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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헌터-3화 (4/186)

[3화] 검은 옷을 입은 헌터 (3)

이틀 뒤.

발신 제한이 걸린 번호로 메시지가 왔다.

『안국역 물품 보관함 48번. 비밀번호 4885.』

강우는 기다리던 문자에 즉각 집을 나섰다.

황 노인을 만난 날부터 감시자가 붙었다는 걸 알았지만, 그는 짐짓 모른 척 행동했다.

어차피 지금은 감출 것도 없다.

지하철은 15분쯤 달려 안국역에 도착했다.

문자대로 48번 보관함을 열자, 안에는 두 번 접힌 종이가 보였다.

클립으로 고정된, 비밀스러운 쪽지.

강우는 쪽지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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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1056.

3층 ‘알펜시의 기적’

기한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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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안에는 문장 세 줄이 적혀 있었다.

‘알펜시의 기적이라…….’

검계가 소속원들에게 종종 선물하곤 하는 그림이다.

초원에 집이 그려진 그림이던가.

쪽지는 클립에서 빼고 약 1분이 지나자 스스로 녹아내렸다.

비밀을 전할 때 쓰이는 <발화 종이>였다.

‘방배동 1056.’

포털 사이트에 주소를 적어 넣자 낯익은 지도가 보였다.

‘왕린의 집이로군.’

대개 용병 길드는 상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길드가 용병을 운용하는 데는 돈이 필요하고, 상인은 재산을 보호할 용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법적인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검계인 만큼 그들은 암상인을 전용 거래인으로 뒀다.

암상인인 왕린은 검계의 든든한 거래인이자 가족.

그 역시도 검계 소속이었다.

과거, 왕린의 서열은 검계 5위.

아마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첫 시작으로 왕린의 물건을 훔쳐 오라니…….’

그렇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황 노인이 자신에게 큰 기대를 걸었거나, 쳐 낼 구실을 찾고 있거나.

하지만 후자라면 감시자에게 강우를 죽이라고 지시하면 그만.

즉, 황 노인은 자신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기대에 부응해 줘야겠지.’

석탈해의 비밀을 알아내기 전까진 황 노인은 강우에게도 중요한 존재.

그의 마음에 들 필요가 있다.

지도를 살핀 강우는 다시 지하철에 올랐다.

* * *

방배동 남태령역에 내리자 곧장 전원 마을이 보였다.

왕린의 집을 찾기란 쉬웠다.

성채처럼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3층짜리 대저택은 대번에 눈에 띄었으니까.

저택 앞에는 경비로 보이는 남자 둘이 있는데, 미세하게나마 마력이 느껴지는 걸로 봐선 1차 각성자인 듯했다.

‘벌써 문지기로 각성자를 쓰다니…….’

아무리 1차 각성자가 보잘것없다고 한들, 남의 집 문지기나 할 수준은 아니다.

마력으로 강화된 신체는 이미 일반인의 그것을 한참 뛰어넘었으니까.

그들에게도 자존심은 있다.

그럼에도 저기 서 있을 정도면, 어마어마한 보수가 지급되고 있을 터.

새삼 왕린의 위세가 와닿는 듯했다.

‘문지기가 저 정도면, 안은 더 하겠군.’

담장 위로 CCTV 세 대가 있지만, 다행히 강우가 서 있는 자리까지 비추진 못했다.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던 강우는 문지기들이 교대하는 틈을 타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다행히 정원에는 경비가 없었다.

검은 마스크를 쓴 강우는 손바닥만 한 단검을 쥔 채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피슉! 피슉!

그때, 미약한 소음과 함께 총알 두 발이 강우가 있던 바닥에 꽂혔다.

2층 테라스에 있던 경비였다.

본능적으로 바닥을 굴러 총알을 피한 강우는 저택으로 달렸다.

‘기다리고 있었나.’

하긴, 황 노인이 아무 언급 없이 자신을 이곳으로 보냈을 리 없다.

“침입자다!”

‘빠르게 정면 돌파한다.’

이미 침입을 들켰으니 더 거리낄 게 없었다.

단검에 마력을 집중시키자 검신이 파르르 떨렸다.

콰직!

강화된 단검으로 대형 유리창을 내려치자, 방탄유리가 안으로 무너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불 꺼진 내부는 마치 호텔 복도 같았다.

강우는 긴 복도를 달리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았다.

하지만 저택이 워낙 넓은 탓에 쉽지 않았다.

“저쪽이다!”

그때, 뒤쪽 복도에서 경비 둘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둘 다 1차 각성자였다.

강우는 기둥에 숨어 총알을 피한 뒤, 앞서 다가온 남자의 다리를 걸어 쓰러뜨렸다.

그러고는 뒤이어 총을 겨누는 다른 사내의 팔을 붙잡아 바닥에 메다꽂았다.

“컥!”

처음 쓰러진 남자가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강우가 머리를 걷어차자 그대로 정신을 잃고 축 늘어졌다.

죽이는 편이 속 편하겠지만, 그럴 순 없다.

어찌 됐든 왕린은 검계 소속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 도주 과정에서 벌인 무수한 살생에 강우는 일말의 죄책감이 남아 있었다.

그랬기에 둘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는 선에서 손속을 멈췄다.

그러고는 다시 복도를 달렸다.

“1층이다!”

“서둘러!”

소란을 깨달은 경비들로 저택이 시끄러워졌지만, 덕분에 2층으로 이어진 계단을 찾을 수 있었다.

발소리와 진동이 몰리는 곳.

소리를 따라가자 역시나 계단이 보였다.

강우는 주저 없이 2층으로 올라갔다.

“잡아라!”

피슉! 피슉!

2층 역시 긴 복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강우를 발견한 경비들이 양쪽에서 총을 쐈다.

저택의 손상에 큰 미련이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강우는 서둘러 계단으로 몸을 피했다가, 난간에 매달려 경비들을 기다렸다.

그러고는 그들이 계단을 내려오는 것을 확인하곤 냅다 몸을 날려 2층에 안착했다.

“놈이 올라갔다!”

2층에 남아 있던 경비 하나를 잽싸게 제압한 강우는 다시 올라오는 경비들을 향해 경고성 사격을 한 뒤, 서둘러 한 층 더 올라갔다.

이번에도 복도 양옆으로 보이는 문만 열 개가 넘었다.

결국 강우는 가장 가까이에 있던 방문을 발로 걷어찼다.

우지끈!

문이 부서지자 눈앞으로 각종 골동품이 펼쳐졌다.

미술품과 도자기가 가득하지만, 아쉽게도 ‘알펜시의 기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쪽이다!”

그사이, 뒤따라온 경비들이 방으로 몰려들었다.

“놈을 찾아!”

강우가 장식대 밑에 몸을 숨긴 가운데, 경비들이 방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경비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던 강우가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놀란 사내가 곧장 총을 겨눴지만, 강우는 가볍게 총구를 뿌리치곤 뒤에서 목을 감싸 안았다.

“조심해! 뭐 하나만 잘못돼도 목숨값이다!”

방 안으로 들어온 경비는 붙잡힌 남자를 포함 총 다섯인데, 장식품 때문인지 섣불리 총을 쏘지 못했다.

마침 방에는 강우와 경비가 들어온 곳 말고도 문이 하나 더 있었다.

경비들이 주춤하는 사이, 강우는 두 번째 문을 통해 복도로 나갔다.

강우가 사내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눈 채 물었다.

“알펜시의 기적은 어딨지?”

“마, 말 못 해…….”

“그럼 죽어라. 다른 놈에게 물을 테니까.”

차가운 강우의 목소리에 사내가 허겁지겁 답했다.

“세, 세 번째 방!”

강우는 세 번째 방으로 사내를 끌고 들어갔다.

그러자 한쪽 벽면에 걸린 ‘알펜시의 기적’이 보였다.

스케치북만 한 액자에 담긴 유화.

발목을 걷어차 사내를 쓰러뜨린 강우는 문 옆에 있던 탁자와 도자기를 끌어 문을 막았다.

도자기는 일부러 탁자 끝에 걸쳐 두었다.

그러자 붙잡혀 온 사내가 기겁하며 외쳤다.

“무, 문 열지 마! 놈이 백자기를 놨다! 열면 쓰러져!”

강우는 총으로 사내를 견제하며 ‘알펜시의 기적’을 챙겨 옆구리에 끼웠다.

그러고는 서둘러 창문을 부수고 아래로 몸을 날렸다.

‘됐다.’

좀 요란해지긴 해도 성공이었다.

하지만 그런 만족감도 잠시.

강우는 정원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뒤룩뒤룩 살이 쪄 체격이 강우의 두 배는 될 법한 남자였다.

‘왕린.’

그는 이 대저택의 주인인 왕린이었다.

잠옷 바람으로 서 있는 그가 턱살이 흔들리도록 웃으며 말했다.

“겁먹고 안 오면 어쩌나 했는데… 간덩이는 제법 쓸 만한 놈이구나!”

“…….”

강우는 서둘러 주변을 살폈다.

테스트는 ‘알펜시의 기적’을 가지고 황 노인에게 가는 것까지였다.

왕린은 아직 자신이 상대하기 힘든 상대.

싸움을 피해 저택을 벗어나야만 한다.

“이 쥐새끼 같은 놈!”

하지만 어느새 몰려든 경비들이 강우의 뒤를 잡고 있었다.

앞은 왕린, 뒤에는 스물 남짓한 경비들.

어디에 저 많은 경비가 숨어 있었는지는 몰라도, 저택 하나를 지키는 것치곤 많은 숫자였다.

‘애초에 테스트용 저택이었나.’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경비들이 그토록 마음 편하게 사격을 벌일 리 없지.

그런 와중에도 전시된 보물들이 진짜라는 건 여전히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말이다.

왕린이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린놈이 제법 선전했다만… 어쩔 테냐? 순순히 그림을 내놓고 끌려갈 테냐, 아니면 맞고 끌려갈 테냐?”

강우는 잠시 고민했지만, 결론은 어차피 하나였다.

그는 왕린을 향해 ‘알펜시의 그림’을 냅다 집어 던졌다.

왕린의 특기는 환술.

그의 신체 능력이 전투계 각성자보다 떨어진다는 점에 강우는 도박을 걸었다.

“어?!”

그러자 되레 당황한 건 왕린이었다.

‘알펜시의 그림’은 검계와 맺은 약속의 상징.

아무리 싸구려 그림일지라도 망가지는 건 찝찝한 일이었다.

‘내가 이래서 테스트용 그림이라도 하나 달라니까, 그 노인네!’

왕린이 황급히 ‘알펜시의 기적’을 향해 손을 뻗는 사이, 어느새 달려든 강우의 주먹이 안면으로 날아들었다.

주먹에 맺힌 마력이 선명했다.

‘이런 미친!’

왕린이 다급히 고개를 틀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퍽!

그의 손끝이 그림에 닿는 것과 동시에 마력을 거둔 강우의 주먹이 왕린의 볼살을 때렸다.

“이 개새…….”

“와, 왕린 님!”

경악한 경비들이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알펜시의 그림’은 다시 강우의 손에 들어간 뒤였다.

강우는 비틀대는 왕린을 지나 유유히 담벼락을 넘었다.

“…….”

강우가 사라진 저택엔 정적만이 맴돌았다.

뒤늦게 왕린이 얼얼한 뺨을 문지르며 중얼댔다.

“방심했네. 그 새끼, 분명 1차 각성자라고 했는데… 노인네가 날 속인 건가?”

그는 허탈하게 강우가 사라진 담벼락을 쳐다봤다.

* * *

“푸하하! 저거 진짜야?!”

네이비 정장을 입은 남자.

아까부터 왕린의 저택을 지켜보던 청익의 콧수염이 크게 들썩였다.

이렇게 크게 웃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불과 나흘 만에 2차 각성자가 됐다라……. 설마 처음부터 마력을 숨긴 건가?”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청익은 3차 각성자.

그런 자신의 눈을 피하려면 최소한 똑같은 3차 각성자여야 가능한 일이다.

강우가 뛰어난 실력을 가진 건 분명하지만, 3차 각성자로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애초에 각성자가 된 것도 반년이 채 되지 않는데.”

조사를 해 봤지만, 강우의 과거는 다소 불우할 뿐 특출하진 않았다.

부모는 고등학교 입학 무렵 교통사고로 죽었고, 유일한 혈육인 친할머니도 그가 열일곱 살이 되던 해에 죽었다.

그 뒤로는 막노동판을 전전하다가 반년 전 우연히 각성을 겪고 <균열>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며 지냈다.

그런 놈이 어떻게 벌써 2차 각성자가 된 거지?

‘재밌는 놈이네.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할배가 즐거워하겠군.’

황 노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즐거워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곧 청익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검은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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