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브레이크 (1)
전국 각지에서 마물들이 <균열>을 타고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파악된 브레이크는 모두 열한 곳.
처음 두 개는 그럭저럭 막아 냈지만, 브레이크를 일으킨 <균열>이 열 개를 넘어가자 국내는 혼란에 빠졌다.
2024년, <균열>이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악몽이 다시금 떠오른 것이다.
『저희 이카루스와 길드 연합은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카루스는 즉각 비상사태를 대대적으로 선포하고, 5대 길드와 힘을 합쳐 브레이크를 막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브레이크를 그들이 감당할 수는 없는 노릇.
“서둘러! 중구 쪽에 마물이 등장했다는 연락이다!”
“지금 여기 바쁜 거 안 보여? 이쪽은 무려 <다이어 울프>란 말이다!”
대전광역시 동구의 한 도시.
대전천 주변에서 발생한 <균열>이 갑작스럽게 브레이크를 일으키면서 그곳에서 수십 마리의 <다이어 울프>들이 튀어나왔다.
위로는 동구청이, 아래로는 남대전 인근 아파트가 밀집된 장소였다.
어떻게든 놈들이 이곳을 벗어나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크르릉!
“이 겁대가리 없는 늑대 자식들!”
대전 내에서 가장 큰 길드는 랭킹 21위 길드인 ‘성심’이었다.
성심 길드의 수장은 올해 스물아홉 살의 임보라로, 마법 계열 각성자였다.
그녀는 일명 ‘생명의 빵’이라 불리는 음식을 발명한 것으로 유명했는데, 실제로 먹는 빵은 아니고, 일종의 피로회복제 역할을 하는 빵 모양의 보조제였다.
대전의 명물을 따서 만든 물건.
한때 볼거리가 없다고 놀림당하던 대전을 진한 애향심으로 살리고자 만든 그녀의 필살기였다.
“저 자식들이 절대 이곳을 못 빠져나가게 해! 알겠냐!”
“예!”
“알겠습니다!”
길드장 임보라의 명령에 마흔 명에 이르는 길드원들이 함성 같은 대답을 토했다.
“내 고장은 우리가 지킨다.”
비장하게 중얼거린 그녀가 이쪽으로 달려드는 <다이어 울프>들을 향해 자신의 해머를 들어 올렸다.
곧 황금빛 마력이 맺힌 해머가 하늘의 해를 가리더니, 바닥으로 처박혔다.
“붐(Bomb)!”
콰과과과광!
특유의 앳된 목소리와 달리 스킬의 위력은 뛰어났다.
순식간에 대여섯 마리의 <다이어 울프>들이 허공을 날고, 그 뒤를 따르던 회색 늑대들은 잘 다져진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그녀의 스킬은 딜레이가 크다는 점이었다.
“길드장님을 보호해라!”
길드원들이 그녀의 주변을 둘러싸는 가운데, 임보라는 자신이 개발한 ‘생명의 빵’을 허겁지겁 삼켰다.
“웁웁, 미안해! 다들 잠깐만… 웁웁, 막고… 웁웁, 있어!”
이미 익숙한 전투법이기에 길드원들도 능숙하게 그녀를 보호하며 <다이어 울프>들에 맞섰다.
또한 이곳으로 지원 나온 소형 길드가 넷.
<다이어 울프>가 다소 까다롭긴 해도 전력을 다하면 막지 못 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저, 저기, 또 나옵니다!”
“웁웁… 뭐?!”
입안 한가득 빵을 삼키던 임보라가 갑작스러운 비보에 멈칫하고 그쪽을 바라봤다.
정말로 <균열> 안에서 또 다른 마물이 나오고 있었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선 저 마물은…….
“늑대인간입니다!”
직립 보행 <다이어 울프>, 즉, <라이칸>이라 불리는 <늑대인간>의 상위 종이었다.
뒤통수부터 엉덩이까지 검은 갈기가 이어지는 걸 보면, 놈들은 <라이칸> 중에서도 가장 포악하기로 유명한 <다크 라이칸>.
“망할! 어째서 저런 놈들이 튀어나오는 거야?!”
보스인가 싶었지만, 놈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속속들이 등장한 <다크 라이칸>만 스물.
뒤이어 그보다 덩치가 큰 보스형이 등장했다.
흉물스러운 철퇴를 든 놈이 두 다리를 길게 뻗고 이쪽을 쳐다봤다.
그 시선에 몸을 떨던 한 각성자가 소리를 질렀다.
“사, 상급 마물입니다!”
심지어 놈의 이마에 새겨진 <마력흔>은 세 줄.
명백한 상급 마물이었다.
아우우우우―!
그때, 보스가 갑자기 하울링을 시작하자 변화가 일었다.
그 목소리에 힘이라도 얻은 건지, <다이어 울프>와 <다크 라이칸>들의 기세가 달라진 것이다.
놈들의 눈빛과 호흡이 단번에 흉흉해지고, 광견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침을 질질 흘려 댔다.
이건… 위험하다.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낀 임보라가 외쳤다.
“다들 조심해! 윽?!”
하지만 그보다 적의 움직임이 더 민첩했다.
수백 미터나 떨어져 있던 <다크 라이칸>들이 단번에 거리를 백 미터 안쪽까지 좁힌 것이다.
놈들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날아오는 듯’했다.
“미친……!”
간신히 타이밍을 맞춘 임보라가 다시 한번 <붐>을 사용했으나, 본래 그녀는 마법계 각성자.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 낸 전투형 스킬이 자신에게 맞을 리 없었다.
그녀의 <붐>은 위력적이나 명중률이 현저히 떨어졌고, <다크 라이칸>들은 그것을 어렵지 않게 피해 냈다.
크르릉!
컹컹!
“컥!”
“끄아아악!”
“기, 길드장님! 피하십시오!”
대번에 달려든 <다이어 울프>와 <다크 라이칸>에 의해 길드원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다이어 울프>에게 물려 쓰러진 자는 회색 늑대들의 밥이 되었고, <다크 라이칸>에게 당한 자는 사지 중 하나가 찢겨져 나갔다.
사방이 비명과 피투성이였다.
“안 돼!”
그런데 임보라가 애타게 외치던 그때였다.
“박도진.”
콰드드드득!
누군가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삽시간에 날아든 보랏빛 물체가 눈앞의 적을 그야말로 빗자루질처럼 ‘쓸어’버렸다.
“뭐, 뭐야?”
당황한 임보라가 얼떨떨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는 동안, 어느새 늑대 무리 속으로 들어선 박도진이 놈들을 도륙 내는 중이었다.
변이의 힘을 사용한 그의 공격에 늑대들은 미처 다가오지도 못한 채 속수무책 쓰러졌다.
깨갱―!
변이자의 공격에 늑대들은 한낱 개가 되어 애처로운 비명만 토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슥! 슥! 슥!
언제 들어섰는지, 머리를 뒤로 올려 묶은 한 여자가 박도진이 놓친 늑대들을 빠르게 처리하고 있었다.
유아라였다.
그녀의 주위로 넘실대는 검은 마력에 늑대들은 짐짓 겁을 먹고 섣불리 다가오지 못했다.
파바바밧!
유아라가 머뭇대는 놈들을 향해 단검을 휘두르자, 검붉은 색의 쐐기가 마치 화전처럼 쏘아져 늑대들의 몸을 꿰뚫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임보라가 중얼거렸다.
“우, 우리 길드에 저런 사람들이 있었나?”
하지만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인사들이었다.
왕린이 새로 개발한 가면을 쓴 두 사람은 빠르게 늑대들을 정리해 나갔다.
크아아아악!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보스 <다크 라이칸>이 맹렬히 달려왔으나…….
<살(殺)>.
피슛―!
놈은 검은 정장은 입은 사내의 일격에 머리에 구멍이 나 쓰러졌다.
일격.
단 일격에 상급 마물이 생사를 달리한 것이다.
모두가 뒤쪽에 선 그를 바라보는 가운데, 대뜸 나타나 보스를 쓰러뜨린 강우가 말했다.
“여긴 끝났다. 다음은… 중구로 간다.”
“저, 저기… 잠깐만!”
뒤늦게 임보라가 소리쳤지만, 이미 세 사람은 저 멀리 달려간 뒤였다.
* * *
동구에 이어서 중구마저 처리한 강우와 일행은 서둘러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어디냐, 석탈해.’
강우는 계속해서 석탈해가 준비한 비장의 수를 찾아다니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만난 <균열 브레이크>는 모두 일반적이었다.
<백귀>처럼 특이한 적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신라는? 아직 반응이 없나?”
“예. 성수에서 발생한 브레이크를 막은 이후로는 아직까지 움직임이 없다고 합니다.”
운전대를 잡은 박도진이 마물의 피가 묻은 자신의 팔소매를 걷으며 대답했다.
아까 <다크 라이칸>들을 상대하던 그의 모습이 생생했다.
“인천 쪽은?”
“그쪽도 아직은 균열이 발생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데요.”
강우는 유아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보다 빠른 해결에 석탈해가 계획을 포기한 것인가?
아니, 놈이 절대 그럴 리 없다.
분명 무언가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그때, 스마트 워치를 살피던 유아라가 말했다.
“조금 전에 로드리게 씨한테 연락이 왔어요. 만석도 전북 쪽 레이드에 참가 중이래요.”
전북에 나타난 건 수십의 오우거 떼였다.
하나하나가 중급 마물에 필적하는 마물들.
본래라면 소형 길드들이 막기에는 무리인 놈들이나, 강력한 버프를 가진 오만석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각성자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의 역할은 더 빛을 발할 테니까.
그때, 마침 청익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너, 지금 어디야?]
“대전 쪽 브레이크를 처리하고 다시 올라가는 중이다. 이번엔… 안동이군.”
서울 지역을 맡은 건 청익과 도봉팔, 도봉순이었다.
어차피 서울에는 이카루스부터 독종까지 쟁쟁한 길드들이 있고, 무슨 일이 벌어지든 최소한의 시간은 벌 수 있었다.
그 탓에 강우는 서울이 아닌 중부 지역을 도는 중이었다.
청익이 말했다.
[방금 전에 들은 건데, 아무래도 네가 말한 희귀 균열이 나타난 것 같다.]
“그게 어디지?”
* * *
청익이 말한 장소는 강원도 횡성의 한 역사였다.
한때 동계올림픽을 맞아 지은 역사 주변은 아직 개발되지 않아 대부분 산지였다.
그곳에 모습을 드러낸 건 은은한 황토빛을 비치는 <유색 균열>.
카아아악―!
그곳에서 나온 수십 마리의 <그리핀>들이 둔내 상공을 장악한 상황.
각 시군구마다 크고 작은 길드들이 포진해 있으나, 강원도를 대표하는 랭킹 15위 ‘무장’ 길드는 현재 강릉에 나타난 <변종 인어>로 인해 정신이 없었다.
<균열>에서 나온 인어 두 마리가 바다로 유입된 것이다.
마물이 지구의 바닷속을 살아간다.
그건 그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일이어서, 이카루스까지 촌각을 곤두 세우고 인어를 잡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만약 인어들이 동해안으로 나간다면, 한국은 국제적 비난을 피할 수 없을 테니까.
“이 새대가리 새끼들!”
탕! 탕!
강우 일행이 도착했을 때, 이미 역 인근은 각성자들과 <그리핀>들의 싸움이 한창이었다.
곳곳에서 총성이 울리고, 크고 작은 비명과 괴성들이 오갔다.
대비하기에는 이미 늦은 탓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집에 숨어 문고리를 걸어 잠그고 있었다.
“공군은? 소식 없어?”
“거긴 죄다 강릉으로 갔잖아!”
각성자들이 고군분투했지만, <그리핀>들이 날개를 가진 탓에 상대가 쉽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놈들이 강원도를 넘어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갈 우려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유아라가 곤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총체적 난국이네요.”
이곳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이 1차 각성자였다.
심지어 총을 든 자 중에는 일반인도 보였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리핀>을 지켜보던 강우가 물었다.
“공격할 수 있겠나?”
하지만 유아라는 어렵겠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너무 높아요.”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역(力)>.
“……?!”
끼, 끼아아악!
쿵!
삽시간에 하늘을 날아다니던 <그리핀>들이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바닥으로 처박혔다.
검은 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