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헌터-121화 (122/186)

[121화] 히데타 (1)

청익에게서 연락이 온 건 그로부터 이틀 뒤였다.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유아라와 김민정이 슬슬 우려되는 가운데, 강우는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표면적으로 그의 소속은 만석이므로, 강우는 오만석과 함께였다.

약속 장소는 스톰 길드의 접견실.

히데타의 부하들은 한국 소속 길드의 접견실에서의 만남에 반감을 품었으나, 길드장인 히데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차피 그들의 본거지라고 한들, 자신을 막을 순 없을 테니까.

이윽고 오만석과 로드리게, 강우가 접견실에 들어서자, 히데타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자인가?”

함께 있던 서유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파에 앉아 있는 히데타의 시선이 정확히 오만석의 뒤에 선 강우에게 꽂혔다.

이미 오만석이 무늬만 길드장이라는 것쯤은 히데타도 잘 알았다.

그의 눈에 오만석의 마력은 환하게 들여다보였으니까.

진짜는 강우였다.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히데타는 강우의 외양을 찬찬히 살폈다.

서늘하게 가라앉은 두 눈과 굳게 닫힌 입술.

적당히 큰 키에, 적당히 탄탄한 체격.

특별한 것 없는 검은 정장을 입은 그는 흡사 무채색 같은 남자였다.

어딘가 어두워 보이는 그에게선 아무런 감정도, 그 어떤 기세도 읽히지 않았다.

마력이 일절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상대의 실력이 출중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4차 각성자라는 게 사실이었군.’

하지만 마력의 완벽한 갈무리쯤은 3차 각성자들 중에서도 수준급 인사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경지.

그것이 강우의 진짜 실력을 보여 주는 지표는 아니었다.

‘히데타.’

강우 역시 히데타를 보고 있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역시 한 나라를 대표하는 실력자답게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대단했다.

‘저 정도면 임가륜이라고 해도 믿겠군.’

사도의 권능을 제외하면, 현재의 히데타는 임가륜급 능력자로 보였다.

그때, 서유리가 만석 길드를 맞이하며 말했다.

“일단 않으시죠. 관계자분들이 모두 모이셨으니 대화를 시작해 볼까요?”

오늘의 만남은 비밀이었다.

이 만남을 아는 건 연합과 오동, 그리고 한국의 5대 길드뿐.

그들은 이번 회담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참여자는 모두 아홉이었다.

스톰 길드장 서유리와 부길드장 장민철.

어제 막 퇴원한 독종 길드장 김인표와 송학의 송민호.

그리고 일본 오동 길드장 헤데타와 부길드장 이토.

만석의 오만석, 로드리게.

마지막으로 한강우.

“…….”

모두가 회담을 위해 둘러앉았지만, 섣불리 먼저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한동안 서로의 분위기만 살필 뿐이었다.

이윽고 보다 못한 김인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애초에 난 이 자리가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류헤이는 한국 국민을 공격했고, 당연히 잘못을 범한 이 땅에서 처벌받아야 합니다. 연합 국적기에서 체포된 것도 아니고요.”

김인표는 이전에 봤을 때보다 한 꺼풀 기세가 꺾인 눈치였다.

그로서는 이승우의 일도 있지만, 강우 때의 일도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강우에게 까불다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김인표는 말을 하면서도 강우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

통역을 맡은 건 서유리였다.

그녀가 김인표의 말을 전하자, 히데타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체포라… 내가 듣기로는 적법한 체포가 아니었던 걸로 아는데.”

그가 김인표를 노려보았다.

“만약 그게 제대로 된 체포였다면, 류헤이가 체포 이후 행사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고지받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고 했어. 또한 그를 잡아 간 게 어느 길드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독종인가? 아니면 스톰? 만석? CCTV를 확인한 결과, 그놈들은 소속을 밝히지도 않았지. 누가 감히 연합의 사절이자 오동의 부길드장을 그런 무뢰배로 붙잡을 수 있지? 한국은 체포를 그런 식으로 집행하나? 그렇다면 이건 한국 정부에 정식으로 잘못을 물어야 할 일이군.”

“…….”

그 말에 김인표는 입을 다물었다.

당시 스톰과 독종은 류헤이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길드장이 위독했기 때문이다.

뒤늦게나마 서유리가 장민철을 보냈지만, 그보다 검계가 한발 더 빨랐다.

만약 그들이 아니었다면 류헤이를 놓쳤을지도 모를 일.

류헤이를 잡았다던 그들은 소속을 밝히지 않고, 놈을 만석을 통해 내놓았다.

그런데 그 절차를 놓고 따질 줄이야.

단순히 위력행사나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히데타가 꽤 많은 준비를 하고 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우습군.”

아까부터 오만석 옆에서 조용히 있던 강우가 조소했다.

그 말을 통역해 보라는 듯 히데타가 서유리를 바라보자, 그녀가 다소 곤란한 얼굴로 그 말을 전했다.

“…뭣이?!”

그러자 성화를 낸 건 줄곧 히데타의 뒤에 서 있던 부길드장 이토였다.

그의 직책은 부길드장이지만, 히데타를 지키는 호위이기도 했다.

이토가 당장에라도 검을 뽑을 듯 검집에 손을 댄 채 소리쳤다.

“감히 길드장께서 이야기하는 자리에 목소리를 내다니! 네놈이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뛰어난 수준은 아니지만, 과거에 일본 활동 경력이 있는 강우는 어느 정도 일본어를 할 줄 알았다.

상대의 말을 알아들은 그가 일본어로 말했다.

“너흰 집에 쳐들어온 좀도둑을 때려잡는 데도 친절히 경위를 잘 설명하고 잡는 모양이로군.”

“뭐라고?”

핵심을 찌르는 지적에 이토가 흠칫하는 사이, 강우가 말을 이었다.

“오동은 그런지 몰라도 이곳은 아니다. 범죄자에겐 얄짤 없지. 이승우가 왜 죽었는지 잊었나 보군.”

“우리 오동도 그러진 않아!”

자존심이 상한 이토가 소리를 빽! 질렀지만, 그건 강우의 말을 인정하는 것이나 나름없었다.

결국 히데타가 손을 들어 그를 만류했다.

이토의 충성심과 무예는 인정하나, 그는 생각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편이었다.

그게 부길드장을 한 명 더 둔 이유이기도 했고.

이토가 부길드장이 될 수 있던 건, 순전히 초창기 멤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여러 차례 히데타를 위기 속에서 구한 인물이었으니까.

머리는 나빠도 언제고 자신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자.

그게 바로 이토였다.

잠시 강우를 차갑게 노려보던 히데타가 말했다.

“그건 류헤이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의 이야기지.”

“웃기는군. 기자를 공격한 게 범죄가 아니란 말인가?”

“류헤이는 그것이 이승우를 막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고라고 했다. 그리고 애초에 류헤이는 너흴 구하러 온 자다. 그런 자를 범죄자로 몬 것으로도 모자라 강제로 구속까지 하다니… 한국은 실로 은혜도 모르고 뻔뻔한 나라로군.”

한국을 구하러 와?

가장 먼저 기가 차 웃은 서유리가 그 말을 통역하자, 나머지 길드장들도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뒤에 서 있던 로드리게도 한마디 했다.

“긍지라고는 전혀 없는 개새끼들임니다.”

하지만 그들의 싸늘한 반응에도 헤데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악의적으로 편집한 영상 하나만으로 류헤이를 범죄자로 몰 순 없다. 애초에 이승우 일은 너희의 오판으로 벌어진 사고였고, 너희가 수습하지 못할 일을 벌인 탓에 우리 쪽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당했다. 류헤이의 직속 부대가 전부 몰살당했지. 피해보상을 요구해야 하는 건 오히려 우리야.”

그가 중얼거리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무능한 한국 놈들.”

그 한마디로 분위기는 더 처참하게 변했다.

한국 각성자 모두가 히데타를 노려보고, 히데타는 그 시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여전히 담담한 눈빛을 보였다.

마침내 그가 쐐기를 박았다.

“마지막이다. 오늘 류헤이를 내놓지 않으면, 나는 그것을 한국 정부의 부당한 납치, 감금이라 치부하고 내 부길드장을 구해 내겠다. 그 과정에서 입는 피해는… 모두 한국의 몫이겠지.”

“전쟁이라도 벌이겠다는 말입니까?”

표정을 굳힌 서유리의 물음에도 그의 대답은 변함이 없었다.

“필요하다면. 이미 한국은 브레이크 사태와 이카루스 일로 신뢰를 잃었다. 또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연합과 국제사회가 너흴 어떻게 볼지 궁금하군. 하물며 너희 쪽 여론이 버텨 낼 수 있을까?”

그 말을 끝으로 히데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생각해라. 나는 실언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오후 2시까지다. 그 이상은 기다리지 않아.”

히데타는 이토를 데리고 접견실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뒤쪽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히데타의 발걸음이 멈췄다.

“…뭐지?”

히데타를 돌려세운 건 다름 아닌 강우였다.

그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히데타가 있는 쪽에서는 그의 등만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등에서 전해 오는 살기는 선명했다.

강우가 입술을 뗐다.

“굳이 2시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나?”

“…무슨 뜻이지?”

“어차피 이쪽 결정은 같다는 뜻이다.”

오호.

히데타의 눈에 처음으로 호기가 일었다.

강우가 자신의 이야기에도 별말이 없어 내심 아쉽던 참인데, 어쩐지 곧 즐거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여기서 해보자는 건가?”

히데타의 물음에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같이 있던 길드장들이 혼란스러운 눈으로 강우를 바라봤다.

이곳으로 강우가 오기 전, 오만석은 강우와 자신이 오늘 일을 해결할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해결이라는 게… 설마 진짜 결투를 벌이려는 거였나?

송민호의 안색도 사색이 돼 있었다.

‘서, 설마 진짜 여기서 싸우려는 건 아니겠지?’

그로서는 이승우와의 싸움에서도 살아남았는데, 여기서 죽는 건가 싶었다.

그는 강우의 실력을 눈앞에서 확인한 산증인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강우는 이곳에서 마력을 방출하지 않았다.

“싸움터라면 주변에도 많다. 원한다면 상대해 주지.”

“하… 하하! 하하하핫!”

그 당당함에 히데타가 웃음을 터뜨렸다.

한동안 그의 폭소가 접견실에 울려 퍼지고, 곁에 선 이토도 강우를 비웃었다.

그 둘은 모두 강우와 이승우의 싸움이 담긴 영상을 아직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들이 강우에 대해 아는 건, 며칠 전 서유리의 배려로 통화한 류헤이가 말해 준 것이 전부.

류헤이는 강우를 설명하면서 하늘을 무너뜨린다느니, 맨주먹으로 4차 각성자인 이승우를 깨뜨린다느니, 횡설수설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강우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능력자.

하지만 히데타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류헤이는 이승우에게 당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따르던 부하들도 전부 죽었으니, 아무리 냉정한 그라도 충격을 받는 게 당연해.’

그 증거로 류헤이는 이승우를 중국 범한에 필적하는 실력자라고 평했다.

그러나 이승우의 실력에 대해선 그 누구보다도 히데타가 잘 알았다.

‘류헤이가 실제로 범한의 실력을 알지 못해 벌어진 촌극이지.’

만약 그가 범한의 능력을 제대로 알아봤다면, 그런 말은 결코 하지 못할 터였다.

범한은 4차 각성자 중에서도 중견에 속하는 히데타도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하는 실력자 중의 실력자였으니까.

그는 전 세계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자였다.

마침내 웃음을 그친 히데타가 여전히 조소 띤 얼굴로 말했다.

“그럼 어디 확인해 볼까? 한국의 세 번째 4차 각성자는 이승우보다 얼마나 나은지.”

눈치 빠른 오만석의 시선을 받은 로드리게가 서둘러 주변 <균열>을 탐색하는 가운데, 강우를 제외한 나머지 한국 길드장들은 강우와 히데타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번갈아 쳐다봤다.

물론, 그들이 안위를 걱정하는 건 히데타 쪽이었다.

서유리도 고민이 많았다.

‘아무리 히데타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크게 다치게 해선 문제가 더 커질 텐데…….’

이 남자, 대체 어쩔 생각이지?

검은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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