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파이트(Fight) (3)
뚝, 뚝.
의식을 찾은 강우는 들려오는 물방울 소리에 눈을 떴다.
하지만 눈앞은 칠흑 같은 어둠뿐.
아마도 검은 천 따위로 자신의 눈을 가린 듯했다.
‘물소리…….’
강우는 시각 대신 청각과 후각에 집중했다.
공간을 작게 울리는 물 떨어지는 소리.
콘크리트 특유의 차갑고 싸한 냄새와 퀴퀴한 곰팡내.
위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인기척과 흔들림.
이따금 작은 구멍 너머로 들려오는 바람 소리.
‘지하로군.’
강우는 지금 자신이 갇혀 있는 곳이 지하실임을 즉각 알아차렸다.
아마도 이곳이 석철의 아지트 중 하나인 듯했다.
‘다행히 무사히 잠들었나.’
강우는 끊긴 기억을 떠올렸다.
마지막 기억은 차 안에서 대뜸 주먹을 휘두르던 석철.
불행히도 강우는 그때 곧장 정신을 잃지 않았다.
마력을 이용해 강제로 의식을 잠재우지 않았더라면, 몇 대는 더 맞았을 터다.
‘절대 사절이지.’
그극.
강우는 입을 몇 차례 크게 여닫아 뻐근해진 얼굴근육을 풀었다.
다행히 여기까진 일이 잘 풀린 듯했다.
그때,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깼냐?”
석철이었다.
몸을 돌리고 싶었으나, 온몸이 의자에 묶여 있었다.
힘을 쓴다면 굳이 못 풀 것도 없겠지만…….
강우는 그러지 않았다.
바로 뒤편에서 날카로운 감촉과 함께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보지 않아도 놈의 수하들이 자신의 목덜미에 무기를 대고 있음이 자명했다.
“내가 좀 알아봤는데 말이다.”
턱, 턱.
석철이 신은 군화가 바닥을 디딜 때마다 딱딱한 소리를 냈다.
맞은편에 선 놈이 말했다.
“너, 좀 이상한 놈이더라고?”
‘…즐거운 모양이군.’
모르긴 해도 그 목소리를 들으니, 지금 놈은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을 듯했다.
“…뭐가 말입니까?”
“네가 각성한 게 불과 1년 남짓이던데? 그런데 지금은 3차 각성자를 제압할 수준이라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석철이 상식을 논하다니.
놈을 아는 이가 들었다면 피식했을 소리다.
강우는 속으로 웃었지만, 놈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게다가 얼마간의 행적도 거의 불분명하고. 뭐냐, 너? 어디 숨어 있던 놈이야? 언제서부터 날 따라다녔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퍽!
강우가 대답하기 무섭게, 누군가가 그의 배에 주먹을 꽂았다.
갑작스러운 주먹질에 강우가 신음했지만, 폭력은 그 뒤로도 몇 번 더 이어졌다.
얼굴에 두 대, 배에 세 대.
느껴지는 마력으로 봐선 아마도 자신에게 망신을 당한 조릭 바타르인 듯했다.
찢어진 광대 쪽 피부에서 피가 흐르는 가운데, 석철이 다시 물었다.
“누가 보냈냐? 나한테 왜 접근했지?”
‘검계가 일을 제대로 했나 보군, 이렇게 생떼를 쓰는 걸 보면.’
놈은 자신에 대해 알아낸 게 거의 없어 보였다.
강우는 새삼 검계의 능력을 다시 상기하며 답했다.
“…누가 보낸 적 없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석철 님을 따르고 싶었을 뿐입니다.”
“각성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듣기론 종종 마력 흡수율이 타인보다 나은 각성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바로 너고?”
“예.”
“하…….”
헛웃음을 터뜨린 석철은 잠시 말이 없더니, 이내 강우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코앞에서 역겨운 놈의 숨결이 느껴졌다.
“지금 사태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나랑 말장난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 핸드폰도 부쉈더라? 켕기는 게 있으니까 부순 거 아니야?”
가지고 있던 핸드폰은 경기장을 나서기 전에 마력으로 망가뜨려 버렸다.
보통 전자 기기는 마력에 젬병이니, 놈들이 뭔 수를 쓰든 절대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검계용 핸드폰은 박도진이 고이 보관하고 있을 테고.
“그건… 당신이 날 못 믿듯, 나도 아직은 당신을 완전히 믿진 못하기 때문입니다.”
“허, 뭐?”
“나도 아직 당신이 따를 만한 인물인지 결정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
석철은 다시 침묵했다.
‘태어나 이런 대답은 처음이겠지.’
강우는 달라진 석철의 호흡을 놓치지 않았다.
분명 놈은 당황했다.
“그 말은 좀 건방지게 들리는데? 언제부터 ‘제가’가 ‘나도’가 됐냐?”
“아무한테나 생을 걸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허, 이놈 말하는 거 보게?”
석철은 기가 차 웃었다.
‘‘아무나’라고?’
어디서 이런 꼴통 새끼가 나타났지?
어느새 석철은 진심으로 웃고 있었다.
이내 손아귀를 푼 놈이 말했다.
“이놈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다. 귓구멍이 뚫릴 때까지 좀 더 먹여 줘라.”
“예!”
조릭 바타르의 신이 난 듯한 대답과 함께 다시금 구타가 시작됐다.
이번에는 셋이었다.
세 명의 장정이 강우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다.
바닥으로 토사물과 피가 흥건해진 가운데, 석철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이따 다시 올 테니까, 잘 생각해라.”
* * *
고문은 계속됐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나흘이 지났다.
주변이 온통 피와 썩은 내로 진동하고, 텅 빈 위에선 쓴물이 올라왔으며, 입안은 신내로 가득했다.
석철은 강우에게 빵 한 조각, 물 한 모금도 주지 않았으며, 당연히 화장실에도 보내지 않았다.
종종 마력을 주입했음은 물론이다.
타인의 마력을 주입당한 몸은 그것을 정화하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마력을 소모한다.
그 과정에서 오는 두통은 덤.
이런 식의 처사는 각성자를 다루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고문 방식으로, 마력으로 신체를 보호하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
하지만 강우는 그 모든 것들을 감내했다.
놈들은 모르겠지만, 이미 자신의 마력은 일반적인 수준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숟가락이든 포클레인이든.
바닷물에서 수십 바가지를 퍼낸다 한들, 그것은 티조차 나지 않는다.
‘박도진이 내 문자대로 계속 선물을 보냈을까?’
‘오늘은 무슨 맛 쿠키를 보냈지?’
‘데스 나이트가 이 주나 찾아오지 않았다고 성화겠군.’
‘박수영은 오늘 유치원에 갔으려나?’
‘김민정의 결승전 전에는 끝나면 좋겠는데.’
다만, 강우는 이 지루한 시간이 어서 지나가길 바라며, 그런 시시한 생각 따위를 하고 있었다.
* * *
고문 일주일째.
놈들은 아침부터 강우의 머리에 비닐봉지를 씌웠다.
기어이 한계까지 몰아붙일 모양이었다.
각성자라고 산소 없이 살 순 없는 일이니까.
퍽! 퍽!
여전한 주먹 세례를 받으며, 강우는 머릿속으로 <데스 나이트>와의 대결을 복기 중이었다.
그가 횡으로 대검을 휘저을 때, 자신은 그걸 피하지 않고 굳이 마주했다.
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마주하지 않고 피했더라면?
그 틈에 그의 목 이음새에 <피바라기>를 찔렀다면?
그랬다면 승부가 더 빨리 결정 났을까?
<백귀 균열>에서 마주한 검은 개를 떠올렸다.
석판은 왜 자신에게 그런 기억을 건네준 거지?
이마에 상처가 아홉 줄 난 개.
그가 말한 하나의 저주와 축복이란 무엇이지?
자신의 회귀에는 어떤 저주와 축복이 있을까?
고양이처럼 자신을 기다리던 유아라와 매일 아침 거실에 앉아 빨래를 개는 박도진을 떠올렸다.
매일 검을 휘두르며, 매일 집안일을 하며, 그 둘은 무슨 생각을 할까.
과연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을까?
사실은 여전히 지독한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가면을 쓰고 거짓 일상을 향유하고 있는 건 아닐까?
봉지로 머리를 덮어씌워진 탓인지 갖은 기억들이 뭉게뭉게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러면서도 입은 기계적으로 같은 말만 반복했다.
“당신의 용병단을 동경했습니다. 그뿐입니다.”
“미친…….”
석철의 용병들은 그런 강우에게 혀를 내둘렀다.
보통은 각성자가 고문에 더 강할 거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마력을 운용하는 각성자는 신체를 유지하는 데 그만큼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일정 시간 마력으로 배고픔을 억누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은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
마력이 한계에 다다르면, 그 반동으로 엄청난 허기와 피로가 몰려든다.
마력으로 감수할 수 있는 건 외부의 통증뿐.
갈증이나 허기, 피로 등은 다른 영역이었다.
“이 새끼 언데드 아냐?”
“독한 새끼…….”
게다가 강우가 잠을 자지 않은 지도 벌써 170시간을 넘겼다.
이만하면 상대가 설사 4차 각성자라도 두 손, 두 발 다 들어야 정상이다.
손발을 비비며 살려 달라 울부짖어야 정상이다.
최소한 그가 인간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강우는 도무지 흔들릴 줄 몰랐다.
마치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혹시 잠을 자지 않아도, 굶주려도 버틸 수 있는 마법이 있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는 도무지 이 상황이 설명되지 않았다.
“시발… 입맛이 떨어질 정도야.”
처음에는 강우의 앞에서 고기까지 구워 먹어 가며 조롱하던 놈들도 점점 지쳐 가는 모양새였다.
강우의 몸에서 나는 썩은 내가 영 못 견딜 지경이었다.
“…….”
석철만이 묵묵히 그런 강우를 지켜보고 있었다.
확실히 강우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이 현저히 줄었다.
가뭄 때 메마른 물줄기보다도 훨씬 적은 양.
그건 강우가 일부러 조절한 양이었으나, 석철은 감히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
마력이 무한한 존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아무리 마력이 많다 한들 한계는 존재한다.
그렇게 마력이 전부 소멸하면?
각성자는 더 이상 신체를 유지하지 못한다.
몸은 물론이고, 정신마저 무너져 버린다.
한 번 마력을 머금은 신체가 마력 없는 몸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살아도 산 게 아닌 거다.
하지만 어떻게 된 게 이놈은… 날이 갈수록 더 굳세지는 듯했다.
‘허, 두 번이나 지게 생겼군.’
석철은 쓰게 웃었다.
* * *
그렇게 열흘이 되던 날.
“됐다. 풀어 줘라.”
마침내 석철의 명령이 떨어졌다.
강우가 잠을 자지 않은 지 약 233시간을 넘긴 시점이었다.
털썩.
의자에서 일어난 강우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열흘간 잠도 못 자고 고문당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지독한 놈.’
석철을 바닥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 강우를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이건 시험이었다.
자신의 용병단에 들어오기 위해 치러야만 하는 통과의례.
보통은 나흘을 넘기지 않는 시험이 이번에는 호기심 탓에 열흘이나 흘렀다.
석철도 강우가 얼마나 버틸지 흥미가 일었기 때문이다.
열흘이나 잠을 안 자고도 버티는 놈이라니…….
그건 결백 여부를 떠나 무서울 정도였다.
‘생각보다 더 질긴 놈이었어. 내 눈은 틀지지 않았다. 놈은 진짜 호랑이야.’
그제야 석철의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마음 같아서는 죽을 때까지 얼마나 버티나 시험하고 싶을 정도였으나, 이런 인재를 허무하게 보낼 수는 없는 일.
게다가 이제는 더 허비할 시간도 남지 않았다.
그는 몸을 낮춰 손수 강우의 몸을 잡았다.
그 탓에 토사물과 피가 몸에 묻었지만, 석철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
그러자 그를 지켜보던 용병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건 석철 다음인 서열 2위 핸더슨 때조차도 보이지 않은, 파격적인 대우였으니까.
핸더슨의 표정이 잠시 꿈틀댔으나, 불만을 드러내진 않았다.
이곳은 ‘석철 용병단’.
석철의 뜻이 곧 용병단의 뜻이다.
그가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고, 발을 핥으라면 핥아야 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런 그의 뜻에 반(反)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설사 그곳에 불구덩이라고 할지라도.
석철이 강우를 몸소 일으키며 물었다.
“일어날 수 있겠냐?”
“…끝난 겁니까?”
“너,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이게 연극이라는 걸.”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위 연극이 존재한다는 게 역겨울 지경이지만, 어찌 됐든 시험은 무사히 끝났고, 자신은 주인공으로 남았다.
그것도 두 번 다시는 나오지 않을 역대급 베스트 주인공으로 말이다.
‘그게 도움이 될지는 몰랐군.’
확실히 과거에 몇 달간 도망자 생활을 한 게 도움이 되긴 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더 극한의 상황이었으니까.
강우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걸렸다.
‘하, 웃어?’
하지만 그 속을 모르는 석철은 속으로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놈의 광기는 호공을 넘어서는 듯했다.
‘그 미친놈이 이번 일을 말하면 뭐라 말할까?’
석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기특한 자식. 내 새끼가 된 걸 축하한다. 넌 오늘부터 서열 2위다.”
비로소 석철의 용병단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검은 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