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헌터-12화 (13/186)

[12화] 첫 의뢰 (3)

오상훈이었다.

어느새 야수병들을 처리한 그가 검을 허공에 휘저으며 다가왔다.

당황한 권기훈이 물었다.

“벌써?”

“어. 1차 각성자 중에 쓸 만한 놈이 있던데?”

“이름이 뭔데?”

“검은 모자 쓴 놈인데, 여기가 바빠 보여서 이름은 못 물어봤어.”

권기훈이 슬쩍 돌아보니, 검은 모자를 쓴 건 용병으로 참가한 1차 각성자였다.

이름이 강우석이었던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호재에 권기훈의 얼굴에 안도감이 번졌다.

그때, 미노타우로스를 주시하던 김재명이 불길한 어조로 말했다.

“그보다… 저거, 곧 오겠는데.”

그의 말대로 놈은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상체를 기울이고 있었다.

판단을 마친 권기훈이 말했다.

“그럼 기석이랑 상훈이가 놈의 시선을 끌어. 그사이 우리가 해치울 테니. 알지? 다섯이서 저거 하나 못 처리하면 뉴스감이야. 유아라 씨도 전력을 다해 주세요.”

“예.”

“그럼 간다!”

* * *

스컬 길드원들과 미노타우로스 대결은 그 뒤로도 10여 분간 이어졌다.

강우는 다른 1차 각성자들과 함께 입구를 지키면서 그 전투를 지켜봤다.

특별한 감상은 없었다.

과연 2차 각성자다운 싸움이라는 생각뿐.

‘결국 의뢰인은 찾지 못했군.’

검계는 호위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용병에게 의뢰인을 알려 주지 않았다.

의뢰인과 용병이 결탁할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까부터 함께 들어온 이들 중 의뢰인이 있나 살펴봤지만, 딱히 수상한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의뢰인은 안에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빨리 끝났으면 좋겠군.’

이번 의뢰가 끝나면 한동안 검계와 엮일 일은 없을 터였다.

의뢰야 당분간은 거절하면 그만.

황한수가 석철과 호공의 소식을 물어 오는 동안 자신은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미궁에서 마석도 빼내야 하고, 백귀들도 처리해야 해.’

두 개 다 머지않아 다가올 <균열>이었다.

앞으로의 미래를 바꾸는 데도 큰 영향력을 미칠 사건들.

쿵―!

그때, 보스 쪽에서 묵직한 충격음이 들렸다.

드디어 미노타우로스를 처리했는지, 바닥에 쓰러진 놈을 둘러싸고 환호하는 스컬 길드원들이 보였다.

“고생시킨 만큼 보람이 있길 바란다, 이 소 새끼야.”

모두가 환희에 차 바라보는 가운데, 검을 든 오상훈이 미노타우로스의 배를 갈랐다.

혹 그 안에 있을 <마석>을 찾기 위함이었다.

마석은 마력을 품고 있는 청색 보석.

일생을 <균열> 안에서 보내는 마물들의 산물이었다.

오상훈이 맨손으로 미노타우로스의 배 속을 헤집는 동안, 김재명이 불안한 듯 말했다.

“조심해. 그러다 죽이지 말고.”

“알겠어. 내가 뭐 한두 번 하나? 배 가르는 게 내 일이야.”

보스가 죽으면 <균열>에 남아 있을 시간이 두 시간으로 제약된다.

그러니 모든 전리품을 챙기기 전까지 보스는 살아 있어야 했다.

“오, 있다!”

이윽고 한동안 오만상을 짓던 오상훈이 장기 속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주먹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마석이었다.

그가 피투성이가 된 손을 바닥에 문지르며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생각보다는 작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권기훈은 기분 좋게 웃으며 그것을 건네받았다.

배가 파헤쳐졌음에도 불구하고 미노타우로스는 여전히 숨이 붙어 있었다.

거칠게 숨을 헐떡이는 놈.

치명적인 손상 없이 장기를 헤집은 오상훈의 노련함도 뛰어났지만, 야수병의 어마어마한 생명력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비로소 권기훈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스컬 길드원들은 기진맥진해 있지만, 기분만은 좋아 보였다.

“동굴이 그리 깊지 않은 만큼 뒷수습은 모두 우리 스컬 쪽에서 담당하겠습니다. 용병으로 오신 분들은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보수는 이미 지급됐을 테니 확인해 보시고… 강우석 헌터님?”

강우가 갑자기 자신을 호명하는 권기훈을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강우석 님은 괜찮으시면 시간 좀 내주시죠. 잠시면 됩니다.”

굳이 모두가 모여 있을 때 강우를 부른 건, 권기훈도 다 계산이 있어서였다.

역시나 다른 1차 각성자들이 강우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일종의 특권의식이랄까.

이런 식으로 이름이 불리면 괜히 어깨가 으쓱한 법이다.

‘그만큼 마음도 풀어지고 거절하긴 어려워지지.’

하지만 권기훈의 예상은 철저히 빗나갔다.

강우가 그런 시선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칼에 그의 제안을 뿌리친 것이다.

처음부터 주변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무심한 얼굴이었다.

“혹시 길드 가입 때문이라면, 저는 이미 예정된 곳이 있습니다.”

다소 퉁명스럽기까지 한 말투에 권기훈의 미간이 꿈틀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 구슬리려던 마음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이게 주제도 모르고…….’

강우를 추천한 오상훈도 당황한 듯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감히 1차 각성자 새끼가!’

이미 속으로는 강우의 목을 몇 번이고 꺾어 버린 권기훈이지만, 자신은 명색이 한 길드의 수장.

나중에 손보는 수가 있더라도 지금은 최대한 좋은 이미지를 유지해야 했다.

그는 속으로 이를 갈면서도 겉으로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러셨군요. 안타깝네요. 우석 님이면 좋은 대우를 약속드렸을 텐데……. 그래도 혹시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우리 스컬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술 한잔하자는 사적인 연락은 더 좋고요.”

“알겠습니다.”

그것으로 대화는 끝이었다.

권기훈은 망가진 기분을 가까스로 숨기며 말했다.

“그럼 레이드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대개 포터들에게 뒤처리를 전부 떠넘기는 소형 길드와는 다르게, 스컬 길드는 대형 길드나 운영할 법한 담당 처리반이 있었다.

지방에 자리한 소규모 길드치고는 돈이 꽤 많은 모양이었다.

‘어디서 지원이라도 받는 모양이군.’

하지만 크게 흥미를 끄는 일은 아니었다.

이내 관심을 거둔 강우는 마지막 남은 미션을 위해 다른 용병들과 함께 입구로 향했다.

그런데 유일하게 보스 방에 남은 용병이 있었다.

“저는 여기에 남을게요.”

유아라였다.

벌써부터 권기석 옆에 붙어 있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마음이 통한 듯했다.

어쩌면 스컬 길드에 입단할 생각인지도 모르고.

강우와 용병들은 그녀를 뒤로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 * *

입구로 돌아가는 길.

“강우석 씨라고 했죠? 각성하신 지 얼마나 됐어요? 2차 각성은 기미가 좀 보이나요?”

“혹시 예정된 길드가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괜찮으면 저도 좀… 헤헤.”

같은 짐꾼으로 온 1차 각성자들이 실력을 칭찬하며 말을 걸어왔지만, 강우가 별 반응이 없자 곧 민망한 듯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묵묵히 입구를 향해 걸었다.

한 20분쯤 걷자 안으로 들어온 처리반 사람들이 보였다.

능수능란하게 마물들을 수레에 담는 걸 보아하니, 이런 일을 한두 번 한 게 아닌 듯했다.

뒤처리를 전문으로 하는 용병들인가?

“입구다!”

그렇게 5분쯤 더 걷자 입구가 보였다.

각성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는 사이, 강우는 주머니에서 <발화 종이>를 꺼냈다.

의뢰가 적혀 있던 것 안에 들어 있던 또 다른 종이였다.

폭파 직전 열어 보라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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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기한, 권기훈, 권기석은 서로 형제.

* 스컬 길드는 이한 길드에게서 모종의 지원을 받고 있음.

* 폭파 이후, 던전 안 결과를 확인하고 보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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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쪽지는 예상 밖이다 못 해 다소 뜬금없는 내용이었다.

‘권기한?’

권기한은 헌터들을 잘 알지 못하는 강우로서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그건 국내 랭킹 6위 길드장의 이름이었으니까.

평소 권기한은 좋은 매너와 깔끔한 인상으로 인기가 좋았다.

원조 석탈해라고 해야 할까.

TV에도 워낙 많이 나와서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인사였다.

그런 권기한과 스컬 길드장이 형제라고?

그 대단한 길드를 두고 왜 권기훈은 다른 길드를 운영하는 거지?

새로운 의문이 들었다.

‘2군이라고 해도 굳이 다른 길드를 만들 필요는 없었을 텐데.’

게다가 지금 한국의 길드들은 서로 1등 자리를 놓고 치열한 패권 싸움을 벌이는 중이었다.

<균열> 이후 길드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정부는 필연적으로 그들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균열>에 그 어떤 힘도 미치지 못하는 정부에게 길드들이 고개를 숙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레이드 성적이 좋은 길드에게 무과세 혜택이나 수출 길을 열어 주는 등 각종 지원을 몰아주고 있었다.

길드끼리 경쟁을 붙임으로써 그 칼날이 정부로 향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다행히 길드들은 정부의 의도대로 한 치 양보도 없는, 불같은 싸움을 벌였다.

그런데 랭킹 6위인 이한 길드가 다른 길드를 만들어 전력을 분산시킨다?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혹 같은 건가? 아니면 뒤처리를 맡기는 수습반이거나.’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권기한은 동생들의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하는 듯했다.

‘이런 게 검계의 의뢰로군.’

강우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상황에 뜬금없이 세 형제의 비밀을 알려 줬다는 건, 그게 이번 의뢰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정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쪽지 마지막에 적힌 내용을 다시 읽었다.

『폭파 이후, 던전 안 결과를 확인하고 보고할 것.』

그 말은 자신더러 밖으로 나가지 말고 다시 들어가 보라는 뜻이었다.

‘황 노인…….’

단원까지 속이며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는 집단.

검계의 정체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고고고고―

동굴 안쪽에서 강렬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1차 각성자들도 여실히 느낄 만큼 강한 기운이었다.

“마력?! 마력이 왜 갑자기!”

“이, 일단 밖으로 나가!”

그제야 위험을 감지한 처리반 사람들이 <균열>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의뢰는 수뇌부를 가두라고 했지, 저들까지 가두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러니 굳이 그들까지 위험에 몰아넣을 필요는 없겠지.

이윽고 강우는 뚜껑을 연 상자를 슬며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사람들이 입구에 다다르기를 기다렸다가 그것을 발로 밀어 찼다.

콰과과광!

이내 큰 폭발과 함께 동굴의 중간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황 노인의 예견한 대로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폭발이다!”

“뭐, 뭐야!”

토굴 안에 갇힌 몇몇이 비명을 질렀지만, 막힌 입구를 뚫을 사람도 필요했다.

아마 30~40분쯤 고생하면 뚫어 낼 수 있을 터.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했다.

“이, 입구가 막혔다!”

“처리반 전부 입구로 돌아라고 해!”

“서둘러! 균열이 닫힐지도 모른다!”

당황한 처리반 사람들이 다급히 입구에 쌓인 돌을 치우는 사이, 강우는 몸을 돌려 보스 방으로 향했다.

저 멀리서 아까 유아라의 검에서 느낀 불길한 기운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의뢰인은 그 여자였군.’

강우의 신형이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아직 그의 첫 <균열>은 끝나지 않았다.

검은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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