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헌터-99화 (100/186)

[99화] 그들이 기억하는 세상 (2)

강우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들은 동굴의 입구로 <텔레포트>되어 있었다.

옆에 있던 박도진이 말했다.

“동굴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

안 그래도 다시 멀쩡해진 동굴 안에서 마력이 생생하게 전해져 오는 중이었다.

모든 상황이 수수께끼 같지만, 강우는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담판을 지어야겠군.’

강우는 이번 일이 끝나면 <데스 나이트>와 담판을 지을 생각이었다.

더 이상 이런 수수께끼 같은 일은 사절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을 좋아하지, 이런 끌려가는 식의 진행은 딱 질색이었다.

탑을 무너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라.

콰지지지직!

크아아악!

동굴 안에선 전투의 소리가 선명했다.

매캐한 냄새도 전해져 오는 게, 분명 살이 타는 냄새였다.

강우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정말로 스톰과 서유리가 살아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듯, <데스 나이트>가 이번에도 시간을 되돌린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 상황을 납득할 도리가 없었다.

이윽고 공동의 입구에 다다랐을 때, 입구를 막고 선 난쟁이들의 등이 보였다.

놈들은 눈앞의 전투에 집중했는지, 강우와 박도진의 접근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로 저들이 살아 있었군요.”

박도진도 충격받기는 마찬가지였는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공동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더 지체할 여유는 없다.

이대로 있다간 또다시 서유리가 죽어 버릴 테니까.

자신들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변이자 아이들을 막는 것이지만, 굳이 이카루스를 견제할 한 축인 스톰을 망하게 놔둘 필요는 없었다.

곧 결심을 마친 강우가 난쟁이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

서걱!

뒤늦게 강우를 발견한 난쟁이 하나가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한발 빠르게 <피바라기>가 놈의 목을 찔렀다.

목을 움켜쥔 놈이 바닥을 구르는 사이, 뒤편에서의 소란을 깨달은 난쟁이들이 몸을 휙― 돌렸다.

하지만 이미 강우의 검은 마력이 눈앞에 쇄도한 뒤였다.

콰과과과과!

삽시간에 쏘아진 검은 쐐기들이 커다란 폭발을 만들며 동굴을 뒤흔들었다.

<사이트 스톤>의 세상에서 나오면서 <검은 고리>를 거둔 강우이지만, 놈들은 고리가 없어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그제야 소란을 깨달은 서유리와 스톰 길드원들도 소리를 질렀다.

“뭐, 뭐야?!”

“각성자다!”

이쪽의 정체를 알 리 없는 스톰이지만, 그들은 강우가 같은 인간이라는 데에 희망을 얻었다.

강우는 빠르게 난쟁이 넷을 제압한 뒤, 저 앞에 선 대장 난쟁이를 바라보았다.

놈도 적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는지, 팔을 칼로 바꾼 채 잔뜩 경계의 기색을 띠었다.

하지만 놈의 칼은 강우에게 제대로 겨누어지지도 못했다.

“역(力).”

콰르르르!

콰직!

강우가 중얼거림과 동시에 놈의 머리가 바닥으로 처박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위로 부서진 동굴의 천장 잔해가 우르르 떨어졌다.

“……!”

대뜸 대가리가 처박힌 대장 난쟁이의 모습에 놀란 스톰 길드원들이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장민철이 황급히 강우를 살폈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놀라기는 서유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이제 막 제1팀장에게 자신의 계획을 알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각성자가 나타나 적들을 제압하다니?

스톰 전체도 막아 내지 못한 적을 고작 한 명의 각성자가 처리하고 있었다.

“…….”

강우는 대장 난쟁이가 깔린 잔해를 밟고 스톰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그 뒤를 박도진이 따르는 가운데, 난쟁이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강자에게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양옆으로 길을 비켜섰다.

미치광이처럼 보이던 놈들에게도 ‘강자’를 알아보고 알아서 움츠리는 본능은 있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서유리의 앞에 다다른 강우가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뭐, 뭐예요?”

당황한 서유리가 목을 뒤로 뺐지만, 강우는 계속해서 유심히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적당히 튀어나온 시원한 이마, 부드럽게 미간과 이어진 콧대.

옅은 갈색 눈동자와 특유의 도드라진 두꺼운 입술.

그리고 오른쪽 눈가 끝에 난, 조그마한 점.

분명 과거에 본 서유리가 분명했다.

‘정말 살아 있었군.’

이렇게 되고 나니 그녀가 죽은 지 몇 년이 지났다는 <데스 나이트>의 말이 거짓처럼 느껴졌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천장 잔해에 깔렸던 대장 난쟁이가 몸을 일으키는 게 보였다.

눈을 좁힌 놈이 자신을 바닥에 처박은 상대를 노려보는 가운데, 강우가 말했다.

“답답하군. 주변을 열어라.”

“알겠습니다.”

강우의 명령에 박도진이 팔을 휘둘렀다.

갑자기 비대해진 그의 팔에 놀란 몇몇 각성자들이 비명을 지르는 사이, 동굴의 외벽이 그대로 부서져 나갔다.

콰과과과과!

깔끔한 한 방이었다.

박도진은 천장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정확히 동굴의 벽만 부서뜨려 버렸다.

그야말로 정교한 실력.

사라진 동굴의 벽 너머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었다.

터벅터벅.

강우가 박도진이 열어젖힌 그 문을 통해 동굴 밖으로 나가자, 서로의 눈치를 살피던 스톰 길드원들도 하나둘 그 뒤를 따랐다.

다행히 아직까지 난쟁이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윽고 모든 각성자들이 동굴 밖으로 빠져나왔다.

난쟁이들은 여전히 동굴 안에 남아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대장 난쟁이가 싸움에 나서지 않자 다들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하는 눈치였다.

그러는 사이, 다가온 서유리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시죠?”

“…….”

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딱히 대답할 이유를 찾지 못한 탓도 있으나,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 죽음을 보고 찾아왔다.’

‘이카루스를 쫓는 자들이다.’

‘한강우다.’

딱히 마땅해 보이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강우는 바닥에서 돌멩이 하나를 주워 들었다.

서유리와 장민철, 다른 스톰 길드원들이 그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사이, 강우가 속으로 한 단어를 읊었다.

‘역(力).’

콰르르르!

그러자 난쟁이들이 남아 있던 동굴이 폭삭 주저앉았다.

마치 거대한 해머로 동굴을 내려친 듯이.

뒤늦게 하늘에 떠오른 ‘돌멩이’를 발견한 스톰 길드원들이 소리쳤다.

“처, 천공 바위다!”

“천공 바위?!”

“그, 그럼 저자가……!”

그들의 눈이 하나같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어차피 검계의 가면을 쓰고 있으니 상관없겠지.’

설사 그들이 나가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해도 별일은 없을 터였다.

<검계의 가면>은 예전과 달리 한층 더 발전했고, 이제 강우는 자신의 신분을 감출 이유도 거의 사라진 상태였으니까.

서유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둔내역에서의 그 사람이었군요.”

“…….”

강우는 그녀의 눈을 한 차례 마주한 뒤, 물었다.

“이곳 균열이 닫히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아……!”

그제야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은 서유리가 황급히 시계를 살폈다.

보스인 <드라큘라>가 죽은 지 벌써 한 시간 40분째였다.

그녀가 길드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나가요! 균열이 닫히기까지 20분도 안 남았어요! 부길드장님도요! 금방 따라갈게요!”

“알겠습니다! 이쪽이다! 모두 달려라!”

그러자 장민철과 각 팀장들이 서둘러 길드원들을 이끌고 <균열> 입구로 달리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서유리의 <공간 전이>도 있을 테니, 그들이 나가는 데 큰 무리는 없을 터였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서유리가 물었다.

“당신은…….”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았다.”

강우는 무너진 동굴에서 하나둘 빠져나오고 있는 변이자 아이들을 바라봤다.

남은 시간은 20분.

미뤄 둔 일을 처리하기엔 큰 무리가 없을 듯했다.

“먼저 나가라.”

“…알겠어요. 당신 이야기는 일단 함구하라고 할게요.”

“…….”

“꼭 다시 봐요.”

그 뒤로 서유리는 길드원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밖에서 그녀를 다시 볼 일은 없을 터였다.

당장은 그녀에게 볼일이 없으니까.

“박도진.”

강우는 아까부터 수심 가득한 표정의 박도진을 불렀다.

“…예.”

그는 변이자가 되어 정신마저 잠식된 아이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아이들을 원래대로 돌이킬 방도는 없었다.

죽이는 것뿐.

하지만 <사막 균열>에서 만난 아이가 죽기 직전 제정신으로 돌아온 걸 보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방도가 있을지도 몰랐다.

강우가 물었다.

“저들을 살리고 싶나?”

그러자 박도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마음은 그러고 싶어도, 과연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듯했다.

하지만 곧 결심을 굳힌 그가 대답했다.

“예. 살리고 싶습니다.”

그러자 강우가 대뜸 <사이트 스톤>을 박도진에게 건넸다.

그가 의아하게 바라보는 사이, 강우가 <균열>용 시계를 살폈다.

“이제 18분 남았군. 우린 이동석을 써서 나간다.”

“…….”

“그렇게 멍하니 있을 셈인가? 18분 남았다고 한 것 같은데. 이제… 17분이군.”

“아……!”

그 뜻을 깨달은 박도진이 눈을 번뜩였다.

콰득!

강우는 그를 위해 <역(力)>의 힘을 사용해 아이들을 다시 제압해 주자, 박도진이 <사이트 스톤>을 들고 허겁지겁 아이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저런 모습을 보면, 확실히 그도 바보 같은 구석이 많았다.

너무 어린 나이에 아빠가 된 탓인지, 아니면 사회 경험이 적은 탓인지, 그도 아니면 그간 세상과 벽을 쌓고 살아온 탓인지… 그 이유가 뭐가 됐든 그는 강우가 정의하는 ‘순수’한 인간에 가까웠다.

뭐, 그게 박도진다운 모습이긴 하지만.

강우는 아이들을 <사이트 스톤>의 세상에 데려다 줄 생각이었다.

저들이 이 현실에서 살아갈 방도는 없지만, <사이트 스톤>의 세상은 달랐다.

이곳은 저 아이들을 배척하고 괴롭힐 사람이 없을 테니까.

다만, 그 뜨거운 용암지대를 저들이 만족해할지는 미지수였다.

‘옳은 선택인지는 모르겠군.’

아이들을 데려간다 해도 치료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결국 죽게 될 것이다.

그게 박도진을 더한 슬픔과 좌절로 몰아넣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무것도 해 보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듯싶었다.

박도진이 모든 아이들을 <사이트 스톤>에 보냈을 때, <균열>이 닫히기까지 남은 시간은 약 2분 남짓이었다.

강우와 박도진은 가지고 온 <이동석>을 사용해 <균열>을 나섰다.

“앗!”

거리에 있던 몇몇 행인이 그들의 등장에 깜짝 놀랐지만, 두 사람은 세워 둔 차를 타고 유유히 그곳을 빠져나갔다.

서유리와 장민철을 비롯한 스톰 길드원들이 계속해서 그 둘을 기다렸지만, 이미 떠날 그들을 당연히 만날 순 없었다.

그저 하염없이 기다릴 뿐.

그렇게 스톰의 <균열>은 잘 마무리됐다.

이제 남은 건 <데스 나이트>와 이카루스였다.

하지만 검계에서의 자신의 역할은 끝난 듯싶으니, 강우는 즉각 집으로 돌아가 죽음의 기사가 기다리고 있을 <사이트 스톤>의 세상으로 들어갔다.

그에게 오늘 겪은 모든 일을 따져 묻기 위해서.

검은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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