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숲 귀신 (1)
갑작스럽게 적과 조우한 아이들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호기롭게 숲에 들어오긴 했지만, 아이는 아이인 것이다.
눈앞에서 사슴의 내장을 파먹는 숲 귀신의 모습은 과히 충격적이다 못해 경악스러웠다.
한선화와 황한수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가운데, 유아라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입을 틀어막았고, 서유리는 그런 유아라의 눈을 가려 주며 주머니에 잔뜩 담아 온 자갈을 꺼내 들었다.
모든 아이가 겨울바람을 마주한 다람쥐처럼 애처롭게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위험하다.’
강우 역시도 숲 귀신에게 눈을 떼지 않으며 몽둥이를 고쳐 쥐었다.
모르긴 해도 이대로 놈과 부딪쳐선 좋을 게 전혀 없다는 건 확실히 알았다.
아이들은 놈의 손길에 갈가리 찢겨 나갈 것이다.
찰스와 로드리게는 여전히 비장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놈을 얼마나 버텨 낼진 미지수.
지금 택해야 하는 가장 좋은 수는 바로 달아나는 것이었다.
강우가 속삭였다.
“모두 물러서라.”
“뭐라고?”
로드리게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반문했지만, 강우는 잔뜩 겁에 질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유아라와 아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대로 부딪치면 필패다. 너흰 모두 죽을 거다.”
“그럴 걸 모르고 온 게 아니다. 모두 목숨을 걸고 온 거야.”
“저들은 아닌 것 같은데.”
그 말에 로드리게는 뒤에서 하얗게 질려 벌벌 떠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특히 황한수의 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유아라를 따라 입을 틀어막은 그의 손 사이로 끅끅거리는 신음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강우가 로드리게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지금은 싸워 봐야 개죽음이다. 사정은 알겠으나, 승리를 위해선 물러서야 할 때도 알아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강우는 침착하게 로드리게를 설득했다.
새총을 가져온 찰스와 달리 그는 유리 조각을 가져왔다.
유일하게 살상력이 있는 무기를 쥔 것이다.
그만큼 로드리게는 이번 여정에 진심이었다.
그는 오늘을 위해 정말로 목숨을 걸었다.
“로드리게.”
찰스의 부름에 로드리게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는 걸 잘 알았다.
더 고집부리지 않았다.
“천천히 물러선다. 놈이 알아채지 못하게.”
강우의 지시에 따라 아이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그들이 발길을 옮길 때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작게 새어 나왔지만, 식사에 집중 중인 숲 귀신의 주의를 끌 수준은 아니었다.
강우는 아이들이 물러서는 동안 계속해서 숲 귀신을 주시했다.
“끅……!”
그런데 그때였다.
극도의 긴장감을 견디지 못한 황한수의 입 밖으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발소리보다도 훨씬 큰 소리였다.
기겁한 모두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는 사이, 찰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길.”
어느새 고개를 돌린 숲 귀신이 이쪽을 보고 있던 것이다.
입이 귀까지 찢어진 괴물.
코가 거의 없다시피 한 놈은 좁쌀 같은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와중에도 연신 사슴의 뼈와 내장을 씹어 먹고 있었다.
아그작, 아그작.
놈의 턱으로 사슴의 피가 줄줄 흘렀다.
지금의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결국 견디지 못한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으앙!”
“엄마아!”
열 살이 채 되지 못한 아이들이 견뎌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패닉에 빠진 황한수와 유아라, 한선화가 울음을 터뜨리는 사이, 찰스가 소리를 질렀다.
“도망쳐!”
그것을 신호로 아이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서유리가 황급히 유아라를 챙기고, 찰스가 한선화와 황한수를 챙겼다.
팟!
그와 동시에 숲 귀신이 이쪽을 향해 펄쩍 뛰는 것이 보였다.
단 한 번의 점프로 수백 미터에 이르던 거리가 불과 100미터까지 좁혀졌다.
드러난 놈의 손으로 날카롭게 이어진 손톱이 보였다.
로드리게가 다급히 유리 조각을 놈 쪽으로 겨누며 외쳤다.
“한강우! 너도 가라! 뒤는 내가 맡겠다!”
하지만 저런 유리 조각으로는 숲 귀신의 손톱을 막을 재간이 없어 보였다.
강우는 서둘러 양손으로 쥔 몽둥이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앞으로 나섰다.
“가라! 아이들을 데려가!”
“뭐? 하지만……!”
퍽!
숲 귀신이 이쪽을 전력으로 달려오는 게 보이자, 강우가 대뜸 로드리게의 손을 걷어찼다.
그러자 그가 쥐고 있던 유리 조각이 힘없이 떨어졌다.
“무슨 짓이냐!”
로드리게가 손목을 쥔 채 강우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더 이상의 대화는 무리였다.
어느새 다가온 숲 귀신이 팔을 휘두른 것이다.
카아아아악!
“억!”
챙!
대경한 로드리게가 뒤로 자빠지는 가운데, 마력으로 강화된 몽둥이와 놈의 손톱이 부딪치며 쇳소리를 흘렸다.
강우는 주저앉아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로드리게에게 소리쳤다.
“가라고 했다!”
“……!”
그제야 로드리게도 바닥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미 자신과 강우가 다름을 느낀 것이다.
콱! 콱! 콱!
강우는 연달아 쏟아지는 숲 귀신의 공격을 침착하게 막아 냈다.
하지만 몸이 어려진 탓인지, 공격을 마주할 때마다 손목이 시큰거리고 팔이 저렸다.
“한강우!”
어느새 저 멀리 물러난 아이들이 모여 선 채 강우를 애타게 불렀다.
물론 대답할 여유는 없었다.
강우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공격을 튕겨 낸 뒤, 서둘러 몸을 굴려 숲 귀신의 옆을 노렸다.
카악!
숲 귀신은 예상치 못한 강우의 선전에 화가 났는지, 괴성을 지르며 손톱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그때마다 놈의 붉은 저고리가 펄럭이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간신히 기회를 잡은 강우가 몽둥이를 힘껏 휘둘렀다.
쿵!
옆구리에 몽둥이를 허용한 숲 귀신이 신음을 흘리며 휘청였지만, 그게 전부였다.
놈을 완벽히 쓰러뜨리기엔 강우의 근력이 너무나도 약했다.
‘제길.’
퍼억!
되레 놈에게 배를 걷어차인 강우는 저 멀리 나가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가, 강우야!”
“으아아앙!”
모두가 조마조마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서유리와 찰스가 이쪽을 향해 연신 돌멩이를 던지고 새총을 쐈지만, 마력으로 강화한 몽둥이도 버텨 낸 숲 귀신에게 타격이 있을 리 만무했다.
심지어 던지는 돌멩이 중 태반은 놈에게 닿지도 못한 채 바닥을 굴렀다.
‘장기가 뒤틀렸다.’
얻어맞은 복부가 얼얼하다 못해 속이 울렁거렸다.
강우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신물을 뱉어 냈다.
실로 오랜만에 경험하는 고전이었다.
‘마력이 나오지 않는다라…….’
당장에라도 마력을 퍼붓고 싶지만, 현재 허용된 실력은 2차 각성 수준이었다.
탑의 영향인지, 아니면 숲의 기운 탓인지, 마력이 방출되지 않은 것이다.
혹시나 싶어 <역(力)>도 외쳐 봤지만, 이곳에선 사용할 수 없었다.
결국 개싸움으로 잡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크르르르…….
강우는 여전히 짐승 소리를 내는 숲 귀신을 보며 침착하게 호흡을 골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한 번 얻어맞은 탓인지 놈이 섣불리 다가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떠올려라. 분명 놈을 잡을 방도가 있다.’
분명 지나간 말 중에 힌트가 있을 터였다.
자신을 이번 시간대로 데려온 이들이 괜한 개죽음이나 당하라고 자신을 이 탑에 들이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강우는 침착하게 지난 밤 오수가 들려준 이야기들을 상기했다.
― 내가 파악한 바로 숲 귀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바로 불이오. 하지만 숲에 불을 지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소. 되레 놈의 환술에 빠져 불타 죽을 테니까. 그러니 숲에 불을 가져갈 생각도 하지 마시오.
하지만 아무리 떠올려도 특별한 건 없었다.
그나마 불 이야기를 들은 게 떠올랐지만, 그는 숲에 절대 불을 가져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모르겠군.’
칵!
그때, 숲 귀신이 기습적으로 달려들어 강우의 머리를 놀렸다.
강우는 서둘러 피한 뒤, 몽둥이를 휘둘러 반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놈은 움직임은 민첩하다 못해 기민했다.
천년 먹은 구미호처럼 재주를 넘은 놈은 어느새 강우의 뒤를 잡고 공격을 시도했다.
슥!
그 예리한 손톱에 뺨이 스치며 불에 덴 듯한 고통이 일었다.
뺨으로 한 줄기 선혈이 흘렸다.
이대로라면 자신도 죽은 사슴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말을 맞이할 듯싶었다.
카아악!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숲 귀신은 더욱 거세게 강우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강우는 점차 물러서며 공격을 계속 막아 냈지만, 하나둘 허용하는 공격이 늘어나고 있었다.
놈의 손톱이 손등에 생채기를 내고, 팔뚝을 찢었으며, 무자비하게 어깨를 꿰뚫었다.
푹!
“강우야!”
“이야아아아!”
어깨를 찔린 강우가 비틀거리자, 멀리서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게 느껴졌다.
그들도 더 이상 참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당도한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어 보였다.
아까 걷어차인 복부의 통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호흡마저 위협하고 있었다.
강우는 간신히 정신을 유지하며 점차 다가오는 숲 귀신을 노려보았다.
분명…….
‘분명히 방도가 있을 거다.’
스윽!
그런데 숲 귀신이 싸움을 매듭짓기 위해 손톱을 치켜들던 그때였다.
갑자기 강우의 머릿속이 번뜩였다.
― 난 네 고리를 완성해 줄 것이다. 그 고리가 정확히 다섯 개가 되는 날, 넌 비로소 진정한 탑을 보게 될 거다.
처음 탑에 들어오던 날.
<데스 나이트>는 분명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다.
고리가 다섯 개가 되는 날, 진정한 탑을 보게 될 거라고.
하지만 현재 강우가 완성한 고리는 모두 셋.
아직 수련은 끝나지 않았다.
‘…설마?’
<데스 나이트>가 전수하던 <죽음의 고리>가 이 탑을 오르는 키는 아니었을까?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강우는 빠르게 진행되는 사고 속에서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숲 귀신의 손톱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놈의 손톱이 지척에 다다라 있었다.
그 0.0001초의 찰나.
강우는 그 어떠한 고민도 하지 않고 <검은 고리>를 사용했다.
츠츠츠츳!
검은 스파크가 튀며 그의 어깨로 고리 하나가 생성됐다.
“……?!”
숲 귀신은 당황했다.
코앞에 있던 먹잇감이 시야에서 사라진 것이다.
조금만 더 뻗었어도 분명 그 얼굴을 꿰뚫었을 텐데, 어느새 먹잇감은 자세를 낮춰 그것을 피해 냈다.
숲 귀신의 손톱이 허공을 가르는 사이, 그 품을 파고든 강우의 눈이 번뜩였다.
“간단한 사실을 잊고 있었군.”
콱!
마력으로 강화된 주먹이 숲 귀신의 턱을 강타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강우는 뒤로 물러서는 놈의 복부를 강하게 밀어찼다.
커헉!
고작 두 방이었을 뿐인데, 숲 귀신이 울혈을 토했다.
하지만 강우의 반격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언뜻 지척까지 다가온 아이들이 멈칫하는 게 보였다.
강우를 구하기 위해 한 명도 빠짐없이 달려온 아이들.
이미 유아라의 얼굴은 눈물 콧물로 엉망이었다.
‘…….’
이유가 어떻든 강우는 이곳에서 저 아이들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이곳에서 성인은 자신이 유일했으니까.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자신은 이곳에서 보호자가 되어 있었다.
어느새 몽둥이를 집어 던진 강우는 연달아 주먹을 퍼부었고, 숲 귀신은 변화한 강우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속수무책 얻어맞았다.
그 공포스러운 숲 귀신을 맨손으로 패는 강우의 모습은 과히 충격적이어서, 아이들은 그 광경을 얼빠진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고리>가 두 개가 되었을 땐 이미 숲 귀신의 몰골은 넝마가 되어 있었다.
이빨의 반 이상이 부러진 놈이 움츠린 채 거친 숨을 토해 냈다.
강우는 천천히 아까 바닥에 던진 몽둥이를 들었다.
싸움을 끝낼 시간이었다.
“모두 고개를 돌려라.”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강우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다.
모든 아이들이 서둘러 고개를 돌리는 사이, 허공으로 치솟은 강우의 몽둥이가 숲 귀신의 머리를 내려쳤다.
퍼억!
그대로 놈의 머리가 터져 나가며 뇌수가 튀었다.
첫 시험의 통과였다.
검은 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