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발광지옥 (4)
캉! 캉! 캉!
“크윽!”
“봉팔아, 버텨! 누나가 간다!”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 안 보이냐?!”
“크하하! 보기보다 잘 막는구나!”
신난 레비아탄의 도끼가 사정없이 내려쳐지는 가운데, 도봉팔은 마력을 두른 검으로 그것을 막아 내는 데 급급했다.
다행히 상대의 무위는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문제는 주위를 에워싼 <스켈레톤>들이었다.
콰과과과과!
<스켈레톤>들에게 마력을 한바탕 쏟아부은 유아라가 외쳤다.
“스켈레톤이 너무 많아요!”
“빌어먹을!”
본래 계획은 레비아탄을 끌어내는 순간, 놈에게 일제히 달려들어 단숨에 제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의 <사령술>이 그들의 예상을 훨씬 웃돈다는 점이었다.
평소 수백 마리에 달하던 <스켈레톤>들이 어느새 수천으로 불어나 도봉팔과 그들의 사이를 잔뜩 메우고 있었다.
아두를 안고 싸운 조운의 기분이 이랬을까.
그들은 죽여도 죽여도 계속 일어나는 <스켈레톤>들을 보며 점차 지쳐 가는 중이었다.
콰과광!
일격에 <스켈레톤> 수십을 날려 버린 도봉순이 말했다.
“그보다 나는 저놈이 보스인지가 의심스러워!”
‘…확실히.’
유아라도 레비아탄을 보며 생각이 많아진 참이었다.
아무리 봐도 저 남자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균열>의 보스라고?
지금까지의 보고 들은 모든 경험을 망라해도 그건 처음 겪는 사실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한 가운데, 유아라는 문득 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강우 씨는 사도들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했어.’
그렇다면 상대는 사도인가?
만약 정말로 레비아탄이 강우가 말한 사도라면, 그들이 이곳에서 살아 나갈 확률은 없었다.
강우가 말하길, 사도는 하나하나가 4차 각성에 이른 마물이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4차 각성자로는 보이지 않는데.’
레비아탄이 정말 4차 각성자라면, 도봉팔이 여기까지 버틴 것도 기적이었다.
그때였다.
“비켜 봐!”
츠츠츠츳!
마력으로 검을 4미터 이상 늘어뜨린 도봉순이 횡으로 그어 <스켈레톤> 백여 마리를 쓰러뜨렸다.
놈들은 어마어마한 생명력을 무기로 하는 만큼 각자의 공격력이나 방어력은 하찮은 수준이었다.
잠시나마 숨통을 튼 도봉순이 무기 강화 스킬인 <소드 부스터>를 사용하며 외쳤다.
“인레이지!”
“……?!”
도봉순의 외침에 <스켈레톤>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로 쏠렸다.
스켈레톤들을 향해 연신 마력을 쏘아 대던 유아라도 뒤늦게 그 스킬의 효과를 알아채고 고개를 돌렸다.
“스켈레톤의 시선을 끄는 거군요?!”
도봉순이 사용한 건 일종의 ‘도발’ 마법이었다.
“그래, 내가 두 번째로 얻은 각성 스킬이지. 전투 능력은 아니지만, 나름 써먹은 적이 많아. 단점은 인간에겐 안 걸리더라고.”
“하지만…….”
수천의 <스켈레톤>의 시선을 끌어서 도봉순에게 좋을 일은 없었다.
유아라의 걱정스런 시선에 그녀가 작은 웃음으로 대꾸하며 말했다.
“나는 이제 끝이다.”
“엣? 그런……?!”
도봉순은 그대로 몸을 돌려 해안 절벽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수천의 <스켈레톤>이 도봉순의 뒤를 쫓는 광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해변의 모래가 진동으로 떨리는 가운데, 유아라는 서둘러 <스켈레톤> 무리에서 벗어나 여전히 도봉팔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레비아탄 쪽을 쳐다봤다.
상태가 좋지 않은 김민정은 이미 해안 절벽 위에 자리하고 있으니, 이제 자신들만 할 일을 해내면 모든 게 해결될 터였다.
그녀는 서둘러 마지막 남은 <이무기의 비늘>을 찢으며 그쪽으로 달려갔다.
“……?!”
그 순간, 도봉팔은 도끼를 내리찍던 레비아탄이 흠칫하는 것을 느꼈다.
‘빈틈!’
그 좋은 기회를 놓칠 도봉팔이 아니었다.
그는 검으로 도끼를 흘려 내는 한편, <아이언 바디>로 강화한 주먹을 놈의 얼굴에 냅다 꽂았다.
퍽!
“윽!”
레비아탄이 처음으로 비틀거리며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제기랄!’
상대의 기절을 예상한 도봉팔의 표정이 일그러진 가운데, 광대가 뻘겋게 부어오른 레비아탄이 보랏빛 눈을 빛냈다.
“이게 대한족 전사라는 놈의 주먹이냐?!”
“대한족이 아니고 대한민국이다, 이 새꺄!”
소리를 지른 도봉팔이 검을 휘두르자, 레비아탄이 황급히 방패를 들어 막았다.
<스컬 드래곤>이 보이지 않는 지금이 기회였다.
도봉팔은 검을 멈추지 않았다.
캉! 캉! 캉!
검과 원형 방패가 연신 부딪치며 거친 소음을 흘렸다.
그사이, 도착한 유아라도 협공을 시작했다.
팟!
레비아탄이 다급히 몸을 틀었지만, 이미 빈틈을 보인 뒤였다.
유아라의 단검이 그의 어깨를 스치고 처음으로 피가 튀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백발의 <네크로맨서>가 이를 부득 갈았다.
“전사의 긍지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놈들!”
콰드드드득!
레비아탄이 도끼를 내려치자 바닥이 갈라지고, 그곳에서 파편들이 비산하며 떨어졌다.
그 돌 우박 속에서 레비아탄이 소리쳤다.
“장난은 끝났다! 나는 망자왕, 레비아탄! 네놈들을 지금부터 단죄하겠다!”
그러자 그의 도끼에서 보랏빛 기운이 더욱 크게 일렁이더니, 이내 덩치를 두 배 이상 키웠다.
보기만 해도 전신이 움츠러들 정도로 사악하고 불길한 기운이었다.
“잘 가라, 이 구더기만도 못한 놈들!”
“자, 잠깐!”
도봉팔이 서둘러 <아이언 바디>를 사용하며 유아라를 지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콰르륵!
레비아탄의 검에서 쏟아진 기운이 곧 보랏빛 물감이 되어 쏟아지고, 유아라와 도봉팔의 몸이 그것에 흠뻑 젖었다.
어떻게 불꽃이 물감이 되었는가 따위는 중요한 질문이 아니었다.
다만, 보랏빛 물감을 뒤집어쓰자 숨이 턱 막혔다는 점이 중요했다.
“……!”
둘은 너나 할 것 없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제 목을 틀어쥐었다.
레비아탄의 <사령술> 중 하나인 <사령화>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쓰러진 두 사람이 바닥에서 몸부림치는 가운데, 레비아탄이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네놈들을 내 수족으로 써 주마. 평생 내 발치에서 네놈들이 지은 죄를 회개하며 살아라.”
“도봉팔!”
뒤늦게 사태를 깨달은 도봉순이 방향을 틀어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레비아탄이 작게 입을 벌렸다.
“오, 이 버러지들에게도 동료애라는 게 있었군.”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레비아탄에게 자비심이 생긴 건 아니었다.
저들은 자신의 일족들을 노예로 두고 채찍질한 놈들.
결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놈들이었다.
“네 죄를 네놈이 알렷다.”
“뭔 개소리야!”
콰과과과과!
도봉순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오러가 앞을 가로막은 <스켈레톤>을 베고 레비아탄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스켈레톤>을 베는 와중에 오러의 속도는 점차 느려졌고, 레비아탄을 바로 코앞에 두고 힘이 다해 소멸해 버렸다.
그걸 본 레비아탄이 코웃음을 쳤다.
“여기까지로군, 너희는.”
촤르르르!
그가 자신의 도끼를 하늘로 치켜들자 해변가를 가득 메운 <스켈레톤>들의 몸이 분리되며 그 뼈가 도봉팔과 도봉순, 그리고 유아라에게 들러붙기 시작했다.
“무슨 짓이야!”
이미 팔과 다리가 달라붙은 뼈로 무거워진 도봉순이 소리를 질렀지만, 레비아탄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유아라와 도봉팔, 두 사람 모두 숨이 막혀 얼굴이 점차 보랏빛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한 놈이 사라졌지만, 놈도 곧이다.”
곧 공개 처형을 앞둔 것처럼 뼈 그물에 묶인 세 사람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러고는 이어서 다른 <스켈레톤>의 뼈들이 줄줄이 하늘로 치솟아 레비아탄의 머리 위에서 하나의 모양을 갖췄다.
누런 뼈로 만들어진, 거대한 망치였다.
어느새 도끼 대신 초대형 망치를 든 레비아탄이 말했다.
“나 망자왕, 레비아탄. 아말샨 족을 대신해 사악한 무리를 단죄한다.”
“그러니까 무슨 개소리냐고! 당장 풀어줘, 이 개새끼야!”
하지만 아무리 도봉순이 소리를 질러도 그의 망치에 자비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망치가 그들을 후려치려던 그때였다.
탕!
레비아탄은 순간 자신의 어깨에서 느껴진 통증에 움직임을 멈췄다.
구멍이 난 자신의 피부에서 보라색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푸하!”
“괜찮냐? 도봉팔?!”
“헉! 헉! 시팔, 뒈질 뻔했네!”
덕분에 레비아탄의 정신이 흐트러진 틈을 타 유아라와 도봉팔도 주술에서 풀려났다.
그럼에도 레비아탄은 여전히 자신의 어깨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어느새?’
갑자기 살에 구멍이 나다니?
뒤늦게 전해 오는 이물감.
방패를 버리고 상처 부위에 손가락을 넣어 보자, 안에서 탄두가 끄집어 나왔다.
레비아탄으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무기였다.
그의 시선에 따라 남아 있던 <스켈레톤>의 시선도 일제히 총알이 날아온 쪽으로 향했다.
“헉, 헉…….”
그 정체는 저격총을 양손으로 쥔 김민정이었다.
마력 중독으로 인해 거친 숨을 내쉬는 그녀는 <이무기의 비늘>을 사용했는지, 몸 위로 검은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저건…….’
그것을 본 레비아탄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유아라 때도 잠시 느꼈지만, 저들은 현재 <사령술>과 비슷한 기술을 쓰고 있었다.
혹, 강림인가?
저들은 어떻게 본연의 것 외의 기운을 다루는가.
‘귀기는 아닌데…….’
하지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마력 중독으로 호흡이 힘겨운 가운데, 김민정이 다시금 조준점에 눈을 가져다 댄 것이다.
탕!
또 한 번 마력 전이가 이루어진 마탄이 쏘아졌으나, 이번 총알은 레비아탄에게 닿지 못했다.
바닥에서부터 겹겹이 올라온 뼈 방패가 그것을 막아 낸 것이다.
그녀를 싸늘하게 노려보던 레비아탄이 자신의 보랏빛 입술을 달싹였다.
“…잡아와.”
카아아아악!
<스컬 드래곤> 만들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어느새 공중으로 떠오른 황량한 드래곤이 김민정을 향해 쏜살같이 날았다.
하지만 도망칠 힘은 없었다.
‘엄마… 민석아.’
이렇게 죽게 되는 걸까.
김민정은 두 눈을 감았다.
이미 정신이 몽롱했다.
그런데 <스컬 드래곤>이 막 닿으려던 그때.
쿵!
끼아?!
<스컬 드래곤>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가속도가 더해진 무게를 견디지 못한 <스컬 드래곤>이 바닥으로 처박히고, 놈을 깔고 내려온 남자가 자신의 정장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걸어 나왔다.
“하늘에서 떨어지다니… 좋지 못한 이동이로군.”
“…강우 씨?”
뼈로 만든 처형대에 매달려 있던 유아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꿈을 꾸는 건가?
강우는 서울에서 이카루스와 대결이 한창일 텐데…….
그녀는 이미 강우가 이승우를 처치하고, 류헤이와 연합마저 물리쳤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강우가 허공에 매달려 있는 도봉팔과 도봉순, 그리고 유아라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놀고 있겠냐! 얼른 풀어줘!”
도봉팔이 소리를 꽥― 지르자, 강우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곧 그의 손에서 쏘아진 검은 마력이 그들을 붙잡은 뼈를 부수려던 찰나.
콰득!
어느새 생겨난 촘촘한 뼈 그물이 강우의 마력을 가로막아 소멸시켰다.
레비아탄이었다.
아까부터 강우를 노려보던 그가 물었다.
“너… 누구냐? 어떻게 하늘에서 떨어졌지?”
연꽃을 타고 왔다.
…라고 말하기엔 어딘가 부끄러웠다.
유아라를 떠올리고 왔다.
…라고 하기도 어딘가 어색했다.
그래서 강우는 상대의 물음에 대충 둘러대기로 했다.
“…시험해 볼 것이 있어서.”
“시험?”
그러자 가뜩이나 창백해서 싸늘해 보이던 레비아탄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오냐, 네놈도 내 일족을 노예처럼 부리던 놈이구나.”
“…무슨 소리지?”
하지만 레비아탄은 더 이상 강우의 말을 듣지 않았다.
곧 그의 손길에 수천의 <스켈레톤>과 다섯의 <스컬 드래곤>이 몸을 다시 일으키고, 처음 보는 대형 뼈 골렘도 곳곳에서 등장했다.
‘신기한 능력이로군.’
강우는 레비아탄이 펼치는 기적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백귀왕의 강령술이 죽은 자를 일으키는 수준이라면, 이 눈앞의 사내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차원에서 저것들을 불러오고 있었다.
그것만 따지면 사내는 백귀왕보다 <강령술>면에선 더 뛰어난 셈.
그때, 수천의 군세 속에서 레비아탄이 이를 악물었다.
“기운을 보아하니 분명 네놈이 이놈들의 수괴이렷다. 내 일족의 원수인 네놈을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
“……?”
“가라, 나의 형제들이여! 망자왕의 명령이다!”
화르르륵!
레비아탄의 명령에 수천의 해골 부대에서 보랏빛 불길이 일제히 치솟고, 곧 강우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카아아아!
수만, 수십만 개의 뼈들이 부딪치며 달그락 소리를 내었다.
‘될 수 있으면 안 쓰려고 했는데…….’
곧 <스컬 드래곤>의 아가리가 닿으려던 찰나.
한숨을 내쉰 강우가 중얼거렸다.
“역(力).”
“?!”
콰득!
수천의 망자 부대가 한 줌 뼛가루로 변하는 데에는 불과 2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검은 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