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서열잡이 (4)
츠츠츠츳!
섬뜩할 정도로 불길한 검은 마력이 강우에게서 일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싸늘하게 바라보던 진중이 물었다.
“…연극이라고?”
하지만 당연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일순간 쏘아진 수십 개의 검은 쐐기가 곧장 진중에게로 쇄도했다.
진중은 뒤로 펄쩍 뛰어올라 그것들을 피했으나, 쐐기는 계속해서 연달아 날아들었다.
콰과과과과!
바닥이 부서지며 무수한 돌 소나기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보다 못한 임가륜이 소리쳤다.
“장난이 지나치군요!”
어느새 날아든 임가륜이 검을 횡으로 휘두르자, 수많은 검격이 튀어나왔다.
강우는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들을 앞으로 집중시켰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날카로운 쐐기를 내뿜던 검은 오러가 마치 커튼처럼 앞으로 흘러내렸다.
검은 장막(帳幕).
임가륜의 검격은 그 장막에 막혀 허무하게 소멸했다.
“무슨……!”
당황한 임가륜이 몇 차례 더 검격을 날렸으나, 결과는 똑같았다.
속이 훤히 다 비치는 얇은 마력장 하나에 자신의 공격이 죄다 막히다니.
순간, 임가륜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건 수십 년 동안 잊고 있던 감정이기도 했다.
바로 패배.
어쩌면 오늘 밤, 자신이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아니. 그럴 일은 없다.’
하지만 임가륜은 애써 그런 기분을 떨쳐 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아무리 강하다 한들, 고작 3차 각성자 하나를 사도 둘이서 당해 내지 못한다고?
그 말은 눈앞의 저 남자가 사도급, 아니, 그 이상의 능력을 지녔다는 뜻.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일어나서도 안 될 일이야.’
임가륜은 묵묵히 진중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는 강우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같은 편이 아니야. 여기서 죽여야 한다.’
강우의 눈빛을 보아하니, 그는 도무지 같은 편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를 죽이면 석철이 쓴소리를 하겠지만, 놈도 지금 눈앞의 광경을 본다면 차마 반대하진 못할 것이다.
사도를 능가하는 인간이라니… 그런 건 이 세계에 존재해서는 안 되었다.
결심을 마친 임가륜이 소리쳤다.
“진중! 아무래도 강우 공은 죽여야겠습니다!”
“같은 생각이다.”
진중이 팔을 휘저었다.
강우는 어느새 자신의 머리 위에서 요동치는 거대한 마력의 소용돌이를 감지했다.
아까 본 벼락들과는 차원이 다른 마력의 파동이 천장 쪽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낙뢰(落雷).”
콰르르르릉!
미궁 전체가 갈려 나갈 듯한 굉음.
미궁 전체를 밝힐 만큼 아찔한 섬광이 번뜩이며 하늘에서 장대한 번개가 내리쳤다.
그것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의 여의봉과도 같았다.
그러나 강우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피바라기>에 마력을 불어넣고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굳이 피하지 않았다.
놈들이 석탈해의 수족이라는 것을 안 순간부터, 강우는 다시 일전의 저승사자로 돌아가 있었으니까.
아니, 이곳에서의 그는 사신(死神)이었다.
사신은 묵묵히 기다리고 앗아 가는 존재.
피하거나, 도망가거나, 회피하는 건 사신의 몫이 아니었다.
사신의 역할은 그저 거둬 가는 것뿐.
츠츠츠츠츳!
미궁을 뒤엎을 것만 같던 벼락이 <피바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제 마력이 아무런 위화감 없이 먹혀 버리는 것을 본 진중이 두 눈을 부릅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진중의 마력을 삼킨 강우가 입술을 뗐다.
“이것이 네놈의 진짜 마력인가? 상상한 것보단 어설프군.”
곧 <피바라기>가 움직였다.
“되돌려 주지.”
콰과과과과!
진중이 경악하는 사이, 삽시간에 강우의 마력으로 치환된 번개가 <피바라기>에서 터져 나왔다.
아까 진중이 보여 준 뇌격(雷激).
검게 변한 뇌창(雷槍)들이 진중의 온몸 곳곳을 꿰뚫었다.
파바바밧!
“크악!”
“지, 진중!”
온몸 곳곳에 구멍이 난 진중이 짐승 같은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는 운명하지 않았다.
빠르게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해 간신히 살아남은 진중이 핏발로 벌겋게 물든 눈으로 강우를 쏘아보며 소리쳤다.
“이놈!”
그러나 그것도 고작 시간 끌기에 불과했다.
진중은 비틀대며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서둘러 다가간 임가륜이 그의 상처를 살폈지만, 이미 가망은 없어 보였다.
“진중, 이건 분명 꿈일 겁니다. 아닙니까?”
“…….”
하지만 진중은 더 말이 없었다.
어느새 눈을 감은 그의 심장이 멎어 있었다.
토해 낸 피로 가슴이 흥건했다.
진중은 마법에 능한 자.
다른 사도들에 비해 신체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임가륜은 시선을 돌려 강우를 바라봤다.
여전히 놈의 팔에 걸린 <죽음의 고리>가 생생했다.
‘어째서…….’
부르르르.
임가륜이 온몸이 분노로 요동쳤다.
변화는 감정뿐만이 아니었다.
콰득! 콰득!
임가륜의 근육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우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넌… 인간이 아니로군.”
어느새 온몸을 뒤덮은 회색빛 털과 길쭉하게 튀어 나온 주둥이.
날카롭게 번뜩이는 송곳니와 손발톱.
뱀처럼 흘러내린 꼬리.
임가륜은 개와 인간, 그 중간의 외양을 하고 있었다.
<늑대인간>이라 불러도 전혀 위화감이 없는 모습이었다.
“반인반수인가.”
놈의 이명이 괜히 잡견(雜犬)이 아닌 모양이었다.
검을 쓰는 <늑대인간>이라니.
‘퍽 새롭군.’
강우는 눈앞의 견인을 마주하며 <피바라기>를 겨누었다.
그러자 임가륜이 으르렁대며 물었다.
“어떻게 네놈이 고리를 가지고 있는 거지? 네놈, 대체 정체가 뭐냐? 대체 어디서 너 같은 놈이 나타났지?”
놈은 외양이 변하면서 말투마저 달라진 듯했다.
하지만 대답할 의무는 없었다.
“정 궁금하면 스스로 알아내 봐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콰과과과!
아까보다 배로 강화된 검격들이 강우를 덮쳤다.
촘촘하게 날아드는 그것들은 마치 하나의 파도 같았다.
강우가 막아서는 것과 동시에 바닥이 쓸려 나가고, 뒤를 둘러싼 녹림의 벽들이 그대로 찢겨 나갔다.
어찌나 위력이 강한지, 녹림의 벽조차 수복되지 못하고 그대로 소멸할 지경이었다.
임가륜이 울분에 찬 목소리로 이를 갈았다.
“배를 가르고, 평생을 고통 속에 살게 해 주마.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게 될 거다.”
“이미 그렇게 살고 있음이다.”
콱! 콱! 콱!
연달아 쏘아져 오는 검격과 빈틈을 헤집고 들어오는 놈의 쾌검이 무척 예리했다.
강우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막아 내며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쉴 새 없이 부딪친 두 개의 마력이 주변을 태우고, 인정사정없이 날아드는 두 개의 검이 공간을 찢었다.
어느새 임가륜의 팔에도 강우와 같은 고리가 하나 걸려 있었다.
‘마물의 모습을 해야만 고리를 사용할 수 있는 건가?’
강우는 숨 쉴 틈조차 없는 긴박한 대결 중에도 상대에게서 정보를 뽑아내기 위해 열심이었다.
막상막하(莫上莫下).
<죽음의 고리>를 두른 임가륜과 강우의 실력은 실로 우위를 가리기 어려웠다.
그 뒤로도 십여 차례의 공방을 주고받은 둘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거리를 벌렸다.
잠깐의 휴식이었다.
“…….”
둘은 서로에게 드러나지 나지 않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주변에서 들리는 것은 작은 숨소리만이 전부였다.
‘시불… 뭐가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고! 누굴 응원해야 해?!’
아까부터 싸움을 지켜보던 조릭은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한 채 부서진 바위 파편 뒤에 숨어 있었다.
양손을 잃은 투움바는 정신을 잃은 듯 잠들어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그런데 조릭이 머리를 쥐어뜯던 그 순간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인기척이 일었다.
‘헉!’
놀란 조릭이 뒤를 돌아보자,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정예 변종 노움>이 보였다.
초대형 만드라고라가 벼락을 맞고 찢어질 때 기절한 놈이 다시 깨어난 것이다.
한 차례 고개를 휘저은 놈이 고개를 들었다.
‘시불!’
놈과 눈을 마주친 조릭이 황급히 시선을 피했지만, 이미 <정예 변종 노움>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넷이서 달려들어도 못 당해 내던 놈을 홀로 상대할 방도는 없었다.
설상가상 몇몇 <변종 노움>들도 다시 깨어나고 있었다.
조릭은 온몸을 벌벌 떨었다.
‘이건 악몽이야!’
* * *
“…….”
강우는 여전히 숨을 고르는 임가륜을 지켜보았다.
굳이 더 부딪쳐 보지 않아도 놈이 진중보다 한 수 위라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무엇보다 몸놀림이 좋았다.
특히나 아까부터 보여 준 발재간이 신경 쓰였다.
만약 놈이 전력을 다해 달아난다면, 자신이 놓칠 확률도 존재했다.
‘이 안에서 모든 걸 끝내야 한다.’
<미궁>은 소멸 시간이 긴 게 흠이지만, 그렇다 해도 <균열> 중 하나.
이 안에서 벌어진 모든 일은 소멸과 동시에 영원히 비밀로 남는다.
그러기 위해선…….
‘놈의 발을 묶어 놔야겠군.’
강우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시체 하나를 슬쩍 쳐다봤다.
그때, 임가륜이 입을 열었다.
“마지막 기회다. 지금이라도 입을 열면 고통 없이 죽여 주지. 네놈은 누구지? 그 고리를 또 어디서 얻었나?”
“아까 말했을 텐데, 스스로 알아내 보라고. 아니면 잡종이라 인간의 말은 잘 못 알아듣나?”
“후회할 거다!”
휴식이 끝났는지, 임가륜이 다시금 달려들기 시작했다.
강우는 몸을 틀어 놈의 공격을 피한 뒤, <피바라기>를 휘둘러 모아 둔 마력을 퍼부었다.
곧 응축된 마력이 상대의 앞에서 일제히 폭발했다.
콰과과과!
“이까짓 것!”
임가륜은 양팔을 휘저으며 뒤로 조금 물러섰다.
공격은 손쉽게 막혔지만, 강우의 목적은 공격에만 있지 않았다.
놈이 물러서는 것을 확인한 그는 계속해서 마력을 쏟아 냈다.
콰과과과과!
쉴 새 없이 마력들이 쏘아지고, 폭발했다.
검은 연기 속에서 임가륜이 크게 웃었다.
“크크크큭! 계속해 봐라! 먼저 지쳐 떨어지는 건 네놈이야!”
그러나 그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공격을 멈춘 강우가 어느새 죽은 진중의 곁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너……!”
강우는 왼팔로 쓰러져 있던 진중의 목덜미를 쥐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마력으로 강화된 팔은 성인 남성을 들기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허공에 들어 올려진 진중이 그의 손에서 축 늘어져 있었다.
얼굴을 굳힌 임가륜이 말했다.
“내려놔.”
하지만 강우는 진중을 내려놓지 않았다.
대신 <피바라기>를 임가륜 쪽으로 겨누며 말했다.
“제법 정이 든 모양이군.”
“분명 내려놓으라고 했다.”
“내가 한 가지 말해 보지. 이놈도 인간이 아니야. 맞나?”
“…….”
임가륜은 그저 노려볼 뿐, 대답이 없었다.
‘역시.’
강우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을 느끼며 진중의 시신을 바라봤다.
그가 보기에 진중 또한 마물이었다.
아마도 편의상 <도깨비>라 불리는 그 변종 마물 중 하나겠지.
푹!
강우는 망설임 없이 <피바라기>를 놈의 몸에 찔렀다.
그러자 검이 게걸스럽게 피를 빨아먹기 시작했다.
“이 개새끼야!”
두 눈이 뒤집힌 임가륜이 달려들자, 강우는 진중의 시체를 놈에게로 던져 버렸다.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진 동료의 시신.
‘도대체 저놈은……!’
그것을 받아 든 임가륜이 이를 부득 가는 사이, 진중의 피를 삼킨 강우의 입술이 열렸다.
그 찰나의 순간.
놈은 섬뜩함을 느꼈다.
‘…설마!’
어느새 천장에서 익숙한 마력의 파동이 일고 있었다.
임가륜의 갈기가 쭈뼛 곤두섰다.
‘아, 아닐 거야!’
하지만 상대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건 자신이 설마라고 생각한 바로 그 단어가 맞았다.
“뢰(雷).”
<피바라기>가 울었다.
콰과과과광!
검은 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