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첫 의뢰 (2)
“오셨습니까?”
<균열>에 들어서자 먼저 들어와 대기하던 스컬 길드원 둘이 그들을 맞이했다.
입구는 이미 그들이 밝혀 놓은 횃불로 환했는데, 앞서 들은 대로 내부는 동굴이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토굴을 보고 있자니, 서늘한 바람과 함께 누린내가 풍겨 오는 것도 같았다.
각성자들을 불러 모은 권기훈이 말했다.
“김재명과 총을 든 1차 각성자들이 선두를 맡고, 오상훈은 김재명을 보호한다. 권기석과 나, 그리고 유아라 씨가 2열, 나머지 2차 각성자분들은 포터를 제외하고는 상황을 봐서 참전해 주십시오. 보스를 만나기 전까지 다들 힘을 아끼는 게 중요합니다.”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아 진형은 금방 꾸려졌다.
‘하이 포터’인 강우의 자리는 후방에서도 가장 끄트머리.
<균열> 레이드는 대개 포지션을 정하고 이뤄지는데, 포지션은 크게 네 가지였다.
지휘관(커맨더).
정찰병(레인저).
짐꾼(포터 / 하이 포터).
전투원(어태커).
그중에서도 하이 포터는 중요한 보급을 맡거나 위기 시 일반 짐꾼들을 지키거나 전투에 직접 참가하는 상위 역할이었다.
짐꾼과 전투원을 반반 섞은 역할이랄까.
하지만 이번 <균열>의 형태나 작은 규모를 고려하면, 갈림길이라도 나오지 않는 한 크게 할 일은 없어 보였다.
“가죠.”
스물두 명의 각성자 사이에 비장함이 맴도는 가운데, 권기훈이 대열을 움직였다.
길을 밝히는 건 횃불을 든 1차 각성자 둘.
그 흔한 광원 아이템을 쓰지 않고 굳이 원시적인 횃불을 쓰는 이유는, 야수병들이 불에 취약하기 때문이었다.
놈들은 본능적으로 불을 무서워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정찰 로봇에 달린 카메라를 살피던 정찰병이 적의 출현을 보고했다.
“전방 25미터, 놀 두 마리입니다.”
“김재명, 준비해.”
“라져.”
권기훈의 속삭임에 마법계 각성자인 김재명이 장난스럽게 대답하며 마법을 준비했다.
마법계 각성자가 귀한 이유는 2차 각성자도 마력을 방출할 수 있다는 데 있다.
3차 각성부터 일명 ‘스킬’을 구현할 수 있는 전투계와는 다르게, 마법계 각성자는 주문을 외는 것으로 마력을 강제로 끄집어낼 수 있었다.
단, 강제로 마력을 뽑아내는 만큼 마법계 각성자들은 체력 소모가 심했다.
암암리에 수명마저 짧아진다는 소문도 있고.
하지만 그만큼 마법계 각성자는 귀하고 강했다.
“나왔습니다!”
전방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싶던 찰나, 어둠 속에서 하급 마물 두 마리가 등장했다.
하이에나의 상반신을 가진 반인반수 마물이었다.
일명 ‘놀’.
철퇴를 든 놀 두 마리가 이빨을 드러내며 각성자들을 노려봤다.
그와 동시에 놈들의 입에서 흡사 개나 늑대가 낼 법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처리해라!”
크르릉!
원정대를 발견한 놈들이 위협적으로 달려들었지만, 무기가 좋지 못했다.
마법을 준비하던 김재명의 손에서 순식간에 불길이 일며 토굴 속 산소를 시꺼멓게 태웠다.
두 놀이 움찔하는 사이, 김재명이 신난 듯 외쳤다.
“크크, 맛 좀 봐라!”
김재명이 냅다 팔을 휘두르자, 불길은 곧 화염 덩어리가 되어 날아갔다.
그러자 놀 두 마리는 도깨비불이라도 본 양 혼비백산하며 물러섰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탕! 탕! 탕!
발사된 특수 총기가 놈들의 머리며, 가슴이며, 온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권기석! 유아라 씨!”
이어서 권기훈이 크게 소리치자, 각각 창과 단검을 쥔 두 남녀가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그러더니 휘청대는 놈들의 심장에 각자의 무기를 찔러 넣었다.
결국 놈들은 공격다운 공격도 해 보지 못한 채 무력하게 쓰러졌다.
“크크큭, 별거 아닌데 그래!”
“마석 나왔나 확인해 봐!”
성공적인 첫 사냥에 스컬 길드원과 용병들이 환호했지만, 강우는 그들 모르게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답답하군.’
현대인이 중세인의 일 처리를 보는 기분이랄까.
액셀을 쓰던 사람이 수기 작성 일지를 마주한 것처럼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었다.
강우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3차 각성자가 수두룩했다.
그래서 각종 스킬을 퍼부으며 보스 방까지 직진한 뒤, 속전속결로 보스를 처리하는 방식이 보편화된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3차 각성자가 희귀하고, 4차 각성자가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시대.
전생처럼 시원한 전투가 벌어지려면 앞으로 최소 2년은 더 지나야 할 터였다.
‘그때까진 이 짓을 계속 봐야 하는군.’
강우는 답답함에 침음을 삼켰지만, 그의 임무는 <균열> 파괴가 아닌 던전 입구 폭파.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게 그의 일이었다.
결국 그는 근질대는 몸을 억누르며 냄새나는 토굴을 걸어갔다.
“계속 가죠.”
그 뒤로도 레이드는 수월했다.
간혹 쇠뇌를 든 마물이 등장해 각성자들을 위협했지만, 그때마다 권기석과 유아라가 빠르게 접근해 놈들을 해치웠다.
둘 다 2차 각성자답게 마력을 잘 다뤘는데, 특히 유아라의 실력이 눈에 띄었다.
‘전문 암살자 같지는 않은데… 재능이 좋은 건가?’
동작이 어설프긴 해도 판단이 좋고, 무엇보다 전투 센스가 남달랐다.
누군가 옆에서 잘 지도해 준다면, 뛰어난 암살자가 될 법싶었다.
‘그나저나 특이한 단검이로군.’
전투를 마친 유아라와 권기석이 서로를 흘끔흘끔 쳐다보는 가운데, 강우는 그녀의 단검에 주목했다.
죽음의 기운이랄까.
생김새는 투박하지만 검신에 검은빛이 도는 게, 불길하고 스산한 기분이 드는 단검이었다.
하지만 대개 각성자들의 무기엔 특별한 마법이 걸려 있기 마련.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당장 자신만 하더라도 <피바라기>를 들고 있지 않은가.
강우의 관심은 그저 주목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보스 방입니다.”
이윽고 정찰병이 보스의 존재를 알렸다.
보스 방은 지금껏 그들이 걸어온 토굴과는 확연히 달랐다.
바위와 돌을 박아 넣은 벽은 마치 놈들에게도 미적 감각이 있다는 듯 일정한 무늬를 띠었고, 바닥에도 판판한 돌이 깔려 있었다.
그 공간 가운데, 양손으로 할버드를 든 반인반수 괴수가 보였다.
흉측하게 구부러진 두 개의 뿔과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만큼 시뻘건 황소 머리.
적색 갈기를 길게 늘어뜨린 놈은 야수병 중에서도 상위에 속한다는 미노타우로스였다.
의 보스치고는 상당한 네임류 마물이다.
‘잘됐군.’
하지만 스컬 길드장 권기훈의 표정은 밝았다.
길드 명성을 올리기 위해 한창 큰 노력을 쏟는 이때, 미노타우로스는 딱 안성맞춤인 마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름 모를 야수병 보스를 잡았습니다!’보다는 ‘미노타우로스를 잡았습니다!’가 확실히 임팩트 있었다.
“김재명과 내가 백업을 맡고, 기석과 유아라 씨가 보스를 맡는다. 오상훈은 야수병을 막아. 필요하다면 각성자 몇과 함께해도 좋다.”
“당연히 함께해야죠. 저 혼자서 어떻게 저걸 다 막으라고.”
오상훈의 엄살 섞인 말에 권기훈이 피식 웃었다.
“알아서 해. 그래도 입구를 막는 인원 몇은 남겨 둬. 달아나는 놈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예.”
오상훈은 하이 포터까지 불러들였는데, 그중에서도 체격이 좋은 셋을 선발했다.
그중에는 강우도 있었다.
체격이 남다른 수준은 아니지만, 느껴지는 기세가 1차 각성자 중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다.
군계일학이라고, 아무리 감춰도 감춰지지 않는 포스라는 게 있었다.
“길드장님 말 들었죠? 여러분은 저를 도와서 야수병을 처리하면 됩니다.”
다행히 이번에 모집한 하이 포터들은 모두 마물과의 전투 경험이 있었다.
대개 보급이나 뒤처리를 맡는 1차 각성자들에게 마물과의 전투는 꽤 쓸 만한 경력이다.
길드에 입단하거나, 훗날 수준 높은 레이드에 지원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지금껏 딱히 할 일 없이 따라온 탓에 몸이 근질근질하던 강우로서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 가자!”
그르르르…….
스컬 길드원들이 공동에 들어서자, 잠들어 있던 미노타우로스가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놈의 붉은 두 눈이 번뜩이고, 늘어뜨리고 있던 할버드가 천장으로 치솟았다.
곧 전투가 시작됐다.
“권기석! 유아라 씨!”
“모두 이쪽으로!”
권기석와 유아라를 선두로 한 보스 팀이 미노타우로스에게 달려가고, 오상훈을 위시한 강우와 다섯 명의 각성자가 일반 야수병을 맡았다.
카아아아!
공동에 있는 야수병은 모두 열네 마리.
오상훈의 검이 야수 하나의 팔을 날려 버리는 사이, 강우는 옆에서 튀어나온 마물을 마주했다.
멧돼지의 상반신을 가진 야수였다.
놈은 건방지게 자신을 막아선 인간의 머리를 쪼개기 위해 있는 힘껏 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게 놈이 태어나 마지막으로 보는 세상이었다.
강우가 도끼를 가볍게 피한 것으로도 모자라 역수로 쥔 <피바라기>로 그 두 눈을 찔러 버렸기 때문이다.
푹! 푹!
꾸에에엑!
삽시간에 두 눈을 잃은 멧돼지가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강우는 연달아 가슴과 복부에 검을 찔러 넣었다.
가죽이 두꺼운 야수병에게 치명상이 될 부위는 아니지만, 모두 강우의 의도대로였다.
너무 쉽게 처리하면 의심을 살 수도 있을 테니까.
피를 본 멧돼지가 사납게 몸부림치는 사이, 강우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이대로 적당히 시간을 끌다 처리하면 자연스러울 듯했다.
“헐, 방금 봤어?”
“두, 두 눈을 단번에!”
하지만 그건 강우의 기준에서고, 다른 1차 각성자들은 아니었다.
입구에서 대기하던 그들은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강우를 쳐다봤다.
같은 1차 각성이라고 해도 그 실전 실력까지 같진 않았다.
‘제법인데?’
두 번째 야수병을 상대하던 오상훈도 그런 강우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망설임 없는 손속도 그렇고, 재빠른 몸놀림도 그렇고… 1차 각성자치고는 보기 드문 인재였다.
‘저런 놈은 태생부터 사냥꾼이야.’
그는 이번 레이드가 끝나면 강우를 권기훈에게 추천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1차 각성자라고 해도 유망주는 대우가 달랐다.
그들이라고 만년 1차 각성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 테니까.
쓸 만한 재목은 먼저 챙기는 게 임자였다.
“권기석, 조심해!”
“알고 있어!”
그사이, 미노타우로스와의 전투도 한창이었다.
권기석이 창으로 놈의 시선을 끄는 동안 검에 마력을 두른 유아라가 열심히 놈의 몸을 찔러 댔다.
하지만 놈은 피 칠갑을 하고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뒤에서 강화 권총을 계속 쏘던 권기훈도 예상치 못한 고전에 애꿎은 입술만 씹는 중이었다.
“비켜 봐!”
그때, 크게 소리친 김재명의 손에서 화염구가 쏘아졌다.
이번에는 두 개였다.
미노타우로스도 불에는 어쩔 도리가 없는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화아악―!
곧 강렬한 화염이 미노타우로스의 몸을 덮치고, 권기석과 유아라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각자의 무기를 뻗었다.
권기석이 찌른 창이 놈의 아랫목을 찌르는 게 보였다.
하지만 생명력이 어찌나 뛰어난지, 미노타우로스는 목을 찔렸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괴력으로 두 남녀를 떨쳐 냈다.
콰득!
놈의 주먹에 얻어맞은 유아라가 바닥을 구르고, 창이 붙잡힌 권기석도 꼴사납게 벽에 처박혔다.
“커헉!”
“궈, 권기석!”
“제기랄!”
벽에서 굴러 떨어진 권기석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닌 듯했다.
미노타우로스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그는 허겁지겁 형 권기훈의 주변으로 달려갔다.
여전히 건재한 놈을 보며 김재명이 외쳤다.
“젠장, 가죽에 화염 내성이라도 붙어 있나 본데!”
“그렇겠지. 나름 보스잖냐.”
하지만 그만큼 가죽은 더 비싸게 팔릴 터였다.
권기훈은 이를 악물었다.
레이드 실패 기사나 쓰라고 비싼 돈 주고 기자들을 섭외한 게 아니었다.
‘반드시 잡아야 한다. 스컬 길드가 성공하기 위해선… 무조건!’
그사이, 한껏 열이 오른 미노타우로스가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긴장한 스컬 길드원들이 마른침을 삼키던 그때였다.
“뭐야, 아직도 못 끝낸 거야?”
검은 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