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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헌터-8화 (9/186)

[8화] 피바라기 (2)

늦은 밤.

강서구 연쇄살인마 최명식은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은신처로 돌아왔다.

고물상처럼 각종 고철이 산재한 이곳이 바로 그와 <피바라기>의 보금자리였다.

<균열> 초기에 발생한 마물과의 대규모 전투는 한반도 곳곳에 쓰레기장을 만들었다.

일명 ‘쓰레기 무덤’.

무너진 건물 잔해와 녹슨 군 장비, 각종 폐기물, 사체 따위가 뒤섞여 있는 곳이다.

한때는 고철이나 마물의 사체를 찾아온 사람들로 핫한 지역이었지만, 잔해와 사체에서 흘러나온 마력과 유해 가스로 인해 수백 명이 비명횡사한 뒤로는 아무도 찾지 않는 불모지가 됐다.

거기다 길드에서 종종 버리는 불법 폐기물까지 더해져 이제 이곳은 일반인에겐 죽음의 지역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이야 <균열> 내부에 쓰레기를 넣고 닫아 버린다지만, 그것도 근래에 시작된 일.

서울시에서 처리한다 해도 대부분의 각성자는 <균열>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 쓰레기 따위를 치우고 싶어 하지 않았다.

덕분에 ‘쓰레기 무덤’은 세상에서 절반쯤 잊힌 장소가 되었다.

“후…….”

익숙한 썩은 내를 맡고 나서야 최명식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손목이 잘린 탓에 낮 동안은 어느 건물 지하 주차장에 숨어 시간을 보냈다.

헌터 경찰들이 버젓이 그를 쫓고 있는데, 피투성이 몸으로 거리를 걸을 순 없었기 때문이다.

“제기랄…….”

다행히 손목의 피는 아물었지만, 고통과 분노는 여전했다.

그는 이를 악물며 낮에 본 사내를 저주했다.

“이 개새끼! 쳐 죽일 새끼!”

한바탕 욕지거리가 방대한 쓰레기 무덤에서 흘러나왔다.

그러고 나니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도 같았다.

마음을 진정시킨 최명식은 <피바라기>가 기다리고 있을 고철 더미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고철을 임의로 쌓아 만든 그곳이 <피바라기>의 보관처였다.

황금빛 손잡이에 루비가 장식된 페스카즈.

안에 있던 <피바라기>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내가 낮에는 꼼짝하지 말고 있으랬지!]

역시나 녀석은 신경질을 부렸다.

그 성화에 최명식은 주눅 든 얼굴로 대답했다.

“미, 미안. 어제 거기에, 갔어. 사람들이, 우리가 이룬 걸, 보고 있었어. 아주, 많이.”

[조금만 참으라고 했잖아! 조금만 더 참으면 그딴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수천, 수만도 더 죽일 수 있다니까!]

그러자 이번에는 최명식도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조, 조금만 언제! 너무 오래, 쉬었어! 손이 너무, 근질근질해. 요즘 즐기지, 못했다고! 그냥 죽이는 건, 재미없어. 살아 있는 게… 산 게 필요해. 자르고, 부러뜨리고, 구부리고, 뽑고……. 움직이는 거 말이야!”

최명식은 살인을 하는 상상만으로도 황홀하다는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본 <피바라기>는 답답함으로 몸이 깨져 버릴 것 같았다.

‘이 버러지 새끼가…….’

성질 같아서는 당장 모가지를 잘라 버리고 싶지만, 지금 자신이 의지할 건 이 머저리 같은 놈밖에 없었다.

자신을 받아들이고도 정신을 멀쩡히 유지한 건 놈이 유일했으니까.

그게 사이코패스 살인마라는 게 아이러니이지만 말이다.

‘더 쓸 만한 숙주가 있었더라면…….’

그런데 그때, 이를 갈던 <피바라기>의 눈에 잘린 최명식의 손목이 보였다.

당황한 <피바라기>가 물었다.

[너, 손은 어디 갔어?!]

그러자 최명식이 몸을 움츠리며 답했다.

“오, 오다가, 각성자를…….”

[너… 놈들을 만났어?]

“네, 네가, 더 강한 피가 필요하다고, 했잖아.”

결국 <피바라기>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이런 병신 같은 새끼가!]

“미, 미안해! 잘못했어! 화, 화내지 마!”

겁먹은 최명식이 쩔쩔맸지만, <피바라기>는 그마저 꼴 보기 싫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덜떨어진 놈을 택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러나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뭐지, 이 위화감은?’

알 수 없는, 미묘한 무언가가 <피바라기>의 심기를 거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최명식이 붙잡고 있는 손목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상처 내밀어 봐!]

최명식이 억울한 듯 잘린 손목을 내밀자, 비로소 그곳에 남겨진 강우의 마력이 느껴졌다.

뒤늦게 같은 것을 느낀 최명식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잘릴 때, 마력이, 좀 남았나 봐.”

[망할!]

“왜, 왜?”

분노한 <피바라기>의 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지금까지 이렇게 멍청한 새끼를 숙주로 두고 있었다니!

[마력으로 손을 자른다고 이렇게 오래 마력이 남진 않아! 이건 일부러 집어넣은 거다!]

“일부러? 대체, 왜?”

[왜긴, 이 병신 같은 새끼야! 널 잡으려고지!]

“뭐?”

하지만 여전히 최명식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그를 무시하며 <피바라기>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 정도로 마력을 정교하게 다루는 놈이라면, 아직 최명식이 상대하긴 무리다.’

아무리 고민해도 답은 달아나는 것뿐이었다.

그때, 무언가를 느낀 <피바라기>가 흠칫 놀랐다.

‘제기랄…….’

벌써 이 마력의 주인이 ‘쓰레기 무덤’으로 들어온 것이 느껴졌다.

결정을 마친 <피바리기>가 서둘러 말했다.

[시체 무덤으로 가자.]

“시체, 무덤으로?”

[어. 너 요즘 즐기지 못했다고 했지?]

“마, 맞아. 나 즐기지 못했어.”

[지금 즐기게 해 줄게.]

<피바라기>의 말에 최명식이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 <피바리기>는 한심한 듯 조소했다.

‘병신 같은 놈…….’

지금까지 키운 게 아깝지만, 이렇게 된 이상 미련 없이 버려야 했다.

놈과 함께 있으면 계속해서 쫓기게 될 테니까.

[서둘러.]

최명식이 서둘러 <피바라기>를 붙들고, 둘은 ‘시체 무덤’으로 향했다.

시체 무덤이란 멀쩡한 시체들을 쌓아 둔 곳이었다.

아직 피를 먹지 않는 시체들.

그곳에 다다르자 최명식이 물었다.

“그런데 여긴, 왜? 여긴 이미, 내가, 다 놀았는데……. 먹는 건, 나중이라고, 했잖아.”

[지금 먹을 거야. 곧 살게 될 거고.]

“뭐?”

최명식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지만, <피바라기>는 대답하지 않았다.

스르륵.

<피바리기>가 기운을 끌어 올리자 칼날 끝에 핏방울이 맺히더니, 곧 비눗방울처럼 퍼져 나왔다.

그 모습을 최명식이 신기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빠져나온 수십 개의 핏방울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시체들로 향했다.

핏방울이 몸에 스며들자 시체들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놀란 최명식이 비명을 질렀다.

“아, 앗!”

하지만 모든 핏방울이 시체로 들어간 건 아니었다.

그의 목덜미로도 핏방울 하나가 닿았다.

‘어?’

비로소 이상함을 느낀 최명식이 따끔한 목을 만지작거렸지만, 그것도 잠시.

곧 그의 몸에서도 변화가 일었다.

“뭐, 뭐야! 으아아아악!”

부르르!

그의 통제를 벗어난 근육들이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피가 들끓고, 근육이 부풀다 줄어들기를 반복했으며, 힘줄이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졌다.

알 수 없는 힘이 그의 온 신경과 근육을 조종하고 있었다.

“도, 도와줘! 도와줘! 피바라기야!”

당황한 최명식이 <피바라기>에게 도움을 구했지만, 녀석은 대답이 없었다.

그때, 한 발가벗은 남자가 다가와 그의 손에서 <피바라기>를 빼앗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누워 있던 시체 중 하나였다.

“무, 무슨… 아악!”

그, 그그그, 그극!

그와 동시에 최명식의 팔다리가 부풀어 오르고, 관절이 기형적으로 꺾여 나갔다.

끔찍한 고통에 그가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는 사이, <피바라기>는 가까워져 오는 강우의 마력을 느끼며 웃었다.

[꽤 머리를 썼다만… 어디 한번 쫓아와 봐라.]

곧 <피바라기>를 쥔 남자가 쓰레기 무덤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어난 수십의 시체들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 * *

‘시작된 건가.’

최명식을 따라 쓰레기 무덤에 들어선 강우는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가는 미세한 마력들을 느꼈다.

아마도 <피바라기>는 싸움 대신 도주를 택한 모양이었다.

만약 놈이 최명식으로 전력을 다했다면 힘든 싸움이 됐을 텐데, 강우로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숙주가 없는 <피바라기>를 상대하기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울 테니까.

‘우선 저것부터 잡아야겠지만.’

강우는 우두커니 서 있는 3미터짜리 거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통나무 같은 다리를 뚫고 튀어나온 무릎뼈와 비정상적으로 자리한 관절, 축 늘어진 뱃살.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최명식은 거대한 살덩어리 괴물이 되어 있었다.

한동안 살인마로 살아온 놈이 이제는 반대로 사냥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

최명식은 강우를 발견하고도 한참이나 멍하니 쳐다봤다.

아직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을 잘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

강우는 쓰게 웃었다.

‘흉하군.’

과거, <선혈 동굴>에서 만난 암살자보다 훨씬 더 흉측한 모습이었다.

아마도 다급히 변이를 진행한 탓이겠지.

이윽고 정신을 차린 최명식이 입을 열었다.

“나… 주근 거야?”

하지만 정확한 발음은 아니었다.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무너진 잇몸에서 이빨이 우수수 떨어졌기 때문이다.

강우는 아무 말 없이 단검을 들어 올렸다.

“왜… 대체 왜! 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최명식이 크게 포효하자, 주변에 있던 고철들도 공명하며 몸을 떨었다.

콰광!

순간, 삽시간에 늘어난 괴물의 팔이 강우가 있던 바닥을 덮쳤다.

어찌나 힘이 센지, 대신 맞은 철판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죽어!”

쾅! 쾅! 쾅!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팔들이 고철을 부수고, 그 파편이 이리저리 떨어졌다.

강우는 떨어지는 고철들을 피하며 최명식에게로 달려갔다.

놈이 자신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팔은 늘어난 만큼 방향 전환이 느렸다.

푹! 푹!

“크학!”

강우가 살덩어리를 인정사정없이 찌르자, 최명식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머리를 노리고 들어온 일격에 허리를 젖힌 강우는 다시 허리를 비틀며 검을 휘둘렀다.

콰직!

그러자 살점이 뭉텅 잘려 나간 자리에서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아, 아파! 아파!”

최명식의 왼팔을 난도질한 강우는 다시 옆으로 지나가는 오른팔에 단검을 박아 넣은 뒤, 바닥을 박차며 그 위로 올라탔다.

놈이 팔을 흔든 탓에 잠시 휘청거렸지만, 특유의 균형 감각으로 버텨 냈다.

마치 외줄을 타는 무희처럼.

마력으로 강화된 신체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했다.

“내, 내려…가!”

갑작스러운 강우의 묘기에 당황한 최명식이 서둘러 팔을 거둬들였지만, 그건 그것대로 큰 실수였다.

팔을 거두는 것과 동시에 강우와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으니까.

“아아…….”

최명식의 두 눈에 팔에서 크게 도약하는 강우가 비쳤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팔에서 머리로 가볍게 건너뛴 강우가 놈의 어깨에 두 발을 걸치고는 말했다.

“죽어라.”

콰직!

강우의 단검이 정확히 최명식의 정수리에 박혔다.

검은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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