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헌터-136화 (137/186)

[136화] 외딴 섬 (3)

빨려 들어갈 것 같다고 해야 할까.

텅 빈 듯한 오수의 눈은 어딘가 께름칙한 구석이 있었다.

인간의 살을 먹고 자란 도루묵.

그것을 직접 키운 것으로도 모자라 손님에게 음식으로 대접하다니.

그 누가 보더라도 정상적인 경우는 아니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바로 강우의 반응이었다.

그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그러고는 남은 도루묵을 집어 마저 삼켰다.

“…….”

오수는 그런 강우를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그랬군요’라니.

일반적이지 않은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짐작했지만, 정말로 그런 반응을 맞이하자 오수도 조금 얼떨떨한 눈치였다.

혹여 농담으로 받아들인 걸까?

하지만 강우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곧 강우가 입을 열었다.

“사람을 먹고 자랐든, 해초를 먹고 자랐든, 어차피 생선은 생선입니다. 아닙니까?”

“…….”

본질을 이야기하고자 함인가.

잠시 고민하던 오수가 말했다.

“무엇을 먹고 자라느냐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요. 사람이 무얼 보고 겪으며 살아왔는지에 따라 여러 종류의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인간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분명 인간이지만 인간 같지 않은 자들도 존재하오.”

“그건 저도 동감합니다만, 그걸 환경의 탓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듯합니다. 인간과 도루묵은 다릅니다. 던져 준다고 해서 아무거나 받아먹지는 않으니.”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대화였다.

오수는 강우의 답변에 잠시 말을 멈췄고, 그사이 식사를 마친 강우가 수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감사히 먹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도루묵 맛은 별로군요. 인간의 살은 먹이로서 적당하지 않은 듯합니다.”

“…….”

강우는 인간은 던져 준다고 해서 아무거나 받아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루묵은 전부 다 먹어 치우다니.

자신의 심지가 그만큼 굳건하다는 걸 보여 주고자 한 것일까?

오수는 확실히 이 별난 사내에게서 묘한 흥미를 느꼈다.

비로소 그가 작게 웃었다.

“미안하오. 내가 장난이 지나쳤구려. 사람의 살을 먹고 자랐다는 건 농담이었소. 이곳엔 양식장 따윈 없소.”

“괜찮습니다. 덕분에 저도 인간을 먹고 자란 도루묵을 다 먹어 봤으니까요.”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군. 입맛에 맞지 않는다니, 다음부터 도루묵은 상에 올리지 않겠소.”

“감사합니다.”

둘의 식사는 그렇게 끝났다.

그들은 서로 역할을 나눠 상을 치웠다.

오수는 설거지와 부엌 정리를, 강우는 화로와 평상의 뒷정리를 맡았다.

이윽고 모든 정리를 끝낸 두 사람은 다시 마루에 걸터앉았다.

레비아탄을 만난 섬과 달리 이 섬의 하늘엔 달과 별이 없었다.

나무 기둥 옆에 달린 랜턴이 이곳을 밝히는 전부였다.

랜턴 주위로 모여드는 벌레들을 보며 강우가 물었다.

“그런데 아까 낮에 하신 말씀 말입니다. 물귀신과 숲귀신.”

“아아, 그렇소.”

“괜찮다면 좀 더 듣고 싶군요. 당신이 왜 그들을 쫓는지, 그들은 뭐 하는 자들인지.”

“으음.”

잠시 고민하던 오수가 이내 자세를 고쳐 잡으며 이야기했다.

“우선 날 먼저 소개해야겠구려. 본래 나는 본토에 살던 사냥꾼이었소. 그런데 어느 날 누가 찾아와 그러더군. 이 섬에 사는 괴물들을 잡아 주면 일확천금을 주겠노라고.”

“그게 이 섬에 온 계기로군요.”

“뭐, 그런 셈이지. 하지만 꼭 돈 때문만은 아니었소. 뭐랄까… 일종의 호승심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정말로 그 괴물들을 잡을 수 있을지 궁금했지.”

하지만 오수는 놈들을 잡는 데 실패했다.

어쩌면 다리를 절게 된 것도 그 실패의 산물일지도 몰랐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놈들을 쫓았지만, 이제는 나도 알고 있소. 나로서는 놈들을 잡을 수 없다는 걸. 다리도 다리지만, 이제 나는 젊을 때와 다르오. 나이를 먹었고, 그때만큼 검을 잘 휘두르지도, 날렵하게 움직이지도 못하지.”

그의 나직한 한숨 속에 지난 20년의 세월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 눌어붙어 사는 거라오. 비록 이 섬에 들어온 사명은 다하지 못했지만… 매일 아침, 밤마다 놈들을 찾아 나서는 것으로 내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그러셨군요.”

그 뒤로는 두 귀신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우선 숲 귀신은 이 섬의 대나무 숲에 사는 괴물로, 정체불명의 가면을 쓴 원숭이라고 했다.

놈은 온 숲을 제집처럼 드나드는데, 어찌나 빠른지 오수는 놈을 도통 잡을 수가 없었다.

의뢰를 맡긴 이의 말에 따르면, 놈이 섬마을의 노인을 넷이나 잡아먹은 탓에 이곳에 살던 모든 자녀가 섬을 떠났다고 했다.

“인정하긴 싫으나 재주가 신통방통한 놈이오. 원숭이처럼 날렵한 움직임도 움직임이지만, 종종 분신술과 둔갑술을 사용하기도 한다오. 나도 놈의 도술이 어느 정도 실력인지 전부 파악하지 못했소. 어떤 날엔 도술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날이 있지만, 또 어떤 날은 상태가 좋은지 여러 도술을 동시에 부릴 때도 있지.”

다음은 물귀신이었다.

“놈은 마치 도롱뇽과 같은 외양을 가졌소.”

오수가 묘사하는 물귀신의 모습은 흡사 코모도 도마뱀을 떠올리게 했다.

돌기가 돋은 두꺼운 회색 가죽, 길게 튀어나온 주둥이, 두꺼운 꼬리 등.

놈은 주로 해안가에 출몰하지만, 이따금 육지를 거슬러 올라올 때도 있다고 했다.

“물귀신의 눈을 마주한 자는 온몸이 굳어져 움직이지 못한다는 말이 있었지. 그래서 나는 항상 놈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를 썼소. 하지만 한 번. 딱 한 번 놈과 눈을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 속설이 결코 낭설이 아닌, 진짜라는 걸 알 수 있었소.”

물귀신은 의문의 마법으로 상대의 몸을 굳게 만든 뒤, 한입에 먹잇감을 집어삼켰다.

다행히 상대의 정신력에 따라 효과가 다른지, 오수는 구사일생으로 몸이 풀려나 달아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놈이 아이를 셋이나 잡아먹은 탓에 이곳에 살던 모든 부모가 섬을 떠났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상에 있을 때도 재빠르지만, 물속에선 더 발군이오. 내 장담하건대, 놈이 물에 들어가면 절대 잡을 수 없을 것이오. 놈이 육지에 올라왔을 때, 그때만이 유일한 기회지.”

20년을 상대한 만큼 오수의 설명은 길었다.

거의 일방적이다시피 한 둘의 대화는 새벽까지 계속됐는데, 그는 자신이 목격한 놈들의 세세한 습관까지도 상세히 강우에게 들려주었다.

강우도 묵묵히 그가 전하는 이야기들을 머릿속에 새겼다.

아마도 놈들을 사냥하는 것이 이곳에서의 제 미션이 될 거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 오수. 그게 내게 사령술을 전수한 악마의 이름이지. 그는 항상 검은 개의 가면을 쓰고 나왔다.

어쩌면 레비아탄이 말한 그의 능력과 관련이 있는 미션일지도 몰랐다.

이윽고 긴 이야기를 마친 오수가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한강우 당신을 만난 데에는 다 뜻이 있다고 생각하오.”

강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허리춤에 찬 단검에 닿았다.

“검을 쓸 줄 아시오?”

“예.”

“…잘됐구려. 내 비록 면목 없는 일이나, 당신도 흥미를 느끼는 건 분명 사냥꾼의 기질이 있어서라고 믿고 있소.”

“…….”

“어찌 보면 모든 인간은 사냥꾼이지. 안 그렇소?”

모든 인간은 사냥꾼이다.

강우는 썩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염치없지만, 부디 건투를 빌겠소.”

그것으로 강우는 이 섬에서의 할 일을 찾은 셈이었다.

뒤늦게 오수가 말했다.

“이런, 시간이 너무 늦었구려. 어서 주무시오. 이 섬은 밤이 짧고 낮은 길지. 잠을 자 두지 않고서는 낮에 버틸 재간이 없소.”

그러더니 그는 그대로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

홀로 남겨진 강우는 천천히 오수가 말한 이야기들을 복기했다.

오늘은 먼저 숲 귀신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물귀신은 육지로 올라와야 상대할 수 있다고 했으니, 숲에 항상 있는 놈을 먼저 처리하는 게 시간상 효율적이었다.

‘숲 귀신이라…….’

새삼 예전 기억이 떠오른 강우였다.

현재는 <균열>을 처리하며 큰 희열을 느끼지 못하지만, 갓 각성자가 됐을 때만 해도 레이드를 앞두고 큰 두근거림을 느끼던 그였다.

오늘은 어떤 마물을 만나게 될지, 또 놈을 어떤 식으로 상대하게 될지.

그 사냥에는 원한도, 의무도 없이 순수한 즐거움만이 있었다.

문득 강우는 자신이 그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아침이 밝았다.

* * *

섬 생활 이틀 차.

짧은 숙면을 마친 강우가 밖으로 나오자, 마루 위에는 삶은 옥수수 두 개가 담긴 소쿠리가 놓여 있었다.

오수는 보이지 않았는데, 그는 어젯밤 귀신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배를 보수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즉, 자신은 본토로 나갈 배를 수리할 테니, 강우더러 귀신들을 잡아 달라는 뜻이었다.

간단한 스트레칭과 식사를 마친 강우는 전날 오수가 말한 대나무 숲을 향해 걸어갔다.

섬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였으나, 마을 사람들이 섬을 떠난 탓에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강우가 오솔길을 지나 막 대나무 숲에 다다랐을 때다.

“아앗!”

갑자기 수풀 속에서 고글을 머리 위에 쓴 소년 하나가 튀어나와 넘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새총이 통통 튀어 저 앞까지 떨어진 가운데, 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꼬맹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툭툭 털었다.

얼굴에 살짝 당황한 기가 엿보였으나, 또래에 비해서는 퍽 침착한 태도였다.

강우는 아이를 물끄러미 지켜보며 생각했다.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확실히 이 섬에 들어온 이후로 감각이 무뎌져 있었다.

각성 이전의 몸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기감을 확장하고 발휘하는 데 있어서 관련 감각이 전처럼 예민하지 못했다.

마침내 소년의 옷 털기가 끝났다.

녀석은 그대로 강우를 올려다보더니, 이내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러고는 대뜸 손을 내밀었다.

“……?”

“반갑다. 나는 찰스라고 해. 너, 어제 섬에 들어온 외지인이지?”

섬에 사는 건 오수 하나뿐인 줄 알았는데, 인제 보니 다른 인가도 있는 모양이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본 집들이 다 비어 있던 건 아닌 듯했다.

녀석이 계속 말을 이었다.

“뭐 해? 악수 안 할 거야?”

“…….”

강우는 천천히 손을 뻗어 꼬마와 악수를 했다.

장단을 맞춰 줄 요량이기도 했지만, 그의 취약한 약점 중에는 아이도 있었다.

“…한강우다.”

“한강우. 멋진 이름이네! 야! 모두 나와! 안전해!”

강우의 이름을 곱씹은 찰스가 뒤를 향해 소리를 지르자, 꼬맹이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녀석들에게 둘러싸인 강우가 그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찰스가 외쳤다.

“이름이 한강우래!”

“반가워, 강우야!”

다들 강우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강우는 문득 자신의 시야에서 괴리감을 느꼈다.

찰스와 자신의 눈높이가 같아진 것이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손을 살폈다.

“…….”

본래 손의 반도 안 될 크기의 손.

강우는 어느새 아이의 몸이 되어 있었다.

검은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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