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헌터-30화 (31/186)

[30화] 박도진 (4)

탕! 탕!

“막아!”

“끄아아악!”

“사, 살려 줘!”

강우가 막 권기한의 집무실에 들어선 그 시각.

장안 지부 내부는 빨간 페인트를 뒤집어쓴 듯 온통 피투성이였다.

지부장인 안상혁이 떠난 것을 미처 인지하기도 전에 이한 길드원들은 갑작스레 지부를 덮친 맹견을 마주해야만 했다.

처음 앞을 가로막은 둘을 잔인하게 도륙 낸 것을 시작으로 박도진은 무자비한 살육을 시작했다.

그의 검보라빛 손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이한 길드원들의 살점이 갓 빚은 두부처럼 썰려 나갔다.

“이, 이 괴물 새끼……!”

계단 아래서 죽어 가던 한 사내가 그렇게 중얼댔으나, 박도진은 그저 차갑게 바라볼 뿐이었다.

콰득!

곧 우악스러운 손길이 사내의 가슴에 박혔다.

박도진은 순간적으로 현기증을 느꼈으나,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는 남자의 심장을 그대로 뜯어냈다.

‘이게 너희가 원하던 모습이라면…….’

진짜 맹견이 되어 모조리 물어 죽일 것이다.

모두 씹어 먹을 것이다.

그게 아버지 박광석의 넋을 위로하는 데 손톱만큼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아니, 설사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박도진은 시선을 옮겨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쳐다봤다.

이미 1층 로비에 널브러진 시신만 수십 구가 넘으니, 위에 남은 건 고작해야 열을 넘지 않을 터였다.

박도진은 질척대는 피 웅덩이를 넘어 천천히 계단 위로 발길을 옮겼다.

“아아…….”

그가 산 채로 사람의 심장을 뜯어내는 것을 확인한 이한 길드원들은 전의를 상실했다.

아까부터 요란하던 총성도 멈추고, 모두가 스톱모션 속 인물처럼 숨 하나 편히 내쉬지 못했다.

누군가는 몸을 떨었으며, 누군가는 가랑이를 짙게 물들였다.

또 누군가는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 주저앉아 제 팔에 얼굴을 묻었다.

하지만 그 어떤 노력을 하든 결과는 같았다.

박도진의 발길이 닿는 족족 그들은 맹견의 먹잇감이 되었다.

“크크크… 왔냐?”

이윽고 박도진은 집무실에 도착했다.

본래는 안상혁의 것이었을 책상에 걸터앉은 권기한이 홀로 남아 박도진을 맞이했다.

박도진을 위아래로 훑어본 그가 말했다.

“그동안 본 것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모습이군. 앉아.”

어디서 났는지, 권기한의 손엔 호리병 모양의 양주병이 들려 있었다.

그는 양주를 병째 들이켜며 소파에 앉을 것을 권했다.

그러나 박도진은 여전히 우두커니 선 채 물었다.

“왜 그랬습니까?”

“…뭐?”

권기한은 잠시 멍하니 박도진을 쳐다보더니, 이내 못 참겠다는 듯 등까지 들썩이며 끅끅대기 시작했다.

웃음은 곧 폭소로 변했다.

“크하하하핫!”

한동안 집무실을 울리던 권기한의 웃음은 약 1분여간 계속됐다.

이윽고 웃음을 거둔 그가 박도진을 귀엽다는 듯 쳐다보더니, 다시 양주를 들이켜곤 입술을 닦으며 말했다.

“크~ 요즘은 말이야, 아무리 독한 술을 마셔도 취하질 않아. 이건 각성자들 마시라고 만든 술인데도 말이야.”

권기한의 동문서답에 박도진은 말없이 그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넌 술이 왜 있는 줄 아냐? 취하라고 있는 거야. 알아? 술은, 취하라고 있는 거라고.”

여전히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권기한은 쥐고 있던 양주병을 거꾸로 뒤집었다.

그러자 속에 있던 술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한동안 콸콸 흐르던 술이 동나자, 빈 병을 확인한 권기한은 돌연 병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쨍그랑!

그 탓에 바닥으로 떨어진 병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산산이 조각났다.

깨진 유리 조각을 보던 권기한이 말했다.

“취하지 않는 술은 쓸모가 없지.”

“…….”

그런 거였나.

박도진의 얼굴이 처음으로 꿈틀거리며 반응을 보였다.

머리로 아는 것과 그걸 현실로 마주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라는 걸, 박도진은 오늘 새삼 다시 깨달았다.

그 모습을 즐거운 듯 지켜보던 권기한이 책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네 딸과 네 아비는 널 붙잡아 두기 위한 수단이었어. 근데 네놈이 더 이상 붙잡혀 있지 않겠다니… 개도 없어진 마당에 목줄을 쥐고 있을 필요가 없잖아? 성가시기만 하지.”

권기한은 허공에 목줄을 놔 버리는 시늉을 한 뒤, 한마디를 덧붙였다.

“네 아비의 죽음은 네가 자초한 거야, 도진아.”

부득.

거기까지였다.

아까부터 집무실을 가득 채운 싸한 알콜 향 때문인지, 아니면 여기까지 오며 뒤집어쓴 피 냄새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 상황에 대한 죄책감과 분노 때문인지.

이유가 무엇이든 박도진은 그대로 이성을 끈을 놓았다.

곧 대번에 부풀어 오른 그의 저주받은 오른팔이 잃어버린 이성 대신 집무실 전체를 쓸어버렸다.

콰과과과―!

“크크크! 그거야, 도진아!”

어느새 검을 든 권기한이 깨진 유리창 아래로 몸을 날리며 크게 웃었다.

권기한도 여기까지 온 이상 달아날 생각은 없었다.

합류를 명령한 지부장들은 여태 코빼기도 안 보이고, 박수영을 잡으러 간 수하들도 깜깜무소식이다.

‘다 끝났군.’

권기한은 무너진 아성을 다시 일으키기엔 이미 늦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차라리 국내 랭커다운 최후를 기대할 뿐.

자신이 아는 맹견이라면… 그 최후를 장식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바닥에 착지한 그가 자신의 주력기인 <참살검>을 펼치며 말했다.

“와라.”

<참살검(慘殺劍)>.

권기한을 국내 12위라는 반열에 올려놓은 기술.

눈 깜짝할 사이에 상대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는, 잔혹하기 짝이 없는 검이지만, 누군가는 그 겉모습만 보고 아름답다 칭한 검이다.

어느새 여러 갈래로 찢어진 그의 검이 머리 아홉 달린 히드라처럼 일렁이며 먹잇감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 같이 내려온 박도진이 보였다.

“…….”

하지만 권기한이 기대한 화려한 전투나 비장한 최후의 전투 따위는 없었다.

팟!

‘어……?!’

삽시간에 달려든 박도진이 <참살검>을 쥔 손목을 붙잡았다.

<참살검>이 제대로 발동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콰득!

권기한이 미처 상황을 다 인지하기도 전에 그의 팔이 그대로 뜯겨 나갔다.

“크아아악! 시발!”

산 채로 팔이 뜯겨 나가는 통증이란, 그야말로 형언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태어나 처음 겪어 보는 고통에 권기한은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비극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박도진의 주먹이 얼굴을 때리는가 싶더니, 눈앞이 번쩍였다.

콱!

“커헉―!”

콱! 콱! 콱!

박도진의 구타는 계속됐다.

주먹이 권기한의 얼굴을 때리고, 이어진 발길질이 허벅지와 정강이를 걷어찼다.

권기한은 그 무자비한 폭력에 무력하게 당했다.

코뼈가 부러지고, 눈 위가 함몰되며, 정강이가 부러지고, 턱에 금이 갔다.

하지만 박도진의 폭력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 그만……!”

권기한으로서는 태어나 처음 당해 보는 일.

혼이 빠질 지경이었다.

이미 마력은 뜯겨 나간 어깨를 보호하기에도 급급했다.

죽기를 각오했으나, 막상 팔이 뜯겨 나가자 생각이 바뀌었다.

더 늦기 전에 팔을 챙겨야 한다고.

그러나 그건 권기한의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 곧 그의 남은 팔도 박도진의 손에 붙들려 무자비하게 꺾여 버렸다.

우드득!

“크악!”

이내 바닥에 버려진 권기한이 다리 뜯긴 벌레처럼 몸부림쳤다.

“이 개새끼야!”

이성이 마비된 듯 정상적인 사고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한쪽 팔을 뜯긴 게 여전히 실제로는 와닿지 않았다.

그의 자랑이던 <참살검>은 소멸한 지 오래.

아니, 이제 검을 제대로 쓸 수도 없을 테니, 영원히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권기한이 다급하게 뜯겨 나간 팔을 쳐다보는 사이, 어느새 다가온 박도진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시 기형적으로 변한 그의 팔에 권기한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바, 박도진……!”

무력감이란 이런 것이구나.

여태껏 나는 이런 놈에게 겁도 없이 소리쳤던 거구나.

비로소 상대의 진짜 모습을 마주한 권기한의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런데 박도진이 막 그 얼굴을 내리치려던 그 순간이었다.

“박도진!”

그를 불러 세운 건 다름 아닌 한 거구의 남자였다.

어느새 경호 넷을 달고 나타난 왕린이 조리를 신은 채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멈춰. 거기까지다.”

왕린은 경호원 말고도 피곤해 보이는 남자를 한 명 더 데리고 왔다.

뚜벅뚜벅 걸어온 왕린이 박도진에게 말했다.

“그놈은 아직 죽여선 안 돼. 몇 가지 물어볼 게 남았거든.”

“저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박도진의 쌀쌀맞은 대답에 왕린이 곤란한 듯 이야기했다.

“뭐, 그렇다면 그럴 수도 있는데… 하나는 알아 둬라. 지금 여기서 이 새끼를 살려 주면, 오늘 네가 벌인 모든 짓을 무마해 주겠지만…….”

그 말에 박도진이 비로소 반응을 보였다.

왕린이 바닥에 있는 권기한을 하찮다는 듯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놈을 죽이면 넌 그대로 살인자로 감옥행이다. 뭐, 그럼 네 딸은 어디 보육원 같은 데 들어가서 이한 같은 놈들한테 입양 갈 수도 있겠지.”

“…….”

대화가 거기까지 이르자 용광로처럼 달궈진 박도진의 머리도 차갑게 식는 듯했다.

박수영.

사랑하는 딸의 이름이 그를 다시 현실로 불러냈다.

그 변화를 깨달은 왕린이 냉큼 말을 뱉었다.

“할 일을 마치면 놈은 반드시 죽이겠다. 원한다면 네 손에 맡기지.”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박도진의 앞으로 손을 뻗었다.

다행히 박도진은 군말 없이 뒤로 물러섰다.

‘다행이군.’

행여라도 박도진이 달려들까 걱정한 왕린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삼켰다.

그는 환술사이지, 이런 괴물을 상대할 전투원은 아니었으니까.

‘요즘따라 괴물 같은 놈들이 자꾸 보이는 것 같지? 기분 탓인가?’

이내 권기한의 신병을 확보한 왕린이 경비들에게 턱짓했다.

“데려가.”

“알겠습니다.”

“놔, 이 새끼들아! 너희 누구야?!”

경비들이 붙들자 권기한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왕린은 그를 고깝게 바라보며 옆에 있던 피곤해 보이는 남자를 박도진에게 소개했다.

“이쪽은 헌터 경찰이야. 이쪽이 알아서 잘 해결해 줄 테니까 걱정 말고. 이래 봬도 윗줄이 꽤 고귀하신 분이야.”

“아, 형님. 그런 말 하면 안 된다니까.”

“아아, 미안.”

남자의 타박에 왕린은 머쓱한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남자의 정체를 깨달은 권기한이 외쳤다.

“헌터 경찰?! 오늘 이거 하나도 놓치지 말고 다 보고해! 내가 반드시 보답하겠다! 이 자식들의 두 배, 아니, 열 배를 보장하지!”

“이 양반, 아직도 상황을 잘 모르네. 당신 망했어, 이 양반아.”

“뭐?”

남자가 심드렁하게 이야기했다.

“이미 당신 인생 쫑났다고. 증거도 다 받았고, 증인도 수두룩해. 이한은 이미 끝난 지 오래라고.”

“경찰 따위가 감히…! 그럼 저놈은 왜 안 잡아가는 거냐! 저 새끼는 살인자다!”

권기한이 박도진을 가리키며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으나, 남자는 들은 척도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왕린이 웃으며 말했다.

“너만 로비한 줄 알아? 우리도 할 줄 안다, 인마.”

왕린은 우습다는 듯 권기한의 머리에 딱밤을 한 대 때렸다.

“반드시 복수할 테다! 네놈들 얼굴 다 기억해 두었어! 전부 다 가만두지 않을 테… 읍읍!”

“그건 마음대로 하시고.”

“잠깐.”

그런데 그때였다.

권기한의 입에 막 재갈이 물려지던 찰나, 갑자기 박도진이 그를 불러 세웠다.

그러고는 대뜸 메고 있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더니, 조심스럽게 거기에서 머리를 빼냈다.

여전히 형태를 갖춘 넥타이는 교수형 때의 올가미처럼 보였다.

모두가 의아하게 바라보는 사이, 박도진은 그것을 권기한의 목에 걸었다.

권기한은 힘껏 몸부림쳤으나, 한계가 있었다.

이윽고 넥타이가 완전히 목에 걸리자 박도진이 그 끝을 붙잡아 당겼다.

마치 개의 목줄을 잡은 듯한 모양새였다.

“……!”

박도진은 한동안 그렇게 권기한의 두 눈을 마주했다.

많은 감정이 담긴 눈이었다.

이윽고 그가 손을 놓는 것과 동시에 경비들이 권기한을 강제로 차에 태웠다.

헌터 경찰이 현장을 둘러보는 사이, 왕린이 박도진에게 쪽지 하나를 건냈다.

“잠시 어디든 숨어 있어. 지낼 곳 없으면 거기 있고.”

“…….”

왕린이 건넨 쪽지를 살핀 박도진이 물었다.

“당신들은 왜 절 돕는 겁니까? 최한석 씨와의 거래도 다 당신들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

“거래?”

그러자 왕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그놈과 무슨 거래를 했는지는 모르겠고, 걔 이름은 최한석이 아니야.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든가. 야, 경찰! 우리 먼저 간다!”

“아, 또 그러시네! 가십쇼, 형님!”

이윽고 왕린은 처음 왔을 때처럼 차를 타고 간단히 사라져 버렸다.

“어이! 혹시 이거, 당신 혼자 다 한 거요?!”

반파된 집무실을 살핀 헌터 경찰이 소리쳤지만, 박도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호흡을 한 차례 깊게 내쉬고 뱉을 뿐.

그때마다 가슴속 어딘가를 타고 아버지 박광석이 드나드는 것만 같았다.

“…….”

박광석도, 권기한도 사라졌으니, 이제 자신이 가야 할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불과 하룻밤이었을 뿐인데.

오늘 저녁은 마치 수십 년이 흐른 듯 길었다.

이내 박도진은 몸을 돌려 걸었다.

그리운 딸이 있는 곳으로.

검은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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