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헌터-13화 (14/186)

[13화] 유아라 (1)

각성자들이 모두 돌아간 뒤.

보스 방에 남은 사람은 일곱 명이었다.

권기훈, 권기석, 오상훈, 김재명, 유아라, 그리고 스컬 길드원 둘.

“그럼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세요.”

권기훈은 유아라를 뒤로한 채 길드원들을 이끌었다.

보스 방 뒤쪽으로 제법 공간이 남아 있던 것이다.

처리반이 올 때까지 그쪽을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혹시 대단한 물건이 나올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때, 권기석이 형 권기훈을 불렀다.

“나는 여기 남을게. 아까 벽에 부딪쳤을 때 어깨를 좀 다친 것 같아. 레이디 혼자 두고 가는 것도 좀 예의가 아닌 듯하고. 저놈이 갑자기 다시 일어설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저 자식이…….’

어느 정도 예상한 반응에 권기훈은 속으로 혀를 찼다.

어째 건방진 용병 놈도 그렇고, 동생도 그렇고…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다.

권기석의 의중은 보나마나 빤했다.

저 여자 헌터와 단둘이 있고 싶단 이야기이겠지.

어릴 때부터 빼어난 외모로 인기가 좋던 동생은 그 때문인지 여성 편력이 심했다.

‘이제는 레이드 도중에도 지랄이냐?’

속에서 열불이 치솟았지만, 이젠 더 말하기도 귀찮았다.

‘진짜 기한이 형만 아니었으면…….’

권기한은 권씨 삼 형제의 맏형이었다.

국내 랭킹 6위 이한 길드의 길드 마스터이자, 국내에 몇 없다는 3차 각성자.

스컬 길드는 밥값 못하는 두 동생을 위해 권기한이 만든 2군 길드였다.

길드 랭킹 1위를 노리는 권기한에게 막내의 치부는 치명적인 약점이기에, 2군 길드를 만들어 권기훈에게 막내 권기석을 맡긴 것이다.

권기훈으로서는 보모 역할의 대가로 길드장 자리를 받은 셈.

덕분에 권기훈은 근 3년 동안 권기석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해결했다.

그는 유아라를 안타깝게 쳐다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이번엔 얼마나 가려는지.’

결국 권기훈은 못 이긴 척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몰라 길드원 둘은 남겨 뒀다.

최소한 이곳에서만이라도 허튼짓하지 말라는 의미이지만, 모두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권기석은 기다렸다는 듯 유아라에게 말을 걸었다.

“스물셋이라고 했나요?”

그러자 유아라가 수줍은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네.”

“꽃다운 나이네요.”

붉어지는 그녀의 얼굴에 권기석은 참기 힘든 듯 숨을 한 차례 들이켰다.

당장 이곳에서라도 거사를 치르고 싶지만, 상대는 자신과 같은 2차 각성자.

괜한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천천히… 천천히 정복한다.’

그는 끓어오르는 욕구를 애써 억누르며 애꿎은 유아라의 단발머리만 만지작거렸다.

“머릿결이 좋네요. 어디 숍 다녀요?”

하지만 유아라는 대답 대신 권기석의 손을 감싸 쥐었다.

예상 밖의 반응에 권기석이 멈칫하는 사이, 그녀가 말했다.

“잠시 나갈래요?”

유아라가 가리킨 건 공동 밖이었다.

그런데도 권기석이 머뭇대자, 그녀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을 끌어내 뒤로 던졌다.

허공에서 제비를 돌던 단검은 정확히 미노타우로스의 몸에 떨어져 꽂혔다.

갑작스럽게 일격을 당한 놈이 꿈틀댔지만, 두꺼운 가죽을 가진 만큼 숨통이 끊어지진 않았다.

권기석을 바라보는 유아라의 눈이 더할 나위 없이 요염했다.

“더 좋은 칼이 있을 것 같은데요.”

“……하!”

그제야 권기석도 웃음을 터뜨렸다.

붉은 기가 도는 눈동자도, 앙증맞은 입술도, 은은하게 퍼지는 이 맑은 향기도…….

유아라의 모든 것이 자신을 향한 유혹처럼 느껴졌다.

‘용병들이 이제 막 출발했으니, 처리반이 오려면 최소 30분은 걸릴 거야.’

결국 참지 못한 권기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끈하니 좋네. 그런데 나갈 필요까지 있을까? 거기, 너희 둘! 입구로 가서 처리반을 돕도록 해. 여기서 들은 거랑 본 건 전부 입 다물고.”

“하, 하지만…….”

두 길드원은 머뭇댔으나, 구겨진 권기석의 표정에 결국 몸을 일으켰다.

길드장 권기훈도 무섭지만, 권기석 쪽이 훨씬 더 지랄 같았기 때문이다.

“빨리!”

길드장보다 더한 동생의 성화에 그들은 공동 밖으로 허겁지겁 뛰어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권기석이 느끼하게 웃으며 말했다.

“됐지?”

유아라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신호로 두 남녀의 뜨거운 시간이 시작됐다.

그녀가 먼저 권기석의 머리를 끌어안고, 권기석은 상대의 상의 단추를 푸는 데 여념이 없었다.

“하아, 하아…….”

곧 형이 올지도 모른다는 점이 권기석의 욕정을 더욱 자극했다.

그러자 유아라가 그의 뺨을 양손으로 붙잡아 끌어 올렸다.

“키스 먼저.”

‘이년, 장난 아닌데!’

이토록 화끈한 상대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권기석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유아라의 입술에 입을 가져다 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

권기석은 언뜻 옆구리에서 따끔함을 느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차릴 새도 없이 이번에는 혀에서 극심한 고통이 이어졌다.

권기석이 황급히 입술을 떼자, 유아라가 무언가를 퉤, 바닥에 뱉었다.

‘어어어?!’

그건 자신의 혀였다.

바닥에 떨어진 혀가 불판 위 곰장어처럼 경련하고 있었다.

멍하니 2~3초가 흘렀다.

“끄, 끄아아아!”

잘려 나간 혀와 옆구리에서 묻어 나온 피.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권기석이 비명을 질렀다.

혀가 잘렸지만, 비명만은 확실히 튀어나왔다.

그사이, 유아라는 품고 있던 또 다른 단검을 꺼내 들었다.

푹, 푹, 푹.

기계적인 움직임이었다.

어깨와 가슴, 허벅지를 차례대로 찌른 유아라는 마지막으로 권기석의 눈에 단검을 휘둘렀다.

“컥!”

권기석은 바닥에 주저앉아 고통스럽게 흐느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인지능력이 떨어졌다.

혀가 잘린 것도, 장님이 된 것도… 모든 것이 와닿지 않았다.

“미친 연놈들.”

“이걸 다른 사람들이 알아야 할 텐데.”

토굴을 걸어가던 두 길드원이 비명을 들었지만, ‘여기서 들은 거랑 본 건 전부 입 다물라’던 권기석의 명을 철저히 이행했다.

그들은 들려오는 비명이 역겹다는 듯 두 귀를 틀어막았다.

“…….”

권기석을 처리한 유아라는 시선을 돌려 미노타우로스에게 꽂힌 <소생의 단검>을 바라봤다.

한때, 마물에게 잡아먹힌 인간의 영혼은 영원히 구천을 떠돌게 된다는 속설이 돌았다.

이제는 아무도 믿지 않는 괴담이지만, 유아라는 그 말이 진실이길 바랐다.

그래야 놈들이 평생을 고통 속에 살 테니까.

“무슨 일이야?!”

“기, 기석아!”

그때, 권기훈 무리가 비명을 듣고 돌아왔다.

오상훈과 김재명이 다급히 권기석을 불렀지만, 그는 이미 기절한 듯 미동조차 없었다.

권기훈도 동생의 처참한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무표정한 유아라의 얼굴과 단검에서 흘러내리는 피, 그리고 쓰러져 있는 권기석.

상황은 명확했다.

‘저 여자가 기석이를 공격했다.’

권기훈은 즉각 유아라를 향해 권총을 겨눴다.

“너 뭐야? 처음부터 이러려고 들어왔어?”

대충 원한 관계일 거란 추측은 들었지만, 상대를 특정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시발, 저 자식한테 당한 여자가 한둘이어야지…….’

권기훈이 골머리를 앓는 사이, 유아라가 입을 열었다.

“유아람.”

“유아람?”

하지만 권기훈은 그 이름을 떠올리지 못했다.

‘사고 친 여자들은 다 처리했는데… 유아람은 또 누구야?’

합의를 거친 목록에도, 처리한 여자 중에도 그런 이름은 없었다.

그때, 옆에 있던 김재명이 기억났다는 듯 소리쳤다.

“유아람?! 저번에 자살한 그년 말이야?!”

“자살?”

권기석이 무슨 소리냐는 듯 묻자, 김재명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오상훈도 슬슬 눈치를 살피는 걸 보니,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무척이나 안 좋은 쪽으로.

또래인 셋은 나이가 달라도 친구 사이였다.

하지만 셋이 같이 사고를 친 적은 없는데…….

‘이 두 새끼가 날 속였군.’

평소 권기훈은 오상훈과 김재명에게 동생의 감시를 맡겼다.

그런데 인제 보니 두 놈도 권기석과 함께 놀아난 모양이었다.

유아라가 말했다.

“그래. 네놈들이 죽인 우리 언니 이름이지. 오상훈, 김재명. 이번엔 너희 차례야.”

“이년이 보자 보자 하니까…….”

결국 참지 못한 오상훈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기에 누가 헤프게 굴래? 이미 기석이가 다 보상해 줬는데, 왜 인제 와서 딴소리야?”

“보상?”

그러자 유아라가 품속에서 종이 몇 장을 꺼내 허공에 던졌다.

그건 수표였다.

천만 원짜리 수표 여덟 장.

바닥에 떨어진 수표들이 피로 물드는 가운데, 유아라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 너희를 위해 매달 천만 원씩 가져다 놓을 거야. 각자 팔천만 원씩. 그러니까 너희도 만족하길 바라.”

“이 미친년이!”

탕!

끝내 울분을 견디지 못한 유아라의 주먹이 파르르 떨리는 가운데, 오상훈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보다 먼저 권기훈이 총을 쐈지만, 유아라는 그가 동작을 취하기도 전에 몸을 틀어 총알을 피했다.

‘무슨!’

경악한 권기훈이 다시 총을 겨누는 사이, 한 자루 검이 유아라의 가슴을 찔러 들어갔다.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른 쾌검.

감색 마력이 금방이라도 유아라를 가를 듯 흉흉하게 내비치고, 그 뒤를 이어 권기훈의 총알이 또다시 날아들었다.

콰과과광!

비상시를 위해 아껴 둔 특제 탄환이었다.

탄환이 유아라에게 닿자, 작은 폭발과 함께 주변으로 뿌연 먼지가 일었다.

‘됐다!’

하지만 권기훈이 쾌재를 부르는 순간, 연기 속에서 유아라가 불쑥 튀어나왔다.

“아?!”

폭발에 당한 그녀의 몸은 상처투성이지만, 섬뜩한 눈빛만은 그대로였다.

어느새 거리를 좁힌 그녀가 움찔한 오상훈의 턱을 손바닥으로 밀어 쳤다.

“큭!”

강력한 충격과 함께 오상훈이 비틀대고, 권기훈은 황급히 유아라를 겨냥했다.

하지만 어느새 날아든 수리검 두 개가 그의 손등을 찔렀다.

“악!”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권기훈은 허둥지둥 떨어뜨린 권총을 주웠다.

‘암살자다! 그것도 꽤 숙련된! 저년, 실력을 숨기고 있었어!’

미노타우로스를 잡을 때 보인 허술함은 연기였던 모양이다.

통증 탓인지 두 팔이 벌벌 떨렸다.

하지만 불행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 기훈이 형!”

푹! 푹! 푹!

오상훈의 목을 뒤에서 끌어안은 유아라가 흉부를 단검으로 인정사정없이 찌르는 사이, 마법을 준비하던 김재명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권기훈을 불렀다.

“왜 불러, 이 새끼야! 바빠 죽겠… 아!”

그그그…….

벌떡 일어나려던 권기훈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거인을 보고 멈칫했다.

미노타우로스가 되살아난 것이다.

‘어, 어떻게?!’

마구잡이로 헤집어진 내장이 아래로 덜렁이고, 그 끝에선 피가 뚝뚝 떨어졌다.

놈의 손에는 여전히 할버드가 들려 있는데, 말을 하지 않아도 놈의 목소리가 귀에 울리는 듯했다.

내 배 속을 헤집은 이가 누구냐고.

온통 백색으로 물든 놈의 동공은 공포, 그 자체였다.

“아아…….”

서걱!

권기훈이 뭐라 외치기도 전에 할버드가 거침없이 김재명의 몸을 갈랐다.

뼈째로 두 동강 난 김재명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얼굴이 하얗게 질린 권기훈은 몸을 떨었다.

‘시, 시발! 시발! 시발!’

우걱우걱.

언데드는 항상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린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되살아난 미노타우로스는 김재명에게 다가가 그 목을 움켜쥐더니, 이내 조금씩 뜯어먹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텅 빈 배 속을 타고 김재명의 살점이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우웩!”

결국 역겨움을 참지 못한 권기훈은 속을 게워냈다.

그사이, 오상훈의 숨통을 끊은 유아라는 가만히 서서 미노타우로스의 게걸스러운 식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미, 미친년이야! 미친년!’

권기훈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이동석>을 꺼내 들었다.

남미의 한 <균열>에서 발견됐다는 이 백색 수정은 사용자를 <균열> 밖으로 이동시켜 주는 신비의 아이템이었다.

그 크기에 따라 효과가 다르다지만, 호두만 한 것만 해도 수억에 달하는 고가 아이템.

본래는 과시용으로 산 물건이지만, 이게 자신의 목숨을 살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권기훈이 막 <이동석>을 내려치려던 그때였다.

‘아…….’

권기훈은 어느새 자신의 얼굴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를 깨달았다.

그리고 <이동석>을 깨뜨릴 새도 없이 손목이 잘려 나갔다.

스각!

“끄아악!”

손과 함께 떨어진 백색 수정이 바닥을 구르고, 권기훈의 신음이 공동을 채웠다.

“이, 이, 미친년아! 이 사이코패스!”

권기훈은 죽음에서 달아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바닥을 기었다.

하지만 겨우 그런 속도로 유아라에게서 벗어날 순 없었다.

그녀는 기어가는 권기훈의 뒤를 조용히 따랐고, 그게 더한 공포심을 불러왔다.

결국 겁에 질린 권기훈이 소리쳤다.

“제발… 제발 살려 줘! 우리가 잘못했다! 내, 내가 잘못했다고!”

하지만 권기훈이 아무리 울부짖어도 유아라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

그녀가 입술을 뗐다.

“그런 건 저승에서 네가 죽인 여자들한테 해.”

“제, 제발…….”

그것이 권기훈의 마지막이었다.

‘아아…….’

유아라는 한 치 망설임도 없이 권기훈의 목을 단검으로 그었고, 그는 피를 쏟으며 그대로 절명했다.

“…….”

세 남자의 피를 뒤집어쓴 유아라는 한동안 축 늘어진 권기훈을 바라보았다.

우걱우걱.

김재명을 전부 삼킨 미노타우로스는 이번엔 오상훈의 몸을 탐닉하고 있었다.

곧 권기훈도 그 뒤를 따라가겠지.

유아라는 이내 권기석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직 자신의 복수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이거, 설명이 좀 필요하겠는데.”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권기석의 뒤로 누군가가 서 있었다.

검은 정장에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

강우였다.

검은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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