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헌터-81화 (82/186)

[81화] 도전장 (1)

태산 빌딩의 한 사무실.

창단 때부터 신라 길드와 함께한 이 사무실은 이제 곧 이사를 앞두고 있었다.

『창단 58일 차, 신라 길드! LV. 5 균열 레이드에 성공하다!』

『신라, ‘시민의 안전을 담보로 한 돈벌이는 그만두어야 한다’』

『경이로운 속도로 성장 중인 신생 길드! 그들의 리더를 파헤친다! : 석탈해』

『석탈해, ‘균열은 사회의 것’. 수익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

『승승장구, 석탈해! 그 이름이 탄생하게 된 계기는?』

길드가 급속도로 성장한 탓에 십여 명이던 직원이 이제 세 자리수를 넘어가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빈 사무실을 여섯 개나 더 빌렸지만, 더 이상은 감당이 어려웠다.

이제는 새 둥지를 찾아 떠나야 할 때.

바깥에서 쉴 새 없이 활동 중인 길드원까지 고려하면, 이제 신라 길드는 어엿한 중형 길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런 유망한 신라 길드의 사무실로 하나의 택배가 배달되었다.

『수취인 : 신라 길드장, 석탈해』

평소 같으면 각성자 출신 직원이 내용물을 확인하고 집무실로 갔을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발신인에 적힌 이름 때문이었다.

『발신인 : 돌쇠』

‘돌쇠?’

퍽 우스꽝스러운 이름이지만, 그 이름을 듣자마자 길드장은 택배를 곧장 자신에게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길드장님,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정 씨.”

석탈해는 여느 때처럼 따스한 미소로 직원을 맞이했다.

이름이 불린 직원이 영광이라는 듯 얼굴을 붉히며 나가고, 석탈해는 집무실 창문에 걸린 블라인드를 내렸다.

그러고는 책상에 앉아 직원이 건네고 간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축구공이 들어가면 딱 알맞아 보이는 크기의 상자.

언뜻 마력이 느껴졌으나 그건 자신의 입장에서나 그렇고, 웬만한 각성자들은 느끼지도 못할 만큼 미세하고 꽁꽁 감춰진 것이었다.

“…….”

비로소 석탈해는 상자에 손을 가져다 댔다.

한 가닥, 한 가닥.

정성스럽게 묶인 노끈을 천천히 풀었다.

마침내 상자가 열렸을 때.

“으음.”

짧은 신음과 함께 석탈해의 광대가 작게 씰룩였다.

처음 사도들이 실종됐을 때도 꿈쩍 않던 근육이었다.

그가 곤란한 듯 자신의 붉은 눈썹을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이런 표정은 처음이로군요, 석철.”

상자 안에 든 건 다름 아닌 석철의 머리였다.

그것도… 살아 있는 머리.

목이 잘려 상자에 담긴 그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입술을 연신 뻐끔대고 있었는데, 그 뺨 위로 눈물이 흥건했다.

강인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던 석철이…….

흐느끼고 있던 것이다.

“…….”

석탈해는 잠시 그런 석철과 눈을 마주하다가 이윽고 빨갛게 부어오른 그의 두 눈을 감겨 주었다.

그러고는 마력을 흘려보내 그를 잠재웠다.

이미 한 번 죽은 터라 그의 부활은 불가능했다.

‘이건… 피바라기인가.’

석탈해는 즉각 상대의 무기를 유추해 냈다.

석철은 되살아났지만, 일반적인 언데드로 부활한 건 아니었다.

누군가의 피를 먹고 일시적으로 되살아난 것.

그렇게 살아난 존재는 다소 특수한 좀비가 되어 버린다.

말도 못 하고, 오직 주인의 명령대로만 움직여야 하는 좀비.

머리로 생각은 가능하지만, 오직 그뿐.

그들에게 의지를 행할 수단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나 머리만 남은 상태라면 더더욱.

“…쯧.”

석탈해는 안타까운 듯 짧게 혀를 찼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토록 강인한 석철이 눈물을 다 보였을까.

아무래도 석철은 지독(至毒)하다 못해 지악(至惡)한 자의 손에 당한 게 분명했다.

석탈해는 자신의 마력으로 석철의 머리를 소멸시켰다.

작은 불티가 되어 흩어지는 살점들.

그것이 그가 울분에 찬 사도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안식이었다.

“…….”

곧 피 묻은 상자를 닫은 석탈해는 창가로 다가가 섰다.

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도전장이라…….”

석철의 머리를 자신에게 보낸 상대는 치밀했다.

그의 머리에서 그 어떤 기운도, 기억도 읽어 낼 수 없었다는 점이 그랬다.

상대는 자신이 그럴 가능성까지도 고려해 원천봉쇄해 버린 것이다.

그가 아는 <피바라기>는 잔학무도하긴 해도 이렇게까지 치밀하진 않았다.

즉, 상대는 최소한 <피바라기> 정도는 제 입맛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참으로 소름 돋게 궁금한 자네요.”

사실 언젠가부터 조금씩 무언가가 어긋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던 석탈해였다.

미묘한 불협화음이랄까.

누군가 자신의 그림자를 쫓고 있는 느낌.

누군가 제 앞길에 돌 부스러기를 뿌리고 있는 듯한 느낌.

그건 가랑비와 같아서, 젖는 걸 알면서도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가랑비를 피하자고 걸음을 멈출 순 없는 일이니까.

그런데… 비로소 그 미세한 균열을 찾아낸 듯했다.

어쩌면 나머지 두 사도의 실종과 <백귀 균열>을 도둑맞은 것 또한 택배를 보낸 자와 연관이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분명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석탈해는 확신했다.

곧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간만에… 흥미가 이는군요.”

호기심이 피었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도발하는 존재란 과연 어떤 자일까.

일을 이렇게까지 벌였다면, 하루 이틀 준비한 건 아닐 터.

상대는 석철을 시작으로, 숨겨 온 이빨을 본격적으로 드러낼 터였다.

금제를 깬 사도를 상대할 수준이라니.

석탈해는 오래간만에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곧 만날 수 있겠지.’

그 길로 석탈해는 집무실을 나섰다.

그의 <전음>이 울렸다.

[칠야, 모든 사도에게 소집을 명합니다.]

* * *

후룹.

저택 테라스에 앉아 있던 강우는 박도진이 타 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캐모마일이라고 했던가.

향이 썩 나쁘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도착했겠군.’

석철의 머리를 확인한 놈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으나, 대충 표정은 짐작이 갔다.

상대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겠지.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석탈해.’

차를 모두 마신 강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바라기>의 본체가 소멸하던 날, 놈은 죽은 사람들을 되살려 달아났더랬다.

죽은 자를 깨우고 제 의지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저주의 스킬.

강우가 썩 좋아하는 방식의 마법은 아니지만…….

‘네놈들에게라면.’

놈들에게 내가 느낀 분노를 고스란히 전달할 수만 있다면…….

혜진이가 느꼈을 고통을 놈들이 느끼게 만들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그게 자신을 인간 아닌 그 무엇으로 만들지라도.

저택으로 들어서자, 마침 박도진이 거실로 나오고 있었다.

못 보던 뿔테 안경을 쓴 그의 손에는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다.

“정리가 끝났습니다.”

“모두 확인했나?”

“예. 아무래도 당신의 예상이 맞은 듯합니다. 이카루스는 전쟁을 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석철의 USB와 녹음기를 전부 샅샅이 살핀 박도진이 말했다.

그곳에는 석철이 국내 몇몇 길드와 접촉한 기록과 서로 간에 오간 거래 내용 따위가 담겨 있었는데, 예상대로 그리 주목할 만한 건 없었다.

단 하나.

이카루스가 국내 <균열> 브레이크에 대비해 짜 놓은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외하고는.

박도진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대대적인 브레이크를 일으킬 생각을 하다니… 이카루스가 그렇게나 급한 사정이 있을까 싶습니다. 자칫하면 지금까지 쌓아 온 모든 걸 잃을 수도 있을 텐데요.”

“그만큼 초조해질 무언가가 있던 거겠지.”

아마도 거기엔 <백귀 균열>을 잃은 석탈해의 입김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 확률이 높았다.

브레이크를 일으키고, 마물을 불러낸다.

이카루스는 자신들이 그것을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그들은 결코 그러지 못할 것이다.

과거, <백귀 균열>이 그랬듯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질 테고, 토벌에 실패한 이카루스는 비난을 넘어 쇠락의 길을 걷게 되겠지.

반전은 오직 ‘신라’의 몫이니까.

석탈해에게 이카루스는 신라를 돋보이게 할 배경에 불과했다.

‘백귀의 왕을 잃은 대신 단번에 이카루스와 한국을 삼킬 생각이었군.’

강우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놈들의 계획은 파악했으니, 이제 그것을 어떻게 막느냐가 문제였다.

만약 전국에서 일시에 브레이크가 발생한다면?

인원이 한정적인 자신과 검계로서는 그것들을 모두 처리할 수 없다.

석철, 하다못해 진중과 임가륜 수준의 사도가 하나만 나와도 그 장소는 쑥대밭이 될 테니까.

게다가 검계는 세상의 눈 밖에 남아야 위력을 발휘하는 집단.

황 노인도 섣불리 전력을 노출할 생각은 없을 터였다.

‘가장 좋은 건 브레이크가 발생하기 전에 모든 <균열>을 처리하는 것인데…….’

하지만 어떤 <균열>이 브레이크를 일으킬지 알 수 없으니, 그것도 무리였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한 가지였다.

석탈해가 이용하고자 한 이카루스와 5대 길드를 역이용하는 것.

자신이 석탈해보다 먼저 <백귀 균열>을 처리했듯, 이번에는 이카루스와 국내 5대 길드가 브레이크를 막아 내면 될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신라는 나설 기회를 얻지 못하고 닭 쫓던 개 신세가 될 테지.

그때의 석탈해의 표정이 문득 궁금해진 강우였다.

“5대 길드 수장들을 파악해야겠군. 이름과 나이, 그간의 행보와 간단한 성격 정도. 최대한 간략하게 부탁하겠다.”

“준비하겠습니다.”

이한에서 꼭 암살 업무만 수행한 건 아닌지, 박도진은 일반적인 행정 업무에도 능했다.

전투도, 행정 능력도 수준급인 각성자라니…….

매번 황한수에게 연락하기 불편하던 참이었는데, 그런 만큼 박도진은 보면 볼수록 훌륭한 인재였다.

“나는 잠시 종로에 다녀오지.”

그런데 집을 나서려던 강우가 문득 떠오른 기억에 멈칫하고 물었다.

“아참, 김민정은 어떻게 됐지?”

“줄곧 선물을 보내고는 있습니다만… 그때 우승 이후로는 바쁜지 부재중입니다. 계속 보낼까요?”

정작 자신은 잊고 있었지만, 역시나 박도진은 계속 그녀에게 선물을 보내는 중이었다.

부재중이라…….

북에 있다던 가족들을 구하는 중인가?

잠시 고민하던 강우가 대답했다.

“아니, 이제 그만두지.”

“알겠습니다.”

그간의 선물로도 충분히 이쪽의 존재를 각인했을 것이다.

이제는 때를 봐서 연락을 취하면 그만.

그녀가 쿠키를 한 번이라도 먹었다면, 자신의 만남 제의를 쉽게 거절하진 못할 터였다.

아직 가족들이 북에 있다면 더더욱.

‘김민정.’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갔겠지만, 그녀는 달랐다.

과거의 그녀는 뛰어난 마물 사냥꾼.

비록 석철의―아마도―분풀이로 한쪽 눈을 잃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녀는 대성했다.

그녀라면 앞으로의 일에 있어 분명 큰 조력자가 될 터였다.

홀로 움직이길 좋아하는 강우가 먼저 손을 내밀 만큼 말이다.

운 좋게 만난 보석인 만큼, 그녀는 따로 필요한 일이 있었다.

“다녀오지.”

강우는 저택을 나갔다.

검은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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