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레비아탄 (5)
‘중국 각성자 기구’ 소속인 등륜은 그중에서도 2계급인 경감이었다.
중국은 각성자들을 당 기여도에 따라 1계급부터 5계급으로 나누고 하나의 군대처럼 운영했는데, 경감은 간부직 중에서도 나름 상위에 해당하는 자리였다.
‘경감으로서의 첫 임무가 고작 광산 조사라니…….’
등륜이 경감이 된 건 이제 불과 2주 남짓.
그로서는 이 낯선 외지로의 발령이 당연히 못마땅했으나, 경력을 보면 당연히 와야 할 일이기도 했다.
‘대충 끝내고 술이나 퍼먹어야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번 여정이 아주 엉망인 건 아니었다.
브레이크로 인해 상황이 좋지 않은 북한은 중국이라면 굽실대기 바빴으니, 현재 이곳에서의 등륜은 황제나 다름없었다.
안 그래도 벌써 북한 정부로부터 삼 일간이나 융숭한 대접을 받지 않았던가.
그는 이참에 휴식을 취하다가 중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간 2계급으로 올라오기 위해 수많은 접대를 해 온 그였지만, 정작 자신이 대접받은 건 매우 드물었다.
이제는 좀 쉴 때도 됐지.
<발광 균열> 앞에 도착한 등륜이 수하를 불렀다.
“경감, 부르셨습니까?”
“그래. 난 밖에서 주변을 살피고 있을 테니, 넌 정예 몇몇을 뽑아서 먼저 들어가라.”
“…예? 균열에는 직접 안 들어가십니까?”
이 새끼가…….
눈치 없는 수하의 말에 등륜이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미쳤냐? 괜히 닫힌 균열에 들어갔다가 잘못되면? 네가 책임질래? 어차피 3레벨 균열이잖아! 내가 나설 것까지 있어?”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얼마 전, 등륜 밑으로 들어온 이 남자는 의욕이 무척이나 넘쳤다.
등륜이 다른 수하들도 많은데 굳이 그를 데려온 건 다 이유가 있었다.
계속해서 꺾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길들여질 테니까.
“지리를 기억하는 북한 놈 몇 명 데리고 네가 직접 가서 끝내. 부하는 얼마든지 데려가도 좋다.”
“명 받들겠습니다.”
곧 허리를 굽힌 수하가 돌아가고, 등륜은 그 뒷모습을 아니꼽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차피 웬만한 <균열>쯤은 브레이크를 일으켜도 반의반 나절이면 제압할 수 있었다.
하물며 3레벨 <균열>이야.
중국이 어떤 곳인가.
전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는 4차 각성자를 무려 일곱 명이나 보유한 강대국이다.
얼마 전의 한국처럼 브레이크가 대대적으로 벌어진다 한들, 그들은 그것을 해결하는 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전설 속의 용이라도 튀어나오지 않는 한 말이다.
그런데 조사단을 꾸린 수하가 <발광 균열>에 들어간 뒤였다.
카아아아악!
임시로 친 해먹에서 꾸벅꾸벅 졸던 등륜은 갑작스러운 괴성에 번쩍 눈을 떴다.
‘뭔 소리야?!’
상공에서 들려오는 괴성과 땅에 드리워진 그림자.
등륜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각성자들의 낯빛이 어두웠다.
‘헉!’
뒤늦게 그 정체를 확인한 등륜의 숨도 멎었다.
하늘을 날고 있는 건 바로 용이었다.
그것도 가죽과 살은 어디 가고 뼈만 남은 해골 용.
이 대낮에 언데드 용이라니?
갑작스러운 사태에 등륜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몸을 떨었다.
대체 어디서 저런 용이 갑자기 나타났단 말인가?!
설마 저 <발광 균열>에서?
“모, 모두 전투를 준비해라!”
당황한 등륜이 황급히 자신의 쌍검을 꺼내는 사이, 초거대 <스컬 드래곤>은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 어느새 저 멀리 산등성이로 향하고 있었다.
설마 이 산지를 벗어나려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큰일이었다.
지금껏 북한에서 일어난 <브레이크>는 중국의 의도대로 컨트롤할 수 있었다.
마물들이 전부 지상에서만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물들을 가둬 둘 땅도 직접 설정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마물이 하늘을 날 수 있는 용이라면?
설상가상 놈이 중국에까지 이른다면?
과연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이란 말인가.
등륜은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바, 반드시 잡아라! 저 용을 반드시 잡아!”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쿠궁!
“……?!”
등륜과 함께 <발광 균열> 앞을 지키던 모두가 갑자기 바닥에 대가리를 처박았다.
‘제기랄!’
간부인 등륜으로서는 굴욕적인 자세이지만, 온몸이 굳어져 도무지 움직일 줄 몰랐다.
‘저 용의 스킬이다!’
등륜은 몸을 벌벌 떨었다.
3차 각성자를 단번에 제압하는 스킬이라니.
북한이 망하는 건 이제 불 보듯 빤했다.
그리고 이 북한에 남은 자신 역시도.
‘시팔!’
등륜이 몸을 일으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이, <스컬 드래곤>은 유유히 산등성이를 넘어갔다.
* * *
등륜이 <스컬 드래곤>을 발견하기 약 30분 전.
“그러니까… 지금 저 미친놈을 믿어 보자는 거지?”
설마 하는 도봉팔의 물음에 강우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미친놈이 레비아탄을 뜻하는 거라면, 그렇다.”
“…….”
강우의 말에 모두는 멀찍이서 이쪽을 바라보는 레비아탄을 쳐다봤다.
현재 그들은 레비아탄이 임시로 만든 마력 차단 마법진에 숨어 있었는데, 강우가 말한 ‘정면 돌파’란 레비아탄을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레비아탄이 <스컬 드래곤>을 부려 시선을 끌면, 강우는 <역(力)>의 힘을 이용해 <균열>에 들어온 각성자들을 제압한다.
행여나 밖에 사람이 있다면, 그들도 역시 마찬가지.
하늘을 나는 <스컬 드래곤>이 나타나면 눈길을 끌 건 자명하니, 그 틈에 달아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도봉팔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균열은 그렇게 나간다고 쳐도, 밖에선 어떻게 달아날 건데? 얼마 못 가 출동한 다른 놈들한테 붙잡히고 말 거다.”
“그건 걱정할 것 없다.”
뭐지?
순간, 도봉팔은 강우의 말투에서 불길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불길함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우린 하늘로 갈 거니까.”
“…뭐?”
“난 스컬 드래곤을 타고 갈 생각이다.”
이번에는 유아라와 김민정까지도 벙찐 표정이었다.
<스컬 드래곤>을 탄다니?
마물을 타고 이동하는 건 상상조차 해 보지 않은 일이었다.
“레비아탄은 소환수의 크기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그거면 인부들을 충분히 다 태울 수 있을 거다. 우리도 물론이고.”
“미친…….”
하지만 그 도봉팔도, 도봉순도 그 작전에 선뜻 찬성하지 못했다.
레비아탄이 언제고 부술 수 있는 해골 덩어리를 타고 달아나자고?
고양이에게 생선, 아니, 악어의 아가리에 인간의 머리를 맡긴 격이었다.
어딘가 소름 끼치고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유아라와 김민정은 곧 결심을 굳혔다.
“좋아요.”
“저도 나쁘지 않게 들려요.”
그녀들의 말에 도봉순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놈들이 스컬 드래곤이라고 달아나게 둘 것 같아? 설마 그걸 타고 서울까지 갈 생각은 아니지? 얼마 못 가서 요격당하고 말 거야. 그리고 브레이크가 일어나면 중국도 대대적인 수사와 수색을 시작할 거고.”
“그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강우는 천천히 계획을 설명했다.
<스컬 드래곤>이야 언제고 소환과 해제가 가능했으므로 북한과 중국 각성자들 앞에서 뭉개 버리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스컬 드래곤>을 <발광 균열>의 보스라 착각할 테고, 레비아탄이 사라진 <균열>도 자연스럽게 소멸할 테니 아귀가 들어맞았다.
“놈들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순간, 흩어지면 그만이다. 어차피 남으로 가고 싶은 인부들은 절반이 채 되지 않으니, 그건 너희가 알아서 해라.”
레비아탄이 지키고 있던 인부는 모두 서른두 명.
그중에서 한국으로의 탈북을 꿈꾸는 건 김민석을 제외하고 모두 열넷이었다.
“시간이 없다. 곧 저들이 돌산에 다다를 거다.”
“젠장.”
“불길해…….”
결국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도봉순과 도봉팔은 강우의 말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서둘러 레비아탄에게로 다가갔다.
벌써 북한과 중국의 각성자들이 돌산에 근접한 게 느껴졌다.
수색을 위해 조심스럽게 다가오지 않았다면, 이미 다다르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결정 났다. 네 소환수를 빌려야겠군.”
“현명한 선택이야.”
레비아탄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는데 별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는 강우의 작전을 들었을 때부터 흡족해하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기도 했거니와, 자신의 힘으로 가엾은 노예들을 구할 수 있다니, 그로서도 나쁠 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실익도 잃지 않았다.
“명심해라. 너흰 내게 빚을 졌다. 이미 말했지만, 난 네 수하가 아니야. 굳이 따지자면… 전략적 동맹이다. 동맹의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하지.”
강우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부터 이 의문의 <네크로맨서>를 수하로 거둘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저 그 힘을 빌리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레비아탄이 몸을 돌려 인부들에게 외쳤다.
“가련한 노예들이여! 모두 몸에 진흙을 발라라!”
이 섬의 진흙은 기척과 마력의 노출을 최소화해 주는 힘이 있었다.
뒤늦게 작전을 들은 인부들이 진흙을 방호복 위에 허겁지겁 바르는 가운데, 레비아탄이 손바닥을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렸다.
“일어서라.”
그그그그극!
그러자 공터의 지반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거대한 뼈가 튀어나왔다.
한 아름은 될 법한, 어마어마한 굵기의 뼈였다.
구구구구구―!
카아아아악!
공터를 둘러싸고 있던 동굴 벽면이 부서지고, 곧 바닥에서 튀어나온 <스컬 드래곤>이 목을 길게 뻗어 포효했다.
저 멀리서 드래곤의 머리를 발견한 각성자들의 아우성이 들려왔으나, 이곳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으악!”
“…드, 드래곤이다!”
혼비백산한 인부들이 야단법석인 가운데, 강우가 마력으로 강화한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서둘러라.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어린아이와 노인부터 오르고, 나머지는 그 주변을 둘러싼다. 타지 않겠다고 해도 말리진 않겠다.”
당연히 인부 중에서 이곳에 남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서둘러 <스컬 드래곤>의 꼬리와 다리뼈를 타고 그 등에 올랐고, 이어서 김민정과 김민석, 유아라와 도봉순, 도봉팔이 뒤를 따랐다.
이곳을 나가면 인부들은 자유의 몸이 될 터였다.
물론 그 뒤로도 제 살길을 찾아야겠지만, 그들이 도봉순을 따라 남한으로 가든, 가족과 타지로 도망을 가든, 그건 그들의 몫이었다.
더 이상 강우가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얼른 타라.”
<스컬 드래곤>의 지휘자, 레비아탄은 목 위에 걸터앉고, 강우는 언제라도 그를 제압할 수 있게 그 뒤에 자리를 잡았다.
스르륵!
모두가 무사히 드래곤에 올라탄 걸 확인한 강우는 커다란 <검은 개체> 몇 개를 생성해 <스컬 드래곤>의 등을 가렸다.
이제 웬만해서는 자신들을 확인할 순 없을 터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다시 한번 생각을…….”
“출발해라.”
“이럇!”
팟!
카아아아!
도봉팔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스컬 드래곤>의 육중한 몸이 하늘로 떠올랐다.
“으, 으아아악!”
도봉팔과 몇몇 인부들이 비명을 질렀으나, 그것은 곧 탄성으로 변했다.
그들을 지나치는 차가운 바람과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잿빛 섬의 풍경.
어느새 수십 미터 상공으로 떠오른 <스컬 드래곤>이 <균열>의 입구 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저 아래로는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기함하는 각성자들이 보였다.
그들은 약 서른 남짓.
복장을 보아하니, 예상대로 중국 쪽 각성자인 듯했다.
‘역(力).’
다행히 저들 중에는 강우의 힘을 거스를 정도의 실력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 각성자들이 갑작스러운 무게감에 머리를 바닥으로 처박은 사이, <스컬 드래곤>에 탄 그들은 <균열>을 무사히 벗어났다.
“요, 용이다!”
역시나 <균열>밖에는 처리반이라 추정되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이 얼빠진 얼굴로 <스컬 드래곤>을 쳐다보는 사이, 강우와 일행은 유유히 그 머리 위를 지나 산을 날았다.
<발광 균열>이 산지에 발생한 게 그들에게는 나름 천운이었다.
곧 중국의 각성자들이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서둘러 바닥에 자리를 잡은 레비아탄이 <스컬 드래곤>의 숨결을 거뒀다.
죽음의 증거가 필요하기에 드래곤의 뼈는 일부러 주변에 널브러뜨려 놓았다.
“이게 진짜 되다니…….”
도봉순과 도봉팔이 혼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탈출도 성공리에 마쳤으니, 이제 남은 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뿐이었다.
“그럼 한국에서 보지.”
강우는 지체 없이 단원들과 작별했다.
유아라와 잠시 눈을 마주쳤지만, 그녀도 이번에는 굳이 밝은 척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들과 이별한 강우는 품속에서 <사이트 스톤>을 끄집어내며 레비아탄에게 말했다.
“이곳에 마력을 불어넣어라.”
“…마력을?”
그가 미심쩍다는 듯 쳐다봤지만, 나름 약속을 맺은 지금으로선 강우를 신뢰하는 게 최선이었다.
곧 레비아탄은 <사이트 스톤>의 세상으로 흡수되었고, 강우는 주변에서 감지되는 새로운 <균열>을 찾아 떠났다.
그렇게 강우의 북한 여행기는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건…….
<데스 나이트>가 기다리는 ‘탑’뿐이었다.
검은 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