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석철의 금고 (5)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조릭이 <피바라기>에 찔린 목을 연신 더듬으며 물었다.
날카로운 쇠붙이가 살을 관통하던 감각이 여전히 생생했다.
“내가 어떻게 다시 살아난 거야?! 꿈… 꿈이었어?! 아니면 환상?!”
“…….”
하지만 강우는 대답 대신 다시 <피바라기>를 들어 올렸다.
그 서늘한 표정에 두려움을 느낀 조릭이 뒷걸음질을 쳤다.
“뭐, 뭐야?! 또 왜 그래?! 이런 장난 하나도 재미 없……!”
스각!
“크학!”
<피바라기>가 다시금 조릭의 목을 그었다.
두 번째 죽음이었다.
강우는 이번에도 바닥으로 스며드는 조릭의 시신을 내내 지켜보았다.
“또, 또야?! 커헉!”
“그, 그만… 컥!”
“제발… 커헉!”
“서, 설마 그때 고문 때문이야?! 미안해! 그건 석철, 그 새끼가 시킨… 크학! 이 시불 놈아!”
“이 사이코패스! 억!”
“그만두라고, 이 미친 새끼야! 컥!”
조릭의 죽음은 그 뒤로도 몇 차례나 계속되었다.
과정도 다양했다.
가만 서 있다 죽기도, 뒷걸음치다 죽기도 했으며, 달아나다 날아든 마력 덩어리를 맞고 죽기도 했다.
그 과정이 열세 번째가 됐을 무렵, 이번에는 조릭이 다급히 무릎을 꿇었다.
“제, 제발 그만하십쇼!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놈이 처음으로 존대를 사용했다.
눈가에는 눈물이, 인중에는 콧물이 흥건했다.
강우는 묵묵히 얼빠진 놈의 얼굴을 살폈다.
비로소 자신이 원한 결과가 나온 듯했다.
‘확실히… 정신이 무너지는군.’
강우가 조릭을 통해 알아내려고 한 건 ‘되살아난 대상의 정신이 멀쩡한가?’였다.
이 <사이트 스톤>의 세상에선 죽음과 동시에 모든 것이 초기화된다.
탑과 <데스 나이트>를 제외하고는.
만약 신체의 부활과 동시에 정신마저 온전해진다면, 석철을 이곳으로 데려오려는 자신의 계획이 쓸모없어지는 것이다.
다만, 이미 수많은 죽음에 익숙해진 자신으로선 그것을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 대상으로 조릭을 이용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신체와 달리 죽음의 기억은 계속 남아서, 아무리 부활한들 정신은 온전치 못해졌다.
두 손을 모은 조릭이 애처롭게 바라보는 가운데, 마침내 강우가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
“예? 아, 예!”
뒤늦게 그 뜻을 깨달은 조릭이 황급히 바닥에서 일어섰다.
반복된 죽음 탓인지, 놈이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당분간 너는 네 동료와 함께 이곳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조릭은 거듭 고개를 숙였다.
기나긴 지옥 끝에 비로소 자신이 원하던 대답을 듣게 된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조, 조건이요? 그게… 뭔데요?”
조릭은 불길한 눈으로 강우를 올려다봤다.
강우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조릭의 안색은 점차 사색으로 변해 갔다.
‘이 새낀… 진짜 악마야!’
그의 눈에 이제 강우는 도무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석철보다 무르다고 생각한 건 자신의 심각한 오판이었다.
설사 놈이 온다 해도 강우보다 더하진 않을 것이다.
이제는 강우의 숨소리만 들어도 오금이 저린 조릭이었다.
* * *
대화를 마치고, 강우와 조릭은 집으로 돌아왔다.
― 두 시간이다. 두 시간 내로 돌아오지 않으면, 스톤 자체가 사라질 거다.
<데스 나이트>가 엄포까지 놓은 이상, 더 약속을 미루긴 힘들었다.
곧 고리를 위한 수련이 시작될 터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석철과 겨루기 위해선 최소한 세 개의 고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강우가 달성한 고리는 모두 두 개.
그마저도 아직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석철의 귀국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우, 움바야!”
마당에는 꽁꽁 묶인 투움바가 이미 배달 와 있었다.
그런데 그 배달원이 의외였다.
황급히 달려간 조릭이 정신을 잃은 투움바의 포박을 푸는 사이, 강우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배달원에게 물었다.
“…여긴 어쩐 일이지?”
그러자 세미 정장을 입은 남자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정보원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
강우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배달원은 바로 박도진이었다.
그가 다소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부터 검계에 취업했습니다. 당신도, 유아라 씨도 취업한 곳이니, 나쁘진 않아 보여서요.”
“…….”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 * *
저택의 거실.
조릭과 투움바는 <사이트 스톤>의 세상으로 들어가고, 거실에는 강우와 박도진이 마주 앉아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강우가 물었다.
“…유아라도 검계에 들어갔다?”
“사실 유아라 씨는 이미 청익이라는 자와 비행기를 탔습니다.”
“설마… 멕시코로 간 건가?”
“예. 멕시코에 간 석철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황한수 씨의 말에 의하면, 하나의 가르침이라더군요. 청익이 그쪽으로는 톱클래스라고 들었습니다. 아마도 첩보나 수색 등을 유아라 씨에게 가르쳐 줄 생각인 것 같습니다.”
강우의 미간이 한 번 더 꿈틀거렸다.
“유아라는 그렇다고 해도… 넌? 어째서 검계에 들어간 거지? 평범한 삶을 원하는 줄 알았는데.”
“그러려고 했는데… 황한수 씨가 그러더군요. 당신의 의뢰가 너무 많아서 가끔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요. 그래서 당신을 전담하는 부서가 필요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전 당신의 정보원인 셈입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박도진이 슬며시 웃었다.
“들어 보니 저도 나쁘지 않다 싶었습니다. 계속 집에서 살림만 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소일이라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애… 죄송합니다. 편지를 전해 주는 것 말고도 더 말입니다.”
“…….”
말은 장난스럽게 하고 있지만, 박도진의 표정은 진지했다.
‘…실수였군.’
석철을 만나는 과정에서 살성을 만난 것에 흥미를 느껴 그에게 일을 맡긴 게 실수였다.
너무 이중적이지 않은가.
그가 평범한 삶을 살길 원하면서도 한편으론 제 일을 맡기다니.
심지어 그를 수하처럼 여긴 마음까지도 있었다.
‘아직 과거의 버릇을 버리지 못했군.’
과거의 강우는 단독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길드 내에 그를 흠모하거나 따르는 수하는 꽤 많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박도진을 그들처럼 대했다니.
강우가 반성하는 사이, 박도진이 말을 계속했다.
“어차피 갈 곳도 없는 처지입니다. 이 저택에서 나온 게 어쩐지 아쉽기도 하고, 수영이도 마당 있는 집에 살다가 아파트로 온 게 답답한지 계속 이 집을 찾습니다. 괜찮으시면 이 집에서 다시 머무르고 싶습니다.”
“마당 있는 집은 서울에 얼마든지 있다. 원한다면 구해 줄 수도 있고. 그리고 이 집은 위험하다고 했을 텐데?”
박도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생각하건대, 한국 땅에서 이 집보다 안전한 곳은 없을 겁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주변을 지키는 검계 단원들이 제법 돼서요. 수영이 등하교 시간에도 따라와 주시더군요.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검계에 입단하게 되면 경우가 다르겠죠.”
…등하교 때도 호위라니.
아마도 청익의 짓일 확률이 높았다.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까.’
불과 며칠 만에 다시 만난 박도진은 성격이 달라진 듯했다.
어딘가… 처음 수영이의 병실에서 만났을 때와 같아졌다고 해야 할까.
아버지 박광석의 죽음 이후로 수동적이기만 하던 박도진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마친 모양이었다.
“며칠간 그 아파트에 있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제가 앞으로 무얼 하고 살아 나가야 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의지할 곳이 이곳밖에 없더군요.”
“…….”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함께하고 싶습니다. 당신도, 유아라 씨도, 검계도. 그들은 활인검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길에 저도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그간 누군가를 죽이기 바쁘던 제 손으로요.”
죄책감인가.
그래서 새로운 사명이 생기게 된 것인가.
“…되레 손에 피를 묻히게 될 수도 있다.”
“감수하겠습니다. 그게 저와 아버지, 우리 수영이를 구해 준 사람들이 나아가는 길이라면.”
박도진의 눈빛을 보니 더 말해 봐야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다.
유아라나, 박도진이나.
이럴 때 보이는 눈빛은 어쩐지 비슷했다.
결국 강우는 포기했다.
아니, 솔직해지기로 했다.
박도진이라면 분명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마음대로 해라. 대신 맡은 임무는 철저히 수행해라.”
“명심하겠습니다.”
그제야 박도진의 얼굴에 진짜 미소가 번졌다.
진정한 ‘같은 편’의 탄생이었다.
* * *
검계에 합류한 박도진을 저택에 남겨 두고, 강우는 <데스 나이트>와의 약속대로 다시 <사이트 스톤>의 세상으로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 더 알아낸 사실이 있는데, 그건 바로 석철의 금고 속 물건에 관한 것이었다.
<사이트 스톤>의 세상에 들어오기 전.
자신은 그 전자 기기들을 무심코 내버려 둔 것이다.
마력에 취약한 전자 기기가 망가지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석철이라고 사이트 스톤을 가지고 있지 말라는 법은 없지.’
단순히 <균열>을 대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다.
“이것들을 조사해 봐라.”
“알겠습니다.”
밖에서 박도진에게 USB와 녹음기를 맡긴 강우는 탑을 향해 걸었다.
이미 탑 앞에는 조릭과 투움바가 있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투움바가 강우를 노려보며 물었다.
“네놈들은 대체 뭐지? 처음부터 이러려고 용병단에 들어온 거냐?”
눈빛은 매서웠지만, 목소리엔 이미 체념이 가득했다.
양손을 잃은 탓인가.
강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동료가 갑자기 마물로 변했을 땐 나도 좀 놀랐지만.”
“…….”
그러자 투움바는 침묵했다.
강우는 그런 놈의 잘린 양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팔목을 감싼 붕대는 새어 나온 피로 온통 흥건했다.
그것을 보자 문득 잊고 있던 의문이 떠올랐다.
“하나 궁금한 게 있다.”
강우는 투움바를 반쯤 끌어안고 있는 조릭에게 물었다.
“처음 타이슨의 다리가 녹아내렸을 때, 석철이라면 치유할 수 있을 거라고 했지. 그게 무슨 뜻이지? 신체를 재생할 수 있는 마법이라도 있나?”
“아… 그건.”
잠시 고민하던 조릭이 답했다.
“정확히 말하면 치유가 아니라… 수술이에요.”
“수술?”
“서, 석철의 지인 중에 의술이 뛰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일전에 해릭의 손이 잘렸을 때도 다른 손을 이식해 준 사람이지요. 마물의 손이었어요.”
강우는 어쩐지 그 지인이 누구인지 알 것도 같았다.
인간, 마물 가릴 것 없이 그 신체로 실험을 벌이는 존재는 그의 기억에 단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그런가.”
의문이 풀린 강우는 탑으로 향했다.
그런데 막 탑에 들어서기 직전.
강우가 몸을 돌렸다.
그러자 눈을 마주친 조릭이 불안한 듯 몸을 움츠리며 투움바를 꼬옥 끌어안았다.
“…왜, 왜 그러십니까?”
“둘은 무슨 사이지?”
별 의미 없이 든 의문이었다.
조릭이 투움바를 아끼는 모습이 조금 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남은 팀원이라서?
그러자 조릭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제, 제가 도박 빚에 시달릴 때 투움바가 구해 주었습니다. 안 그랬으면… 지금쯤 제 손목이 없을 겁니다.”
“…….”
별 시답잖은 이유였군.
곧 강우는 탑으로 들어갔다.
검은 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