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숲 귀신 (4)
그때였다.
“으…….”
가짜 숲 귀신의 손에 잡혀 있던 유아라가 신음을 흘렸다.
정신을 차린 그녀가 멍하니 주변을 살피는 사이, 이내 강우와 눈이 마주쳤다.
“…어?”
당황으로 크게 동요하는 눈.
찰나의 순간이지만, 강우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의 유아라가 보이는 감정은 진짜라고.
숲 귀신이 꾸며 낸 허상이라고 해도 어린 유아라는 강우의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존재였다.
그녀는 현실에 기반한 허상이고, 그것이 숲 귀신이 치명적인 이유 중 하나였다.
허상을 만든 건 숲 귀신이지만, 그 허상은 자신을 진짜 ‘유아라’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아마 그녀는 평생 자신이 숲 귀신의 일부라는 걸 깨닫지 못할 터였다.
소름 끼치도록 잔혹한 진실이었다.
어쩌면 가짜 숲 귀신들이 아이들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죽이지 않은 건, 아이의 모습에서 제 손자들을 보고 있는 까닭인지도 몰랐다.
그게 노인들이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낙일 테니까.
노인들을 이곳에 가두고, 손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 달아나는 환상을 꾸며 내다니…….
만약 숲 귀신이 인간이었다면, 놈은 역사에 남을 법한 사이코패스로 남을 게 분명했다.
“이, 이거 놔!”
뒤늦게 제 처지를 깨달은 유아라가 가짜 숲 귀신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몸부림을 견디지 못한 괴물이 놓아주자, 그녀는 황급히 강우 쪽으로 달려왔다.
눈물로 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물씬했다.
“괜찮아?!”
일곱 살의 유아라가 서둘러 강우의 몸을 살폈다.
그녀는 이 와중에도 강우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
강우는 그런 유아라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짓 하나, 손짓 하나, 말투 하나.
그 모든 것을 세세하게 눈여겨보고 가슴속에 새겼다.
지금부터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그녀에게 ‘죄’를 짓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윽고 그는 천천히 팔을 뻗어 그녀의 양어깨에 손을 얹었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부서질 듯 여리디여린 어깨였다.
그러자 유아라가 제 어깨에 올려진 강우의 손을 보며 의아하게 물었다.
“…응? 왜 그래?”
강우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 또한 숲이 자아낸 감정일까.
그는 가슴이 저릿함을 느꼈다.
아이들의 진짜 정체를 알았으니, 이제는 이 연약한 목을 스스로 비틀어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강우가 매정하다 해도 불과 수십 분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생사를 함께한 존재를 죽이는 건 그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에겐 과거와 달리 ‘정’이 생겨났으니까.
어쩌면 탑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건 ‘인간성의 말살’인지도 몰랐다.
“…그거 알고 있나?”
“응? 뭐를 말이야?”
영문 모를 얼굴을 한 유아라에게 강우가 말했다.
“넌 사람을 귀찮게 하는 재주가 있다.”
“…내가?”
“그래.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이한을 처리할 때도 그랬고, 백귀 때도 그랬으며, 그 외에도… 꽤 그랬다.”
강우는 <발광 균열> 때 해변에서의 일을 말하려다 그만두기로 했다.
지금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널 만날 걸 후회하진 않는다. 너도, 박도진과 박수영도, 청익, 황한수… 그리고 황 노인과 왕린도, 그 외의 모든 이들도. 비록 말하진 못했지만, 나는 이 세계에서 만난 모두에게 감사하고 있다. 너희는 내가 생전 느끼지 못한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사람이니까. 너희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런 감정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우의 말은 일곱 살의 유아라가 이해하기엔 어려웠다.
“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미안해.”
그녀가 사과했지만, 강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이곳이 아니라면, 지금이 아니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말이다.
지금이 아니면 할 기회가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다. 난 계속 가야만 해. 너희가… 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국 강우는 유아라의 목을 비틀지 못하고 손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가짜 숲 귀신들도, 아이의 모습을 한 진짜 숲 귀신들도…….
모두가 그의 행동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 순간.
“…강우 씨?”
강우는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멈칫했다.
단 하루도 그리워하지 않은 날이 없는 목소리.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 일이 닥치자 감정이 크게 요동쳤다.
강우의 어깨가 전율로 파르르 떨렸다.
“강우 씨 맞지?”
그녀는 장혜진이었다.
멀찍이 선 유아라가 연기를 다한 꼭두각시 인형처럼 멍하니 서 있는 가운데, 어느새 나타난 장혜진이 강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긴 생머리를 집게로 올려 묶은 헤어스타일과 균형이 확실한 얇고 긴 눈썹.
그 아래로 들어선 맑은 눈과 매끈한 콧대, 그리고 남들보다 좀 더 작은 입술까지.
강우의 기억과 정확히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코끝이 찡했다.
목구멍으로 참을 수 없는 먹먹함이 밀려오고, 입안으로 다양한 말들이 범람했다.
한순간만.
단 한 번만 다시 봐도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한 그녀가 바로 제 눈앞에 있었다.
강우는 당장에라도 달려가 그녀를 안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그럴수록 지금 이 상황에서 느껴지는 이질감만 더 강해질 뿐이었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장혜진이 말했다.
“고생 많았나 보다. 얼굴이 전보다 많이 상했어.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 거지? 혹시 요즘도 균열에서 자?”
장혜진이 천천히 다가와 생전과 같은 눈으로 강우의 얼굴을 살폈다.
피부에 닿은 그녀의 손길이 따뜻했다.
“다크 서클도 늘었네. 피부도 푸석해졌고……. 잠은 제대로 자는 거야? 약속했잖아, 나 걱정시키지 않기로.”
“…….”
“왜 대답이 없어? 안 되겠네. 강우 씨 당분간은 외출 금지야. 다시 건강해질 때까진 계속 나랑만 있어요.”
장혜진이 주변을 둘러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난 이 숲이 좋아. 올곧게 뻗은 대나무들도 멋지고, 계곡도 아름답고. 가끔 동물들도 본다? 저번엔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는데, 다람쥐 두 마리가 코앞까지 온 거 있지? 내가 강우 씨 보여 주려고 사진을 찍어 놨는데, 핸드폰을 어디에다 뒀더라…….”
장혜진은 정말 사진을 보여 주기라도 할 듯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러나 강우는 그녀를 기다리지 않고 몸을 돌렸다.
더 지체해서는 안 됐다.
이곳은… 한 시도 더 존재해서는 안 되는 세계니까.
이들의 숨을 거둔다고 해도 자신이 그들을 기억하는 한 이들은 계속해서 이 숲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자신이 떠난 뒤에도.
“강우 씨? 어디 가?”
“강우야! 가지 마!”
장혜진과 유아라가 동시에 강우를 불렀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되레 걸음을 서둘렀다.
아이들은 여전히 숲의 입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까와 달리 아무런 말도 걸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숲의 입구에 다다랐을 때.
츠츠츠츳!
뒤에서 탁한 마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비로소 진짜 ‘숲 귀신’이 제 모습을 드러낸 모양이었다.
팔다리가 유난히 긴 2.5미터짜리 거대 원숭이.
놈은 오수의 말대로 입이 길게 찢어진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쿵!
모든 환영이 놈을 바라보는 사이, 놈은 옆에 있던 가짜 숲 귀신을 붙잡아 냅다 바닥에 메다꽂았다.
머리에 주먹질을 하고, 가슴을 걷어찼으며, 심지어 다리를 붙잡고 땅에 거꾸로 처박았다.
아마도 강우를 속이지 못했다는 게 분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도 가짜 숲 귀신들은 저항하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제 역할인 것처럼.
그들은 숲 귀신의 폭력을 전부 감수했다.
씩… 씩…….
마침내 분풀이를 끝낸 진짜 숲 귀신이 거친 숨을 토해 내며 강우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와 섰다.
하얀 가면 안으로 눈알이 이리저리 열심히 구르는 게 보였다.
그르르르…….
원숭이는 말을 할 줄 몰랐지만, 의사 표현은 확실했다.
곧 놈의 양팔이 하늘로 솟더니, 그대로 강우가 있던 바닥을 내려쳤다.
콰광!
지반이 크게 부서지며 사방으로 흙과 돌멩이가 튀었다.
침착하게 공격을 피한 강우는 <검은 고리>를 하나 더 꺼내 들었다.
숲 귀신이 아무리 신통방통한 재주를 가졌다고 한들, 강우가 이기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오수도 재주가 없어서 놈을 죽이지 못한 게 아니듯이 말이다.
강우는 놈이 팔을 채 거두기도 전에 빠르게 날아올랐다.
콱!
그의 몽둥이가 인정사정없이 숲 귀신의 머리를 강타하자, 놈은 나무꾼의 도끼에 맞은 통나무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우끼?!
머리를 맞은 탓에 놈은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놀란 새들이 서둘러 숲을 날아가는 가운데,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숲 귀신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강우에게 힘으로 밀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는 사이, 강우는 터벅터벅 놈에게로 걸어갔다.
그가 든 몽둥이에서 숲 귀신의 머리에서 묻어 나온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혼비백산한 놈은 서둘러 유아라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했다.
“아파… 강우야, 아파…….”
“…….”
어느새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일곱 살의 유아라가 보였다.
그녀가 이마에 피를 흘리며 고통스럽게 몸부림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강우의 화만 더 돋울 뿐이었다.
강우는 쥐고 있던 몽둥이를 던져 버리고 손바닥을 펼쳤다.
스르륵!
놈이 제 모습을 드러낸 덕분인지, 마력이 원래대로 운용되기 시작했다.
강우의 손에 검은 마력이 모이며 곧 하나의 형태를 갖추었다.
그의 <마력 무구>인 <진(眞)피바라기>.
검은 불길로 이루어진 검이 강우의 손에서 강렬하게 불타올랐다.
“……?!”
그러자 숲 귀신은 경기를 일으키더니, 황급히 바닥에서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헐레벌떡 달아나는 놈의 등 뒤로 ‘우끼끼, 우끼기’대는 원숭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
강우는 놈을 추격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는 놈을 손수 죽일 생각이 없었으니까.
오수가 자신에게 바라는 건 숲 귀신을 죽이는 게 아니었다.
강우는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장혜진과 유아라를 뒤로한 채 숲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아무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마침내 숲을 빠져나온 강우가 몸을 돌렸을 때.
아이들이 숲의 입구에 모두 모여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아라, 황한수, 한선화, 서유리, 찰스, 로드리게.
그리고 장혜진.
그녀는 품에 작은 보자기를 소중하게 안고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았다.
그들이 강우를 배웅하듯 손을 흔들었다.
‘잘 가.’
그들의 입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다시는 못 볼 광경이었다.
강우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마음속에 새긴 뒤,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대나무 숲엔 큰불이 일었다.
검은 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