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테러리스트 (6)
“고작 이것밖에 안 되면서 날 잡으려고 했습니까?!”
쾅!
이승우의 호통과 함께 놈의 주먹에 맞은 유지태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
이미 그의 얼굴과 몸은 피투성이였다.
“고작 이것밖에 안 되면서, 이카루스에 대적하려 했느냔 말이다!”
쾅!
이승우가 멱살을 쥔 채 연달아 주먹질해 댔지만, 유지태는 이미 정신을 잃은 듯 축 늘어져 반응이 없었다.
곧 그의 상태를 깨달은 이승우는 그를 저 멀리 던져 버렸다.
간단히 유지태를 처리한 놈이 주변에 선 길드장들을 보며 말했다.
“보아라, 이게 나 이승우의 진짜 모습이다!”
콰과과과광!
놈이 주먹으로 바닥을 내려치자, 땅이 울리고 천지가 경동했다.
마치 재해(災害) 같은 광경에 한쪽 눈을 잃은 김인표도, 서둘러 <치유 마법>을 펼치던 서유리도, 지켜보던 류헤이도 몸을 떨었다.
이미 이승우와 5대 길드의 대결은 소란을 깨닫고 찾아온 기자들에 의해 생방송되는 중이었다.
실로 경악할 만한 이승우의 실력에 온 나라가 몸을 떨었다.
‘이, 이승우가 이 정도였단 말인가?!’
특히나 이번 기회에 한국의 전력이나 파악하려던 류헤이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미 자신이 데리고 온 직속 수하들도 절반 이상 사망한 상태.
이대로라면 길드장인 히데타를 볼 면목이 없었다.
‘이런 실력이라면… 범한에 필적하는 실력이다.’
범한은 중국의 최강자로 알려진 4차 각성자였다.
그는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 위명을 떨치는 중이었는데, 류헤이가 보기에 이승우는 결코 범한에게 뒤떨어지는 실력이 아니었다.
‘한국은 어쩌자고 저런 놈을 몰아내려 한 거지?’
분위기를 봐선 5대 길드장들도 이승우의 본 실력을 알지 못한 듯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도통 이해되지 않는 일뿐이었다.
이승우는 왜 저런 실력을 가지고도 중국과 정면으로 맞붙지 않았는지, 왜 오동에게 숙이고 들어왔는지.
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발을 들인 이상, 의문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달아나야 한다! 여기서 죽어 봐야 개죽음이야!’
자신은 연합 소속이기도 하지만, 그전에 오동 길드의 부길드장이었다.
이곳에서의 손실은 곧 일본의 국력 약화로도 이어질 터.
아시아의 패권 싸움이 한창인 이 중요한 순간에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하지만 저 정도 실력자가 자신들이 순순히 달아나게 놔둘 리 없었다.
이승우는 일본의 삼대장, 아니, 오동 전체가 와도 상대할까 말까 한 상대.
새로운 방도가 필요했다.
“가토!”
“예!”
류헤이의 부름에 직속 대장 가토가 서둘러 다가왔다.
그도 이미 이승우의 공격에 당해 한쪽 귀를 잃은 상태이지만, 오동 길드 2인자의 직속답게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몸을 피해야 한다. 이건 절대 한국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그렇다는 건…….”
“지금 당장 연막을 펼쳐라. 모두 달아난다.”
“존명!”
그 뜻을 깨달은 가토가 재빨리 사라지는 사이, 류헤이는 여전히 고고한 마력을 내뿜는 이승우를 두렵다는 듯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들은 이미 희망이 없다.’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길드장들은 서유리와 송민호를 제외하면 회생이 불가해 보였다.
김인표는 한쪽 눈에 이어 왼팔이 기이하게 꺾였고, 유지태는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채 온몸이 피떡이 돼 정신을 잃었다.
애초에 4차 각성자인 이승우를 유지태가 상대한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었다.
‘심지어 놈은 아직 마력 무구조차 꺼내지 않았어.’
눈에 훤히 보이는 패배.
결심을 굳힌 류헤이가 자신의 검을 허공에 털자, 그의 검에서 파란 불길이 솟으며 몸 위로 마력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가토!]
펑!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사방에서 연막탄이 터지기 시작했다.
매캐한 연기가 주변을 가리고, 류헤이의 검이 한국의 기자들이 있던 곳으로 휘둘러졌다.
콰과과과과!
“으악!”
기껏해야 1차 각성자인 기자들이 그의 공격을 견뎌 낼 리 없었다.
삽시간에 공격당한 기자들이 사살되고, 이곳을 중개하던 카메라가 부서졌다.
‘어쩔 수 없어.’
훗날 자신의 행위가 밝혀지면 국제적 비난을 피할 순 없겠지만, 그보다는 길드의 생존이 우선이었다.
그 누구라도 한 집단의 부길드장이라면 이런 판단을 했을 것이다.
제 길드원, 자국민의 생존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겠는가.
“류헤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사태를 깨달은 서유리가 분노했지만, 이미 류헤이는 가토와 함께 저 멀리 물러난 상태였다.
그의 <전음>이 서유리에게 전해져 왔다.
한국을 자주 오간 류헤이답게 그는 한국말을 곧잘 해내고 있었다.
[한국의 일은 한국이 해결하시오. 나는 내 사람들을 지킬 테니.]
“류헤이!”
서유리는 지독한 배신감에 이를 갈았다.
연합을 빌미로 자신들을 옥죌 때는 언제고, 이제는 나 몰라라 하다니.
그러나 류헤이를 비난할 여유는 없었다.
그의 말대로 ‘한국의 일은 한국이 해결해야’ 했으니까.
류헤이가 없다고 한들 달라질 건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쾅!
허겁지겁 달아나던 류헤이와 그 직속 부대가 돌연 바닥에 처박혔다.
<역(力)>이었다.
점점 ‘사도화’가 진행된 탓인지, 점차 하늘에도 주먹의 형상이 드러나고 있었다.
‘천공 바위?!’
어째서 저것이 이곳에 있는가.
서유리가 두 눈을 부릅뜨고 그것을 살피는 가운데, 바닥에 머리가 처박힌 류헤이는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악을 썼다.
‘이, 이 무슨……!’
콰드드드득!
“끄아아아악!”
하지만 애를 쓰면 애쓸수록, 류헤이의 몸은 점차 콘크리트 바닥에 더 깊숙이 처박혔다.
다른 길드원도 마찬가지였다.
퍽! 퍽!
몇몇은 그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몸이 풍선처럼 터져 나갔다.
어느새 머리가 터진 가토도 보였다.
‘제기랄!’
결국 류헤이는 그대로 가만있는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한국에 들어오는 게 아니었다.
설마 이승우가 자신들에게 연락한 것부터가 함정이 아니었을까.
그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때, 스킬의 주인공인 이승우가 조소하며 말했다.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조금만 기다려라, 류헤이. 넌 길드장들 다음이니까.”
“젠장!”
치치치칙!
그사이, 서유리의 손에서 강한 스파크가 튀었다.
김인표와 유지태가 무력해진 이상, 이곳에서 가장 강한 존재를 꼽자면 단연 서유리였다.
이미 자신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앞선 싸움으로 증명됐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순 없었다.
류헤이마저 패배한 이상, 자신이 포기하면 이승우에게 대적할 존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남자…….’
문득 천공 바위를 소환하던 그 남자가 떠올랐지만, 그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죽기 전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자신들이 죽은 뒤에라도 그가 등장해 이승우를 막아 주길 바라는 것뿐.
“와라! 서유리!”
츠츠츠츠츳!
이승우의 호통과 동시에 서유리의 손에서 전격 마법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모든 걸 건 일격이었다.
만약 부길드장인 장민철이 이 광경을 본다면 난리가 났겠지만, 그는 강동구 때의 부상으로 아직 병원 신세였다.
이곳에 있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콰과과과!
이승우는 서유리의 마법을 몸으로 받아 내며 점차 다가왔다.
서유리가 아무리 강하게 마력을 퍼부어도 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 끝에 다다른 이승우의 손이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윽……!”
“이렇게 가까이서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군.”
얼굴을 들이민 이승우가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소름 끼치는 시선에 서유리가 그 얼굴에 침을 퉤, 뱉었다.
“…….”
그러자 이승우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얼굴에서 침이 흘러내리는 가운데, 놈의 입이 달싹였다.
“아쉽군.”
“……!”
이승우의 악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서유리가 얼마 남지 않은 마력으로 <공간 전이>를 시도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점차 의식이 희미해져 가던 그때.
콰직!
이승우는 갑작스럽게 날아든 푸른 마력에 서유리를 내려놓고 물러섰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이 자식이 아직 싸움도 안 끝났는데 말이야… 딴 상대 찾기 있냐?”
청익이었다.
콘크리트 파도에 파묻혔던 그가 그곳에 서 있었다.
이승우가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살아 있었냐?”
“그래, 인마. 내가 얼마나 목숨 줄이 질긴데? 나는 우리 한수가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고 싶은 놈이야.”
“…재밌군.”
하지만 호기로운 말투와 말리 청익의 몰골은 엉망이었다.
여기저기서 피가 흐르는 게, 금방이라도 호흡이 끊어질 듯 희미했다.
“그 몸으로 검이나 제대로 쥘 수 있겠나?”
“걱정하지 마. 이번에는 친구들을 데려왔거든.”
청익이 씩― 웃자, 그 뒤로 정체불명의 각성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은신>을 펼칠 수 있는 아홉 명의 고수.
하나같이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친 은둔 고수들이 대한민국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느새 저 멀리 낯익은 <마력 보호막>이 생겨난 가운데, 청익의 옆에 선 중년의 여인이 그에게 말했다.
“못난 제자 놈 때문에 세상 구경을 다 해 보는구나.”
“죄송합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콧바람도 쐬고 좋지 않습니까? 균열 안에만 있으면 폐가 썩습니다.”
“끌끌, 말이라도 못 하면.”
그녀의 이름은 심수련.
치악산 <균열>에서 암살자들을 양성하는 재미에 푹 빠진 은둔 고수였다.
한때 아시아 최고라 불리던 암살자.
그간 황 노인과 청익은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계속해서 치악산을 다녀왔고, 오늘이 그 삼고초려의 결실을 보는 날이었다.
“모두 들어라.”
심수련이 풀려 있던 자신의 단발을 질끈 묶으며 명했다.
“1분 주겠다. 놈의 목을 가져와라.”
“존명!”
우렁찬 대답과 동시에 아홉 명의 암살자가 일시에 이승우에게 쇄도했다.
“크크큭, 재밌겠구나!”
이승우도 그들을 맞이해 큰 웃음을 터뜨렸다.
<은신>을 펼치는 아홉 명의 3차 각성자라니.
한국에 자신도 모르는 강자 집단이 숨어 있었다는 게 퍽 즐거웠다.
그 역시도 이한을 말살한 게 이들이라는 걸 직감했다.
콰과과과과!
마력의 방출로 적들을 밀쳐낸 이승우가 <역(力)>의 힘을 사용했다.
“……?!”
갑작스러운 중압감에 암살자들이 멈칫했지만, 그들은 이미 그런 상황에 특화된 존재였다.
세상 그 무엇도 그들의 움직임을 제압하긴 어려웠다.
그러자 놀란 건 되레 이승우 쪽이었다.
5대 길드장 중에서도 <역(力)>의 힘에 대적한 건 김인표뿐이었는데…….
그렇다면 이 아홉 명 모두가 김인표에 필적하는 실력자란 말인가.
스각!
“큭!”
암살자들의 현란한 공세에 처음으로 이승우의 살이 베였다.
합이 어찌나 잘 맞는지, 아홉 명이 움직이면서도 전혀 동선이 꼬이거나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황급히 마력으로 몸을 보호한 이승우는 인정했다.
이들은 강하다고.
이승우는 비로소 제 무기를 꺼낼 값어치를 느꼈다.
츠츠츠츳!
이승우의 손에서 처음 청익을 상대할 때 보여 준 황금빛 권갑이 생성됐다.
그의 <마력 무구>인 <파괴의 건틀렛>이었다.
“받아 봐라!”
쾅!
이승우의 일권에 아홉 명의 암살자가 모두 뒤로 튕겨 나갔다.
실로 엄청난 파워였다.
내상을 입은 몇몇이 입가로 피를 흘리는 가운데, 심수련의 눈빛도 달라졌다.
단 한 방.
고작 단 한 번의 공격에 일류 제자들이 밀려나다니.
“내 눈이 이상한 것인가?”
“아닙니다. 사부님 눈은 멀쩡합니다. 저놈이 이상한 겁니다.”
이 상황에서도 장난질인 청익의 말에 심수련이 작게 코웃음을 쳤다.
아마 이 제자 놈은 죽기 직전까지도 농담으로 끝낼 놈이었다.
곧 심수련도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녀의 <마법 무구>인 <심검>이었다.
청익이 검계 소속이라는 걸 알기 전, 그가 4차 각성을 이루면 전수해 주려던 검.
그녀가 청익에게 물었다.
“황 임자는 바쁘다고 했지?”
“예. 저것보다 더 큰 적이 생겨서요.”
“끌끌, 저것보다 더 큰 적이라… 늘그막에 임자도 꽤나 골치가 아프겠군.”
심수련의 눈이 번뜩였다.
“1분 넘었다, 이것들아! 너흰 돌아가면 모두 기합이다! 모두 아서라!”
파바바바밧!
어느새 이승우의 코앞까지 다다른 그녀의 <심검>이 그를 연달아 찔렀다.
“……!”
그 파상공세에 이승우는 숨 고르기조차 버거웠다.
그녀의 검이 사방에서 휘몰아치고, 허와 실을 구분하기 어려울 만치 빠르고 정교한 공격이 반복됐다.
새로운 힘을 얻은 자신을 압도하는 자라니?!
<심검>에 당한 팔이 너덜거리고, 무릎이 무너지고,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하지만 이승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 5대 길드장들이 살아 있고, 류헤이가 살아 있으며, 대한민국이 살아 있다.
자신에겐 아직 할 일이 산더미였다.
이승우의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폭발했다.
“역―!!”
“……?!”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심수련이 황급히 물러서는 가운데…….
콰과과과광!
이승우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주변 5킬로미터 일대가 일제히 주저앉았다.
‘어, 어떻게…….’
하지만 바닥에 처박힌 건 되레 이승우였다.
놈의 몸이 무릎까지 콘크리트 바닥을 꿰뚫고 내려간 것이다.
모두가 현 상황을 의아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심수련은 언뜻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저건.’
그녀의 뒤에서 사신이 걸어오고 있었다.
흉흉한 기세로 세상을 내려다보는 검은 사신.
그게 남자가 일부러 내비친 형상인지, 아니면 자신이 그에게서 보는 환영인지, 심수련은 알지 못했다.
‘마치 악령 같군.’
분명한 건 남자의 존재감은 이곳의 모두를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덧 모습을 드러낸 강우가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며 말했다.
“…조금 늦은 것 같군.”
검은 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