지며 재구성됐다.

그리고 이윽고…….

강우와 레비아탄, 소년 오수는 처음 보는 목제 건물 안에 들어서 있었다.

흡사 중세 시대 주점과도 비슷한 장소였다.

‘저자들이…….’

강우는 어느새 이 공간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소년 오수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아이들이라고 했지만, 막상 그들의 나이는 제각각이었다.

대략 다섯 살부터 스무 살 정도로 분포된 듯했다.

강우와 레비아탄은 소년 오수가 자신들을 소개할 때까지 잠시 뒤에 물러서 있어야 했다.

소년들의 숫자는 약 마흔 명쯤.

너나 할 것 없이 꾀죄죄한 몰골인 그들은 소년 오수의 말을 들으며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모든 설명이 끝났는지, 소년 오수가 다가왔다.

“인사해요. 여기 모두가 각자의 도시를 사는 아이들이에요.”

강우와 레비아탄이 앞으로 나서자,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몇몇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으나, 대부분은 경계심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중 오른쪽 눈에 검은 안대를 한 오수가 다가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그래, 다른 도시에서 왔다고?”

나이는 열여덟 살쯤?

체구가 제법 단단해 보이는 소년이었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자신의 버클을 양손으로 잡으며 다시 물었다.

“도시 이름이 뭔데?”

퍽 건방진 태도였다.

잠시 고민하던 강우가 입을 열었다.

“섬이다. 섬 도시.”

“…섬 도시?”

소년이 처음 듣는다는 듯 고개를 까닥였으나, 당연히 들어 봤을 리 없었다.

그건 강우가 대충 둘러낸 이름이었으니까.

지금 이 소년들은 이 도시가 세계의 전부라고 알고 있었다.

이 도시 바깥에 무엇이 존재하는지는 그들도 모르는 일.

자신들이 본체 오수의 ‘기억 파편’이라는 것도 모르는 듯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강우는 아까부터 자신을 유심히 지켜보는 한 아이를 발견했다.

얼굴에 비해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쓴 소년은 내향적인 성격인지, 눈을 마주치자 들고 있던 두꺼운 책에 얼굴을 묻었다.

아이를 더 살필 새도 없이 안대 쓴 소년이 다시 말을 걸었다.

“그런 도시는 들어 본 적 없어. 그 도시에서 어떻게 암천도시로 넘어왔지?”

“이유는 우리도 모른다. 그곳은 작은 섬마을이었는데, 숲 귀신, 물귀신이라는 괴물들이 살았다. 놈들을 죽이자 이곳으로 오게 됐다. 그 섬은 찬찬히 부서져 무너지더군.”

강우의 말에 작은 소란이 일었다.

괴물을 죽였다는 말에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괴물을 죽였다고? 설마 청소부를 말하는 건가?”

“하지만 섬이라잖아.”

“섬이 뭔데?”

“사면이 물로 둘러싸인 지형이야. 하지만 형제 중 그 누구도 바닷가나 강에 사는 자는 없는데…….”

“여기는 모두 사막 아니면 초원이잖아.”

소란이 점차 커지자 보다 못한 안대 쓴 소년이 소리쳤다.

“모두 조용히 해!”

아마도 그가 이 모임의 리더 격인 듯했다.

소년의 말 한마디에 주변이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해졌다.

강우를 노려보던 그가 물었다.

“그 귀신들이라는 거… 어떻게 생겼지?”

“하나는 커다란 원숭이였고, 다른 하나는 작은 도롱뇽이었다.”

“…잠시 기다려. 모두 모여 봐!”

안대 쓴 소년이 아이들을 부르고, 그들은 저 뒤편에 모여 회의를 시작했다.

레비아탄이 그 모습을 귀여운 듯 바라보는 사이, 강우는 천천히 귀에 마력을 집중했다.

“그런 괴물들은 처음 들어 봐. 거짓말 아니야?”

“저들은 어른이야. 어른이 이곳에 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다른 도시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도 처음 듣는 일이야.”

“하지만 저자들은 보름달이 뜨기 전에 암천도시에 들어왔어.”

브레인 스토밍에 가까운 아이들의 회의는 한 시간이 넘어가도록 계속되었다.

이곳에 모여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여섯 시간 남짓이라고 했는데… 설마 그 시간을 다 쓸 생각인가.

더 엿듣기를 포기한 강우가 바닥에 자리 잡은 사이, 레비아탄도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속삭였다.

“여기에 그 청소부란 몸이 나타나면 전부 일망타진일 텐데. 겁대가리들이 없어.”

“…….”

“그런데 말이야, 넌 왜 탑을 오르는 거냐?”

“…무슨 뜻이지?”

“나야 널 따라다니면 그 석탈해란 놈을 만날 수 있으니까 같이 다니는 거지만, 너는? 넌 왜 이 귀찮은 짓거리를 다 해 가면서까지 탑을 오르느냐고.”

탑을 오르는 이유?

그건 간단했다.

이 탑에 사는 모든 오수를 소멸시키고, 그 힘을 흡수하기 위해서.

내키진 않아도 그게 본체 오수가 자신에게 힘을 남긴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것까지 레비아탄에게 알려 줄 이유는 없었다.

행여 그가 딴마음을 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레비아탄의 다음 말은 강우에게 있어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한 말이었다.

“나 같으면 이 골치 아픈 탑을 오르기 전에 부숴 버렸을 거다. 산을 굳이 다 정복할 필요가 있나? 오르기 귀찮은 산은 없애 버리면 그만인 것을.”

검은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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