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헌터-93화 (94/186)

[93화] 함정 (3)

찌륵.

‘변이 마물’이 된 쥐가 털을 곤두세우고 꼬리와 촉수를 세웠다.

아무리 <균열> 속 괴물을 마물(魔物)이라 부른다지만, 이토록 기괴하게 생긴 마물도 드물었다.

보통은 <야수병>이나 <붉은 오크> 수준의 외양을 갖는다거나, 혹은 둔내역 주변에서 만난 <그리폰>같이 ‘생명체’라고 부를 만한 모습을 갖는 게 일반적.

마물도 하나의 ‘생명체’인 것이다.

하지만 등으로 촉수가 생겨난 ‘변이 마물’은 아무리 봐도 일반적인 ‘생명체’로는 보이지 않았다.

“심해에서 올라온 것 같군요.”

박도진의 생각도 강우와 비슷한 듯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구구구구구―!

갑자기 장대한 진동이 일더니, 저 밖에서 이쪽으로 우르르 몰려드는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치 숲의 <흡혈귀>들이 죄다 이곳으로 몰려오는 듯한 울림이었다.

박도진이 눈앞의 소년과 <변이 흡혈쥐>를 경계하며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꼭 이곳으로 들어오길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이다.”

강우는 여전히 말없이 서 있는 ‘변이자’ 소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도통 이해하지 못할 일들뿐이군.”

하지만 강우는 그러면서도 <피바라기>를 빼 들었다.

아직 이곳의 파훼법을 알아내진 못했지만, 싸움을 앞두었을 때 그의 마음가짐은 단 하나뿐이었다.

‘앞을 가로막으면 벤다.’

지금 생각할 건 단지 그뿐.

고민은 눈앞의 일을 해결한 뒤에 해도 늦지 않았다.

구구구구!

그사이, 밖에서 느껴지던 <흡혈귀>들의 기척이 이제 동굴에서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놈들이 동굴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복잡할 건 없다.’

결심을 굳힌 강우가 박도진 쪽을 슬쩍 보며 물었다.

“힘들면 사이트 스톤에 들어가 있어도 좋다. 끝나면 부르지.”

― 변이는 무한하지 않습니다.

박도진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일전에도 청익과 유아라를 상대하던 그는 끝까지 추격하지 않았다.

둘을 살려 두려던 탓도 있었으나, 재빠른 청익을 끝까지 따라가기엔 유지력이 따르지 않은 탓도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습니다.”

줄곧 굳어 있던 박도진의 얼굴이 오랜만에 풀렸다.

그가 강우를 보며 말했다.

“이번 일은 제 눈으로 끝까지 보고 싶습니다.”

“…좋을 대로.”

콰득!

그 순간, 공동의 입구로 수십의 <흡혈귀>가 뛰어 들어왔다.

재규어처럼 생긴 야수 <흡혈귀>가 제일 먼저였고, 인간과 벌레 따위가 그 뒤를 이어 들어왔다.

어찌나 그 수가 우글대는지, 이곳의 산소마저 부족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간다.”

콰과과과과!

강우는 더 기다리지 않고 <피바라기>를 휘둘러 검은 마력을 퍼부었다.

반월의 형태로 날아간 마력 덩어리가 마물 다섯을 베고, 그 뒤의 벽마저 부서뜨렸다.

강우의 눈이 번뜩였다.

‘재빠르군.’

처음 동굴에 들어온 소년은 강우의 공격에도 침착했다.

놈은 강우의 공격을 훌쩍 뛰어 피한 뒤, 다시 바닥에 착지에 여전히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전투를 관망할 생각인 듯했다.

물론, 그렇게 내버려 둘 강우가 아니었다.

“박도진! 앞을 막는다!”

“예!”

박도진이 공동으로 몰려든 마물들을 막아서는 사이, 강우는 정체불명의 소년을 향해 달려 나갔다.

소년의 손에는 아무런 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그는 변이자니까.

곧 낫 모양으로 변한 놈의 손이 강우에게로 쇄도했다.

콰드드드드득!

거대한 낫이 공동의 벽을 갈 지(之) 자로 휘저었다.

벽이 부서지며 동굴이 크게 울렸지만, 무너질 것 같지는 않았다.

강우는 낫의 아래로 몸을 날려 그것을 피한 뒤, 그 품으로 파고들어 <피바라기>를 휘둘렀다.

스각!

<피바라기>가 소년의 어깨를 베자 검은 피가 튀었다.

하지만 놈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깊은 상처에도 비명조차 지르지 않은 놈이 뒤로 훌쩍 물러서더니, 대번에 양팔을 부풀려 강우를 공격했다.

언뜻 놈이 박도진 쪽을 슬쩍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같은 ‘변이자’에게 흥미라도 느낀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콰득! 콰득! 콰득!

소년의 기형적인 팔과 강우의 <피바라기>가 쉴 새 없이 부딪쳤다.

놈은 강우만큼이나 재빨라서 우위를 선점하기가 쉽지 않았다.

공격을 막았다 싶으면 머리 위에서 새로운 공격이 떨어졌고, 앞을 막았다 싶으면 옆에서 변형된 공격이 들어왔다.

둔내역에서 본 ‘변이자’ 아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실력.

‘나이가 든 것과 관련 있나?’

하지만 아무리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그 시간 동안 어린 소년을 이런 실력자로 키우기는 힘들어 보였다.

놈은 ‘변이자’로 상당한 시간을 보낸 듯 몸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상대는 한눈에 봐도 실전 경험이 풍부했다.

‘이건… 일반 변이자가 아니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착 가라앉은 동공.

하지만 공격에 담긴 감정만은 감출 수 없어서, 강우가 어깨를 벤 뒤로 놈의 공세는 한결 더 사나워져 있었다.

‘이놈, 분명히 생각을 하고 있다.’

혹, 자신을 이곳으로 가둔 게 이놈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아까부터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놈은 다른 소년 ‘변이자’들과 달리 이성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 박도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쪽으로 또 무언가가 옵니다! 벽 쪽입니다!”

안 그래도 동굴 밖에서 전해 오는 묵직한 진동을 느끼던 참이었다.

쿵! 쿵!

지금까지의 <흡혈귀>와 달리 거대한 놈이었다.

그렇게 발소리가 다다랐다 싶던 찰나.

쾅!

콰르르르르!

갑자기 천장에서 대포 터지는 소리와 함께 동굴이 몸을 떨었다.

이곳으로 달려온 무언가가 동굴을 내려친 게 분명했다.

하지만 변이자 소년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 듯 계속해서 강우를 몰아붙였다.

관망하려는 줄 알았는데, 막상 승부를 거니 놈도 가만있지 않았다.

강우는 놈의 공격을 계속해서 받아 내며 동굴 너머의 적에 집중했다.

쾅! 쾅!

연달아 들려오는 충격음과 떨림.

곧 강우는 놈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박도진! 놈은 동굴을 부술 생각이다!”

“……!”

콰과과과쾅!

그때, 강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장을 뚫고 거대한 주먹이 바닥에 처박혔다.

천상의 여의주라도 떨어진 듯한 모습인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녹색 피부를 갖고 있었다.

거인의 주먹.

주먹이 다시 천장 밖으로 빠져나간 뒤에야 강우는 그것의 주인을 알아볼 수 있었다.

‘오우거?’

그어어어어어!

뚫린 천장 구멍으로 거대한 녹색 인간이 밤하늘의 달 아래 포효하는 게 보였다.

저런 초대형 오우거라니…….

어쩐지 석철을 만난 순간부터 ‘초대형’이라는 말이 우습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강우가 소리를 질렀다.

“밖으로 나간다! 먼저 가라!”

“알겠습니다!”

명령을 들은 박도진은 상대하던 <흡혈귀>들을 향해 팔을 크게 휘두른 뒤, 놈들이 물러선 찰나를 틈타 천장에 난 커다란 구멍을 향해 도약했다.

실로 가공할 만한 점프력이었다.

의왕 IC에서 권기한을 구한 바로 그 점프.

콰득!

계속해서 변이자 소년을 상대하던 강우는 박도진이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한 뒤, 마력을 끌어 올렸다.

“……!”

콰과과과과!

단번에 뻗어 나온 수십 개의 검은 쐐기가 소년에게 닿으며 폭발했다.

어느새 강우의 어깨에 생겨난 <검은 고리>가 생생했다.

쾅!

그러는 사이, 초대형 <오우거>의 두 번째 주먹이 동굴로 떨어졌다.

쾅! 쾅! 쾅!

그 뒤로는 연타였다.

아예 무릎을 굽혀 자세를 잡은 놈이 동굴을 향해 난타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콰과과과광!

동굴이 사정없이 부서지고, 벽이 무너져 내렸다.

놈은 그 안의 <흡혈귀>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강우는 재빨리 혼란을 틈타 무너진 천장 밖으로 나섰다.

거대한 크기 탓일까.

놈은 아직 강우와 박도진이 동굴을 탈출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동굴을 향해 주먹질을 퍼붓는 중이었다.

그 뒷모습에서 광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주변의 안전을 확인한 박도진이 가쁜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10미터짜리 오우거라니… 세상이 정말로 미친 모양입니다.”

“…세상은 원래 미쳐 있었지.”

오히려 제정신인 사람이 살아가기 더 힘든 세상이었다.

하긴, 갑자기 허공에 홀(Hole)이 생겨나고 그곳에서 정체불명의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런 세상을 제정신으로 살아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터였다.

거기에 인간인 척 세상을 기만하는 사이코패스 마물까지 존재한다면 더더욱.

그때, 오우거의 폭주를 지켜보던 박도진이 전방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놈이 나왔습니다.”

변이자 소년이었다.

이미 회복이 끝났는지, 놈은 강우의 마력 세례에도 멀쩡한 모습이었다.

‘변이자인데다 회복력까지 좋다니… 괴물은 괴물이로군.’

강우는 이번 싸움이 쉽지 않으리라는 걸 직감했다.

이곳의 마물이 <흡혈귀>이니, 어쩌면 상대도 <흡혈귀>의 능력을 갖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그억?!

한참 동안 주먹질하던 초대형 녹색 인간이 행동을 멈춘 채 동굴을 의아한 눈빛으로 살펴보았다.

이제야 사냥감이 모두 동굴 밖으로 빠져나온 걸 안 눈치였다.

화들짝 몸을 일으킨 놈이 태산만 한 대가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주변을 살피더니, 이내 강우와 박도진 쪽으로 시선이 닿았다.

그어어어어!

둘을 발견한 <오우거>가 대뜸 주먹을 쥐고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놈이 킹콩처럼 자신의 널찍한 가슴을 힘차게 두드리자, 그곳에서 흡사 북소리가 났다.

<오우거>가 연주하는 북소리가 온 활엽수림으로 울려 퍼졌다.

마치 누군가를 부르는 것처럼.

그리고 그러한 예상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콰드드드득!

어디선가 땅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저 멀리서 몸을 일으키는 녹색 거인이 보였다.

역시나 같은 초대형 <오우거>였다.

“…….”

설상가상 놈은 하나가 아니었다.

주변 곳곳에서 초대형 <오우거>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강우와 박도진은 잠시 질린 듯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사방에서 일어선 녹색 거인들.

어느새 열 마리가 넘는 녹색 거인들이 그 둘을 향해 험악한 인상을 짓고 있었다.

혹 환상일까?

물론 그랬다면 좋겠지만, 이건 엄연히 현실이었다.

<사이트 스톤> 속 마물이라고 해도 놈들은 진짜 몸을 갖고, 그 주먹은 실질적인 파괴력을 가지니까.

강우가 <피바라기>에 검은 불길을 피워 올렸다.

“썩 피곤한 밤이 되겠군.”

“거인이라니… 저렇게 큰 마물은 처음입니다.”

“좋은 경험이라 생각해라.”

쿵! 쿵!

멀찍이 선 소년이 강우와 박도진을 지켜보는 사이, 초대형 <오우거>들이 점차 이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강우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이놈들…….’

다가온 <오우거>들이 이쪽을 둘러싼 채 걸음을 멈췄다.

하나같이 고요한 분위기들.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놈들이 손을 허공으로 뻗자…….

콰득!

콰직!

강렬한 마력의 향연과 함께 놈들의 손이 기형적으로 뒤틀리고, 피부 밖으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 모습을 본 강우가 중얼거렸다.

“…곤란하군.”

어느새 놈들의 손이 각자의 무기가 되어 있었다.

놈들도 동굴에서 본 <변이 흡혈쥐>처럼 모두 ‘변이’ 마물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피의 주인은 확실했다.

‘저놈…….’

강우는 저 멀리 떨어져 서 있는 소년을 노려보았다.

줄곧 무표정이던 소년.

어느새 놈의 표정이 광기 어린 미소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연신 히죽대는 그 입가의 근육이 씰룩였다.

놈의 괴기스러운 웃음소리가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낄낄낄!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초대형 <오우거>들이 강우와 박도진에게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어어어어!

검은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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