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섬의 손님 (3)
레비아탄의 <스켈레톤> 부대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풀렸다.
오뚜기처럼 일어선 해골병들이 도마뱀들을 점차 밀어내는 가운데, ‘물귀신’을 잡아온 건 다름 아닌, 강우의 가슴 높이만 한 키를 가진 <스켈레톤>이었다.
그 앙상한 손에 붙들린 도롱뇽이 열심히 발버둥을 치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아등바등해도, 놈은 그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게 이 도마뱀들을 움직인 주범인가? 신기하군.”
레비아탄이 <스켈레톤>에게서 물귀신을 건네받았다.
꼬리를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붙잡은 레비아탄이 놈을 눈높이까지 들어 올려 그 외양을 자세히 살폈다.
거꾸로 매달린 도롱뇽이 여전히 몸부림을 치는 사이, 그가 혀로 입술을 핥으며 중얼거렸다.
“영물을 먹으면 그 힘을 얻을 수 있다던데…….”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그 말에 강우가 서둘러 물귀신을 낚아채려던 찰나.
갑자기 레비아탄의 눈동자가 동요하듯 떨렸다.
“…어?”
물귀신과 눈을 마주쳐 버린 것이다.
그러자 레비아탄은 당황한 표정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다.
“……!”
다행히 손도 함께 굳어져 버린 탓에 물귀신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강우는 레비아탄에게서 놈을 유유히 빼앗을 수 있었다.
“저쪽 언덕 위에 초가집이 있다. 그곳으로 와라.”
“우… 우……!”
레비아탄이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입이 굳어 버린 탓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자가 어떻게 여기로 온 거지?’
사실 강우도 레비아탄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그러나 현재 상태로 봐서는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으므로, 질문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그는 몸이 굳어 옴짝달싹못하는 레비아탄을 뒤로한 채 오수의 집으로 향했다.
* * *
“믿기지 않는군.”
오수는 막 잠에서 깬 듯한 얼굴이었다.
그가 부스스한 몰골의 헝클어진 머리를 이마 위로 쓸어 넘기며 말했다.
“이렇게 일을 빨리 해결할 거라고는 정말 생각지 못했소. 과연 내 본체가 괜히 당신을 택한 게 아닌 모양이구려.”
“…….”
오수는 붙잡아 온 물귀신을 작은 유리병 안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이십 년간 잡지 못한 괴물을 마주한 것치고는 딱히 감격한 얼굴은 아니었다.
그러는 사이, 저 멀리서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스컬 드래곤>을 발견한 오수가 중얼거렸다.
“손님이 또 왔구려.”
이윽고 마당에 착지한 <스컬 드래곤>의 등에서 레비아탄이 내렸다.
그는 아직 마비가 다 안 풀렸는지 한쪽 다리를 뻣뻣하게 편 채절뚝절뚝 걸어와 강우에게 성화를 냈다.
“기껏 도와주었흐어더니 그렇게 가 버리면 어쩌자흐 거지? 원래 대한조흐의 전사들은 그렇게 배은망덕흐한가?”
입도 아직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은 듯 발음이 샜지만, 말을 알아듣기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강우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효율을 추구한 것뿐이다.”
“효율? 효율은 개뿌흘!”
레비아탄이 어이가 없다는 듯 소리를 지르려던 그때.
다행히도 오수가 그의 입을 막았다.
“어서 오시오. 나는 이 섬에서 사는 오수라고 하오.”
“…오수라고?”
그러자 레비아탄이 멈칫하더니, 이내 아리송한 얼굴로 오수의 얼굴과 몸을 눈으로 훑었다.
관찰을 마친 레비아탄이 물었다.
“목소리는 비스흐한데… 혹시 당신이 내게 사령술을 가르쳐 준 존재인가?”
“사령술이라…….”
하지만 오수는 그 사실을 모르는 듯한 얼굴이었다.
한참이나 기억을 더듬던 그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난 당신을 알지 못하오. 아마도 날 만났다면, 그것은 내가 이 탑에 들어온 후의 일이겠지.”
“탑에 들어온 후의 일?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나는…….”
레비아탄이 오수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강우는 오수가 말하는 ‘이 탑의 정체’에 대해 또 한 번 들어야만 했다.
오수의 이야기를 다 들은 레비아탄이 크게 감탄했다.
“기억을 따로 저장해 둘 수 있다니… 실로 놀라운 경지가 아닌가!”
“그리 감탄할 것도 없소. 그것은 본체의 능력이지, 내 능력은 아니니까. 나는 이 대륙과 함께 남겨진 파편에 불과하오.”
하지만 레비아탄의 생각은 달랐다.
“무슨 소리! 이미 이 대륙을 담당한다는 것부터가 엄청난 것이다. 모름지기 전사란 너무 겸손해서도 안 되는 법. 넌 자신의 가치를 잘 모르고 있군.”
그 말에 오수는 그저 빙그레 웃었다.
강우가 짐작하건대, 그도 레비아탄이 말이 통하는 인간이 아니라는 걸 직감한 듯했다.
“아무튼 새로운 행성으로 온 걸로도 모자라 이런 환상의 세계에까지 도달하다니! 나 망자왕 레비아탄,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공이지 않은가! 바로 이것이 호연지기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움하하핫!”
레비아탄은 허리에 양손을 얹고 크게 웃어 젖혔다.
그는 정신병이 있는 게 분명했다.
강우는 짐짓 어지러움을 느끼곤 오수에게 물었다.
[저자는 어떻게 들어온 겁니까?]
[글쎄, 아무래도 데스 나이트가 들인 것 같소만. 그는 유일하게 본체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자. 아마도 본체의 입김이 있던 것 같군. 정말로 본체가 저자에게 사령술을 가르쳤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인연이 있다는 뜻이니까 말이오.]
‘충분’한 인연이라…….
본체 오수가 레비아탄에게 사령술을 가르친 데에는 분명 또 다른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는 자신이 ‘선(善)’이라고 생각하는 일만 행하는 존재니까.
혹시 본체 오수는 오늘의 일도 예견한 건 아닐까.
그때, 웃음을 그친 레비아탄이 말했다.
“그나저나 조금 허기가 지는데……. 호화 절경도 식후경이라고, 먹을 것이 있으면 좀 나눠 주면 좋겠군. 비록 내가 직접 찾아왔지만, 엄연히 나는 손님이니까 말이야.”
결국 그들은 레비아탄 덕분에 다소 이른 점심을 먹어야만 했다.
점심 메뉴는 어제 먹다 남은 돼지고기였다.
멧돼지라서 그런지 고기는 조금 질겼는데, 추가로 누린내가 약간 나는 것만 제외하면 이 섬에서 먹을 수 있는 가장 호화로운 음식이었다.
다행히 레비아탄도 입맛에 맞았는지, 입에 기름을 한가득 묻혀 가며 잘도 먹었다.
“고맙다.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식사가 끝나자 레비아탄은 마루에 앉아 부풀 대로 부푼 자신의 배를 통통 두드렸다.
그런데 강우가 산책이라도 하기 위해 일어선 그때였다.
그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레비아탄이 대뜸 말을 걸었다.
“저번에 태양에 대해 알려 달라고 했지?”
태양.
그건 <백귀 균열>에서 강우가 <백귀왕>의 양피지를 통해 얻은 것을 뜻하는 말이었다.
강우는 그것이 석탈해가 보여 준 5차 각성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으나, 활용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아직 5차 각성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비아탄의 말도 탑에서의 일이 모두 마무리되면, 그때 가서 들을 생각이었다.
탑에 등정하는 데 성공하면, 자연스럽게 5차 각성도 이룰 거라 여겼으니까.
“저번부터 느꼈지만, 대한족 전사인 너에게선 죽음의 기운이 느껴진다. 나는 지옥을 다녀온 뒤로 망자왕이 되었다. 그 지옥을 자세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네게서 느껴지는 기운들이 가득 차 있는 곳이었지. 숨만 쉬어도 폐부로 검은 사슬이 들어와 폐 전체를 꽁꽁 싸매는 고통이 수반되는 곳이었다.”
레비아탄이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즉, 네게도 그런 힘이 있다는 뜻이다. 네 기운은 내가 헤쳐 온 지옥의 분위기와 닮아서, 그걸 충분히 활용한다면 분명 굉장한 기술이 될 것이다. 일례로 네가 가진 태양도 같은 경우에 해당하지.”
어느새 마루에서 일어선 레비아탄이 마당에 섰다.
“네 속에 있는 그 태양을 눈을 감고 떠올려 보아라.”
강우가 말없이 쳐다봤지만, 그는 진심인 듯했다.
옆에 있던 오수도 흥미가 일었는지, 해 보라는 듯 손짓을 했다.
“…….”
결국 강우는 두 눈을 감았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었다.
그는 레비아탄의 말대로 양피지에서 본 태양 그림을 떠올렸다.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레비아탄은 스스로를 지옥에서 온 망자왕이라 불렀고, 실제로 수백의 <스켈레톤>을 부리는 사령술사이기도 했다.
<백귀왕>도 언데드이므로, 어쩌면 정말로 레비아탄이 놈의 기술을 끄집어내 줄지도 몰랐다.
“호흡을 규칙적으로 유지해라. 잡념을 버리고, 오직 태양에만 집중해. 네 안에는 죽음을 관장하는 검은 태양이 존재한다.”
강우는 심상을 통해 서서히 검은 태양을 그려 나갔다.
“태양을 피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죽음을 마주해. 넌 죽음의 기운을 가졌으니, 이미 죽은 자나 진배없다. 도망치지 말고 맞서라.”
순간, 강우의 미간이 꿈틀댔다.
그는 어느새 제 눈앞에 떠오른 태양을 마주하고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검은 태양이 이글거리고, 거기에서 흘러나온 검은 탁기가 세상을 물들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힐 만치 우울하고 불길한 기운.
금방이라도 그 암담한 검은 세계에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강우가 검은 태양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이, 계속해서 그를 주시하던 레비아탄이 작게 감탄했다.
“오…….”
어느새 그의 주위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옆에 있던 오수도 그 광경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레비아탄은 그 기운에 닿지 않게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아주 좋다. 생각만으로도 태양을 띄워 내다니, 넌 역시 천재다. 이제 떠올린 태양을 네 밖으로 밀어내 보아라. 아니, 밀어낸다기보다는 떠받쳐 올린다는 게 더 분명하겠군.”
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건 아직 강우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감각이었으니까.
또한 태양이 눈앞에 존재하긴 하나, 강우의 손이 닿기에는 너무나도 높이 자리해 있었다.
그러는 사이, 검은 태양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아름만 하던 태양은 이제 강우가 한눈에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져 있었다.
실제로 ‘항성’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좋을 크기였다.
강우는 고개를 뒤로 젖혀 까마득하게 커진 검은 태양을 올려다보았다.
당장에라도 짓눌려 압사당할 것만 같았다.
그때, 레비아탄의 말이 들려왔다.
“그렇다고 해서 태양을 숭배해서는 안 된다. 그건 엄연한 네 것이다. 겁먹을 필요는 없다. 피하지 마라. 정면으로 부딪쳐.”
강우는 천천히 다가가 태양에 손을 가져다 댔다.
태양은 뜨겁지 않고, 오히려 냉기가 돌았다.
그가 한 차례 태양을 쓰다듬자, 크기가 조금 줄어들었다.
한 번 더 쓰다듬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몇 번 더 반복하자, 태양은 다시 본래의 크기로 돌아와 있었다.
강우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태양이… 작아졌다.”
“바로 그것이다! 그것을 다스렸으면, 이제 붙잡아 보아라. 네 밖으로 밀어내!”
흥분한 레비아탄이 소리를 지르는 사이, 강우는 차디찬 검은 태양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녀석이 반항이라도 하듯 거칠게 몸을 떨었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강우는 붙잡은 태양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이내 하늘로 작게 밀어 올렸다.
그러자 태양이 무중력 상태의 물건처럼 허공으로 둥둥 떠오르더니, 마침내 저 먼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제 강우의 심상 어디에도 태양은 보이지 않았다.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태양의 모습에 강우가 말했다.
“태양이… 사라졌다.”
“…….”
하지만 들려오는 말은 없었다.
“듣고 있나? 태양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다시 한번 물어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의아해진 강우가 눈을 떴을 때, 그는 어느새 섬 전체가 어두워졌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느새 하늘에 떠오른 또 하나의 태양을 발견했다.
불길한 검은 기운을 자아내는 검은 태양.
그것이 본래 있던 태양을 조금씩 삼키는 중이었다.
“맙소사…….”
레비아탄은 흡사 개기일식과 같은 그 모습을 경이로운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강우가 쏘아 올린 태양이 본 세상의 태양을 모두 집어삼켰다.
이제 세상을 비추는 건 환한 빛의 태양이 아니라, 강우의 검은 태양이었다.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 태양이 모두의 위에서 이글거렸다.
검은 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