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백귀가 잠든 호수 (2)
“여긴… 뭐야?”
가장 마지막에 들어선 용병 사내가 물었지만,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모두가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 반쯤 넋 나간 얼굴로 주변을 진귀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호수 아래 자리한 작은 공동.
위로 검고 푸른 물결이 출렁이는 가운데, 은은한 달빛이 그 위를 비추고 있었다.
꼭 천장에 물고기가 노니는 거대 수족관에 들어선 듯했다.
미약한 악취가 섞인 습한 공기가 코를 괴롭히지만, 그 신비함을 덜어낼 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광원을 갖고 있나?”
용병들처럼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던 로드리게는 강우의 물음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 손에 쥐고 있던 <광원의 구>가 빛을 잃은 지 오래였다.
은은한 달빛 탓에 광원이 꺼진 걸 모른 것이다.
호수에 들어오면서 횃불도 자연스럽게 꺼졌으니, 새로운 빛이 필요했다.
로드리게가 서둘러 품에서 새 광원을 꺼내는 사이, 강우가 다시 말했다.
“사용하기 전에 얇은 천을 감싸라.”
로드리게는 군말 없이 강우의 말을 따랐다.
화아아아―
이내 천으로 감싼 구슬이 빛을 발하자, 늘어난 천 너머로 은은한 빛이 새어 나왔다.
“따라와라. 이쪽이다.”
강우는 용병들을 이끌고 동굴을 걷기 시작했다.
작은 공동에는 개미굴처럼 몇 개의 입구가 존재했는데, 그는 가장 오른쪽에 있던 통로로 향했다.
마치 어둠 속이 보이기라도 하듯 거침없는 걸음걸이였다.
“…….”
동굴이 깊어질수록 나머지 이들의 표정도 더 어두워졌지만, 차마 걸음을 멈추진 못했다.
남겨지는 것만큼 두려운 게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 말하지 않아도 지금 자신들이 의지할 것은 강우뿐이라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첨벙.
주변은 긴장한 용병들의 숨소리와 가끔 울려 퍼지는 작은 물소리가 전부였다.
그렇게 십여 분쯤 걸었을 무렵.
마침내 강우가 발걸음을 멈췄다.
“이곳이다.”
하지만 앞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라 보이는 게 없었다.
의아해진 로드리게가 광원구를 가지고 앞으로 나서자, 비로소 입구보다 훨씬 더 큰 공동이 보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천장 아래, 언뜻 무언가가 서 있었다.
“저게 뭐……?!”
“헉!”
“……!”
가장 먼저 그 정체를 확인한 로드리게가 입을 다물고, 뒤늦게 발견한 용병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숨을 들이켜며 입을 틀어막았다.
어둠에 가려 윤곽이 보이지 않을 만큼 광활한 공동.
규칙적인 숨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이곳에 자리한 건 다름 아닌 수천의 인형(人形)이었다.
하나같이 창백한 안색의 사람들이 모두 눈을 감은 채 꿈쩍도 하지 않고 있던 것이다.
꼭 진시황의 병마용을 보는 듯했다.
꿀꺽.
“이게 대체 다 뭐냐?”
로드리게도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얼굴을 굳힌 그가 숨죽여 묻자, 강우는 <피바라기>를 고쳐 쥐었다.
“백귀다.”
“이게 저 밖에 있는 그놈들이라고?!”
이번에는 이우민이었다.
경악한 목소리가 공동에 작게 메아리치자, 흠칫한 그가 몸을 움츠렸다.
행여 놈들이 깨어날까 두려운 듯했다.
곧 그가 더 작아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것들이 전부 놈들이란 말이야?”
“그래.”
강우의 대답에 이우민과 용병들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이런 놈들이 수천이라면… 자신들이 이 <균열>을 클리어할 확률은 제로였다.
‘수천의 언데드라니… 그런 건 들어 본 적도 없어!’
그간 등장한 <균열>은 많아 봐야 수백의 마물을 머금고 있었다.
여태껏 발견된 <균열> 중 가장 대규모였다는 애리조나주의 <개미굴>도 1,200~1,300마리 선에서 그쳤다.
그마저도 놈들은 하급 마물이었다.
그런데 일반 마물을 뛰어넘는 언데드가 수천이라고?
더군다나 놈들의 이마엔 등급을 판단할 <마력흔>조차 없다.
이런 놈들이 밖으로 나간다면…….
‘그보다 더한 재앙은 없어!’
어찌나 끔찍한지, 방광까지 아린 느낌이었다.
몸을 떨던 이우민이 백귀들의 눈치를 살피며 다급히 발을 굴렀다.
“어, 어서 나가자! 이런 건 나가서 5대길드에 알려야 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클래스가 아니라고! 대체 여긴 어쩌자고 들어온 거야! 망할!”
그러나 강우는 애걸복걸하는 이우민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신 가장 가까이 있던 백귀의 앞으로 다가가더니, 목에 <피바라기>를 가져다 댔다.
곧 벌어질 상황을 깨달은 이우민이 기겁하며 말했다.
“무, 무슨 짓이야! 미쳤어?!”
서걱!
하지만 그런 이우민을 비웃기라도 하듯, 강우는 백귀의 목을 스스럼없이 그어 버렸다.
쿵!
목에서 검붉은 피를 뿜어낸 백귀가 뿌리 잃은 통나무처럼 쓰러지자, 둔중한 소리가 동굴 전체를 울렸다.
이우민과 용병들에게는 그 소리가 핵폭발 소리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미친!”
소스라친 용병들이 백귀들을 살폈지만, 다행히 깊게 잠이 들었는지 놈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뒤늦게 안도한 이우민이 얼굴을 붉혔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수명이 반 토막 난 기분이 들었다.
“너 진짜 미쳤어?! 다 죽는다니까! 이 미친놈아!”
그러나 여전히 강우는 담담했다.
“마력을 쓰는 건 금지다. 마력이 놈들을 깨울 테니. 난 괜찮겠지만… 너흰 아니겠지.”
‘…이 새끼.’
그제야 이우민은 깨달을 수 있었다.
눈앞의 이 남자는 자신의 말을 단 1%도 듣지 않고 있다고.
상황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든, 결국엔 이 남자의 말대로 될 거라는 걸 말이다.
처음 그를 마주한 순간부터 자신들에게 결정권 따윈 없었다.
“지금부터 놈들을 쓰러뜨리되, 확실하게 목을 그어라. 다신 살아날 수 없게.”
“어, 어차피 죽여도 다시 살아나잖아.”
“이곳의 백귀는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 시작해.”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느냐고.
모두는 묻고 싶었지만, 이미 강우는 두 번째 백귀의 목을 긋는 중이었다.
‘제기랄!’
이우민을 비롯한 용병들이 서로를 끔찍하게 쳐다봤지만, 이젠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느새 로드리게 역시 백귀의 멱을 따고 있었으니까.
결국 용병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백귀 사냥에 참여했다.
그게 살아서 이곳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애써 믿으며.
털썩.
한동안 공동은 쇠붙이가 살을 베는 소리와 시체 쓰러지는 소리로 가득했다.
‘데려오길 잘했군.’
강우는 용병들의 손에 지푸라기처럼 쓰러지는 백귀들을 보며 생각했다.
여차하면 마력으로 정면 승부를 벌일 생각이었는데, 손이 몇 배로 늘어난 덕분에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서걱!
강우는 놈들을 하나하나 쓰러뜨리며, 공동 끝에 걸린 석판으로 걸어갔다.
4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석판 위로 알 수 없는 문명의 글이 쓰여 있었다.
『모든 축복에는 하나의 저주가 따르고, 모든 저주에는 하나의 축복이 따른다.』
이 고대의 언어는 발견되고 약 3년이 지나고 나서야 절반쯤 해석됐다.
그리고 강우는 이곳에서 그 내용을 아는 유일한 인간.
그는 이제는 낡아 버린 석판을 한 차례 쓰다듬었다.
비록 빛은 바랬으나, 억겁의 세월을 견뎌온 석판답게 그곳에는 알 수 없는 신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백귀.’
살아 있지만 반송장이나 다름없는 존재들.
생전엔 모두 한 왕국의 왕족으로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이제는 거리의 부랑자보다도 못한 신세였다.
평생을 호화로운 향락 속에서 살던 왕국의 주인들은 어느 날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영원히 부귀를 누릴 순 없을까?’
그들은 감히 그 누구도 쳐다 못 볼 권능을 누렸으나, 죽음 앞에선 무력했다.
자신들의 발이라도 한 번 핥고자 애쓰는 비렁뱅이나 태양 아래서 모두의 머리를 내려다보는 자신들이나.
죽음 앞에선 모두가 평등한 것이다.
그들은 그것이 부당하다 여겼다.
살아생전 태양에 가깝게 살았다면, 죽어서도 그래야 맞는 일이 아닌가.
죽음이라는 탄생의 산물.
그들은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민했고, 마침내 대륙에서 가장 위대하다는 마법사를 찾게 되었다.
『모든 축복에는 하나의 저주가 따르고, 모든 저주에는 하나의 축복이 따른다.』
마법사는 왕국에 머물며 더할 나위 없는 호사를 누렸다.
왕족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그에게 금화를 바치고, 정성껏 수발을 들었으며, 온갖 산해진미를 대접했다.
그 융숭한 대접 속에서 마법사는 하루하루 살을 찌웠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고, 삼 년이 지나도.
마법사는 도무지 그들에게 영생을 선사해 줄 의식을 시작하지 않았다.
아니, 이제는 정말 마법사인지도 의문이었다.
그가 하는 거라곤 먹고, 자고, 싸고, 밤낮없이 시녀의 옷을 들추는 것밖엔 없었으니까.
그렇게 왕족들의 인내심이 점점 극에 달하던 어느 날.
마침내 사달이 났다.
아내와 마법사 간의 잠자리 사실을 알게 된 한 왕족 사내가 그의 방을 찾아간 것이다.
손에는 뭉툭한 카타나를 들고.
죽음을 앞둔 순간, 마법사는 그제야 진실을 내뱉었다.
“나는 마법 따윈 모르오. 모르시겠소? 나는 예전 당신들의 발이나 핥던 비렁뱅이였는데.”
성난 왕족 사내가 거지를 벤 건 물론이었다.
그는 죽어 가면서도 첫날 찾아와 뱉은 말을 다시금 반복했다.
“내가 살던 고향에는 이런 말이 있소, 모든 축복에는 하나의 저주가 따른다고. 과한 욕심은 두 눈을 멀게하고, 화를 부르는 법이라오.”
거지는 그 말을 끝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살인으로도 분을 풀지 못한 사내가 거지의 목을 치려는데, 어느새 그는 온데간데없고 검은 개 한 마리만 죽어 있던 것이다.
머리에 작은 상처가 아홉 줄 난 검은 개.
그 사실을 기이하게 여긴 사내는 뒤늦게 두려움을 느끼고, 죽은 개를 오수에 버렸다.
저주는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아, 아버지! 눈이, 눈이 너무 부셔요!”
태양을 본 왕족의 자손들이 그대로 두 눈이 멀어 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살은 태양 아래 눈사람처럼 전부 녹아내렸다.
그날로 그들은 지하에 숨어 살게 되었고, 잠시나마 외출이 필요할 때면 온몸을 천으로 친친 감아야만 했다.
백방으로 저주를 풀 방법을 찾아다녔지만, 도통 방도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그들의 몸은 점차 무너졌다.
짓무른 살이 주저앉고, 썩어 문드러져 갔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스스로 제 살을 깁고, 방부제를 넣어 가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뿐.
그러는 사이, 그들은 어느새 수백 년이 흘러갔음을 깨달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죽은 이는 아무도 없이 그대로였다.
영생(靈生).
태양 아래 살 수 없는 존재가 됐지만, 마침내 그들은 바라던 대로 영생을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위대한 왕국은 그 터만 남고, 그들의 왕국을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그들이 택한 건 암울한 현실보다 미래의 희망이었다.
일종의 냉동인간이라고 해야 할까.
그들은 위대한 왕이 태어나 자신들의 저주를 풀어 줄 때까지, 몸에 방부제를 투여하고 기나긴 잠을 자기로 했다.
서걱!
털썩!
한때 위대했던 왕족들이 견뎌온 세월이 무색하리만큼 허무하게 쓰러지고 있었다.
기나긴 그들의 기다림도.
역겨울 만치 간절하던 영생의 갈망도.
모두 그 끝을 마주할 터였다.
바로 강우의 손에 의해서.
그런데 그때였다.
‘…윽!’
석판을 살피던 강우는 급격하게 밀려오는 두통에 이마를 짚었다.
그건 분명 마력이었다.
석판에서 흘러나온 소량의 마력이 강우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온 것이다.
그가 한차례 휘청이는 사이, 석판 속 이야기가 머릿속으로 홍수처럼 밀려 들어오며 이미지로 변화하고 있었다.
강우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이게 무슨…….’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가 머릿속으로 수백, 수천 번 재생되고, 오수에 버려진 검은 개의 형상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무슨 일이냐?!”
그 모습을 발견한 로드리게가 황급히 다가와 붙잡았지만, 여전히 강우는 이를 악물고 고통에 맞서는 중이었다.
그 순간.
“저, 저기!”
“아아…….”
작은 탄성과 함께 용병들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로드리게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가 뒤늦게 달라진 공기를 느끼고 주변을 둘러봤을 때…….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무수한 흰자위들이 보였다.
‘…망할.’
어느새 두 눈을 부릅뜬 오래된 왕족들이 공동의 침입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검은 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