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헌터-149화 (150/186)

[149화] 소년 오수 (1)

강우는 자신이 성급했음을 인정했다.

“…미안하군.”

그는 다짜고짜 <살(殺)>을 날린 것을 소년에게 사과했다.

마물이므로 당연히 처치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도시를 가득 채운 언데드는 단순한 마물이 아니었다.

강우의 사과를 받은 소년은 여전히 ‘그리기’에 집중하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괜찮아요. 저라도 갑자기 수천의 덩치들이 튀어나와서 절 관찰하면 놀랄 것 같으니까요. 그래도 이건 조금 심하긴 했어요. 얜 이제 태어난 지 닷새밖에 안 된 아기인데…….”

“…….”

마물들은 언데드가 아닌 유령에 더 가까운 존재였다.

강우는 소년에게 팔을 붙들려 훌쩍이고 있는 파란 유령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약 삼십여 분 전.

강우가 처음 <살(殺)>을 쏘았을 때, 검은 쐐기를 맞은 유령이 낸 소리는 예상한 ‘카아아악!’ 따위가 아닌, ‘으아아앙!’이었다.

그들은 단순히 강우와 레비아탄이 궁금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처음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은 이유는 갑자기 나타난 두 사람이 ‘두려워서’라고 했다.

‘마물과 친구라니.’

소년의 말에 따르면, 이 유령들은 그의 친구였다.

이윽고 신중하게 그림을 그리던 소년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아, 됐다!”

꺄르르!

소년이 크레파스로 팔을 그려 주자, 파란 풍선 같은 커다란 유령이 다시 생겨난 팔을 신나게 흔들며 소리 내어 웃었다.

강우의 <살(殺)>로 인해 팔을 잃은 유령이었다.

녀석이 저 먼 하늘 위로 날아가는 사이, 여전히 소년의 앞으로는 강우에게 몸의 일부를 잃은 유령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모두가 제각각의 외양을 가진 유령들.

그중 몇몇은 강우를 두려운 듯 바라보았고, 몇몇은 화가 난 듯 노려보았으며, 몇몇은 눈물을 찔끔 흘리고 있었다.

“보아라, 대한족의 전사여! 나는 이미 수천의 친구들을 얻었다!”

어느새 레비아탄은 들고 있던 대검마저 집어 던진 채 수십의 유령들과 방방 뛰놀고 있었다.

서로 어깨동무한 채 빙글빙글 도는 게, 꼭 강강술래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강우는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이미 예상했듯 소년의 이름은 오수였다.

그렇다는 건, 지금 눈앞에서 열심히 유령들을 ‘그림 치료’ 중인 저 아이도 자신이 소멸시켜야 한다는 뜻이었다.

‘골치 아프게 됐군.’

숲 귀신의 숲에서도 아이들을 해치지 않은 자신이다.

강우는 어떻게 해야 소년 오수가 스스로 소멸하게 만들지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쿠구구구!

“뭐, 뭐야?!”

갑작스러운 천둥소리에 놀란 레비아탄이 하늘을 살피는 사이, 강우 역시도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려온 쪽을 쳐다봤다.

하지만 소년 오수는 달랐다.

“모두 서둘러!”

그는 이 사태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는 듯, 황급히 외치며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저씨들! 이쪽이에요!”

순식간에 분위기가 다급해졌다.

놀란 유령들이 사방에서 비명을 지르며 난리를 치고, 혼비백산 오수를 따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뭔가가 나타났다.’

강우는 오수를 따라 달리며, 뒤편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운을 감지했다.

“레비아탄!”

“알겠다!”

나름 두 달간 함께한 덕분인지, 레비아탄과 강우도 뜻이 통하는 바가 있었다.

강우의 외침에 레비아탄이 서둘러 자신의 사령 하나를 소환했다.

곧 본래 드래곤보다 약 1/10쯤 될 법한 미니멀 <스컬 드래곤>이 바닥에서 튀어나왔다.

레비아탄이 녀석에게 말했다.

“내 부름에 응한 그대여, 뒤를 확인해라!”

까악!

미니멀 <스컬 드래곤>은 마치 까마귀와 비슷한 울음소리를 내며 뒤편으로 날아갔다.

기척이나 분위기 같은 감각을 공유하는 <검은 개체>와 다르게, 레비아탄의 소환수들은 시야까지도 소환자와 공유했다.

이윽고 뒤를 확인한 레비아탄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대, 대한족의 전사여, 아무래도 우린 좆 된 것 같아!”

“뭘 봤는지만 똑바로 말해라.”

“거, 검은 먹보가 나타났다!”

“검은 먹보?”

강우가 무슨 소리냐는 듯 돌아보자, 평소 창백한 레비아탄의 얼굴이 어느새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 그래! 씨팔! 어떻게 저놈이 이곳에……! 놈은 지옥의 괴물 중 하나다! 눈에 보이는 건 닥치는 대로 처먹는 놈인데, 먹으면 먹을수록 덩치를 불려 나가 종국에는 대륙까지 삼킬 수 있는 대괴물이 돼! 내가 저 새끼한테 얼마나 시달렸는데…… 여기에 왜 또 있는 거야?!”

강우가 그 존재를 상상하는 사이, 어느새 두 사내에게 따라잡힌 오수도 설명을 보탰다.

“청소부예요! 우리를 쓰레기로 보는 놈이죠!”

그러는 사이, 오수는 잽싸게 폐건물 잔해들을 뛰어넘어 한 건물에 들어섰다.

반쯤 부서진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문에 매달리다시피 한 오수가 밖을 향해 황급히 손짓했다.

“모두 들어와!”

들어선 강우와 레비아탄이 각각 벽면에 몸을 붙이는 사이, 좁은 문 안으로 수백의 유령들이 그야말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각양각색의 유령들이 일제히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3층 건물 높이만 하던 유령도, 손바닥만 하던 유령도 모두가 긴 요술 풍선처럼 몸을 늘려 크기를 맞췄다.

“저, 저길 봐!”

그때, 유리가 없는 창으로 밖을 살피던 레비아탄이 크게 외치며 손가락질을 했다.

강우가 슬며시 고개를 내밀자, 그가 말한 ‘검은 먹보’의 얼굴이 보였다.

저 모습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놈은 흡사 살이 뒤룩뒤룩 찐 검은 황소의 모습이었는데, 직립 보행을 하고 있었다.

그 우악스러운 손길에 붙잡힌 유령들이 속절없이 입속으로 향하고 있었다.

“레오! 세이!”

소년이 애타게 친구들의 이름을 불렀으나, 그것이 전부일 뿐.

유령들은 비명조차 다 지르지 못하고 놈의 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느새 유령들을 잡아먹은 청소부의 크기가 건물 4층 높이까지 커져 있었다.

“저건… 절대 상대 못 해.”

레비아탄은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듯 입술을 깨문 채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놈은 이 건물에 숨은 그들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어느새 전부 손바닥만 하게 변한 유령들이 뒤편에 모여 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강우는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안전지대… 같은 건가?’

쿵! 쿵!

이윽고 포식을 끝낸 청소부는 축 늘어진 엉덩이를 흔들며 어딘가로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놈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강우가 물었다.

“설명이 필요하군.”

“…….”

소년 오수는 침울한 표정이었으나, 한두 번 있는 일은 아닌지 패닉에 빠지지는 않았다.

끼릭끼릭―

오수가 뒤편으로 걸어가자, 유령들이 양옆으로 흩어지며 길을 만들어 주었다.

마침내 무릎 높이까지 무너진 건물 벽에 다다른 오수가 그곳에 걸터앉았다.

무릎에는 깍지 낀 양팔을 대고 상체는 숙인 채 그가 입을 열었다.

“아까 말했듯이 우리는 놈을 청소부라고 불러요. 언젠가 놈이 입을 연 적이 있는데, 그때 우리를 향해 쓰레기라며… 청소해야 한다고 했거든요.”

“…….”

“보셨듯이 저와 아이들의 먹어 치우고요.”

분노인지, 슬픔인지 모를 감정으로 오수의 등이 작게 떨렸다.

“우린 놈과 전쟁 중이에요. 지금처럼 덩치가 불어나면 상대할 수 없지만, 놈이라고 늘 우리를 먹어 치울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게 언제지?”

“문이 닫혔을 때요.”

“…문?”

오수의 말은 이랬다.

폐허가 된 이 회색 도시에는 이틀에 한 번 ‘문’이 열리고, 그곳을 통하면―아마도―이 도시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청소부였다.

놈은 문이 열려 있는 동안 활동했는데, 그 타이밍을 보면 놈은 오수가 문을 넘어가는 것을 막는 ‘문지기’ 역할을 수행 중일 확률이 높았다.

“문이 닫혀 있는 시간 동안에는 놈도 그저 일반 괴물에 불과해요. 물론, 그때라고 상대하기 쉬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를 먹거나 덩치를 불리지는 못해요.”

“그렇다면 그동안 처치하지 못한 이유는 뭐지?”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소년 오수가 이곳에 갇혀 있은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이들은 본체 오수가 빼낸 ‘기억의 파편’.

오수가 어린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오래된 기억이라는 뜻이었다.

“이유는 세 가지예요. 첫째는 놈이 재빠르다는 것, 둘째는 놈이 위급하면 땅을 파고든다는 것, 셋째는 더 위급할 때는 삼킨 아이들을 하나씩 토해 낸다는 것.”

그제야 강우는 어린 오수가 청소부를 처리하지 못한 이유를 깨달았다.

“너… 놈이 네 친구들을 다 토해 낼 때까지 이곳에 머무를 생각이었군.”

“…….”

정곡을 찔린 듯 오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애초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정확하게는 알지 못했으나, 잡아먹힌 유령들이 놈이 토해 낸 숫자보다 한참 더 많을 테니까.

악순환이었다.

놈은 한 번 나타날 때마다 수십의 유령을 잡아먹고, 달아날 때는 몇몇 유령만을 뱉어 내고 도망친다.

그 배 속에 머무르는 유령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식으로 해서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소년 오수는 강우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아니요. 저는 다 구해 내고 말 거예요.”

고집스러운 소년이로군.

강우는 더 이야기하기를 멈추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오수가 말한 ‘문’이었다.

그곳으로 나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오수가 뱉은 다음 말이었다.

“저는 반드시 이곳을 탈출할 거예요. 저 말고도 청소부에 시달리는 다른 아이들을 알아요. 걔들과 힘을 합치면 분명 방법이 있을 거예요.”

“…다른 아이들이라고?”

“예. 저와 똑같이 생긴 아이들이요.”

그 말을 들은 레비아탄도 슬며시 강우 쪽으로 고개를 돌려 눈치를 살폈다.

의아해진 강우가 물었다.

“그 아이들을 만날 수가 있나?”

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우리는 다른 도시로 넘어갈 수 있는 권한이 생겨요. 그때 다들 한 도시에 모여요.”

기묘한 일이었다.

탑이 보여 주는 세계 하나하나를 ‘층’으로 표현한다면, 지금 오수가 말하는 건 다른 층의 오수들끼리 만날 수도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어쩌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탑의 등반을 한 번에 클리어할 수 있을지도 모를 좋은 소식이었다.

강우가 다시 물었다.

“그게 언제지?”

“내일이요. 이번에는 기필코 청소부를 죽이고 아이들과 이곳에서 나갈 거예요. 그리고 반드시…….”

소년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우릴 이곳에 가둔 놈에게 복수할 거고요.”

“…….”

“모두들 다짐했어요. 우릴 가둔 놈을 만나면 각자 한 번씩 찔러 죽이기로요.”

소년 오수가 보여 주는 강한 결의에도 강우는 말을 아꼈다.

섬에서 만난 오수는 탑을 빠져나가려는 자들을 경계한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그가 말한 ‘반군’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했다.

소년 오수가 죽이기로 한 사람.

그는 바로 본체 오수였다.

이윽고 오수가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러니… 도와주세요, 아저씨.”

검은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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