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테러리스트 (4)
축하와 환호로 가득하던 회랑이 피의 축제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커헉!”
“꺄아아악!”
“사, 살려 주십시오!”
퍽! 퍽! 퍽!
혼비백산한 사람들이 비명과 괴성을 지르는 가운데, 이승우는 한명회가 보는 앞에서 길드원들을 맨손으로 때려죽였다.
몇몇은 회랑 밖으로 달아나려 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그런 자들은 모두 바닥에 처박혀 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끄… 끄으으…….”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명회는 입에 거품을 문 채 이승우를 두렵다 못해 공포스럽게 바라보았다.
그의 바지는 이미 지린 소변으로 엉망이었다.
황망히 주저앉은 한명회가 애처롭게 몸을 떨며 빌었다.
“어, 어쩔 수… 이카루스… 위해서… 나는…….”
하지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온통 피바다가 된 회랑 안에선 역겨운 피비린내와 뇌수, 알 수 없는 분비물 냄새가 진동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마치 아편처럼 한명회의 정신을 어지럽혔다.
“…….”
그런 한명회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승우는 피로 물든 사발 하나를 집어 술상 위에 놓고는 거기에 한명회가 먹던 약주를 콸콸 쏟아부었다.
이승우는 잔이 넘쳐흘러도 술 따르기를 멈추지 않았는데, 덕분에 회랑 안은 피 냄새 대신 알싸한 알코올 향이 퍼져 나갔다.
이윽고 술 따르기를 멈춘 이승우가 그것을 들며 말했다.
“한세라가 죽었다.”
“…….”
한명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촌지간이지만, 이미 그녀는 이승우에게 너무 깊게 빠져 있었다.
그래서 이카루스를 떠나면서도 그녀를 부르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그녀의 죽음은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된 셈이었다.
“이건 그녀를 위한 것이다.”
이승우는 사발 안에 담긴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4차 각성자인 그가 한명회가 먹던 술을 마시고 취할 확률은 없다.
하지만 이승우는 그것을 모두 마셨다.
곧 그의 시선이 한명회에게 닿았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그러자 사시나무처럼 떨던 한명회가 가까스로 몸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사, 살려 주시오.”
간신히 뱉은 온전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퍽!
이승우가 들고 있던 사발로 내려치자, 머리뼈가 함몰된 한명회는 그 즉시 절명했다.
“…….”
한명회의 머리를 깨부순 이승우는 바위에 깔려 죽은 개구리처럼 누워 있는 그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작은 허무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카루스를 세계 최강으로 만들자며 의기투합했던 자들.
한때는 이곳에 있는 모두가 자신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저 죽은 시체에 불과할 뿐.
제 손으로 죽인 자기 식구들을 보며 이승우는 한 차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코를 타고 진한 피 냄새가 온 머릿속으로 퍼지는 기분이었다.
‘기분이 묘하군.’
하지만 짙은 허무함과 달리 살인을 거듭하자 정신이 오히려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한명회도 죽였으니 이젠 뭘 해야 할까.
‘김인표.’
그래, 이번에는 김인표을 죽이자.
예전부터 계속 심기를 거스르던 놈이었다.
이번 기회에 그 사지를 잘라 바닷물에 던져 버려야 속이 풀릴 듯했다.
그다음은?
‘유지태. 그다음은… 송민호, 서유리.’
이승우는 죽어야 할 자들의 이름을 차례대로 순서를 매겼다.
하지만 죽어야 할 건 5대 길드에서 끝나지 않았다.
‘허의 사절도 죽여야지. 그리고 날 배신한 류헤이를 죽이자.’
또 그다음은……
‘대한민국.’
이승우는 마침내 대한민국을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기껏 4차 각성자가 되어 국위선양했더니, 은혜도 모르는 놈들이 자신을 욕하고 파면을 논했다.
은혜를 모르는 놈들은 모두 죽어야지.
미친개에는 몽둥이가 약이다.
이승우의 눈빛이 점차 검게 물들었다.
‘모조리 죽여야 해.’
어쩐지 몸속에서 평소보다 더 강한 에너지가 샘솟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이 힘은…….’
이승우는 아까부터 자신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는 스킬을 상기했다.
그것은 <역(力)>이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힘.
역시 영웅은 위기에 빛을 발하는 건가.
이승우는 한세라를 제 손으로 죽인 순간부터 무언가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그녀의 목을 조르던 그때의 감각이 생생했다.
각성(覺醒).
아마도 자신은 그녀를 죽이면서 새로운 경지에 이르게 된 듯했다.
‘지금의 나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승우는 자신의 주먹을 몇 차례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이 정도의 힘이라면 세계 제패도 가능할 듯 싶었다.
그러던 그때.
회랑 쪽으로 다가오는 몇 개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5대 길드장들이었다.
이미 검게 물든 이승우의 눈이 번뜩였다.
‘그래, 첫 번째는 단연 네놈들이지.’
이승우는 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곳에서 알 수 없는 검은 마력이 샘솟았다.
화아악―!
이승우의 손바닥에서 소우주가 펼쳐졌다.
수많은 별이 매달린 어둠의 숲.
‘이건…….’
정체를 깨달은 이승우가 멈칫했으나, 그 힘은 거스르기 어려웠다.
출산이 임박한 어미의 감각이랄까.
그는 본능적으로 손에 쥔 소우주를 세계에 낳았다.
곧 그의 손바닥에서 하나의 세계가 열렸다.
* * *
회랑 쪽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하던 5대 길드장들은 안에서 느껴지는 이승우의 마력을 읽었다.
벌써 일을 벌였는지, 피 냄새가 여기까지 전해져 오고 있었다.
유지태가 말했다.
“일제히 공격해야 합니다.”
이미 회랑 안에서 느껴지는 건 이승우의 마력뿐.
그 외에 산 자는 없었다.
“1차로 모두가 마력을 쏟아붓고, 2차로 저와 김인표 길드장이 들어가겠습니다. 서유리 길드장과 송민호 길드장은 그 뒤를 이으세요.”
“알겠습니다.”
앞서 이승우의 힘을 경험한 그들이기에, 모두가 비장한 얼굴이었다.
서유리를 제외한 길드장들은 각자의 정예를 이곳으로 데려온 상태였다.
스톰은 강동구 <균열>에서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이번 소집에서 길드원들을 제외했다.
또한 그들의 뒤에는 연합의 사절단으로 온 류헤이와 그 수하들도 있었다.
‘한국의 전력을 알아낼 좋은 기회다.’
5대 길드의 실력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기회는 흔치 않았다.
연합의 존재 이유는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
지금 이 상황에 그보다 좋은 명분은 없었다.
“우리는 지켜보다가 당신들이 도움을 청하면 합류하겠소.”
유지태를 비롯한 다른 길드장들이라고 류헤이의 목적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손 하나가 더 간절한 상황이었다.
지금으로선 류헤이가 나설 상황까지 오지 않는 게 최선.
자조 섞인 한숨을 내뱉은 유지태가 말했다.
“갑시다.”
그런데 그들이 막 이카루스의 사옥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였다.
츠츠츠츠츳!
광활한 마력의 소용돌이와 함께 작은 진동이 울렸다.
길드장들로서는 익숙하다 못해 지겨운 반응.
송민호가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균열?”
그랬다.
이카루스의 사옥 안으로 주황빛 <유색 균열>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흡사 이승우의 마력과 같은 기류들이 요동치고, 그 안으로 <균열>의 입구가 보였다.
회랑 안에 들어선 각 길드장과 길드원들은 그 모습을 허탈하게 바라보았다.
“하필 지금 균열이…….”
하지만 이게 불운이라고 생각한 송민호와 달리 다른 이들의 의견은 달랐다.
하필이면 이승우가 달아난 이 시점, 이 장소에 <균열>이 나타난다고?
그들은 눈앞의 사태가 분명 큰 연결 고리 속에 있음을 직감했다.
유지태가 잔뜩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거… 어쩌면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이승우가 많은 걸 숨겨뒀는지도 모르겠군요.”
“…….”
하지만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이승우가 이 <유색 균열>로 달아났다면, 그들은 그곳에서 그를 잡아와야만 했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해 그들이 해야 할 일.
“누구 하나는 이곳에 남는 게 좋겠습니다. 송민호 길드장, 류헤이와 함께 뒤를 부탁합니다.”
“예? 아, 아… 예!”
유지태의 부탁에 송민호가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로서도 이승우를 붙잡으러 가는 것보다는 뒤에 남는 편이 더 나았다.
그는 여전히 아까 느낀 중압감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마치 돌덩이가 얹어 있는 듯한 느낌…….’
정말로 그게 이승우의 능력이라면, 그들은 상상도 못 한 적수를 맞이하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각각 정예를 데리고 그들이 이승우에게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일.
이 중에서 가장 전력이 낮은 송학으로서는 부담이 컸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독종대, 출발한다.”
곧 김인표의 독종대를 선두로 서유리와 유지태, 그리고 유지태가 데리고 온 백호의 백호단이 <균열>로 들어섰다.
* * *
회랑에서 발견된 <유색 균열>은 그동안 보아 온 <유색 균열>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보통 <균열>이 내비치는 색과 <균열>의 환경에는 상당한 상관관계가 존재하는데, 이곳은 주황빛이던 밖과 달리 평범했기 때문이다.
“주변을 수색해!”
“알겠습니다!”
김인표의 명령을 받은 독종대원들이 서둘러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는 사이, 유지태와 서유리는 잠시 멈춰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폐허가 된 도시’라고 부르면 딱 좋을 듯했다.
서구의 중세풍의 모습을 한 이곳은, 곳곳에서 건물이 불타고, 돌담이 무너져 있으며, 매캐한 연기와 정체불명의 깃발이 보이는 풍경이었다.
마치 전쟁이라도 치른 듯한 모습.
모두가 긴장한 얼굴로 이승우의 마력을 쫓는 사이, 주변 수색을 마친 독종대 대장 김난도가 다가와 보고를 올렸다.
“주변에 보이는 마물이나 각성자는 없습니다. 그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으음…….”
김인표는 고민이 깊은 표정이었다.
그로서도 이승우의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옆에 있던 유지태가 말했다.
“일단은 계속 찾아보는 수밖에.”
“…….”
그리하여 그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수색팀을 편성했다.
김인표와 독종대, 유지태와 백호단.
서유리는 백호단 쪽이었다.
독종대는 원체 폐쇄적인 그룹이기 때문에, 서유리가 들어가기엔 알맞지 않은 탓이었다.
“그럼 일이 생기면 신호탄을 쏘기로 하죠. 이번 균열은 그리 넓지 않은 것 같으니… 앞으로 한 시간 뒤에 이곳에서 만나는 겁니다.”
유지태의 계획에 김인표, 서유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곧 수색이 시작됐다.
“가자!”
김인표가 독종대를 데리고 시야에서 사라지자, 유지태도 백호단과 서유리를 데리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유지태가 서유리에게 말했다.
“놈은 우리가 찾을 테니, 서유리 길드장님은 마력을 아껴 주십시오. 혹시 모를 일이니까요.”
“알겠어요.”
혹시 모를 일.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겠지만, 눈이 돌아간 이승우가 대체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피슈우우욱!
마침내 저 멀리 독종대 쪽에서 신호탄이 쏘아졌다.
하늘로 치솟은 불꽃이 온 사방을 환하게 비추며 떨어지자, 유지태는 황급히 백호단을 그쪽으로 돌렸다.
“서둘러라!”
행여라도 전투를 벌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유지태와 서유리가 막 도착했을 때.
“…시발!”
그들은 한쪽 눈을 움켜쥔 채 신음하는 김인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건 바로 이승우였다.
그가 쥔 손안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 오셨습니까?”
유지태와 서유리를 발견한 이승우가 반갑게 웃었다.
악의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웃음이지만, 되레 그 점이 더 소름 끼쳤다.
“우리 김인표 길드장님께서 워낙 위아래를 못 가리시는 것 같아서, 눈 하나를 없애 드렸습니다. 이쯤 되면 겸손을 배우셨겠죠.”
“…미친!”
욕지거리를 내뱉은 유지태가 황급히 달려가 김인표를 챙겼다.
오른쪽 눈을 가린 그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붉은 선혈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저놈이… 내 눈알을……!”
김인표는 이미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잔뜩 거칠어진 호흡과 크게 들썩이는 어깨를 미루어 보았을 때, 이미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해 보였다.
“송민호! 류헤이를 데리고 들어와! 긴급 상황이다! 서둘러!”
유지태가 다급하게 지원군을 불렀지만, 곧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승우가 손을 가로젓자 주변 풍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스르르륵.
“…어?”
막 <균열>에 들어서려던 송민호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눈앞의 <균열> 사라지고, <균열>에 들어간 모두가 다시 밖으로 나온 것이다.
설마 <균열>은 김인표를 제압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나?
‘대체…….’
모두가 지금의 괴현상에 경악하는 가운데, 마법계 각성자인 서유리의 충격은 더했다.
‘이승우가 이 정도 수준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여전히 바닥에 몸을 붙이고 있는 독종대와 갑자기 생겨났다 소멸하기를 반복한 <균열>.
‘어쩌면…….’
서유리는 아까부터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이승우를 보며 생각했다.
오늘 토벌되는 건 이승우가 아니라, 바로 자신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검은 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