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숲 귀신 (3)
“뛰어!”
갑작스러운 숲 귀신의 재등장에 혼비백산한 아이들이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숲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사이, 황한수가 물었다.
“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놈은 분명 죽었잖아?!”
하지만 강우라고 해서 대답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설마 아까 본 놈은 숲 귀신의 분신 중 하나였나?
‘그렇다고 해도 놈은 확실히 숨통이 끊어졌다. 환상 따위가 아니었는데…….’
가장 후미에 선 강우는 자신들을 추격하는 숲 귀신들 쪽을 슬쩍 쳐다봤다.
만약 저것들이 환영이 아니라 전부 실제라면, 자신은 몰라도 아이들이 이 숲에서 살아 나갈 확률은 제로였다.
츠츠츠츳!
강우는 서둘러 <검은 고리>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제 고리 하나쯤 유지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는 달라진 신체를 느끼며 걸음을 멈춰 섰다.
당장 확인해 봐야 할 것이 있었다.
“한강우!”
가장 선두에 선 찰스가 그를 불렀지만, 강우는 돌아보지 않고 땅에서 돌멩이를 하나 주워 들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저것들이 전부 실제인지 확인하는 것.
강우는 들고 있던 돌멩이를 맨 앞에 있던 숲 귀신을 향해 냅다 집어 던졌다.
퍽!
놈은 가소롭다는 듯 돌멩이를 피하지도 않았다.
몸에 맞고 떨어진 돌멩이가 바닥을 구르는 게 보였다.
‘진짜다.’
강우는 그 뒤로도 기회를 틈타 두 개의 돌멩이를 더 던졌지만, 결과는 모두 같았다.
저것들은 전부 실제였다.
‘…큰일이군.’
그러는 동안 숲 귀신들은 이미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강우가 계속해서 놈들을 견제하지 않았더라면, 이미 아이들을 붙잡고도 남을 거리였다.
“밖이다!”
그때, 전방을 확인한 로드리게가 외쳤다.
그의 말대로 대나무 숲의 밖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지옥을 무사히 벗어날 유일한 기회.
“달려! 붙잡히면 죽는다!”
“헉… 헉……!”
하지만 이미 아이들의 숨은 턱 끝까지 차올라 있었고, 특히 유아라와 한선화는 안색이 새파란 게,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입구까지의 거리는 약 250미터 남짓.
숲 밖까지 무사히 다다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카아악!
어느새 빙 돌아서 접근한 숲 귀신 두 마리가 옆에서 튀어나왔다.
한 마리는 강우가 몽둥이를 휘둘러 막아 냈으나, 정반대 쪽에서 나온 다른 놈까지 그가 처리하기에는 무리였다.
곧 아이들에게 다다른 놈이 한선화를 향해 긴 팔을 뻗었다.
“아앗!”
“서, 선화야!”
금방이라도 낚아챌 수 있는 거리였다.
만약 황한수와 서유리가 황급히 한선화를 잡아당기지 않았다면, 그녀는 지금쯤 놈들의 밥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행히도 놈의 손은 아슬아슬하게 비껴갔고, 토끼 눈이 된 한선화가 잔뜩 고조된 억양으로 말했다.
“고, 고마워!”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허탕 친 놈이 대나무를 타고 오르더니, 다음 타깃을 향해 날아든 것이다.
그건 한선화를 부축하던 서유리였다.
“앗!”
이번에도 아이들이 나서 그녀를 지키려 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용기를 낸 유아라가 서유리를 지키기 위해 달라붙는 순간.
돌연 목표물을 바꾼 숲 귀신이 유아라의 목덜미를 붙잡은 것이다.
“꺅! 애들아―!”
괴물의 우악스러운 손에 붙잡힌 유아라가 허공으로 떠오르며 애처롭게 버둥거렸다.
“유아라!”
“그거 놓지 못해! 이 더러운 괴물아!”
뒤늦게 아이들이 손을 뻗었으나, 이미 유아라는 놈에게 끌려간 뒤였다.
황급히 달려온 강우도 끝내 그녀를 지킬 순 없었다.
“아, 아라가……!”
“미쳤어?! 계속 달려!”
한선화와 서유리는 자기 때문에 친구가 붙잡혔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특히나 걸음을 멈춘 한선화가 머뭇거리자, 황한수는 그녀를 안아 들다시피 해서 대피시켰다.
“멈추지 마라!”
강우도 아이들의 걸음이 느려지자 소리를 질러 그들을 재촉했다.
결국 겁먹은 아이들은 친구를 뒤로한 채 계속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사방이 울음소리로 가득한 가운데, 아이들과 거리를 확보한 강우가 서둘러 멈춰 서며 외쳤다.
“가라! 유아라는 내가 데려오겠다!”
“가, 강우야!”
단 한 명이라도 붙잡는 게 목표였을까?
유아라를 붙잡은 숲 귀신들은 추격 속도를 늦췄고, 덕분에 다른 아이들은 무사히 숲 밖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아라야!”
“한강우!”
아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숲 밖에 다다른 아이들이 애타게 친구의 이름을 부르는 사이, 강우는 어느새 멈춰서 자신을 기다리는 숲 귀신들에게로 걸어갔다.
유아라는 정신을 잃었는지, 놈들의 손아귀에서 축 늘어져 있었다.
“…….”
강우는 숲 귀신들과 마주 섰다.
어쩌면 놈들이 멈춰 선 건 유아라를 붙잡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멈춰 섰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윽고 강우가 다다르자, 놈 중 하나가 붉은 도포를 질질 끌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마치 사절단 같은 기색이었다.
한동안 강우를 내려다보던 놈이 입을 열었다.
“이저바으라흐.”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다.
“아즈노스, 오고브, 아드피스.”
“고자그, 아드빌으그.”
숲 귀신의 말은 한동안 계속됐다.
놈이 말을 뱉을 때마다 다른 숲 귀신들이 흥분한 듯 어깨를 들썩였다.
당장에라도 달려들고 싶은 눈치이지만, 지금 앞에서 정체불명의 언어를 말하는 놈이 그들을 억제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숲 귀신의 입에서 드디어 제대로 된 언어가 흘러나왔다.
“…다…라…나.”
뭐?
그건 강우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달아나라고?’
믿기지 않지만, 강우의 귀에는 분명 그렇게 들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자 살자 쫓던 놈들이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꾸었지?
그때부터였다.
강우는 그들의 모습에서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파르르―
그는 어느 순간부터 숲 귀신들이 어깨를 작게 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놈들은 여전히 분노에 차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화만 나 있는 건 아니었다.
‘두려움?’
그들이 느끼는 건 두려움이었다.
무언가가 그들을 두렵게 하고 있었다.
숲 귀신은 이 대나무 숲의 최상위 포식자.
이곳에서 놈들을 이토록 떨게 만들 게 있나?
오수의 말에 의하면 그건 불이 유일하지만, 이곳에는 불이 없었다.
‘뭔가가 있다.’
분명 자신이 알아채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그들이 여전히 유아라를 해치지 않고 있는 것도, 아까와 달리 눈앞에 있는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 것도.
강우는 천천히 놈들의 얼굴을 살피며 오수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 숲 귀신은 이 섬의 대나무 숲에 사는 괴물로, 정체불명의 가면을 쓴 원숭이요.
그러나 아무리 봐도 놈들은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다.
기이하게 큰 입도, 좁쌀만 한 눈도 모두 제 얼굴이었다.
게다가 놈들의 모습은 원숭이보다는 인간에 더 가까웠다.
굳이 원숭이에 비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마침내 강우는 새로운 결론에 도달했다.
‘설마… 이자들은 숲 귀신이 아니었나?’
그는 눈앞의 괴물들이 숲 귀신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진짜 숲 귀신은 아직 나타나지도 않은 것이다.
“너희는 누구지?”
“…….”
가짜 숲 귀신들은 강우의 말을 알아듣는 듯했다.
앞에 선 가짜 숲 귀신이 바닥에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그렸다.
원을 그리던 손가락이 채 완성하지 못하고 밑으로 흘러내렸다.
흡사 숫자 ‘9’와 비슷하기도, 숫자 ‘7’과 비슷하기도 한 그림.
하지만 여전히 강우가 그 뜻을 알아채지 못하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그러더니 곧 강우가 들고 있던 몽둥이를 가리켰다.
강우가 의아하게 바라보는 사이, 놈은 몽둥이로 땅을 짚고 걷는 시늉을 해 보였다.
‘…지팡이?’
강우는 그제야 그의 이야기를 알아들었다.
그가 그린 그림은 지팡이.
지팡이 하면 떠오르는 건 바로 ‘노인’이었다.
비로소 그들의 정체를 깨달은 강우가 물었다.
“…너흰 마을에서 죽었다는 노인들인가?”
가짜 숲 귀신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변에 있던 다른 자들도 억울하다는 듯 소리를 냈다.
이들의 진짜 정체는 진짜 숲 귀신에게 잡아먹힌 노인들이던 것이다.
‘숲 귀신에게 잡아먹히면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 모양이로군.’
하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
자신들이 섬사람이었다는 자각이 남았다면, 어째서 이들은 아이들을 공격했는가.
강우는 숲 밖에 선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여전히 이쪽을 잔뜩 겁먹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수는 이십 년간 숲 귀신을 잡는 데 실패했다고 했지.’
강우는 잠시 상념에 잠겼다.
한두 해도 아니고, 무려 이십 년이다.
아무리 숲이 넓다 한들 이 섬은 규모 자체가 작았다.
섬에 단 하나뿐인 숲에서 괴물 한 마리를 이십 년 동안 잡지 못했다는 것부터가 상당히 의아한 일.
그건 못 잡았다기보다는 안 잡았다고 표현해야 더 알맞아 보였다.
‘왜 오수는 숲 귀신을 잡지 않았지? 그리고 왜 나에게 그 일을 맡겼지?’
단순히 탑의 시험을 치르게 하기 위해서라기엔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오수에게는 숲 귀신을 잡지 못한 이유가 있다.
그것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사정이.
그래서 그는 강우에게 숲 귀신 처리를 맡겼다.
‘그렇다면…….’
서서히 퍼즐이 하나하나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오수가 잡을 수 없는 숲 귀신과 대나무 숲에 들어서자마자 만나게 된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을 공격하는 노인들.
강우는 다시 눈을 돌려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거였나.’
그제야 강우는 아이들을 경계의 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 숲 귀신은 가면을 쓰고 있소.
강우는 오수의 말을 곧이곧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가 말한 가면이란…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인 듯했다.
“짜증 나는군.”
강우는 자신의 심정을 육성으로 뱉었다.
이제야 누가 진짜 자신의 적인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숲 귀신은 이 정체불명의 괴물이 아닌, 저 아이들 쪽이었다.
아이들을 만난 게 이 숲에 들어선 순간부터였으니, 그들도 환영임은 알았다.
하지만 그들이 숲 귀신인 건 예상 밖의 일.
오수가 왜 이십 년 동안 숲 귀신을 처치하지 못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죽일 수 없던 거다, 그는.’
오수가 이 숲에서 누구를 봤는지는 강우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분명 소중한 존재 하나쯤은 있었을 터.
스스로 그를 베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무려 이십 년이나 더 지켜봐 왔다면 더더욱.
비로소 오수가 이 숲에 불을 가지고 오지 말라고 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이 숲이 불타고 나면, 그 환상도 모두 사라질 테니까.
그는 숲 귀신을 없애고 싶어 하면서도 은연중에 그 환영이 남아있길 바라는 듯했다.
‘오수.’
그는 이 섬에 남겨진 게 아니었다.
스스로 남은 거지.
검은 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