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헌터-45화 (46/186)

[45화] 멕시코에서 온 용병들 (1)

국내 길드 랭킹 1위, 이카루스.

귀빈 중에서도 극소수만 구경할 수 있다는 이카루스의 제1번 접견실에 실로 오랜만에 손님들이 찾았다.

하나같이 딱딱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네 사람.

누군가가 이 광경을 봤다면, 분명 흥미롭게 여길 터였다.

백호, 스톰, 독종, 송학.

정부 행사에도 잘 참여하지 않는 5대 길드의 수장들이 한자리에 앉아 있는 건 보기 드문 광경이니까.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무거워진 공기가 가라앉다 못해 바닥을 꺼뜨리기 직전, 마침내 그들을 불러 모은 당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한껏 기름칠된 짧은 포마드와 흰색 정장.

팽창한 상체 근육과 터질 듯한 종아리.

꽉 낀 정장이 다소 부담스럽기까지 한 이 남자가 바로 이카루스의 수장이자 대한민국 최강이라 불리는 이승우였다.

일부러 늦게 온 것이 분명한데도 그는 굳이 깍듯이 고개 숙여 사과했다.

물론, 길드장들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승우의 이런 모순된 행동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는 자신의 힘을 저런 식으로 테스트하며 즐거워하는 위인이었다.

이윽고 거리낌 없이 상석에 앉은 이승우가 입을 열었다.

“제가 오늘 여러분을 모신 이유는 다름 아닌 이한 때문입니다.”

이한의 파멸.

이미 대한민국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는 소식이다.

하지만 이한이 해체된 지도 벌써 열흘이 넘게 지난 일.

새삼스러울 정도로 늦은 소집에 길드장들은 의아함을 느꼈다.

백호 길드장, 유지태가 물었다.

“이한에 남은 일이 있습니까? 이미 처리가 다 끝난 걸로 아는데요.”

그러자 잠시 뜸을 들이던 이승우가 대답했다.

“오늘 권기한이 죽었습니다.”

“…뭐?”

“그게 무슨 말입니까?”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길드장들이 동요했다.

“자살이라도 했단 말입니까?”

“아니요. 타살입니다. 이송 중 괴한들의 습격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허, 그게 무슨…….”

접견실이 탄식으로 가득 찼다.

권기한의 서열이 낮다 한들 그는 3차 각성자 중에서도 나름 중견 인물이다.

그런 그가 괴한의 습격을 받고 죽었다고?

그를 이송하던 자들도 보통은 아니었을 텐데…….

“다행히 헌터 경찰과 지원을 나간 이카루스 길드원의 피해는 없었습니다. 괴한들은 호송 인원을 제압한 뒤, 오직 권기한만 처리했다고 하더군요.”

고민하던 스톰 길드장, 서유리가 물었다.

5대 길드장 중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평소 사려 깊고 신중한 일 처리로 정평이 난 여자였다.

“원한을 품은 세력일까요?”

“글쎄요, 아직까진 알아낸 바가 없습니다. 꽤 오랫동안 준비했는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더군요. 저는 이번 일이 이한의 붕괴 방식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왕 균열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사실 이한의 몰락에는 의아한 구석이 많았다.

불과 하루 이틀 사이에 주요 인사들이 전부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그 탓에 아무리 조사를 진행해도 그들이 알아낼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저번에 말씀드렸듯이 이한은 의왕 IC에서만 3차 각성자 대부분을 잃은 것 같습니다. 레이드에 기자를 따로 부르지 않은 걸 보면, 처음부터 뭔가를 벌일 생각인 것 같은데… 되레 이한이 당했습니다.”

“저도 그게 계속 신경 쓰이던 참입니다.”

이승우는 유지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고만고만하다고 해도 이한은 나름 랭킹 6위를 잘 유지하던 중형 길드였습니다. 대체 어느 누가 그런 길드를 하루아침에 풍비박산 내고, 더 나아가 호송 중인 3차 각성자를 암살까지 할 수 있을까요? 그것도 쥐도 새도 모르게요.”

“용병 길드일까요?”

“그런 수준의 용병 길드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 없습니다.”

“마찬가집니다.”

“으음.”

고민에 잠긴 길드장들이 침묵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 정도의 실력을 감춘 집단이 대한민국에 존재한다는 것부터가 위협적인 일이니까.

“한마디 하겠습니다.”

그때, 분위기를 살피던 서유리가 입을 열었다.

“길드장님이 우려하는 게 무엇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번 일은 우리 스톰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가요?”

이승우는 자신의 사각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눈치가 빠른 여자다.

지금 그는 이한을 무너뜨린 범인이 이곳에 있지 않을까 추측하는 중이었으니까.

그러자 서유리를 시작으로, 다른 길드장들도 이어서 입을 열었다.

“저희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송학이 이한과 경쟁 관계인 건 맞지만, 선의의 경쟁이었을 뿐, 비열한 암투는 없었습니다. 애초에 권기한이 그런 일을 저지르고 있다고는 상상도 못 했고요.”

“백호도 물론입니다.”

이승우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독종 길드장, 김인표에게 닿았다.

그러자 줄곧 심드렁하게 앉아 있던 그가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기껏 바쁜 길드장들 모아 놓고 한다는 소리가… 우리가 그런 놈들한테 신경 쓸 겨를이 있어 보여? 오히려 난 그런 놈 하나 제대로 단속 못 한 이카루스가 못 미더운데? 호송 중인 놈을 죽게 놔둔 것도 그렇고. 정말 관련 없어? 혹시 이카루스도 이한이랑 관련 있는 거 아니냐고. 괜히 찔리니까 죽이고 나서 이런 쇼 하는 거 아니야?”

김인표의 도발에 일순간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국내에 오직 둘뿐인 4차 각성자들의 신경전이다.

독종은 비록 자금 싸움에서 밀려 종합 랭킹 4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길드장 김인표의 각성 등급은 이승우와 동급.

덕분에 세간에는 그 둘이 붙으면 누가 이길지에 대한 논쟁이 격렬했다.

물론, 서로 득 될 게 없는 대결이기에 그 답을 알 수 있는 확률은 희박하겠지만.

“…….”

짧은 기 싸움.

역시나 시선을 먼저 피한 건 잃을 게 많은 이승우 쪽이었다.

현재 일본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오동(키리) 길드와 협력해 중국을 견제 중인 그로서는 괜한 곳에서 힘을 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김인표의 존재는 그에게도 확실한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는 이카루스가 없는 동안 국내 길드들을 견제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으니까.

‘김인표 스스로 그 사실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김인표가 다소 거칠고 상스럽긴 해도 호박씨를 까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카루스도 다른 길드에 비해 독종의 행보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이걸 공생이라고 해야 할까?

여하튼 두 길드의 관계는 묘했다.

‘뭐, 언젠간 제대로 혼내 줘야겠지만.’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런 모호한 관계를 유지할 순 없다.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을 꿈꾸는 이승우로서는 한 번쯤 서열 정리가 필요했다.

‘뒤통수에 적을 두고 나갈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는 일본의 오동 길드처럼 한국의 모든 길드를 하나로 통합할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래야 국제적으로도 제대로 힘을 쓸 수 있다.

“여러분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예민했군요.”

“흥.”

김인표가 들으라는 듯 콧방귀를 뀌었지만, 다른 길드장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둘의 대결이 오늘은 아닌 모양이다.

“이한 쪽 일은 저희 이카루스가 계속 주시하겠습니다. 범인들도 계속 쫓을 테고요. 여러분도 혹시 쓸 만한 정보가 들어오면 공유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이한에 대한 건 이쯤에서 끝내고, 두 번째 안건입니다. 다들 저번에 말한 설원을 기억하실 겁니다.”

유지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난번, 이산 길드가 실종된 그 균열 말이군요. 그건 새로 입찰을 붙인 걸로 아는데요. 오만… 길드였던가?”

“만석 길드입니다, 길드장님.”

옆에 있던 서유리가 바로잡아 주자 유지태가 고맙다는 듯 작게 손을 들어 보였다.

“그래요, 만석 길드. 감사합니다. 그곳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게…….”

이승우가 곤란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난이도 조사가 잘못된 듯합니다.”

“레벨 판정이 잘못됐다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예. 재측정 결과 5레벨을 넘긴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마물 중에 언데드가 있는 모양입니다.”

접견실에 짧은 침묵이 일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균열>의 분배는 오로지 5대 길드의 몫이었다.

권기한이 어떻게든 5대 길드에 들려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5대 길드에 들기만 하면 막대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까.

그만큼 5대 길드는 짊어지는 책임도 컸다.

유지태가 조금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균열의 난이도 측정은 기본 중의 기본 아닙니까? 이카루스가 그런 실수를 하다니, 믿기지 않는군요.”

“죄송합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때다 싶던 김인표도 목소리를 냈다.

“그럼 이산도 이카루스가 죽인 거나 다름없잖아? 이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야. 레이드에 참가하는 길드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심각한 오류지.”

이승우가 그런 그를 슬며시 노려봤지만, 다른 길드장도 동감하는 눈치였다.

지금은 자신이 큰 목소리를 낼 때가 아니었다.

“…이산의 실종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저희 이카루스는 책임을 통감하고 직접 설원을 클리어할 생각입니다. 이산 길드원들에 대한 보상도 확실히 하고요.”

서유리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만석은 어쩌실 생각입니까?”

“최대한 서두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만석이 들어간 지 이틀째.

그들이 5레벨, 그것도 언데드가 있는 <균열>에서 살아 나올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끙.”

모든 길드장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이카루스의 실수라지만, 같은 5대 길드인 자신들도 세간의 비난을 피하긴 어려울 터였다.

‘…어쩔 수 없지.’

이승우는 그 얼굴들을 보며 속으로 쓰게 웃었다.

이번 소집은 아무래도 잃을 게 많은 행사였지만,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설원 균열>은 아직 클리어되면 안 되니까.

그 <균열>을 대신 맡아 주기로 약속하고 받은 막대한 로비 자금 때문이다.

‘고작 열흘 맡아 주는 걸로 20억이면 나쁘지 않은 거래지.’

게다가 의뢰인은 다름 아닌 그와 동업 관계에 있는 자였다.

비록 이번 소집으로 나머지 5대 길드의 신뢰를 조금 잃겠지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회복될 터다.

이러나저러나, 대한민국이 의지할 건 이카루스뿐이니까.

그 예로 송학이 아무리 5위 길드라고 해도 이카루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한국이 그리 큰 나라가 아닌 탓에 사실상 상위 세 개 길드를 제외하면 나머지 길드는 다 고만고만하기 때문이다.

강한 길드에 인재가 편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

대부분의 각성자는 상위 길드에 관심을 두지, 어중간한 길드를 선호하진 않았다.

그 결과 5위 송학과 1위 이카루스의 전력 차는 단순 수치만으로도 열 배에 가까웠다.

‘이카루스가 곧 한국이지.’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리자, 이승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죄송합니다.”

실례를 표한 그가 핸드폰을 꺼냈다.

비서였다.

나름 예의를 차린다고 접견실에도 들이지 않았건만, 전화라니.

그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내가 끝날 때까지 연락하지 말라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마스터. 워낙 긴급한 일이라…….]

이승우는 긴박한 비서의 목소리에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해외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설마 중국이?

“무슨 일인데?”

하지만 비서의 대답은 그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다.

[만석이 들어간 균열이 클리어됐다고 합니다.]

“…뭐?”

이승우는 하마터면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20억과 의뢰인의 신뢰가 완벽히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대체 어떤 놈이?’

검은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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