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헌터-40화 (41/186)

[40화] 백귀가 잠든 호수 (1)

송강국의 팔이 뜯겨 나가던 그 시각.

강우가 있는 곳도 야영지 못지않게 혼란스러웠다.

“저, 저게 뭐야?!”

“언데드다!”

그가 머리를 벤 백귀 세 마리가 다시 몸을 일으키자, 용병들이 경기를 일으키며 비명을 꽥꽥 질러 댔다.

아마도 언데드를 상대한 경험은 없는 모양이다.

하긴, 언데드가 흔한 마물은 아니지.

스각!

강우는 일어난 목 없는 백귀 세 마리를 다시 쓰러뜨렸다.

언데드를 죽이는 방법은 세 가지다.

완전한 언데드가 되기 전에 숨통을 끊거나.

불로 몸을 태우거나.

그도 아니면 언데드에게 치명상을 입힌다는 <신성 마법>을 사용하거나.

하지만 지금 놈들은 두 번째 부활로 완전한 언데드가 되었고, 불은 자칫하면 더 큰 위험을 부를 수도 있었다.

불을 붙인다고 놈들이 바로 죽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행여 놈들의 발작에 숲이 타기라도 한다면?

되레 원정대가 숲에 갇혀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다.

당연히 <신성 마법>을 쓸 수도 없으므로, 강우는 여전히 살아 있는 백귀들에게로 다가가 그 다리를 모두 잘라 버렸다.

다신 못 일어나게 하기 위함이었다.

“…….”

강우가 눈 깜짝 않고 백귀 셋의 발목을 잘라 내는 사이, 그를 지켜보는 GK 용병들은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분명 그간 수백 번씩 헤집던 마물의 살이지만, 강우의 행동은 어딘가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다.

사냥이 아닌 도살이라고 해야 할까.

마물의 뼈와 살을 거리낌 없이 해체하는 도살자.

그들이 느끼는 강우의 이미지는 그랬다.

“……!”

“……!”

그러는 와중에도 야영지에서의 소란은 계속해서 전해져 오고 있었다.

발목이 잘린 백귀들이 야영지를 향해 기어가는 가운데, 강우는 놈들을 묵묵히 지켜보며 생각했다.

‘상대를 골라서 공격하는 백귀라…….’

발목을 잘라 냈음에도 불구하고, 놈들은 오로지 야영지로의 이동만을 갈구하고 있었다.

‘희한한 일이로군.’

여전히 놈들이 왜 이곳을 그냥 지나쳐 갔는지 의문이 들었으나, 계속 고민하기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자신은 날이 밝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달라진 건 없다. 계획대로 간다.’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유아라에게 방책까지 알려 주었다.

감각 좋은 그녀라면 충분히 제 몫을 해낼 성싶었다.

‘결론적으로 함께 온 게 도움이 됐군.’

강우는 유아라를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따라온 게 귀찮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새옹지마가 따로 없다.

현재 강우는 그녀에게 <추적자의 실>을 사용한 상태였다.

<추적자의 실>.

한선화에게 구매한 물건 중 하나로, 대상의 위치를 더욱 쉽게 감지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강우는 점차 야영지에서 멀어지는 유아라를 느꼈다.

우려한 대로 그곳에 백귀의 왕이 나타난 게 분명했다.

이윽고 생각을 정리한 강우가 말했다.

“따라와라. 우린 호수로 간다.”

“뭐?”

그러자 심각한 얼굴로 야영지 쪽을 바라보고 있던 로드리게가 부랴부랴 달려와 강우의 앞을 막아섰다.

왼쪽 팔꿈치를 움켜쥐고 있는 걸 보면 아마 팔이 부러진 듯한데, 그는 아픈 기색도 없이 똑바로 서 있었다.

단단한 외양만큼 맷집이 상당했다.

“지금 당장 야영지로 가야 해! 적의 습격이다!”

하지만 강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그쪽은 늦었다. 지금 가 봐야 죽음만 있을 뿐이다.”

“뭐? 그럼 원정대를 버리겠단 뜻이냐?!”

“정 가고 싶다면 가라. 네가 가는 것까지 말리진 않을 테니.”

강우는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하고는 이내 시선을 용병들 쪽으로 옮겼다.

“거기 다섯. 너흰 날 따라온다.”

“우, 우리?”

하지만 용병들도 섣불리 따르지 못한 채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야영지로 돌아가 용병단을 돕지 않은 사실을 송강국이 알게 된다면, 분명히 경을 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강우의 말을 무시하자니, 그가 보여 준 무용이 두려웠다.

“따라오지 않으면, 놈들의 밥으로 던져 주겠다.”

“……!”

강우의 말에 흠칫한 용병들은 여전히 바닥을 기어가는 백귀들을 바라봤다.

목이 잘리고 발목이 잘려도 살아 움직이는 마물이라니…….

놈들의 먹이가 되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게다가 바닥에 떨어진 머리 세 개는 둔하긴 해도 여전히 입을 딱딱 부딪치고 있었다.

“우린 선택권도 안 주는 거냐?”

“제기랄…….”

서로 속닥이던 GK 용병단은 결국 강우를 따라가기로 했다.

송강국에게 죽으나 강우에게 죽으나 어차피 똑같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송강국에게 죽는 게 1분이라도 더 사는 길.

그들은 당장의 생존을 택했다.

강우와 용병 다섯이 숲으로 걸어가는 사이, 그 뒷모습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던 로드리게가 외쳤다.

“네놈들은 배신자다!”

로드리게는 정말 혼자 야영지로 돌아갈 생각인 듯했다.

손도끼를 쥔 그가 절뚝절뚝 걷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저런 상태로는 백귀 하나도 감당하지 못할 터였다.

‘…신경 쓰이는 놈이로군.’

그 모습을 성가시게 바라보던 강우가 말했다.

“네가 가면 길드장은 죽는다.”

멈칫.

그제야 로드리게의 걸음이 멈췄다.

돌아선 그가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

“네가 길드장을 살릴 방법은 호수로 가는 것뿐이라는 뜻이다.”

“알아듣게 설명해라.”

“됐고, 따라오든가 가서 길드장과 함께 백귀가 되어 서로를 뜯어 먹든가. 선택해라. 내 마지막 배려다.”

강우는 더 미련을 두지 않았다.

그가 숲속으로 사라지자, 용병들이 주춤주춤 그 뒤를 따랐다.

남겨진 로드리게는 조금 괴로운 얼굴로 소란스러운 야영지 쪽을 바라봤다.

불이 났는지 야영지 쪽에서 환한 빛이 일고 있었다.

‘…제길.’

길드장 오만석과 함께한 지도 벌써 4년.

남들은 짧은 시간이라 할지 몰라도 생사를 오가는 4년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과 차원이 달랐다.

그들에게는 남들이 모를 신뢰와 정이 있었다.

― 우린 만석꾼이 되기 전까진 죽지 않는다.

만석꾼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는 로드리게이지만, 오만석의 소원이 만석꾼이라는 것만은 분명하게 알았다.

“…에잇!”

그는 기어가는 백귀들을 따라가 그 등을 손도끼로 내리찍은 뒤, 강우가 향한 숲속으로 절뚝절뚝 달렸다.

“같이 간다!”

* * *

호수로 가는 길.

강우의 뒤에 바짝 달라붙은 로드리게가 물었다.

“아르헨티나 전사인 내 직감이 말한다, 넌 이 숲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다고. 맞지?”

“…….”

“이 숲은 대체 뭐지? 그리고 넌 왜 실력을 숨기고 원정대에 들어온 거냐? 아니, 애초에 원정대를 따라온 건 맞나? 혹시 균열에 남아 있던 전 원정대원이냐?”

로드리게의 물음에 다른 용병들도 궁금한 듯 강우를 슬쩍 쳐다봤다.

그들로서도 강우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우는 대답 대신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첫째, 시끄러운 건 질색이다.”

“지금 내가 묻고…….”

“둘째, 네가 물어봐도 대답할 의무는 없다.”

“아니, 잠깐만! 내 직감으로는…….”

“셋째, 네 직감은 형편없다.”

강우의 마지막 말에 로드리게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 내 직감이 어때서?”

“직감이 좋았다면, 멍청하게 홀로 숲으로 가 얻어맞지는 않았겠지. 그런 건 세 살배기 코흘리개도 걸리지 않을 계략이다.”

“…….”

“그런데도 네 직감이 좋다고 말할 수 있나?”

그제야 로드리게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끙.”

그 얼굴을 본 강우가 말했다.

“좀 낫군.”

용병들이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는 사이, 그들은 계속해서 차가운 숲속을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슬슬 로드리게의 입이 근질거릴 무렵, 그들은 낮에 본 호수에 도착했다.

검은 호수를 두렵게 바라보던 용병 하나가 물었다.

“여긴… 왜 온 거야?”

하지만 여전히 강우는 말없이 걸을 뿐이었다.

결국 서로의 눈치를 본 용병들은 어쩔 도리 없이 그 뒤를 따랐다.

이윽고 호숫가에 다다르자 강우가 말했다.

“너, 들어가라.”

“뭐? 내, 내가?!”

지목을 당한 용병 사내가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는 처음 로드리게를 숲으로 유인한 이우민이었다.

이우민이 불길한 얼굴로 강우와 호수를 번갈아 보는 사이, 다른 용병들도 마른침을 삼켰다.

설마 이런 식으로 자신들을 처리하려는 건가?

‘호수에 넣어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고?’

모두가 두려운 얼굴로 바라보는 사이, 그 속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강우가 말했다.

“죽일 거면 아까 그곳에서 죽였을 거다. 쓸데없이 시간 끌지 말고, 어서 들어가라.”

그러면서 강우는 <피바라기>를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겨 쥐었다.

들어가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찌를 기세였다.

“…….”

이우민이 동료들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지만, 이미 모두가 고개를 떨군 채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젠장!’

결국 이우민은 마지못해 호수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덜덜덜.

호수에 발이 젖기도 전에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려왔다.

이우민이 굼벵이 같은 움직임으로 호수에 다다를 때까지, 모두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변화는 그의 발이 잠기고 몇 초 후에 발생했다.

고고고고―

이우민의 발 주변에서 작은 파동이 일어난다 싶더니, 이내 작은 소용돌이가 일며 그가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으, 으악! 사, 살려 줘!”

소용돌이는 삽시간에 이우민의 하반신을 집어삼켰다.

기겁한 그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그를 도울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강우가 목소리를 냈다.

“몸부림치지 말고 물에 몸을 맡겨라. 이상이 없거든 호수 밖으로 손을 흔들어.”

“그게 뭔 개소리야! 이 개자식, 결국엔 이렇게 죽일 거였으면서……!”

이우민이 강우를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곧 호수는 그를 머리끝까지 삼켰고, 다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잠잠해졌다.

두 번째 보는 광경이나, 기괴하기는 밤인 지금이 더 했다.

호수 위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마치 망자를 위한 장송곡처럼 들렸다.

‘마, 망할…….’

‘지,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남은 용병들은 동료의 죽음에 사색이 되어 몸을 떨었다.

분명 놈은 자신들을 살려 둘 생각이 없는 거다.

이렇게 하나하나 호수의 먹잇감으로 주려는 거야!

그런데 그때였다.

용병들이 달아날 타이밍을 찾기 위해 눈알을 굴리던 찰나.

“으악!”

돌연 용병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를 놀라게 한 건 다름 아닌 ‘손’이었다.

호수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 하나가 이쪽을 향해 인사라도 하듯 좌우로 흔들리고 있던 것이다.

경악한 용병들이 상황을 다 인지하기도 전에 곧 호수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푸하!”

호수 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이우민의 머리였다.

거친 숨을 토해 낸 그가 호수 밖으로 머리만 내민 채 강우와 동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 여기는 대체… 이 아래 동굴이 있어!”

그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동료들을 바라보는 사이, 그제야 강우도 몸을 움직였다.

“모두 들어와라.”

곧 강우의 몸이 호수 속으로 사라지고, 로드리게가 그 뒤를 이었다.

여전히 머리를 내밀고 있던 이우민이 동료들을 불렀다.

“뭐 해? 얼른 들어와!”

행여 동료들이 자신을 두고 도망이라도 갈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

남겨진 자들에겐 달아날 절호의 찬스였으나, 어쩐 일인지 그럴 엄두가 전혀 나지 않았다.

강우는 지금도 저 호수 속에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닐까?

아까 숲에서 보여준 움직임을 생각하면, 달아난다고 한들 얼마 못 가 백귀처럼 목이 잘릴 듯했다.

‘엄마…….’

결국 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호수로 들어갔다.

검은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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